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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68화 (168/230)

168화

넝마를 걸치고 쪽박까지 옆구리에 찬 걸윤은 익숙하게 다리 밑의 거지 굴로 들었다.

거지 굴의 움막에는 구질구질한 넝마를 걸친 거지 몇이 걸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이들은 개방도가 아닌, 그냥 거지였다.

개방이 의뢰를 받아서 일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일반 거지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서 잘만하면, 일반 거지가 개방도가 될 수도 있었다.

걸윤은 이번에 사기꾼놈을 쫓고 있었다.

관에 연줄이 있으니 뒤를 봐주겠다고 여기저기 돈을 받아먹고 튄 녀석은 결국 개방에 의뢰까지 들어왔다.

그자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알아냈다는 연락을 받고 거지 굴을 찾은 것이었다.

걸윤이 자리에 앉자, 거지 하나가 가타부타 인사말도 없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그놈이 도화골 과부랑 눈이 맞아, 그 집에서 거의 눌러 산 모양입니다. 쫓기는 마당에 다시 찾아올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곳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오호… 눈이 맞은 과부라… 좋아! 그곳은 내가 직접 가겠다. 그 주변에 거지들을 대거 풀어놓아야 하니, 쓸 만한 녀석들을 골라줘. 개방에도 얘기해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개방도들을 데리고 갈 것이야.”

걸윤이 능숙하게 지시했다.

도망간 놈들은 의외로 익숙한 장소나 도움을 받을 믿을 만한 사람, 특히 정인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사람 좀 찾아봤다는 걸윤의 촉이 그놈을 도화골 과붓집에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움막의 거적을 획 들추고 어린 거지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대협! 대협! 밖으로 좀 나와보십시오.”

어린 거지가 걸윤을 보고 말했다.

“응?”

걸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진 것 없는 거지들에게는 일도 탈도 많이 일어났다.

아프고 다치는 일도 많았고, 얻어맞고 실랑이가 붙는 경우도 흔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주변을 죽치고 있던, 어린 거지들이 조용히 달려와 어른 거지들에게 알렸다.

걸윤은 이번에도 그런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밖으로 향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의외의 광경에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일을 겪었고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던 걸윤은 지금 벌어지는 일에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다리 밑에 거지들이 버글대는 곳, 한가운데 남궁소천이 서 있었다.

하늘하늘한 비단 의복을 맞춰 입고, 화려하게 머리 장식을 한 소천이 거지들에게 삶은 고기와 주먹밥을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걸윤은 눈만 껌뻑이며, 소천이 하는 양을 쳐다보았다.

걸윤 뒤로 움막에서 나온, 거지 굴의 두수도 생전 처음 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길거리에 구걸하는 거지들이 안타까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이들은 종종 있었지만, 거지 굴까지 와서 음식을 나누어주는 여인이라니.

거기다 저리 화려한 복색을 하고 말이다.

걸윤을 본 소천이 나누어주던 음식 바구니를 옆에 선 시녀에게 넘기고 걸윤에게 다가왔다.

“어… 안녕하세요.”

걸윤이 오랜만에 본 소천에게 어색하게 인사했다.

“네, 대협도 안녕하시지요?”

소천이 예쁘게 웃으며 걸윤에게 인사했다.

“여긴 어쩐 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마주했다.

자신은 거지꼴로, 그녀는 거지들을 위해 음식을 나눠주는 자비심 넘치는 여인의 모습으로.

“여기 계신 분들에게 음식을 나눠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남궁소천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네…….”

걸윤은 소천에게 뭐라 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

소천은 걸윤을 향해 이해심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말한 대로 해 주시오.”

걸윤은 뒤에 선 두수에게 짧게 말하고 소천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거지 굴을 나서 개방의 분타로 향했다.

개방에 거지들을 데리고 서둘러 도화골로 가야 했다.

혹시라도 그놈이 과부를 만나고 가버렸거나, 그녀를 데리고 도망을 치면 잡을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몰랐다.

소천의 얼굴에 걸쳤던 미소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으흠…….”

그녀는 걸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이른 아침 촉촉한 새벽이슬에 젖어 들었던 사물들이 떠오르는 햇살에 까슬하게 말라갔다.

길가에 늘어져 차고 눅눅했던 거지들의 몸도 내리쬐는 아침 해로 인해, 따뜻하고 뽀송뽀송해져만 갔다.

쪽박을 앞에 둔 걸윤은 흙바닥에 주저앉아, 눈앞의 초가집을 예리한 눈으로 살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과부의 집 앞을 지켰으니 피곤할 법도 하건만, 걸윤의 눈은 흥미롭게 반짝거렸다.

과부의 집 앞에서부터 큰길은 물론이고 작은 샛길까지 물 샐 틈 없이 거지들이 지키고 있었다.

엄청난 수의 거지들이 도화골에 있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놈이 도화골 근처에만 와도 곧 잡히리라.

걸윤이 날 선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놈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계속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걸윤이 의아한 눈으로 한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 저런…….”

걸윤의 눈이 향한 곳에 소천이 서 있었다.

반짝거리는 은색 의복을 갖춰 입고, 의복과 어울리는 머리 장식을 하고 말이다.

“고생 많으시지요?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그리고, 거지들 한명 한명을 일일이 격려하며, 커다란 만두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거지들이 주변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어도, 소천이 저리 두드러지는 모습으로 휘젓고 다니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도화골에 있는 거지들의 수는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그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도화골에 뭔가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걸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급하게 소천에게 달려갔다.

“소저, 소저. 이리 오십시오. 저랑 이야기 좀 합니다.”

걸윤이 급하게 소천을 잡아끌었다.

“아니, 아직 만두를 덜 나눠드렸는데…….”

소천이 걸윤에게 떠밀려 가면서 말했다.

소천 뒤로 커다란 만두 바구니를 든 시녀 두 명이 그들을 쫓았다.

걸윤은 과부의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인적 없는 공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후우…….”

걸윤이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소천은 그런 걸윤의 얼굴을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넝마를 걸치고 부스스하게 머리카락을 풀어헤쳤지만, 오밀조밀 잘생긴 얼굴에 장난기가 담긴 반들반들한 눈은 여전했다.

“…….”

소천이 혼자 얼굴을 붉혔다.

“소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걸윤의 목소리는 낮았다.

소천은 걸윤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말했다.

“제가 곱게만 자라서 거지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셨나 봅니다. 저는 그분들을 돕고 싶고 또 그분들의 마음도 공감합니다.”

“허…….”

걸윤은 소천의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한참 생각했다.

‘잠복 중인 개방도에게 일일이 격려하고, 먹을 것을 내미는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걸윤이 소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

소천의 뺨이 점점 붉어지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걸윤은 눈앞의 이 여인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그 마음으로 참으로 고맙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여인을 가만히 보는 걸윤은 자꾸만 그녀가 자신을 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소저.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소저의 마음은 참으로 곱고, 감사하나 여기 있는 이들 대부분은 개방도입니다. 개방은 먹을 것이 궁한 형편은 아닙니다. 지금은 악독한 놈을 잡기 위해 잠복 중이니 음식을 나눠주는 것은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걸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설명했다.

“어머! 그래요? 전 몰랐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마차를 타고 오셨습니까? 제가 마차가 있는 곳까지 모셔 드리겠습니다.”

“네…….”

소천이 마지못해 대꾸했다.

소천을 그녀의 마차에 태워 보낸 걸윤은 그녀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종류의 고민이었다.

걸윤은 가까운 곳에 있는 거지 하나에게 이번 일은 개방의 삼결제자인 영통에게 맡긴다는 말과 자신은 보은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전갈을 남겼다.

또다시 좀 전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큰일이었다.

자신은 소천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번 일에 자신이 끼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걸윤을 주변을 둘러보고는 보은장으로 향했다.

* * *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를 걸친 발걸음은 휘청이는 듯 보폭이 일정하고, 느른한 듯 속도는 빨랐다.

걸을 때마다 허리에 찬 쪽박이 덜렁거렸다.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며, 보은장 입구를 통과하려는 거지의 허리에는 세 개의 붉은 매듭이 대롱거렸다.

보은장 정문 앞을 지키던 호위가 거지 조봉을 막았다.

조봉도 바로 입구를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은 터였다.

“배걸윤 대협을 뵈러 왔소.”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는 조봉에게서 한걸음 뒤로 물러난 호위의 눈에 붉은 매듭이 눈에 들어왔다.

“따라오시오.”

호위를 따라가는 중에도 조봉은 끊임없이 옆구리와 머리를 긁어댔다.

땟국이 켜켜이 낀 머리는 딱 봐도 머릿니가 버글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조봉을 안내하는 호위는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최대한 조봉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걸었다.

조봉은 호위가 자신에게서 떨어지건 자신을 더럽게 쳐다보건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며 목덜미를 긁어댔다.

호위는 조봉을 급하게 걸윤의 처소로 안내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걸윤은 자신의 전각으로 들어서는 조봉을 보고 따라오라는 뜻으로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리고는 방으로 앞장섰다.

조봉은 걸윤을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뭐가 있어?”

걸윤이 채 앉지도 않고 급하게 물었다.

조봉은 근처에서 걸윤의 심부름이나 하는 거지가 아니었다.

보은장을 자주 드나드는 거지였다면 개구멍을 이용하지, 정문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봉에게는 중요한 일을 맡겨놓았기에 질문하는 걸윤의 마음이 바빴다.

“최근에 늙은 환관 하나가 황궁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늙고 병들어 죽기 직전에 탈탈 털리고 내쳐진 것이라, 돈으로 살살 구슬리면 아는 것을 불 듯합니다요.”

조봉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좋아, 바로 가보자. 돈으로 구슬리려면 돈깨나 있는 모습이 좋지 않겠어? 너 씻고 옷 좀 갈아입고 가자.”

걸윤의 말에 조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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