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출생의 비밀】
보은장의 정문을 지키는 위사는 손가락 하나를 머리카락 속에 집어넣어 벅벅 긁었다.
정말 이가 옮은 것인지, 기분 탓인지 아까부터 몸이 근질거렸다.
화려한 비단 장포를 걸치고 느긋한 팔자걸음으로 보은장을 나서는 두 사내를 보고 급히 머리에서 손을 내렸다.
위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걸윤 대협은 알고 있지만, 그 옆에 함께 따르는 이는 누구인지…….’
본 적 있는 그 얼굴이 생각 날 듯 말 듯했다.
오랫동안 위사 일을 보았기에 눈썰미가 꽤나 있는 편인데, 눈앞으로 지나가는 사내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보은장의 위사는 보은장 내에 들어온 사람과 나간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깨끗한 얼굴에 코가 두둑하고, 눈썹이 가지런한 사내가 누구인지 한참을 고민하던 위사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설마?’
깨끗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멀끔하고 시원하게 생긴 그 사내가 방금 전 머리카락을 벅벅 긁어대던 개방도라는 것을 깨닫고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볼 뿐이었다.
걸윤은 말을 타고 조봉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며칠을 말을 달려, 도시 외곽의 허름한 마을에서 멈추었다.
“이곳이야?”
걸윤이 지저분한 길 양옆으로 곧 쓰러질 듯한 집들이 줄 서 있는 마을을 보고 물었다.
“아뇨. 궁에서 내쳐진 환관이 이런 대로 옆에 살 수 있겠습니까? 한참을 더 걸어야 합니다.”
충분히 버려진 것 같이 보이는 마을이었건만, 쫓겨난 환관은 이런 곳에서도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
걸윤이 못마땅한 얼굴로 조봉을 따랐다.
조봉은 구질구질한 마을 구석의 소로로 앞장섰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 좁은 소로에는 두 사람의 걸음마다 마른 흙먼지가 날렸다.
조금 더 걷자, 그 작은 길마저도 끊겼다.
조봉은 사람이 다녀도 되는지 의심이 드는,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늙고 병들었다면서 대체 어디서 산다는 거야? 이래서야 마을에 한 번 내려갔다가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겠네.”
평생을 궁에서 일한 환관에 대한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윤이 툴툴거렸다.
“늙고 병든 노인이 마을엔 왜 가겠어요?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죠.”
“그 정도로 늙었다고?”
“저도 보지는 못했는데 들은 바로는 오늘내일한답니다.”
“와― 쪼꼬만할 때 궁에 들어가서 평생을 황궁을 위해 일한 환관을 일 못 할 때가 되었다고 이리 내치는 게야? 너무 하는군.”
“궁에서는 죽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쯧쯧…….”
“여기 어디라고 했는데…….”
조봉이 두리번거렸다.
“잘못 안 것 아니야? 여기 사람이 살 데가 어디 있어?”
“길을 잘못 들었나? 아닌데…….”
조봉도 주위를 살피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도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되었기에.
“…….”
걸윤도 집이 없는지 주위를 살폈다.
암만 봐도 조봉이 잘못 안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의 무덤이면 몰라도 산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 저기! 저기 있네요.”
조봉이 팔을 쭉 뻗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끝이 향한 곳을 보던 걸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풀숲 사이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더러운 움막이 삐뚜름하게 겨우 서 있었다.
“설마… 거지들도 저런 데서는 안 살겠다…….”
조봉의 뒤를 따르면서도 걸윤은 이런 곳에 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조봉이 움막의 한쪽에 걸쳐진 거적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조금만 조심성 없이 건드려도 움막이 곧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
걸윤의 입에서 한숨 섞인 탄식이 튀어나왔다.
움막 안에는 정말 노인 한 명이 누워있었다.
이건 걸윤이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늙은 환관을 죽기 전에 궁 밖에서 살라고 내보낸 것이 아니라, 죽으라고 산에 버려놓은 것이었다.
물도 음식도 제대로 된 집도 없는 곳에서 아픈 노인이 얼마를 더 버티겠는가.
걸윤은 쪼그리고 앉아 노인이 죽었는지부터 확인했다.
노인은 미세하나마 숨이 붙어 있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런 노인을 회유해 보겠다고 돈을 들고 온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 걸윤이었다.
“데리고 나가자, 의원이 필요하겠다.”
조봉은 노인을 업고, 마을로 내려와 의원을 찾았다.
노인이 있던 곳의 아랫마을에는 제대로 된 의원조차 없었다.
걸윤과 조봉은 그나마 상황이 나아 보이는 옆 마을에 의원을 찾아 노인을 데려갔다.
맥을 짚던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태상노군 코앞까지 가시었소.”
“방법이 전혀 없습니까?”
걸윤이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그를 통해 알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같은 사람으로서 안타까웠다.
“신의가 오면 모를까… 방법이 없소.”
의원이 씁쓸하게 말했다.
“신의? 신의라면 가능합니까?”
걸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신의를 어디서 만나겠소? 그것은 저 환자의 명줄에 달린 일이라오. 침을 놓아 당장 숨이 넘어가는 것은 지연시켜 주겠으나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오.”
의원이 말했다.
‘신의라면 모를까’라는 의원들의 말은 두 가지가 함축된 뜻이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신의의 의술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와 신의를 만날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환자를 살릴 가망이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신의가 보은장에 있는 것을 아는 걸윤은 의원의 말을 듣자마자 그에게 노인을 보일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의원을 나온 걸윤과 조봉은 마차를 구해 노인을 싣고 보은장으로 달렸다.
며칠을 달려 보은장에 도착한 걸윤은 노인을 안고 곧장 의약당으로 향했다.
신의와 걸화가 나와 환자를 맞았다.
환자를 눕히고 맥을 짚던 신의의 미간이 좁아졌다.
신의는 걸화에게 재료를 일러주며 탕약을 달이라 명하고 침을 놓았다.
걸윤은 죽은 듯 누워있는 노인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걸윤이 밖으로 나온 신의에게 물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워낙 기력도 없는 데다 여러 날을 굶은 듯하구먼.”
“살릴 수 있겠습니까?”
“기운도 없는데 먹지도 못해 저리된 것이네. 당장 죽을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그러면 잘 먹이고 보살피기만 했으면 저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네.”
신의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윤이었다.
걸윤이 보기에는 그랬다.
노인을 민가와 떨어진 산속 움막에 옮겨 둔 것은 어서 죽으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으로 베는 것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저것 또한 사람을 죽이는 다른 방법이었다.
걸윤은 황궁에 사는 황제라는 인간과 궁의 실세인 영친왕의 몰인정함에 진저리가 쳐졌다.
마을의 의원이 가망이 없다던 노인은 신의의 손에서 이레 만에 정신 차렸다.
“계속 탕약과 치료는 필요하지만, 이제는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중요하네.”
신의의 말에 걸윤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걸윤은 고기와 야채를 잘게 갈아 넣은 죽을 가지고 노인에게 갔다.
노인은 눈은 뜨고 있었지만 죽은 듯 누워있을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걸윤은 등에 베개를 넉넉히 받히고 노인을 앉혔다.
숟가락에 뜬 죽을 후후 불어 식혀 노인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노인은 걸윤을 한번 쓱 쳐다볼 뿐, 아무 말 없이 죽을 받아먹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았는지 노인은 죽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나를 왜 살려 낸 것이오?”
정신을 차린 노인의 첫 마디였다.
살려주어 고맙다는 것도 아니고 왜 살렸냐고 묻는 것이었다.
“필요해서 살렸소.”
걸윤은 그렇게만 답하고 몸을 돌려 의약당을 나왔다.
죽다가 살아난 것이 기쁘지도 않고, 자신을 살려낸 자에게 고마워하지도 않는 노인에게 자신이 필요한 것을 물어보기가 뭣했다.
걸윤은 매일 노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노인이 먹을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정작 필요한 말을 묻지 않았다.
노인의 기력은 눈에 띄도록 좋아져 갔다.
혼자서 고기반찬을 집어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의약당을 나와 걸윤의 전각으로 옮겼다.
걸화는 매일 탕약을 가지고 와서 걸윤에게 불쑥 내밀고 그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불쾌한 얼굴을 하고 가버렸다.
걸윤은 탕약을 가지고 노인의 방 안으로 들어가, 언제나처럼 탕약을 노인 앞에 내려놓았다.
노인은 약사발을 쥐고 탕약을 혼자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걸윤이 사발이 든 쟁반을 들고 일어서는데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필요한 일이 무엇이오?”
걸윤이 노인을 돌아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근 달포 동안 참았다.
노인이 살려주어 고맙다고 했으면 묻기가 쉬웠을 것이다.
노인이 살아난 것에 기쁜 기색이라도 비치었으면 편했을 것이다.
한데, 노인은 그다지 살고 싶어 하지도, 걸윤이 자신을 데려와 살린 것에 감사해하지도 않았다.
노인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한평생을 바친 궁에서 쫓겨나와 죽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노인이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의 삶이 억울하고, 모든 것이 다 싫어지지 않았겠는가.
“으흠…….”
걸윤이 노인 옆에 앉아 입을 열었다.
“영친왕에 대해 물어볼 것인데 대답해 줄 것이오?”
걸윤은 솔직하게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친왕이 왜 나를 그런 움막에 뒀는지 아시오?”
“…….”
걸윤이 눈을 끔뻑이며, 노인을 쳐다보았다.
알 리가 없었다.
이유 따위는 모르지만, 죽으라고 놔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 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있는 것 같소만, 난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오. 영친왕이 내 목숨줄을 끊지 않은 것은… 내게 지켜보라는 것이었지… 난 이미 죽은 사람인 게지…….”
노인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
걸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노인을 설득해야 하는데 노인이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친왕에 대해 뭘 알고 싶은 게요? 내 하나는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소. 그는 무서운 사람이오.”
다 죽어가던 노인답지 않게 단단한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걸윤은 그가 어지간히도 영친왕에게 당한 것이 많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저 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걸윤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걸윤이 묵직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