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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64화 (164/230)

164화

“난 탈옥하지 않을 거요.”

마철용의 낮은 목소리는 덤덤했다.

“네에? 왜요?”

열쇠를 그 앞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걸화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시 마철용 앞에 앉았다.

“보은상회 가주와 이야기하고 싶었소.”

“아이참… 그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아까도 쓰러졌잖아요.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또 그러면 어떻게 해요?”

연천의 뇌전신공에 맞아 마철용이 쓰러졌었다.

교준을 살피느라 멀리서 바라본 걸화는 마철용이 죽은 줄 알았다.

그때 놀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에 털이 삐죽삐죽 솟는 것 같았다.

“고맙소. 어찌 됐든 가주에게 물어볼 것이 있소.”

마철용은 일을 처리하는데 은밀히, 은근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똥인지 된장인 궁금하면 찍어 먹어 봐야 했고, 아픈지 아닌지 알고 싶으면 맞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소강이 있었으면, 우선 옥을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하자고 했겠지만 지금 이곳에는 마철용 뿐이었다.

마철용은 마차를 돌려주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어 했었다.

순서는 조금 다르겠지만, 마철용은 보은상회 가주를 만나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분의 진신무공인 뇌전신공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꼭 물어보리라.

혹시라도, 보은상회 가주가 그분을 해하고 그 무공을 빼앗았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왜에에……?’

걸화가 불안한 얼굴로 마철용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탈옥을 시켜주겠다는데 왜? 대체 왜 안 나가겠다는 건데?’

“그만 가보시오.”

마철용은 담담하게 말했다.

“대협 다시 생각해보세요. 도망갔다가 소강 대협과 의논해서 가주님과 얘기할 방법을 모색해도 되잖아요.”

“누군가 내 혈 자리를 눌러놓았소. 실력이 상당한 자요. 이대로는 나가서 무공을 사용하기도 힘드오. 탈옥해도 의미가 없소.”

“으흠…….”

걸화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 같은 얼굴을 한 마철용 옆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마철용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뜻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걸화는 불안한 얼굴로 마철용을 바라보다, 무거운 걸음으로 옥 밖으로 나왔다.

옥을 지키는 무인들 앞을 지날 때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조심히 지나쳤다.

“의원님!”

옥을 지키는 무인의 부름에 걸화가 익숙하게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네?”

‘아씨… 망했다.’

“옥 안에 있는 자는 깨어났습니까?”

걸화가 들어갈 때부터 알아본 무인은 태연하게 물었다.

“네… 깨어있어요.”

답하는 걸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약에 마철용 대협이 계획대로 탈옥했으면…….’

걸화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제일 먼저 걸화가 의심받을 게 뻔했다.

“가주님께 알려야겠군, 내가 다녀옴세.”

무인 한 명이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걸화는 남은 무인의 눈을 피해 옥에서 멀지 않은 담장 밑, 키 작은 나무 아래로 엉거주춤 몸을 숨겼다.

혹시라도 연천이 마철용을 해하기라도 할 것 같으면 나서서 말려야 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자신이 영단을 준 사실을 실토해야 할지도 몰랐다.

걸화는 울상이 되어 좁은 틈에 몸을 구기고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천에게 갔던 무인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연천이 그의 호위인 곽림과 함께 나타나 옥 안으로 들어갔다.

걸화는 초조하게 옥문을 바라보았다.

연천은 창살이 쳐진 옥문을 열고 그 안까지 들어갔다.

마철용은 꼿꼿하게 앉아 눈을 내리감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에 천천히 눈을 떠, 불쾌한 눈초리로 연천을 쏘아보았다.

연천은 마철용의 날카로운 눈길을 무시한 채,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옆으로 쩍 벌어진 어깨와 단정한 자세, 강한 눈빛과 정순한 내공… 정파의 무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내였다.

이런 상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호감을 가질 만큼, 잘 훈련된 무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연천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철용은 기절해서 끌고 온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형한 눈으로 연천을 쳐다보았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당신이 어떻게 그분의… 혈영천마님의 진신무공인 뇌전신공을 쓰는 게요?”

마철용이 되려 연천에게 따지듯이 캐물었다.

연천이 미간을 구겼다.

저자가 무명촌과 자신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낸 비밀을 어찌 쓰려는지, 무명촌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걱정이 앞섰다.

“그게 뇌전신공인 것은 어찌 알았느냐?”

하늘 아래, 뇌전신공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스승님과 연천밖에 없다고 들었다.

뇌전신공은 무림에 알려진 바도 거의 없고, 연천과 스승님이 함께 산 동안은 아무도 뇌전신공을 본 이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뇌전신공을 아는 것일까?’

“내가 뇌전신공을 어찌 아는지 말하면, 가주는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려주겠소?”

마철용이 도전적인 얼굴로 말했다.

“허! 본인의 처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구먼.”

연천이 상황 파악 못 하는 사내의 도발에 조소했다.

마철용의 눈에 연천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대화만 하자고 검을 가지고 왔을 리 없었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뇌전신공을 떠올렸다.

마철용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는 그분의 원수일 수도 있었다.

그가 어찌 그분의 뇌전신공을 사용하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복수도 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은 억울했다.

“나를 어찌할 셈이오?”

마철용의 목소리는 여전히 당당했다.

“글쎄… 네가 어찌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연천이 여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그는 조급했다.

자기 혼자라면 어찌 되어도 상관없겠지만 무명촌과 보은상회, 표국과 살수대… 딸린 목숨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비밀이 새어 나가면, 그들 모두가 위험했다.

무리해서라도 이자의 정체를 밝히고, 일행을 잡아야 했다.

연천을 가만히 쳐다보던, 마철용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마교 혈풍단의 단주! 청마! 마철용이다!!”

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옥 전체를 울렸다.

마철용을 바라보는 연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대의 내공은 정파의 것이야.”

“그건… 약을 잘못 먹어 그리되었소…….”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마철용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수그러들었다.

그의 얼굴은 좌절감마저 보였다.

“허!”

연천은 내내 과하게 등등하다가, 이상한 부분에서 자신감 없는 그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천의 스승은 혈영천마이지만, 연천의 내공은 누구보다 정순하고 깨끗했다.

연천도 모르는 사이 영단을 섭취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했지만, 거짓일 수도 있었다.

연천은 묵직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마철용을 바라보았다.

“그럼 보은장에 대해서 캐고 다닌 이유는 무엇이냐?”

“말하지 않았소? 가주가 어디서 뇌전신공을 얻었는지 알아내려고 했소.”

마철용이 불쾌한 눈빛으로 연천을 직시했다.

“알아내서?”

“가주가 혈영천마님을 해하였다면, 복수해야지.”

마철용이 서늘한 눈으로 연천을 쏘아보았다.

“허!”

연천이 실소를 흘렸다.

‘점혈되어 옥에 갇힌 주제에 복수를 운운하다니, 참으로 대책 없고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자로구나.’

“촌장님을 모셔오거라.”

연천이 곽림에게 명했다.

“네!”

곽림이 대답하고 사라졌다.

연천은 도전적인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마철용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교의 단주씩이나 된다면서 저리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해서야…….’

연천이 정말 혈영천마를 해했다 한들, 이런 상황에서 복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후일을 도모하는 게 옳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순순히 불고 눈에 힘을 주고 있을 게 아니라.

“…….”

연천은 몰랐지만, 마철용의 혈영천마에 대한 존경과 숭배는 상상 이상이었다.

마철용은 보은상회 가주가 정말 혈영천마를 해하였다면, 자신의 기운을 증폭시켜 생명을 불태워서 자폭하는 역천의 수법을 쓰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동귀어진까지 생각하고 있는 마철용의 복수는 빈말이 아니었다.

한참 후, 곽림이 모충일과 함께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모충일이 공손하게 물었다.

“촌장님! 이자가 자신을 마교 혈풍단의 단주라고 합니다. 제가 혈영천마를 해한 것이라면, 복수하겠다는군요.”

연천의 말에 모충일의 시선이 마철용에게 향했다.

“혈풍단의 단주?”

모충일이 뻣뻣한 자세로 앉아 있는 마철용을 쳐다보았다.

모충일은 여전히 마교 내에 그 세력을 두고, 교내의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그는 마교가 지금 어찌 돌아가는지, 교내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것까지 교주보다 더 자세하게 꿰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야 연천을 교주에 앉힐 작전을 세울 수 있기에,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모충일이 마철용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자는 혈풍단의 단주 청마 마철용이라는 자가 맞습니다. 혈영천마께서 사라지시기 한참 전, 무림행 중에 길에서 주워 입교한 아이인데, 그분께서 사라진 후에도 그분께 과하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지요.”

“…….”

연천이 눈썹을 들썩이며, 마철용은 유심히 쳐다보았다.

“교내에서도 따르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상관량의 눈에는 좋지 않게 비칠 것입니다.”

모충일이 말했다.

“으흠…….”

연천이 마철용을 재밌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모충일의 말은 맞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보은상회 식구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걱정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잔뜩 고민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

마철용은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는 모충일의 얼굴을 뚫어버릴 듯 노려보았다.

‘응?’

낯이 익었다.

이전보다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마철용은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본 마철용의 눈동자가 커졌다.

“대, 대주님?”

기절해서 옥으로 끌려온 주제에 눈에 힘을 주고 꼿꼿하게 앉아 있던 마철용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천랑대의 모충일 대주님이… 여기… 왜……?”

모충일을 알아본 마철용이 더듬거렸다.

혈영천마가 어린 마철용을 구했을 때, 모충일은 그분의 호위로 함께 있었다.

마교로 가는 그 분과의 짧은 여행은 혈영천마와 모충일, 마철용 세 사람이 같이했었다.

혈영천마를 떠올릴 때면 항상 모충일도 함께였다.

그 얼굴을 잊어버릴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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