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당시월은 거지들에게 물어서 알아놓은 동정호 주변, 개방의 점포인 공도상회를 찾았다.
바닥의 흙을 떠서 얼굴과 옷에 문지르고 틀어 올렸던 머리를 풀어 아무렇게나 헝클어트려 얼굴을 가렸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개방의 점포 앞에서 몸을 숨기고 드나드는 이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개방도 몇이 점포에서 나오고 일반 거지 두엇이 들어서는 입구에서 뭔가를 떠들어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손님으로 보이는 이가 가게로 들자 공도상회의 개방도가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일반 거지들은 조금 더 이야기하다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당시월은 한참 뒤 들었던 손님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가게로 다가갔다.
당시월의 옷을 갈아입힌 걸화는 그의 소지품과 전낭 같은 것을 챙겨두었다가 정신을 차린 그에게 돌려주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전낭에는 제법 많은 돈이 있었다.
그 정도의 돈이면 그가 원하는 정보를 살 수 있으리라.
“어서… 어잉…? 처음 보는 거지네?”
가게 안에 있던 개방도가 당시월을 보고 말했다.
“아… 저기 거지촌 진료소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시월이 말했다.
“아하! 진료소! 어때요? 진료소에는 별일 없소? 의원님은 잘 계시고?”
“그럼요, 별일 없지요. 의원님도 건강하게 잘 계십니다.”
당시월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소? 심부름 오셨소?”
개방도가 처음 본 당시월에게 제법 친근감 있게 물었다.
“저기… 그… 뭐 좀 알아보려고… 그… 당가 총관에 대해서요…….”
“아! 시신 찾으려 나서려고? 에이…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벌써 당가에서도 우리도 주변을 다 뒤져봤지만 못 찾았수. 뭐 찾으러 다니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쉽지는 않을 거요.”
공도상회 개방도가 가볍게 말했다.
개방에 의뢰가 들어온 일 중, 일반 거지가 함께하는 일은 많았다.
그런 기회에 잘만하면 일반 거지가 개방도가 되기도 했기에, 개방도는 일하고 싶어 하는 거지들에게 호의적이었다.
특히 당가에서 총관의 시신을 찾고 있는 것과 같이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버린 일에 대해서는 말 못 할 것도 없었다.
“아… 그렇군요…….”
당시월이 혼자 주억거렸다.
‘당가에서도 나를 찾으러 왔었구나…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건 누가 해했는지 알아내서 복수하려는 것인가? 장례도 치러주고? 미리 알았다면 그들과 같이 당가로 돌아가는 건데…….’
“두무산 너머부터 넓은 강이 길게 나 있지 않소? 아마 강으로 떠밀려가서 어디 가라앉은 모양이오.”
개방도의 말에 당시월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군…….’
“그 총관이 푸른색 비단옷을 입고,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이고 눈이 좀 옆으로 찢어져서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라고 하오.”
개방도가 당시월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당시월은 개방도의 눈빛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벅적벅적 긁었다.
단전이 상해서 그런 것인지 얼마 사이 당시월의 검던 머리카락은 완전한 백발이 되어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단정하고 차가운 인상의 당가 총관과 어지럽게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낡아빠진 옷을 입은 그는 누가 보아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당시월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에서 자신을 그렇게 찾고 있다면 당가로 돌아가는 것이 옳았다.
거지 옷을 벗고 당가 총관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마당에 더 이상 개방도가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찾았다고 혼자 당가로 가지고 갈 생각은 마시오. 당가가 좀… 그렇지 않소?”
간혹 이런 일들을 혼자서 처리해보고자 하는 일반 거지들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중원의 일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줄도 힘도 없는 일반 거지 하나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당가가 왜…?”
‘대체 저 개방도는 당가를 어찌 생각하는 것이란 말인가? 총관을 찾아준 은혜도 모르는 그런 가문이라고 생각하는 겐가… 쯧…….’
“가문에서 퇴출당한 총관 시신을 찾는 게 뭐 좋은 일이겠소? 발견만 하면 우리한테 알려주쇼. 나머진 우리가 할 테니.”
“뭐… 뭐요?”
‘가, 가문에서… 퇴출……?’
당시월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이참… 우리가 뭐 그 일을 가로채려고 그러겠소? 시신 찾은 값은 섭섭지 않게 쳐줄 테니 걱정 마시오. 거, 총관을 찾는 분위기가 영 좋지가 않았다고 하니 괜히 불똥 튈까 봐 그러는 게지…….”
개방도는 당시월의 당황한 모습에 자신의 말에 오해한 거라고 생각해서 사족을 붙이며 설명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당시월이 겨우 이 말을 내뱉었다.
“강을 찾아봐야 할게요. 물이 고이는 곳, 깊은 곳 위주로 찾아보쇼.”
개방도의 말에 당시월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도상회를 나왔다.
당가로 돌아가고자 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막던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보은상회 가주를 없애라고 의뢰한 것이 들켰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평생 당가만을 위해 산 나를… 상회가주 따위가 뭐라고…….’
당시월은 찬 바람이 부는 길을 홀로 천천히 걸었다.
단전이 상처 입었을 때보다 더 큰 통증이 그의 뱃속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언제 흘려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다.
* * *
시린 바람결에 보드라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걸로 부족해! 더! 더 많이! 저기! 저쪽에 있는 큰 솥도 쓰거라!”
당시월이 딱 잘라서 명했다.
“어르신! 이리 많이 필요할까요?”
“어허! 사람이 몇인데. 그걸로 부족해! 더 끓여!!”
당시월은 단호했다.
그로서는 이미 많이 참았다. 더 이상은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진료소 거지들은 당시월의 과단한 얼굴을 보며 그가 시키는 대로 커다란 솥에 주엽나무와 초목회, 박하와 같은 것들을 넣어 끓여대고 있었다.
당시월은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진료소를 빠져나가려는 거지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도망가는 놈은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게야!!”
당시월의 엄격한 목소리에 일어섰던 거지가 다시금 진료소 한구석에 궁둥이를 붙였다.
기나긴 겨울 동안 거지들은 모두 커다란 움막에서 함께 살았다.
어디서 뭐 하다가 굴러들어 온 지도 모르는 놈들은 하나같이 더럽고 꾀죄죄했다.
깔끔한 당시월은 당장 한 놈 한 놈 잡아다가 씻기고 싶었지만, 그 많은 녀석들을 씻길 만한 곳도 없거니와 추워도 너무 추운 날이 이어졌다.
이제 날이 풀리고 있었다. 모조리 냇가로 끌고 가서 씻길 작정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끓이는 약물로 씻으면 어지간한 피부의 부스럼도 가라앉고, 작은 벌레도 끼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어디 오늘만 날이겠는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으니 놈들을 씻길 날은 많았다.
거지들은 매달 당시월에게 이끌려 냇가로 목욕하러 가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당시월은 영수증도 읽지 못하는 놈들을 잡아다 글을 가르쳤다. 장청과 마강, 약방에 자주 가는 거지들은 떠듬떠듬 글자를 읽고 제 이름을 쓰기도 했다.
진료소 마당을 함부로 뛰어다니는 영영의 머리카락은 단단하게 땋아 올려서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당가의 총관 당시월은 무림맹 회의에 가는 중 정신 나간 광사연에게 당해서 세상을 떠났다.
당가에서는 총관의 시신이라도 찾아보려 이리저리 애를 썼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한곳에 있지 않고 떠도는 광사연을 찾아내 당가에서 총관의 복수를 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것인지 그 후로도 종종 광사연이 인두겁을 쓰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동정호 거지촌 진료소에는 어지간한 약초꾼보다 약초에 대해서 더 잘 알고, 그저 빈둥대기만 하는 거지들에게 글과 약용식물에 대해 가르치는 노인이 함께 살게 되었다.
소문에는 그가 진료소 의원의 오래전에 헤어진 아비라는 말도 있었고, 황제의 눈 밖에 나서 쫓겨난 아주 지위가 높았던 고관이라는 말도 있었다.
세상을 등진 무림의 고수라도 말도 있긴 했지만, 진료소 거지들의 눈에 그는 그저 더러운 꼴을 보지 못하는 노인네일 뿐이었다.
성격이 깔끔하고 깐깐한 노인은 거지들을 시켜 매일같이 진료소를 쓸고 닦았고, 지저분한 거지는 냇가로 끌고 가서 빡빡 씻겼다.
귀찮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지들은 사리에 밝고 아는 것 많은 노인을 존경하며 그를 따랐다.
* * *
사흥문의 문주 사마경은 사흥문에서 관리하는 객잔과 기루, 식당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지 않고, 더 아래에 자리한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최측근인 당조와 호위들이 그를 따랐다.
사마경은 아랫마을의 장터와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래서?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어?”
사마경의 말에 당조가 답했다.
“화산이 봉문은 한 것은 맞는데, 무림맹에서는 봉문을 풀라고 달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허이… 정파가 돼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게 아니지, 거참…….”
사마경은 화려하게 지어진 기루와 커다란 객잔과 좋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식당을 둘러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참… 아까워, 아까워. 임자 없는 곳인데, 그냥 주우면 되는데 말이야. 그래도 혹시라도 봉문을 풀면 큰일인데…….”
사마경이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그냥 차지해버리고 봉문을 풀면 손을 떼면 되지 않습니까?”
당조의 말에 사마경은 고민했다.
얼마 전, 화산이 봉문을 했다.
화산은 대체 얼마나 배가 터지게 먹고 살 작정인지, 그들이 있는 섬서에서 멀리도 떨어진 이 심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까 보고 온 객잔과 식당과 기루는 화산이 관리하던 곳이었다.
‘화산이 봉문한 지금은 뒷배가 아무도 없으니 사흥문에서 차지해도 될 것 같은데…….’
“에잇…….”
사마경이 혼자 짜증을 내뱉었다.
무림맹에서 화산을 달래고 있다고 하니, 혹시라도 조만간 봉문을 풀어서 사흥문이 그들의 점포를 빼앗았다는 걸 알면 큰일이었다.
사흥문과 같은 중소문파가 대문파인 화산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앉으나 서나 그 점포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아까워도 너무 아까웠다.
사마경은 당조와 사흥문에서 머리 좀 쓴다는 이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정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머지않아 정마대전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모른 척 그 점포들을 점거하면 어떻겠습니까?”
사마경의 측근 중 하나인 섭상의 말이었다.
화산의 점포를 차지할 요량으로 화산을 관찰하다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먼저 먹으면 어찌합니까? 그냥 우리가 차지하고, 혹시라도 화산이 봉문을 풀면 얼른 내주면 되지요. 화산도 전쟁을 하려면 우리까지 신경 쓰기는 힘들 겁니다.”
사마경이 제일 믿는 당조의 말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화산이 보복하면요? 다른 곳도 아니고 화산입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섭상의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영강이 입을 열었다.
“화산이 관리하던 곳이 비단 아랫마을 뿐은 아닐 겁니다. 중원 전체에 퍼져있는 점포의 숫자와 거기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것을 모두 사흥문이 차지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힘은 더욱 커지겠지요.”
영강의 말에 섭상이 토를 달았다.
“그것을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화산이 조만간 봉문을 풀 수도 있다고 하니 이리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힘을 모으는 겁니다. 사파 모두의 힘을요. 사흑련을 되살리는 겁니다. 화산의 점포를 차지한 것이 우리가 사흥문이 아니라 사파 전체라고 한다면 화산에서도 함부로 치기는 힘들 겁니다. 이런 일로 무림맹에서 나서지는 않을 거구요.”
영강의 말에 사마경은 생각에 잠겼다.
100년 전쯤, 사마경의 조부 때에 사파의 연합인 사흑련이 존재했고, 사마경의 조부인 사진환이 수장인 사흑련주였다.
그때야 사흥문이 잘 나가서 중원 곳곳에 많은 수의 지부를 가지고 있었으나, 전대 문주인 사마경의 아버지 대에 세가 급격하게 기울어 지금은 심천과 몇몇 곳에 상회나 객잔, 식당 등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세를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면서 사흑련은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흠…….”
사마경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