195화
“영단의 힘을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떻겠소?”
흑촌주 원찬이 입을 열었다.
중원에는 ‘흑촌에 없는 물건은 세상에 없는 물건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흑촌은 중원 최대의 암거래 시장으로, 멀쩡하게 장터를 돌아다니는 물건은 물론이고 절도와 강도로 얻은 장물, 거래가 금지된 미약과 독, 세상에서 사라진 비급, 어린아이와 여인, 사내와 시체까지 거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고파는 곳이었다.
주로 뒤가 구린 물건을 뒤탈 없이 거래하는 곳이었다.
그런 흑촌의 촌주인 원찬의 입에서 영단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마경은 물론이고, 자리에 있는 사파 수장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에게로 향했다.
흑촌주가 대단한 영단을 내놓는다면, 욕심을 내 볼 만했다.
귀한 영단은 흑촌에서도 들어오기가 바쁘게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영단을 구하려면 엄청난 금전은 물론이고 인연과 인맥, 운까지 따라줘야 했다.
그만큼 얻기 어려웠고, 재수가 좋으면 단번에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산적 호령은 원찬의 입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효과 좋은 영단이 있다면, 무슨 수를 쓰든 손에 넣고 싶었다.
“동정호 거지촌에 의원이 하나 들었는데, 기가 막힌 영단을 만들어 낸다고 하오.”
원찬의 말에 잔뜩 집중했던 이들은 기운이 쪽 빠지는 것 같았다.
영단이라는 것은 대문파에서 대대로 내려온 비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영단의 재료 자체가 구하기 어렵고 제조법 또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한데 일개 의원이, 그것도 거지촌에 있다는 의원이 영단을 기가 막히게 만든다고?
신뢰가 확 떨어지는 말이었다.
“난… 또…….”
‘지가 내놓는다고’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는 사마경이었다.
“그 의원이 신의의 제자였다고 하지.”
원찬이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개방에서 그 의원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으응?”
호령이 눈을 번쩍이며 원찬을 돌아보았다.
‘신의의 제자라고 하면, 영단에 대한 비법을 알 수도 있지.’
‘신의의 제자가 우리에게 영단을 만들어줄까?’
문흠의 얼굴이 어둡게 바뀌었다.
원찬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파 수장들의 얼굴을 쓱 보고는, 그들의 표정을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한데, 그 의원의 성질이 워낙 괴팍하고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해대다가 신의에게 쫓겨났다고 하오. 지금은 거지촌 옆에서 성질나면 거지나 쥐어패면서 의원질을 하고 있다고 하지.”
“오호…….”
원찬의 말에 사마경과 수장들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신의의 제자였다면, 그 실력은 볼 것도 없이 대단할 것이다.
신의에게 쫓겨난 것이라면 뒤를 봐줄 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거지촌에 있는 것을 보면, 형편이 넉넉하지 못할 터였다.
“거지촌에 있는 의원이라면, 돈 좀 쥐여주면서 살살 구슬리면 되지 않겠소?”
흑사파의 문흠이 말했다.
“가능성은 있소. 하나, 신의에게 쫓겨날 정도로 성질이 고약하다면 또 어찌 나올지 모르지요.”
사마경이 생각에 잠겨 천천히 말했다.
“에잇! 그냥 잡아 와서 목에 칼을 들이대고 영단을 만들어 내라고 합시다!!”
호령이 괄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앙심을 품고 영단에 독이라도 타면 어찌하려고 하오!”
혈륜궁의 등정이 호령의 말에 반대했다.
“무조건 달래야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이 중 열에 아홉은 여인 또한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미인계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흑사파 문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은월에게 쏟아졌다.
은월은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었다.
최근 마교와 무림맹에 정신을 쏟는 통에 흘러 다니는 정보를 소홀히 해서 그런지 그런 의원에 대해서 듣도 보도 못했다.
“거지촌에 멧돼지에 들이받혀 다 죽어가는 거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의원이 만든 영단을 먹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지금은 거의 날아다닌다고 하오. 그 거지가 먹은 영단이 그리도 엄청난 것이라고 하지. 소문에 의하면 없던 내공까지 생겼다고 하오.”
말을 하는 원찬의 눈은 본 적도 없는 영단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사파는 꾸준한 수련이나 끈기 있는 단련보다, 쉽고 편한 방법으로 힘을 키우는 것을 추구했다.
이 자리에 모인 몇몇 수뇌부에겐 그다지 효과가 없다 할지라도 각자의 세력을 키우기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소문의 의원이 정말 대단한 영단을 만들어주기만 한다면,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는 정파와 마교를 누르고 무림에서 그들의 입지를 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 일을 은월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마경이 제안했다.
사파의 수장들은 그 말에 나서서 반대하지 않았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으면 됐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할 필요는 없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이딴 모임 그만두면 되고.’
“…….”
하오문의 곽영은 저 일을 하는 것이 하오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했다.
‘은월이 그 대단하다는 의원을 미인계로 잘 꾀어낸다면 하오문에 큰 득이 될 게야.’
곽영은 제자 은월을 바라보았다.
은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하기 싫으면 관두시오! 우리 녹림에서 의원을 잡아다 영단을 만들라고 시키겠소!”
하오문에서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고 뭉그적거리는 것이 못마땅한 호령이 큰소리를 쳤다.
“음! 제가 하겠습니다. 하오나, 일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나 물자에 대한 지원은 다른 문파에서 해주셔야겠습니다.”
은월이 제법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
비용이라는 말에 문주들은 대답 없이 잠잠했다.
“좋소! 혹여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우리들이 지원하겠으니, 영단부터 구해오시오.”
혈륜궁의 등정이 입을 열었다.
신의 제자의 영단이라면 얼마간의 돈을 들여서라도 얻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합시다. 혹여 반대하는 곳이 있으시오?”
사마경이 다른 문파들의 의견을 물었다.
“…….”
모두 긍정의 뜻으로 입을 다물었다.
돈을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영단이라는 것은 탐이 났기에 일단은 은월이 영단을 구해오는지 어쩌는지 지켜보고 그다음을 생각해볼 심산이었다.
“은월이 실패하면 우리 녹림에서 나설 거요!”
호령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으로 오늘 회의는 끝이 난 모양이었다.
하오문주 곽영은 자신의 후계자인 은월을 바라보았다.
단지 그녀가 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곽영의 후계인 것을 반대하는 이도 많았다.
그들에게 은월은 그저 곱고 연약한 여인이고, 사내를 홀리는 기녀일 뿐이었다.
하지만, 곽영은 그녀가 상황을 파악하는 눈썰미와 쟁점을 꿰뚫어 보는 판단력, 일을 진행 시키는 추진력 등을 높이 사 자신의 후계자로, 차기 하오문의 문주로 결정했다.
지금 당장 그녀에게 하오문을 물려준다고 해도 큰 탈 없이 잘 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문주님! 이번 일은 생각보다 미흡한 점이 더 많습니다. 그 의원에 대한 것은 제대로 된 정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동네 거지들의 유언비어에 가깝습니다.”
회의를 파하고 당장 그 의원에 대해서부터 알아본 은월이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하오문은 오랫동안 정보를 취급해 온 단체였다.
중원의 정보라는 것이 어디 한두 개이겠는가?
알짜배기 정보가 입에 입을 거치며 이상하게 변형되기도 하고, 그럴듯한 소문이 사실은 턱도 없는 거짓이기도 했다.
정보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쓸 만한 것과 쓸모없는 것을 가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거지촌 의원에 대한 소문은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다 동네 거지 몇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로 신뢰할 수 없는 정보로 분류되어 은월에게 보고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너는 어찌하겠느냐?”
곽영이 단호한 말투로 물었다.
이것은 단순히 은월이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것인지에 관해 묻는 물음이 아니었다.
차기 문주로서 생각과 다르게 일어난 일을 어찌 해결하는지 보고자 하는 의미가 컸다.
은월은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거지촌으로 가서 의원을 찾아 그 영단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그런 의원이 없다면 인근의 의원이라도 찾아서 영단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문주들께 수고비와 지출된 비용을 받고 영단을 건네야겠지요.”
은월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오문주 곽영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은월을 바라보았다.
* * *
약방에서 약초를 팔고 나온 마강과 거지 일행은 자신들이 거지인지, 약초꾼인지 헷갈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살기가 수월해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오늘도 약초를 판 돈이 꽤나 쏠쏠했다.
그중 일부를 나누어 가지고, 나머지는 진료소에 줄 생각이었다.
진료소로 향하는 마강과 거지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익숙하게 진료소로 향한, 마강과 거지들은 입구에서 걸음을 딱 멈추었다.
모든 거지들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강의 시선도 그들이 향한 곳을 따라 움직이다 턱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헉…….”
‘백지장처럼 새하얀 피부에, 눈동자는 어쩌면 저렇게 새까맣지? 아이고… 저, 저 허리는 한 줌도 안 되겠구먼… 저게 사람이야? 사내를 홀려 잡아먹는다는 꼬리 달린 여우가 아닐까? 어찌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가 있는 게지?’
도저히 거지촌과 어울리지 않는 고운 얼굴을 한 여인이 가슴골이 깊게 파인 하늘하늘한 의복을 입고 진료소로 든 것이다.
옷을 입었는데도 전신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마치 나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진료소의 거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거지들 틈에 자리하고 있던 당시월도 은월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고운 얼굴에 색기가 줄줄 흐르는 여인의 눈빛은 예리했고 육감적인 몸은 탄탄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흐르는 듯 움직이는 팔과 다리의 동작 하나하나는 우아하지만, 절도가 있었다.
오랫동안 무공을 수련한 것이다.
‘무공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여인이라…….’
예사롭지 않은 여인을 보며 그가 알고 있는 무림의 인물들을 떠올리던 당시월은 은월과 눈이 딱 마주쳤다.
당시월은 잠시 그녀가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은월의 시선이 곧 다른 거지들에게 돌아갔다.
‘하긴… 당가의 누가 찾아와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게야…….’
한순간 긴장했던 당시월의 몸이 이완되고 있었다.
은월은 우글대는 거지들 중에 의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다 똑같은 거지였다.
은월을 바라보는 거지들은 조용했다.
“우와― 예쁘다―”
그 기묘한 침묵을 깬 것은 영영이었다.
“여기 의원을 뵈러 왔습니다.”
영영의 말에 답하는 듯, 여인이 얼굴만큼이나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료소 마당으로 나온 미령도 거지들처럼 멍하니 여인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대꾸했다.
“잠,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영의 어미인, 미령이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급하게 닦으며 방으로 들었다.
여인에게서 풍기는 그 무엇이 미령을 서두르게 만들고 있었다.
“의원님! 손님이 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