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커다란 나무둥치에 기대어 앉은 당시월은 몹시 힘에 겨워 보였다.
당호영은 당시월의 어깨 아래, 살이 헤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로 범벅이 된 곳을 지혈하고 찢어낸 옷자락을 대어 꼭 묶었다.
내상은 지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총관님…….”
당호영이 안타까운 얼굴로 당시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가자…….”
멀지 않은 곳에 놈들이 있었다.
오래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월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비척비척 걸었다. 당호영이 그를 도왔다.
날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더 추워지고 있었다.
당시월은 두껍게 쌓인 낙엽 더미에 몸을 묻고, 별이 총총히 뜬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라면 신을 신은 발로도 밟지 않을 더럽고 불결한 마른 잎사귀들이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얼마나 산속에서 허덕인 것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밤도 낮도 없이 이동하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지면 흙바닥을 파고 기어들어 가거나 낙엽에 몸을 묻고 쉬었다.
제대로 길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조심성 없는 놈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산을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력은 당시월의 뜻대로 되지 움직여 주지 않았고, 손과 발끝은 시리다 못해 이제는 감각도 없었다. 아랫니는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덜 떨렸다.
이대로는 살아서 산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삶의 끝이 이 얼어붙고, 연고도 없는 산속일까 봐 불안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서 당가에 연락을 해야 했다.
‘당가 사람들을 몽땅 데려와서 저놈들을 하나하나 씹어먹어 버릴 테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당호영이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기는 당시월에게 말했다.
“…….”
당시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는 한마디의 대답을 할 기운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몸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당호영이 간간이 당시월의 손을 잡고 어깨를 부축했다.
아주 멀리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살아서 산을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당시월의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당시월은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하하! 내 이럴 줄 알았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놈 때문에 당시월과 당호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렸는지 놈들이 빠르게 당시월과 당호영을 에워쌌다.
“네놈들은 죽어서도 우리 손아귀에서 못 빠져나가! 그리 힘쓰면 나중에 재미없소, 히히히히.”
“…….”
당시월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턱 아래로 칼자국이 길게 난 놈을 노려보았다.
“크흐흐흐, 시작하자!”
당시월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느물거리며 웃던 녀석의 말에 두 사람을 둘러싼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당시월은 커다란 몽둥이를 피하며, 그에게 다가오는 놈을 잡아 도를 들고 있는 녀석을 향해 밀었다. 끝이 가시처럼 날카로운 봉으로 찔러 들어오는 녀석의 팔을 내리치고 몸을 돌려 옆에 있는 녀석의 명치를 가격했다.
그리곤 놈들이 없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몇 놈을 처리한 당호영도 그를 따랐다.
“휘이익―”
“으하하하!”
불쾌한 소리를 내며 놈들이 두 사람을 쫓았다.
내공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기운도 없었지만, 당시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내어 달렸다.
“아하하! 영감! 뭐해? 더 달려!!”
새까만 치아를 드러내고 붉은 혀를 움직이는 놈이 당시월의 바로 옆까지 와서 조롱해댔다. 당시월은 달리면서 짧은 단도를 꺼내 놈의 어깨에 찔러넣었다.
“이놈이!!”
놈이 당시월을 향해 쑤시는 창을 피해 다리에 힘을 실었다.
달려나가는 당시월은 자신들을 완전히 포위하지 않고 한쪽 길을 터주며 쫓아오는 놈들이 그들을 어디론가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길이 없었다.
그들이 열어주는 길로 나아가는 수밖에.
“윽…….”
당시월보다 앞서 달리는 당호영의 옆구리에 가느다란 비수가 꽂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얏호!!”
당호영에게 비수를 찌른 녀석이 두 팔을 흔들며 소리 질렀다.
당호영은 잠시 비틀거렸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당시월은 몸을 움직이며 비수나 독을 날렸지만, 그들을 쫓는 놈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허……!”
한참을 숲에서 쫓기던 당시월은 갑자기 탁 트인 벌판이 나타나자 당황했다.
“이랴!!”
말을 타고 벌판의 입구에서 기다리던 놈들이 당시월과 당호영이 보이자 곧바로 그들을 쫓았다.
두 사람을 길게 생각할 겨를 없이 움직였다.
“으하하하!”
“휘이이익―”
“달려! 더 달려!!”
말을 탄 녀석들이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지르며 당시월과 당호영의 옆으로 다가왔다.
당시월은 사냥개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들이 몰아가는 대로 뛰고 또 뛰었다.
말을 탄 녀석들 중 하나가 몸을 숙이고 도끼를 내려 당시월의 팔을 그었다. 당시월이 빠르게 몸을 틀어 피했지만, 스쳐 간 도끼 자국이 팔에 길게 남으며 피가 배어 나왔다.
“아하하! 내 차례야!”
다른 놈이 달려들어 커다란 도를 당시월의 다리로 찔러넣었다. 당시월은 몸을 위로 띄워 피했다.
“실패!! 크하하하!”
말을 탄 녀석들은 그렇게 당시월과 당호영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당호영이 가까이 다가오는 놈의 말 등 위로 훌쩍 뛰어올라, 놈을 밀어내고 말을 몰았다. 당호영은 곧장 당시월에게 달려왔다.
당시월은 당호영이 모는 말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다 그의 말 뒤에 올라탔다.
당호영은 말을 멈추지 않고 당시월을 태워서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휘익―”
뒤에서 짧은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처음보다 더 많은 녀석들이 말을 타고 당시월과 당호영을 쫓고 있었다.
당시월은 이번에도 그들이 자신을 완전히 에워싸지 않고 한 방향으로 길을 터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으하하하!!”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함께 당시월의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당호영이 절벽 앞에서 급하게 말을 틀었으나, 뒤쪽에는 그들을 쫓는 한 무리가 포진해 있었다.
“이히히히.”
더러운 입으로 웃어 재끼던 녀석들이 무식하게 크고 긴 쇠붙이로 멈춰선 당시월과 당호영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입술을 비틀어 씨익 웃던 놈들 중 하나가 말목에 긴 검을 쑤셔 넣었다.
이힝! 이히힝―!
말이 제대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지고, 당시월과 당호영은 바닥으로 떨어지다시피 착지했다.
그것이 시작 신호인 듯 기다란 도끼가 당시월을 내리쳤다. 당시월이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다른 녀석이 당시월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넣는 동시에 또 다른 녀석이 커다란 몽둥이로 그의 머리를 공격했다.
허리를 돌리고 고개를 옆으로 비틀던 당시월의 눈에 당호영을 향해 망치와 도, 철퇴가 한꺼번에 내리박히는 것이 들어왔다.
당호영이 있었던 자리에 피가 높이 솟구쳐올랐다.
피범벅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당호영을 향해 놈들은 쉬지 않고 무기를 박아 넣었다. 놈들의 몸이 당호영의 피로 물들어갔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당호영의 죽음과 그것을 보고도 실실거리며 웃어 재끼는 놈들의 모습에 당시월의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었다.
당시월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저놈들을 하나라도 더 없애리라 마음먹었다.
번들번들한 눈을 한 당시월이 입을 꽉 다물고, 양쪽 팔을 하늘을 향해 높게 뻗었다.
“우와악!”
“으흐흐윽.”
당시월의 소매에서 쏘아져 나간 비침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다 비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독 발린 침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침이 박힌 놈들 중 일부는 바닥에서 꿈틀거렸고, 일부는 방패로 막거나 말을 타고 피했다.
내공을 제대로 쓰지 못해 적금침이 내리는 반경이 크지 못했다.
“크으흐흐흐.”
침의 범위 밖에서 당시월을 둘러싼 녀석들이 그를 비웃었다.
당시월의 두 눈과 양쪽 귀, 코와 입에 피가 흘러내렸다.
피눈물을 흘리는 그의 붉은 시선에 입을 벌리고 웃는 악귀 같은 놈들이 들어왔다.
이미 단전이 상해서 더 이상 내공을 사용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을 무리해서 운용한 당시월은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그로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쓴 적금침이었다.
당시월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천천히 뒤로 넘어가더니 벼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거센 바람이 거꾸로 곤두박질치는 그의 정수리에 쏘아지며,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절벽 아래로 낙하하는 당시월은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서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을 했다.
당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자신의 손에서 사그라드는 생명을 바라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또 그 모든 것들이 하찮기만 했다.
풀과 꽃, 곤충과 동물, 사람까지… 살아있는 생명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커가면서 그의 손에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목숨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그것 모두 보잘것없어 보였다.
자신은 언제나 그들의 위에서 그것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었으니깐.
당시월의 머릿속에 아주 어릴 때 자신이 제일 처음 독을 사용해서 죽였던 작은 쥐새끼가 떠올랐다.
그 뒤로 눈이 새빨간 토끼와 코가 까만 강아지, 팔이 긴 원숭이가 차례로 떠오르다 토끼만큼 눈을 붉히며 죽어간 자와 붉은 피를 뿜어내던 자, 온몸이 보랏빛으로 변한 자…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되어 잊고 있었던 이들이… 자신이 만든 독에 의해 그의 눈앞에서 사그라들었던 그 생명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자신은 독이 타지 않는다고 말하던 오래전 보은상회 가주의 얼굴을 끝으로 머리끝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뼛속까지 부서질 것 같은 냉기가 엄습하더니 이내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보드랍고 적당히 무게감 있는 무언가가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말리고 쪄낸 풀뿌리와 나무줄기를 끓이는 내음과 손질한 식물의 풀냄새, 흙내가 뒤섞인 향이 풍겼다.
당가의 약재 창고와 연구소 주변의 냄새와 비슷했다.
당시월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향과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은 따뜻했고, 상처는 깨끗한 천으로 동여매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기는 했지만, 황토가 섞인 흙벽이 그대로 드러난 방은 허름했다.
그는 황토색의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조심해서 일어나 앉았다.
따뜻한 곳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 그런지 몸이 움직일 만했다.
천천히 일어선 당시월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