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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90화 (190/230)

190화

광사연은 낭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무리로 자신들이 무슨 뜻으로 스스로 광사연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인지는 모르나, 그곳을 아는 사람들은 광사(狂死) 미쳐서 사람을 죽여대는 곳이라고도 했고, 광사(狂社) 미친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도 했다.

중원에서 현상금 붙은 놈들을 잡고 싶다면 광사연을 치는 게 가장 빠른 길일 게다.

광사연에 있는 놈들 대부분 목에 현상금이 붙었으니.

악독하기 그지없는 광사연을 잡으려 했던 문파가 없진 않았지만, 그럴 때면 문파 주변에 힘없고 상관없는 이들에게 악랄한 보복을 퍼붓고 사파나, 마교 영역으로 도망쳐버렸다.

이런 상황이니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놈들을 그저 자신들 주변에서 쫓아내 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 광사연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기에, 사람 없애는 일은 살수 쪽이 아닌 광사연에 일을 맡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사람을 조용히 흔적 없이 죽이는 살수 단체와 다르게 눈에 광기를 띄고 손과 팔, 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잘라내면서 인간사냥을 즐기는 광사연의 방법이 마음에 드는 이들도 있기에.

하지만, 그놈들의 심보가 워낙 지랄 맞아서 수틀리면 의뢰인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것 없이 달려들었다.

그래서 정말 부모 죽인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면, 광사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편한 길이었다.

하지만 호령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깔끔하게 끝을 맞이하는 살막의 방법으로 당시월을 없애고 싶지 않았다.

고통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 죽어가기를 바랐기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광사연에 이번 일을 맡기기로 했다.

언젠가 본 적 있는 광사연 놈들을 떠올리는 호령의 입술이 뒤틀려 올라갔다.

* * *

당시월과 그의 수행원인 당호영은 무림맹으로 향하고 있었다.

맹의 회의가 계속되자, 당가 뿐 아니라 다른 문파에서도 가주가 아닌 총관이나 장로들이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흔했다.

그는 당가의 총관으로 전쟁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면서도 마교를 치기 위한 이런 모임과 작업들이 귀찮기만 했다.

자신은 마교로 인해 피해를 본 적도, 마교의 그 상관량이라는 놈에게 관심도 없으니 말이다.

당시월이 모는 말은 타박타박 앞으로 나아갔다.

“총관님! 이쪽 길이 막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호영의 말에 당시월은 산사태가 난 것처럼 커다란 바위와 흙이 쓸려내려 온 길을 바라보았다.

“어찌 이리 길이 막힌 곳이 많으냐? 최근에 이 근처에 폭우가 내렸나……?”

“글쎄요…….”

당시월의 말에 당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서 가자꾸나.”

한숨 쉬듯이 말을 내뱉은 당시월이 옆으로 난 다른 길로 앞장섰다.

가을이 무르익어 바람은 점점 더 쌀쌀해지고, 선명하게 물들었던 잎사귀는 색 바래고 힘을 잃고 떨어져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평생 그 모습 그대로 고고하게 살아갈 것 같았던, 당시월은 요즘 자신이 부쩍 쇠해가는 것을 느꼈다.

하나씩 일을 내려놓고 뒷방으로 나앉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현직에서 물러나더라도 평생 당가를 위해 일했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는 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섭섭한 마음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당시월은 저물어가는 녹음이 자신인 것만 같아 산의 모든 것들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누렇게 변해 버린 나뭇잎과 건조하고 메마른 공기, 말라비틀어진 낙엽 같은 것들 말이다.

“……!!”

그답지 않게 감상에 젖어있던 당시월의 눈빛이 한순간 차갑게 변했다.

어디선가 크기도,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암기들이 수없이 쏟아져 내렸다.

당시월은 빠르게 말 위에서 날아올라 몸을 비틀며 그를 향해 쇄도하는 것들을 피했다.

이히히힝! 이힝―!

맨땅에 고꾸라져, 흙먼지를 일으키며 발버둥 치던 말이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바닥에 착지한 당시월은 말에 박힌 암기 하나를 뽑아내, 그곳에 묻은 액체를 손바닥으로 훑어 살폈다.

‘마취 독?’

당시월의 미간이 좁아졌다.

골짜기 양쪽으로 매복하기 딱 좋은 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떼의 무리가 당시월과 당호영을 넓게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스스하게 풀어헤친 머리카락 하며 아무렇게나 입은 낡고 지저분한 의복, 얼굴 곳곳에 구멍을 내 꿰어놓은 장신구와 때 낀 얼굴.

‘산적인가?’

당시월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를 더욱 자세히 살폈다.

시커멓게 썩어들어간 치아와 까맣게 변해버린 손끝, 보랏빛 입술과 퀭한 눈가… 하나같이 중독 증세가 보였다.

“뭐 하는 놈들이냐?”

당시월이 매섭게 물었다.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 하려고? 으흐흐, 시작하자!”

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 그들은 말을 달려 당시월에게 달려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의 수는 많았다.

당시월의 마음 같아서는 놈들을 모조리 없애고 싶었지만, 보이는 놈들 외에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수의 기척과 여기저기서 뿜어대는 살기를 보아하니 아마도 겹겹이 포위된 것 같았다.

수치스럽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벗어나 후일을 도모하는 게 옳았다.

당시월이 손바닥을 쫙 펴며 양팔을 크게 펼쳤다.

당시월을 중심으로 공기의 색이 순식간에 연분홍으로 바뀌더니, 바람을 탄 안개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안개는 멀리 퍼지며 여인의 분내와 같은 향기가 훅 끼쳤다.

“하하하하, 독이다!!”

“야호옷!”

“으아앗…….”

지저분한 무리가 환호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고운 색의 안개 속에서 서로 얽혔다.

연분홍색의 안개와 같은 주사광석은 빠르게 신경계를 자극해 발작과 경련을 일으켰다.

몸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허연 거품을 게워내는 놈들을 뒤로하고 당시월은 날 듯이 도망쳤다. 당호영도 그를 따랐다.

등 뒤에서 활과 비도, 창과 같은 것이 날아왔다.

돌아보니, 멀쩡한 모습으로 당시월 일행을 쫓는 놈들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당시월은 다리에 내공을 실어 높이 뛰어올라 멀찍이 착지했다가 다시 공중으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남들에게 어찌 보일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외관, 중독된 것과 같은 모습.

주사광석에 내력을 불어넣어 폭발시키듯이 넓게 뿜어냈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설마……?’

당가만큼 섬세하게 독을 다루고 연구하지는 않으나 많은 독을 주무르고 독으로 사람을 죽이기보다, 마비시켜서 사냥하듯 즐기고 중독성 심한 약물로 내력과 무공을 증진 시키는 광기 어린 무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왜……?’

“윽…….”

순간, 어깨 아래쪽에 무언가가 스치며 진한 통증이 퍼져나갔지만, 그것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당시월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뒤로 던졌다.

병이 깨지며 새하얀 가루인 흰충독모가 흘러나왔다.

“이야하!!”

“으하하하하!!”

뒤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에 꺼림칙했다.

독모가 있는 가루는 피부에 닿으면 헐고 물집이 생기며 가렵고 따가웠다. 그리고 눈이 충혈되고 부어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당장 목숨이 위험하지도 않고 증세가 길어야 열흘 정도 가는 게 고작이기는 하지만 가벼워서 멀리 퍼지고 무엇보다 눈을 가려주어 도망을 치기에는 그만이었다.

하지만 저들에게 그 영향이 얼마나 미칠지…….

당시월과 당영호은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으로 뛰어들었다.

길도 없는 비탈진 숲은 잔뜩 쌓인 낙엽으로 발이 푹푹 빠지고 아무렇게나 뻗은 나뭇가지가 앞을 가렸다.

그것은 추격자들도 마찬가지인지, 뒤에서 날아오던 것이 주춤했다.

그렇다고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나무뿌리와 가파르게 진 경사로 인해 나아가기가 힘들었지만 쉬지 않고 움직였다.

오솔길조차도 없는 시커먼 숲은 추적자들도 쫓기가 쉽지 않은 듯, 떼로 따라오던 무리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 느껴졌다.

‘저놈들이 왜 나를 쫓는단 말인가……?’

당시월이 혼자 중얼거렸다.

“총관니임!!”

당시월을 부르는 당호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바람을 가르며 어른의 머리통만 한 철퇴가 당시월의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으억!”

당시월이 급하게 고개를 뒤로 젖혀 피했지만, 연이어 그의 복부를 향해 팔뚝만 한 쇠망치가 빠르게 다가왔다.

몸을 비틀어 피하기가 무섭게 창이 찔러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무리는 당시월의 도망갈 경로를 예상한 놈들이 지름길로 질러가 그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몸을 돌리는 당시월을 향해 끝이 둥글게 휘어진 칼이 목을 감아왔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느라 균형을 잃은 당시월에게 다시금 철퇴와 함께 철퇴를 든 놈의 더러운 웃음소리가 꽂혔다.

“으하하하!!”

당시월은 바닥에 몸을 붙이고 뒹굴며 철퇴를 피했다.

그가 피한 자리마다 투박한 철퇴가 박혀 땅이 움푹움푹 파였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당시월은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는 커다란 도끼를 피하며 소매 속을 뒤졌다.

손에 잡히는 아무것이나 꺼내어 집어던지는 순간,

등 뒤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울렁거리더니 입 밖으로 핏덩이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당시월은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지독한 통증을 느끼며, 숲의 색과 같은 진한 초록빛 연기 틈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몸을 숨겼다.

단도와 비도, 몽둥이 같은 것들이 당시월에게 쏟아졌다.

당시월은 힘겹게 몸을 피했다.

다행히 당시월이 던진 유도화 가루를 뚫고 다가온 당호영이 그를 부축해서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당호영은 당시월을 자그마한 동굴 벽에 기대어 놓았다.

힘이 드는지 눈을 내리감은 당시월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대충 닦고 그를 살펴보는 당호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시월은 내상도 있었고, 어깨 아래쪽은 철전이 스쳐 지나가며 꽤나 심하게 벌어져 있었다.

“…흠… 우선 상처를 소독할 만한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낮게 말을 한 당호영은 대답도 없는 당시월을 두고 조용히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을 서성이며 상처에 쓸 만한 약초를 찾고 있던 당호영은 인기척 소리에 바닥으로 몸을 웅크렸다.

“미꾸라지 같은 놈들!!”

“제깟 놈들이 숨어 봤자죠, 그래 봐야 우리 손바닥 안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기 아래쪽에 작은 굴도 확인해 봐.”

흥분한 목소리에, 몸을 낮춘 당호영은 조용히 당시월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기닷!!”

당호영의 움직임을 눈치챈 놈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를 쫓았다.

“에잇!!”

몸을 일으킨 당호영은 당시월이 있는 굴 쪽으로 뛰며 소리 질렀다.

“총관님!! 어서! 어서 도망가세요!! 총관니이이이임!!”

멀지 않은 굴속에 힘없이 몸을 누이고 있던, 당시월은 당호영의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당호영과 그 뒤를 쫓는 놈들을 보며 품에서 암기를 꺼내 집어던졌다.

몇 되지 않던 놈들이 쓰러지고, 당시월은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빠르게 달려간 당호영이 당시월을 부축해 몸을 움직였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인기척을 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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