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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67화 (167/230)

167화

【거지를 이해합니다】

무림맹주 여송과 무림맹을 총괄하는 뇌각주 제갈백, 무림맹의 정보를 담당하는 지각주 곽가명은 무거운 얼굴로 맹주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계속 이 상태를 관망할 수 없소. 이렇게 나가다가는 정말 화산과 소림, 무당이 다른 문파들과 척을 지게 될 게야. 아니, 벌써 그러고 있지.”

말을 하는 여송의 얼굴은 어두웠다.

“맹주령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세 문파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뇌각주 제갈백이 말했다.

“혹여, 그 세 문파가 맹에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하면 우리로서는 엄청난 손실입니다. 무림 전체로 보아도 큰 문제입니다.”

지각주 곽가명이 말했다.

“어설프게 해결될 일이 아니지. 세 문파를 향해 들끓는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하오.”

여송의 낮은 목소리에는 한숨이 섞여 있었다.

수일검의 일이 있은 후, 무림의 정세가 심상치 않았다.

화산과 소림, 무당이 비난받아 마땅하긴 했으나, 그 세 문파를 저버린다면 무림맹의 힘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세 개 문파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정파의 고지식한 무인들은 세 문파를 어설프게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문파를 다시 화합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무림맹주 여송은 오랫동안 고민해서 이미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송은 잠시 말을 쉬었다 다시 이었다.

“마교의 세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줄어들었지. 상관량이 혈영천마에 비해 별 볼 일 없는 놈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일의 책임을 상관량 그놈에게 지워야겠어. 지금이야말로 마교를 칠 때야. 모든 문파에 연락하시오. 화산과 소림, 무당에게도 말이오.”

“그럼 전쟁이라도 치르자는 말씀입니까?”

지각주 곽가명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마교와 전쟁을 치른다면, 무림맹 쪽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나 상관량은 교내에 틀어박혀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기에, 그를 치려면 십만대산으로 직접 쳐들어가야 했다.

뭐가 있을지 모르는 적의 본거지를 치는 것은 이쪽에서 엄청 불리한 일이었다.

쉬이 끝날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이 길어지면 마교고 정파고 할 것 없이, 주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끌어들여 상대를 죽여 댈 것이다.

중원 전체에 엄청난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여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 세 문파를 다시 무림의 문파들 속에 섞을 수 있는 방법이오. 이참에 마교를 쓸어버릴 수도 있고.”

여송은 화산과 소림, 무당이 그들의 명예를 되찾고 다른 문파들과 협력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곽가명은 불안한 표정으로 맹주 여송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 * *

의논해야 할 일이 잔뜩인데 마철용이 보이지 않아, 소강은 그를 찾으러 나섰다.

어디로 갔는지 뻔했다.

“어휴우…….”

소강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의약당으로 향했다.

“아! 의녀니임!!”

마철용이 어울리지 않게 걸화에게 떼를 쓰고 있었다.

걸화는 눈을 땡글땡글 굴리며 신의가 주변에 있는 것은 아닌지 살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깐 좀 조용히 해요.”

걸화가 마철용의 입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정말이죠? 약속한 겁니다. 다시 마기를 찾을 약을 지어주시는 겁니다.”

마철용이 재차 걸화에게 확인했다.

“알았다니깐요. 자꾸 저 찾아오지 마세요. 제가 영단 준거는 비밀인 거 아시죠? 저 걸리면 진짜 쫓겨납니다.”

낮게 말하는 걸화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덩치 큰 사내가 허구한 날 찾아와서 졸라대는데, 스승님 눈치 보랴 마철용을 달래랴 아주 돌아버릴 것 같았다.

“비밀은 지킵니다. 대신 마기를 찾을 약만 지어주시면 돼요.”

마철용은 말만 하면 걸화가 마기를 찾는 약을 뚝딱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는지 쉽게 말하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해!!”

의약당으로 든 소강이 마철용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아니… 나는 의녀님과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마철용이 소강의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

소강이 마철용을 노려보았다.

그가 의약당에 온 이유는 소강이 더 잘 알았다.

그들이 보은장에 들어온 이후, 마철용은 틈만 나면 걸화를 찾아가서 마기를 되찾을 약을 만들어내라고 조르고 있었다.

소강은 마철용의 내공이 정순해진 것이 그의 미래를 위해 훨씬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공은 초반에는 그 성장이 빠르지만, 일정 선부터는 그 한계를 넘기가 힘들었다.

정파의 것처럼 정순한 내공은 처음에는 성장 속도가 더디지만, 점점 발달하여 후에는 그 끝을 알 수 없이 장성할 수 있었다.

소강이 그렇게 설명하고, 설득해도 마철용은 말을 듣지 않았다.

“소강 대협! 마철용 대협 좀 데리고 가세요. 제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걸화가 소강에게 일렀다.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못 알아먹어?”

소강이 화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아니야, 알아먹었어. 난 그냥 의녀님 도와주러 온 거야. 일 다 봤다, 가자. 가! 가!”

마철용이 딱딱하게 굳은 소강을 이끌고 의약당을 나섰다.

“에휴후…….”

걸화가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자신을 위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었다.

며칠 뒤, 마철용일행은 마교로 돌아가 모충일의 교내 세력과 합류했다.

걸화는 오랜만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시는 약이나 영단 같은 것 만들지 않겠다는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다짐을 하며…….

* * *

자그마한 등불이 곳곳에 매달려 있는 다점에는 쌉쌀하고, 달콤하고 구수한 차의 향기가 가득 차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눌러 내렸다.

“으흠…….”

걸화는 앞에 앉은 소천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쩌다가 저 소저가 저리되었을까?’

소천은 보은장에서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보다 더 여위어 있었다.

여전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색을 맞추어 옷을 입고 치장을 했지만, 그 당당하고 자신감에 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생기를 잃은 소천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너무 부끄러워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제 마음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아 저도 괴롭습니다.”

소천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소천을 향한 걸화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가득했다.

‘저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여인이 대체 왜 저럴까?’

“화영이와 이야기했어요. 화영이는 내 마음에 솔직해지라고 말하더군요. 혼자서 잊어보려고, 참아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아서… 의녀님은 그분과 아는 사이이니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리 찾아왔습니다.”

소천의 풀죽은 목소리는 작았다.

“잘하셨습니다. 소저 마음이 정말 확실한 것입니까?”

걸화가 소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직도 소천이 고약한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의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사내를 어찌 생각하는지요. 한데, 그분은… 제 머릿속에 달라붙어서 떠나질 않습니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고 이야기하고 싶고, 보고 싶고… 그 마음이 제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작게 말을 하는 소천의 얼굴은 붉어지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다.

걸화는 그녀가 눈물을 터트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했다

“대협이 개방도인 걸 아시잖아요. 소저는 개방이 그리도 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데 괜찮겠어요?”

걸화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신랑감으로 개방도는 어떻냐는 자신의 물음에 소천이 펄쩍 뛰었던 것을 잊지 못했다.

“대협이라면… 개방이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소천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저! 걸윤 대협은 개방이고 거지예요. 대협과 잘 지내려면 대협뿐만이 아니고 거지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네… 그래야겠지요…….”

소천의 대답은 묵직했다.

평생을 고상하고 우아하게, 힘든 것 더러운 것과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한순간에 거지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할 수 있겠어요?”

걸화가 소천의 표정을 살폈다.

“해 볼 겁니다.”

소천의 답은 결의에 차 있었다.

“으흠… 제가 소저께 도움이 되는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보은장까지 같이 가실래요?”

걸화의 물음에 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점은 보은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소천과 걸화는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걸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걸윤에 대한 것이었다.

걸화는 다점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소천과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손만 내밀면 멀쩡한 명문가 사내들이 줄줄이 줄을 서는데 대체 왜 배걸윤이라는 인간한테 빠져서 저리 힘들어하는지 도대체 소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남궁소천이라는 여인에게 욕심이 생겼다.

오라비 걸윤의 짝으로 말이다.

잘하면 걸윤이 몽달귀신 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보은장에 도착한 걸화는 신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너덜너덜한 서책 세 권을 가지고 나왔다.

“소저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서책들은 제 인생의 길잡이와 같은 것들이에요. 소저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선물로 드릴게요.”

걸화가 환하게 웃으며 서책을 내밀었다.

“의녀님, 정말 감사합니다.”

소천이 고마운 마음으로 걸화에게서 서책을 받아들었다.

“힘내십시오. 혹시 힘든 게 있으면 제게 또 이야기하십시오. 알다시피, 제가 걸윤 대협과 친분이 있으니 도울 수 있을 겁니다.”

걸화는 소천에게 걸윤이 자신의 오라비인 것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그편이 소천과 걸윤을 이어 주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이다.

소천은 걸화에게 선물 받은 서책 세 권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보은장에서 멀지 않은 숙소로 향했다.

조만간 보은장에서 혼담이 올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남궁현섭은 딸 아이가 자신의 배우자는 자기가 결정하겠다는 선언에 좀 놀라긴 했다.

하지만, 워낙 영특하고 자기 잇속을 챙길 줄도 아는 아이였다.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속을 썩인 적 없었기에 소천을 믿기로 했다.

아버지를 설득한 남궁소천은 겨우 두 명의 시녀와 두 명의 호위만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소천은 그 길로 보은장에 있는 걸화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소천은 침상에 앉아 걸화가 준 책의 표지를 읽어내렸다.

[개방지존 1], [개방지존 2], [개방지존 3]

소천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걸화에게 저 세 권의 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진심으로 걸윤과 소천이 맺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 귀한 것을 소천에게 선물한 것이다.

소천은 개방지존 1이라고 쓰여진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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