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무림 제패의 꿈】
사파의 수장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사흥문의 문주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언제적 사흑련을 지금 가지고 와서 모임을 개최하다니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건지, 뭔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원 사파의 대표 모두가 모인다고 하여 참석하기는 했으나, 별로 대단할 것 없는 놈이 상석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꼴이 달갑지는 않았다.
“우리를 왜 부른 것이오?”
사마경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성질 급한 녹림의 호령이 불만스럽게 내뱉었다.
“모두 다 오시면 말씀드리겠소.”
사마경이 제법 근엄한 척 말을 했다.
“…….”
호령은 다른 문파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삐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오문주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하오문주 곽영이 그의 제자이자 차기 문주가 될 은월과 함께 들어왔다.
굳은 듯,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사마경의 표정이 순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은월에게 향했다. 잠시 후,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근엄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오문주 곽영이 자리에 앉자, 사마경은 사파의 수장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예까지 오신 문주님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 인사 같은 것은 됐고, 우릴 왜 불렀는지나 말하쇼.”
호령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음… 문주님들은 정파의 힘이 왜 강한지 아십니까? 우리가 왜 정파를 이기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난데없는 질문을 던진 사마경은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무림맹을 아시지요? 정파들이 연합한 곳입니다. 중원 어디에든 그들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정파들의 모임인 무림맹에서 함께 힘을 합쳐 일을 해결합니다.”
“그게 뭘 어쨌다는 거요?”
자신이 이곳까지 온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혈륜궁의 궁주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그러니, 강해지기 위해 우리도 힘을 합치자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그 결속력을 다진다면 정파 못지않은 힘을 기를 수 있을 겁니다.”
사마경의 말에 흑사파 문흠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 꿈도 크시오! 우리가 무슨 수로 정파 같은 힘을 키운다는 말이오.”
문흠의 말에 사마경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곧 정마대전이 있을 겁니다. 정파와 마교가 치열하게 싸우고 엄청난 전사자를 낼 겁니다. 정파와 마교 모두의 힘이 줄어들겠지요. 그때라면 우리도 정파 못지않은 힘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마경의 입에서 나온 ‘정마대전’이라는 말에 그것에 대해 알지 못했던 문주들의 표정이 변했다.
정말 그의 말 대로라면 사파에서도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거기다 정마대전이 일어난다는 것 또한 어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방안에 의심의 기운이 스멀스멀 퍼지자 사마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오문에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조만간 정마대전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하오문주에게 쏠렸다.
“으흠…….”
하오문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 결심한 듯 말했다.
“그렇소이다. 무림맹에서 조만간 마교를 칠 계획이오.”
“허어…….”
누군가 탄성을 터트렸다.
사마경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정파만큼의 힘을 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해서 우리도 힘을 키우자는 말입니다. 당장 화산이 봉문을 하였습니다. 우리 사흥문 아랫마을만 해도 화산에서 뒤를 봐주던 점포가 주인 없는 강아지처럼 널려있습니다.”
“…….”
“그런 곳부터 하나씩 차지하면서 세력을 넓히자는 겁니다.”
“에이… 그런 작은 동네 점포를 먹는다고 힘이 얼마나 커지겠소? 이왕 힘을 키우기로 했으면 보은상회 정도는 빼앗아야 하지 않겠소?”
호령이 호기롭게 말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우선은 작은 곳부터 하나씩 우리 것으로 만들면서 힘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보은상회도 우리가 차지하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사마경이 호방한 척 웃음을 터트렸다.
“으흠…….”
사마경의 그럴듯한 말에 사파의 수장들은 나름대로 고민했다.
‘그거 꽤 괜찮은 생각인데.’
녹림의 호령은 모두가 연합해서 정파만큼 힘을 키우자는 의견이 싫지 않았다.
‘사파의 모임이라… 여기 모두가 함께한다면 빠질 수야 없지.’
흑사파의 문흠은 사파들의 단체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기 모인 이들이 힘을 합쳐 세력이 커지는데 흑사파만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뭐 일단은 어찌 되는지 지켜보는 게 좋겠지.’
‘음… 적당히 한발 걸치고 있다가 상황이 안 되면 발을 빼면 그만이고.’
자리에 모인 수장들이 나름대로 사마경의 제안을 판단하고 있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그의 말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사마경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파 수장들을 둘러보았다.
* * *
공엽방은 무림맹 회의석상에 앉아 있는 운문을 쏘아보았다.
운문은 무림맹에 상주해 있던 화산의 장로로, 봉문을 한 후에도 맹주의 요청으로 맹에 계속 남아있었다.
‘대체 맹주는 회의 자리에 화산의 제자를 불러서 뭘 하자는 게야!’
공엽방은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다른 문파의 대표들을 둘러보았다.
그들도 불편한 표정으로 운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산은 이미 마교와의 전쟁에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정말로 봉문했다.
공엽방은 꼴 보기 싫었던 화산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화산에 틀어박혀, 다른 문파와 무림맹에 외면당하고 있는 그간의 사태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데, 갑자기 화산의 장로를 왜?’
공엽방은 불안했다.
혹시라도 화산이 정마대전에 참전해서 지금까지의 일을 유야무야 없던 일로 해버릴까 봐 말이다.
공엽방은 회의실로 들어서는 무림맹주 여송을 바라보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파 대표들의 인사를 받은 맹주는 자리에 앉아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 운문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보아 아시겠지만, 오늘은 화산의 장로께서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여송의 말에 공엽방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여송은 말을 이었다.
“정도를 따르는 정파의 제자들이 모두 함께 악을 단죄하는 자리에 화산만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송이 자신의 말에 동조를 바라는 듯 다른 문파의 대표들을 보았다.
“수일검이 있는 화산 또한 어찌 악이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공엽방의 불쾌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여송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동요 없이 말했다.
“그러니 더욱이 화산이 함께 해야지요. 제자 한 명의 한 번의 실수입니다. 화산에 만회할 기회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마대전에서 화산이 일선에 나서서 악의 무리를 쳐낸다면 아무도 더 이상 화산의 의중을 의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송의 말에 운문의 얼굴이 굳었다.
‘화산을 일선에 내세워 화살받이로 쓰겠다는 말이구나.’
공엽방의 머리도 빠르게 회전했다.
전쟁을 치른다면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종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산을 빼고 정마전쟁이 끝나면 모든 문파에 세력이 줄고, 피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산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도 영웅의 문파라고 요 십여 년 사이 엄청난 제자들을 받아들여 몸집이 커질 대로 커졌는데, 그들을 잘 훈련 시켜서 봉문을 풀면 종남이 밀릴 게 뻔했다.
아니,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크고 단단한 문파가 되어있을 것이다.
여송의 말이 맞았다.
화산을 참전시켜 일선으로 내보내야 했다. 화산의 세력을 줄여야 했다.
“역시 맹주님이십니다. 그 깊은 식견을 어찌 따르겠습니까. 잠시나마 옹졸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화산에 허물이 있다고 하나, 사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엽방이 빠르게 태세를 바꾸어 다른 문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소림의 운상대사가 동조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림은 이번 기회를 빌어 금월대사의 죗값을 치를 것입니다. 화산이야말로 누구보다 죄를 사할 기회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화산이 없다면 소림과 무당을 일선으로 몰아붙일 것이 뻔했다.
소림에서는 이선에라도 서려면 화산이 필요했다.
“그렇지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우리 모두 함께 악의 무리를 섬멸해야 합니다.”
운상대사와 같은 생각을 한, 무당의 정진도 화산이 참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
화산이 일선에 서야 한다는 맹주의 말에 다른 문파들도 화산의 참전을 반대하지 않았다.
여송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운문을 쳐다보았다.
“장로께서는 화산의 허물을 용서하겠다는 모든 문파의 생각을 장문인께 잘 전달하시어, 꼭 함께하도록 해주십시오.”
“네…….”
운문이 마지못해 답했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화산을 전쟁의 방패로 내세우려는 게 뻔히 보였다.
운문은 화산의 봉문을 혼자 결정하고 공표한 장문인에게 불만이 많았었다. 대부분의 화산 제자들이 그랬다.
한데, 이제는 장문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화산의 봉문이 제자들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였다는 것을.
* * *
무림 전체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무림맹은 마교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준비 중이었고, 마교는 그 나름대로 내부에서 술렁거리며 분위기가 흉흉했다.
사파는 사파대로 사흥문 덕에 함께 모여 무림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흥문주의 말이 맞는 듯싶소. 정파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아…….”
혈륜궁의 등정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혈륜궁에서 조용히 사람을 써서 확인한 내용도 그랬다. 무림맹에서 정파 대표들이 모임을 갖는 횟수가 너무 잦았다.
“…….”
사흥문에 이어 하오문, 혈륜궁주까지 저리 말한다면 조만간 정마대전이 터지는 것은 확실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파의 수장들은 각자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서 자신의 문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지 머리를 굴려댔다.
“하! 참! 그래서 우리보고 뭘 어쩌자는 게요?”
성질 급한 녹림의 호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정파고 마교고 그 세력이 줄어들 때까지. 지금 괜히 움직였다가는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니지요.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혈륜궁의 궁주 등정이 그럴듯한 소리를 했다.
“말이 쉽지, 힘이라는 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키워지는 것이겠소? 정파의 힘이 약해진다고 해도 우리가 어찌할 수 있을지…….”
흑사파의 문흠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정파의 세력이 약해진다고 해도 정파였다.
유구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그 힘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편하고 쉬운 방법만 추구해 온 자신들이 그들만큼 강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인원수는 많으나 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결집력 또한 모래보다 더 뭉치기 힘든 것이 사파인들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