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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74화 (174/230)

174화

황제는 자신이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왕자를 찾고 있었다.

황후 쪽에서도 왕자를 아니, 시신을 찾으러 다녔다.

살아 있는 왕자 따위는 황후에게 필요 없었으니.

태무령은 어쩐지 황궁의 일에 시들해졌다.

황후가 가지고 있다는 대단한 영약이라는 것도, 이미 황후에게 받았던 금의신검도 그저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왕자 따위 어찌 되건 말건, 찾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았다.

* * *

왕자가 사라진 지 달포가 지났다.

귀비 유씨는 출산 이후, 장기가 허해져 몸을 보해야 함에도 그녀를 수발하던 시녀와 숙수들이 부주의하여 위가 상해 토혈하다 사망했다.

그 틈에 황궁에 대적하는 무리들이 왕자까지 납치하였다.

그리하여, 귀비 유씨 궁과 관련된 자들은 윗전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로 모조리 처형되었다.

왕자가 사라지고, 귀비 유씨가 사망한 일은 공식적으로 그렇게 처리되었다.

황제는 병석에 드러누웠다.

신의 양운은 황후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그녀가 묻는 말에 답했다.

황후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소리 높여 웃어 재꼈다.

그녀의 높은 웃음소리에 양운의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마음의 병? 아하하하하! 그렇지, 그것이 낫기 쉬운 것이 아니지. 아무리 신의라고 해도 말이지. 아하하하!”

황후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크게 웃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날카로운 호갑투가 번쩍거렸다.

“…….”

양운은 고개를 숙이고 황후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신의는 황제의 병을 치료하는 데 전념해 주시게. 아하하하하!”

황후가 기분 좋게 웃으며 양운에게 명했다.

“그리하겠습니다, 황후마마.”

양운은 황후전을 나와 무거운 걸음으로 황제의 궁으로 향했다.

황제 옆에는 그의 후계자인 황임이 지키고 있었다.

신의가 탕약을 올리고 침을 놓고, 그의 신과 같은 의술을 행해도 이미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황제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왕자를 찾아오더라도, 이제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일으켜주게.”

황제의 짧은 말에 시녀와 황임이 황제를 자리에 앉혔다.

“혼자 있고 싶다. 모두 나가거라!”

힘은 없지만 묵직한 황제의 목소리였다.

그의 방에 있던 신의 양운과 제자 황임, 시녀 그리고 호위들 모두 자리를 떴다.

왕자를 잃어버린 후, 황제의 마음은 죽어갔다.

아니, 황제는 어린 왕자마저 지키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스스로를 죽여갔다.

의학지식이 없는 이들도 황제가 죽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명이 다했다는 것은 궁궐 내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황후도 죽어가는 황제가 마음대로 하게 두어도 좋다고 명했다.

환관 장월도 조용히 황제의 방에서 나갔다.

귀비 유씨가 죽고 왕자가 사라진 이후, 황제는 종종 모두를 내치고 혼자 있었다.

황제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태무령이 조용히 황제 앞에 나타났다.

“…….”

황제는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금빛으로 돌돌 말린 칙서를 내밀었다.

여윈 황제의 얼굴에 눈빛만이 형형했다.

“소신을… 믿으십니까?”

태무령이 칙서를 받지 않고 물었다.

그는 이미 황제를 한 번 배신한 적이 있었다.

“믿지 않는다.”

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태무령은 하루아침에 그에게서 황후에게로 돌아선 선 자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황제 밑에 있으면서 황후를 위해 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의 모든 비밀이 황후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자신에게 더 큰 위해가 되었겠지만, 그는 단칼에 등을 돌려 황후에게 가버렸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아무도 모르게 황제를 찾아왔던 것이다.

황제도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고, 가장 믿었던 장만영은 이미 죽었다.

죽기 전에 그 일을 꼭 해야 했다.

태무령의 손을 빌려서라도.

“…명을 받들겠습니다.”

태무령이 고개를 숙이고 곧 사라졌다.

“으흠…….”

황제는 허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궁 안, 황후의 웃음소리는 나날이 높아졌다.

황후와 그 집안사람들이 모여 다음 황제로 누구를 올릴지 의논했다.

양자를 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누구를 양자로 삼아야 할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나같이 자기와 가까운 자를 황제로 올려, 그 덕을 볼 생각이었으니.

황제는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 * *

타앙―

요사이 내내 기분이 좋던 황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다 죽어가는 놈이 별짓을 다 하는구나.”

황후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황제가 몰래 칙서를 보내 변방으로 쫓아낸 그의 아우, 영친왕을 불러들인 것이다.

“영친왕 하나 더 온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황후의 육촌 오라비인 원진이 황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영친왕을 차기 황제로 앉힐 셈인 것 같은데, 서둘러 양자를 들이면 됩니다.”

황후의 먼 삼촌뻘인 원임의 말이었다.

“그래봤자 허수아비 황제인 주제에 그것이라도 붙잡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어리석은 것들.”

황후가 노기에 찬 말을 내뱉었다.

* * *

황제는 자리에 누워 자신의 아우, 영친왕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하다, 이제야 불러서 미안하다. 이리 힘없는 형이라 미안하다.”

황제는 거친 영친왕의 손을 쓰다듬었다.

겨우 아이의 티를 벗고, 변방으로 쫓겨난 아우는 커다란 사내가 되어 돌아왔다.

강인한 눈빛이며 거친 살결과 벌어진 어깨는 그가 얼마나 험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었다.

“폐하…….”

“형님이라니까.”

황제가 영친왕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정정했다.

“형님… 저는 괜찮습니다. 어서 쾌차하셔야지요.”

덩치 큰 사내의 눈이 젖어 들었다.

“내가 형이고, 너를 지켜야 하는데… 나를 원망하지 않았느냐?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우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그랬느냐.”

“어찌 그러겠습니까. 저의 어린 시절은 형님에 대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겨우 여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저를 안아 재우고 밥을 떠먹이고, 울면 달래던 형님을 어찌 미워하겠습니까.”

거친 영친왕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

황제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저를 보내지 않으려고, 태황후에게 몇 날 며칠을 빌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억센 영친왕의 턱이 꽉 다물어졌다.

“…….”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우의 손만 세게 쥐었다.

“제가 왕자를 찾겠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된 황제의 자리를 만들어 앉힐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황후와 그 집안은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영친왕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영친왕은 15년 만에 변방에서 돌아왔다.

황후 모르게 엄청난 병력을 이끌고 말이다.

지난 15년간 자신의 어미를 해하고, 형을 황제라는 이름의 볼모로 잡아두며 자신을 전쟁 중인 변방으로 쫓아낸 황후와 그 집안을 향해 칼을 갈며 버텼다.

자신의 군사가 먼저 궁으로 들어오면 반란이 되기에, 불러줄 그 날을 기다리며 이를 갈았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15년을 기다린 영친왕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황후와 외척들을 처단할 것이다.

영친왕은 왕자를 찾기 위해 은밀히 군사를 풀었다.

돌이 다 되어 가는 왕자에 대해 아는 것은 가슴에 새겨진 문양뿐이었다.

그의 군사들의 수가 아무리 많고, 그들의 능력이 대단해도 왕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어린 왕자를 찾을 길이 없었다.

황제는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그 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죽고 나면 황후는 누구든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양자로 들여, 황제로 세울 것이다.

왕자는 언제 찾을지 알 수 없었다.

황제는 앙상하고 서늘한 손으로 아우의 커다란 손을 꼭 잡았다.

“내게 약속을 했지, 왕자를 찾아오겠다고.”

“네, 형님…….”

영친왕이 안타까운 얼굴로 그의 형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알고, 황제도 알고 있었다.

왕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명이 다했을지도 몰랐다.

신의가 그려 준 가슴의 문양 하나만으로 어린아이를 찾기는 힘들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왕자를 찾아 제대로 된 황제의 자리에 앉혀주겠다는 너의 약속을 믿는다.”

황제의 목소리는 가냘팠다.

“형님…….”

뭐라 답할 수 없는 영친왕의 속은 답답하고, 자신을 믿는다는 형님께 미안했다.

앙상하게 마른 황제가 눈을 똑바로 뜨고 영친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자를 찾았다고 알리거라.”

“네… 네?”

영친왕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돌이 다 되어가는 아이를 구해오거라, 당분간만이다. 네가 왕자를 찾을 동안만, 그때까지만이다.”

황제의 가느다란 목소리는 과단했다.

“혀, 형님…….”

“…명을 따르거라.”

영친왕의 눈을 응시하는 황제의 강렬한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황제가 죽고 자신의 아들이 새로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영친왕이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영친왕에게는 지금껏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병력이 있었다.

영친왕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쨍그랑―

와장창―

콰앙―

찌앵―

황후는 손에 집히는 것을 아무거나 잡아서 되는 대로 집어 던졌다.

황후의 손을 떠나 산산이 조각 난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그의 친인척인 고관들이 고개를 숙여 피했다.

“씨익… 씩…씩…….”

황후는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다.

“왕자는 죽었다구우!!”

황후가 악을 썼다.

“화, 황제께서 왕자가 맞다고… 하셔서… 윽…….”

원진의 말은, 황후가 집어던진 화병이 깨지는 소리에 묻혔다.

와장창창―!

“왕자를 본 사람을 찾아야 해! 왕자를 가짜로 만들어야 해!! 몸이 아픈 황제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제 아들도 못 알아보는 것이라고!!”

황후가 소리 질렀다.

“…그, 그것이 유씨의 전각에 워낙 사람이 없어서… 유씨가 죽고 나서 황후마마께서 모두 처형하라고 하시어…….”

원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금 내 탓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신의! 신의를 불러오세요!! 신의라면 왕자의 얼굴을 알 것입니다. 신의를 구슬려야 해요!!”

황후의 목소리는 악에 받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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