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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87화 (187/230)

187화

무림맹 회의에 참석한 문파 대표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개방의 방주 배천상은 입을 다물고, 소란스러운 속에서 각 문파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지에 귀를 기울였다.

“상관량이 혈영천마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는 하나, 우리 쪽의 희생도 결코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곤륜의 문주 구강경이 말했다.

“혹여 다음 천마가 혈영과 같은 자라면, 마교를 벌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종남의 대표인 공엽방이 마교와의 전쟁을 치르자는 맹주, 여송을 지지했다.

종남은 화산과 같이 섬서에 있는 문파였다.

같은 지역에 굵직한 문파가 함께 있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두 문파 간에 사소한 다툼만 있어도 다른 문파들은 화산의 편을 들었다.

이유는 뻔했다. 영웅이 있는 문파니깐.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는데… 공엽방은 화산이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마교와 전쟁을 치른다면, 위험하고 힘든 곳에는 영웅삼존의 문파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화산을 말이다.

이 전쟁에서 화산의 세력을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상관량을 잡을 계획이라도 있소? 상관량을 잡으려면 십만대산으로 쳐들어가야 하오. 그건 너무 위험하오.”

구강경은 희생이 큰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무인이라면 무릇 바른길을 따르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를 처단하는 게 옳소. 그것이 위험하다 하여 몸을 사리고만 있어서 되겠소?”

제갈세가의 제갈혁이었다.

“듣자 하니, 수일검의 일이 있은 후 마교의 세가 더욱 줄었다고 합니다. 마교 내에서 혈영천마를 따르던 이들이 그를 해한 상관량에게 등을 돌린 게지요. 때가 좋기는 합니다.”

당가의 대표 당지상이 화산의 운천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아버지 당상만과 혈영천마가 의형제 사이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혈영천마는 숙부이자,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 분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전쟁을 하면 화산과 소림, 무당도 함께하자는 것이오? 상관량에게 붙었던 그 문파들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소?”

남궁세가의 남궁현섭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세 문파에 영웅삼존이라 불리는 자들이 상관량과 손을 잡고 혈영천마를 없앴고, 상관량에게 속았다고는 하나 그와 함께 무고한 마을의 양민들을 해했다.

부도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때이지만 상관량과 함께했던 이들이 있는 문파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전쟁처럼 긴박한 상황에,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믿음이었다.

“어허! 상관량에게 속은 한 사람 때문에 어찌 그 문파 전체를 믿지 못한다고 하시오!!”

여송이 남궁현섭을 나무라듯 말했다.

그가 전쟁을 치르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화산과 무당, 소림 세 문파가 공을 세워 타 문파들과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저리 초 치는 소리를 해서 일이 잘될 리가 없었다.

“소림과 무당은 금월대사와 태청검을 파문했지만, 화산은 여전히 수일검을 옹호하고 있는데 어찌 화산을 믿겠소?”

남궁현섭이 여송에게 따지듯 물었다.

거기에는 여송도 할 말이 없었다.

어서 화산의 장문인이 수일검을 파문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평생을 함께한 사제를 파문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오? 화산 장문인의 마음도 헤아려보시오.”

여송은 감정에 호소해서 남궁현섭을 달래고 있었다.

“악인을 벌하지 않는 문파는 그 문파 전체가 악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소.”

백리진헌이 남궁현섭의 편을 들고 있었다.

“수일검을 감싸면서 이곳까지 온 화산 장문인도 참으로 뻔뻔하오.”

종남의 공엽방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화산이 다른 문파들과 사이가 벌어지기를 바랐다.

타 문파들이 화산을 대놓고 지탄하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한마디를 더 얹어서 화산을 지적하고, 허물을 들추어내고, 헐뜯고 싶었다.

“상관량에서 속았다고는 하나 후에라도 양민을 해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멈추고 사죄를 했어야지 그들 모두를 없애 입을 막았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리 등에 칼을 꽂지 않을 것이라 어찌 장담한다는 말이오. 이번 일은 절대 화산과 함께할 수 없소.”

남궁현섭의 단호한 말에 여러 문파의 대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의 장문인 운천은 눈을 내리감고 자신과 자신의 문파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들의 말이 모두 옳았기에 반박할 것도 없었다.

상관량과 함께한 수일검이나 그 덕에 떵떵거린 화산이나 모두가 죄인이었다.

“그리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오!! 화산의 장문인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시오.”

공엽방이 운천을 다그치고 있었다.

운천의 머리 위로, 자신과 화산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천천히 눈을 뜬 운천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커다란 탁자에 앉은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그에게 힐난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

수일검이 잘못했고, 화산의 다른 제자들이 동조했고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살았다.

화산에 허물이 있으니 손가락질하는 것은 당연했다.

잘못했으면 욕을 먹어야 했고, 용서를 빌어야 했으며 죗값을 치르는 것이 마땅했다.

운천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화산은… 오늘부로 봉문하겠습니다.”

“뭐?”

공엽방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다른 문파들, 아니 세상 사람들에게 치이고 욕먹고 모욕을 당하고 온갖 모멸감을 느끼고, 상처받고 굴욕에 시달려야지!! 화산 속으로 숨겠다고?’

“…아니! 저! 저!”

여송이 난처한 얼굴로 운천을 가리키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이 커다란 판을 깐 것이 다 누구 때문인데? 화산이 봉문이라니!!’

수일검을 파문하고, 전쟁에 슬쩍 끼여 공이라도 세우면 조용히 묻을 수 있는 것을 답답한 화산의 장문인이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애가 타는 여송은 화산의 장문인을 쳐다보았다.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담담한 장문인의 표정에 여송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만 갔다.

그가 우려했던 것 중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화산의 장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회의장을 떠나고 있었다.

“모든 문파들이 목숨 바쳐 악을 쳐내겠다는데, 비겁하게 도망가겠다는 것이오?”

공엽방이 자신의 죄를 반성하겠다는 화산을 치졸한 문파로 몰아가고 있었다.

“…….”

대부분 문파의 대표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운천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으흠…….”

천상이 침음을 흘렸다.

“이보시오! 장문인!!”

여송이 다급하게 운천을 불렀다.

운천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못 들은 척, 회의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운천이 나간 문이 닫히며, 운천에게 열을 올리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무거운 공기는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들에게 들러붙었다.

“소림은 무림을 속인 상관량을 벌할 것이오!”

분위기를 파악한 소림의 대표, 운상대사가 빠르게 말했다.

“무당도 함께할 것이오.”

무당의 장로 정진도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두 사람의 말에 마음이 놓이는 여송이었다.

* * *

무림맹의 회의실에서는 벌써 네 번째 회의가 열렸다.

마교 교주를 처벌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상관량은 과도하게 조심성이 많았다.

십만대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무림맹에서는 실력 있는 첩자들을 마교의 본거지로 보내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자금도 필요했다.

무기며 말이며, 식량이며… 전쟁 중에 많은 인원에게 지원되어야 할 물자의 비용은 어마어마했다. 전쟁이 길어진다면 그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각 문파에서 지원한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 * *

연천의 표정은 심란했다.

무림맹 회의실로 안내되어 맹주와 다른 문파의 대표들과 대면을 하면서도 어수선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다행히도 만들어낸 것 같은 거짓 얼굴을 하는 것에는 꽤나 익숙했다.

무림맹주 여송은 밝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모인 대표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보은상회 가주께서 회의 자리에 함께하셨습니다. 이미 예상은 하셨겠지만, 이번 마교와의 전쟁에 보은상회에서 많은 비용을 지원을 해 주실 겁니다.”

여송이 연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교라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연천이 자리에 앉자, 적당한 인사치레가 끝났다고 생각한 여송은 구체적인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연천은 몇 차례에 걸쳐 얼마씩 지원할 수 있는지 화칙과 의논한 대로 말했다.

몇 개의 문파에서는 필요한 현물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또 다른 문파에서는 자신들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말했다.

이번 모임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문주나 장문인보다는 대부분 총관이 참석했다.

연천이 앉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당가의 총관 당시월이 연천을 쏘아보았다.

그는 맹주의 표정도, 다른 문파의 총관이 하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오래전, 샛노란 가루를 뒤집어쓰고 멍청하게 웃던 사내의 얼굴이 보은상회 가주의 얼굴 위로 겹쳐지며 오랫동안 눌러놓았던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앞으로 구체적인 것에 대한 회의가 더 필요할 듯했지만, 대략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연천은 무거운 마음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회의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던 허성이 연천의 뒤를 따랐다.

오는 내내 연천의 어두운 얼굴을 보았던 허성은 옆에서 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연천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한꺼번에 회의실에서 몰려나온 사람들 중, 누군가가 허성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허성은 몸을 급히 웅크리며 옆으로 피했다.

허성과 연천을 앞서 지나가던 두 사내가 고개를 돌려 연천과 허성을 빤히 쳐다보았다.

허성은 그들이 연천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아무런 말도 걸지 않고 그저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유심히 보기만 할 뿐이었다.

허성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쳐다보는 두 노승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연천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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