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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63화 (163/230)

163화

교준은 마을 사람 중 누가 그 사실을 들켰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아야 변명을 하건 더 조심을 시키건, 보은상회의 다른 곳으로 이주를 시키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누군지 알면 어쩌려고요?”

걸화가 삐딱하게 물었다.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추종자라는 분과 얘기해보고, 제가 가주님께도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준이 걸화를 살살 달래며 말했다.

걸화가 자신을 믿고 이 일을 맡긴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선은 걸화가 어디까지 아는지 알아야 했다.

“정말요?”

걸화가 반신반의한 눈으로 교준을 쳐다보았다.

“그럼요. 저를 믿으세요, 소저.”

교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걸화를 위해서도, 무명촌 사람들을 위해서도 교준은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 * *

마철용은 우울했다.

소강은 영단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대단한 영단은 내공을 정순화하고, 크게 늘여주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고.

소강의 그 말에 화가 났다.

‘그것을 알면서 어찌 내게 영단을 먹였냐고!!’

내공이 아무리 늘어도, 마교도의 정체성을 잃는 것을 알았으면 먹지 않았을 것이다.

마철용은 혼자 나와서 걸었다.

지금은 소강도, 다른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면 화를 낼 것 같았기에.

발길은 무의식적으로 무명촌에서 마철용이 유일하게 아는 길로 움직였다.

그 길이 객잔에서 보은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목소리 때문이었다.

“마철용 대협!!”

걸화의 부름에 마철용은 기분이 더 나빠졌다.

그녀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내공을 정순하게 만든 그 영단을 준 이가 바로 그녀였다.

지금은 그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걸화는 눈치 없이 마철용에게 다가왔다.

옆에 웬 사내와 함께.

마철용 바로 앞까지 온 걸화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혈영천마를 추종하는 분이세요.”

걸화는 지인에게 친구를 소개해주듯이 교준에게 말했다.

그 말에 마철용은 날듯이 뒤로 물러나, 빠르게 검을 뽑았다.

중원에서 저렇게 말하는 것은, ‘마교 놈을 잡아라’라는 말과 같았다.

그동안 만나면서 조금이나마 쌓인 정이 있다고 생각했던 마철용은 걸화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한데, 저 소저는 우리가 마교에서 온 것을 어찌 알았지? 설마… 영친왕의 첩자인가? 그럼 그동안 접근했던 것이 다 우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럼 영단은 왜 준 것이지?’

마철용은 복잡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교준도 마철용을 향해 검을 뽑았다.

살수 출신인 교준은 정면 대결에 불리했다.

교준은 마철용이 내리치는 검을 막고, 암기를 날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걸화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단지,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만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왜 싸워요!! 싸우지 마세요! 그만!!”

걸화가 외쳤지만, 급박하게 검을 맞대고 있는 두 사내는 걸화의 외침을 무시했다.

“위험해요. 물러나요!!”

교준의 말에 걸화는 울상이 되어 뒤로 몇 걸음을 옮겼다.

마철용과 교준의 검이 빠르게 서로를 향해 찔러댔다.

찌르고 막고, 베고 피하는 동작이 걸화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이어지고, 검날이 햇살에 반짝였다.

두 사람이 잠깐 움직임을 멈출 때마다 몸에 작은 생채기들이 나 있었다.

마철용은 뒤로 물러나, 검에 기를 모았다.

그의 검에 깨끗하고 맑은 검강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철용은 자신의 검에 모인, 순백의 검강이 어색했다.

영단 덕분에 내력이 커져 기운이 강하고 빠르게 모이긴 했지만, 정순한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교준은 마철용의 검에 모인 맑고 새하얀 검강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깨끗한 검강은 절대 마교나, 혈영천마와 관련된 이의 것이 아니었다.

정파의 것이었다.

‘정파에서 눈치를 챈 건가?’

교준이 생각을 하는 중에, 마철용은 검에 모인 검강을 교준을 향해 날렸다.

교준은 검을 앞으로 내밀며 기를 둘러, 날아오는 검강을 막았다.

교준의 검이 마철용의 검강을 견디지 못하고 뚝 부러지며, 뒤로 쭉 밀려났다.

일 장쯤 뒤에서 겨우 멈춘 교준의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대협!”

걸화가 교준에게 달려갔다.

교준과 마철용이 싸우는 소리에 보은장의 무인들이 몰려왔다.

무명촌은 마을 전체가 연결되어 있었다.

마을 곳곳에 배치된 무인들도 달려와 마철용 주위를 에워쌌다.

‘작은 마을 어디서 이리 많은 무인들이 나타난 거지?’

보은장과 보은상회 가주가 더욱 의심스러운 마철용이었다.

그들은 마철용을 향해 검을 빼 들고 각자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마철용은 검을 다 잡고, 그나마 허술해 보이는 곳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오는 무인들을 보며… 익숙한 충격을 받았다.

커다란 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

마철용은 저 멀리 보은상회 가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의식을 잃었다.

* * *

걸화가 연천 앞에 바짝 엎드려서 소리쳤다.

“정말 그 대협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요.”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만 물러가거라.”

걸화에게 대꾸하는 연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대협은 혈영천마를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어요.”

“……!!”

연천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혈영천마라고요. 그럼 형님… 아니, 가주님께 도움이 되는 사람이잖아요.”

걸화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연천을 어떻게든 설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무슨 일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마철용이 잡힌 것은 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주님은 혈영천마의 제자이고, 마철용 대협은 혈영천마를 추종하는 사람인데 왜 싸우고, 왜 사람을 가두어 두냐고!!’

“…….”

묵직한 얼굴의 연천은 걸화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가주님! 가주님이 잘못 아신 겁니다.”

걸화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그만하라지 않느냐!! 그자가 네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자는 마교와 상관이 없어! 그자의 내공은 정파의 것이야!”

연천이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자가 정파에서 보낸 첩자라면 일이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정파 쪽에서 무명촌과 보은장을 의심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

그자는 한참 전부터 보은장과 자신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고 다녔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 제풀에 지쳐 마을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두었는데…….

거기다 일행이 있었다.

그자와 함께한 패거리는 이미 객잔을 뜨고 없었다.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이었다.

“…….”

걸화는 말문이 막혔다.

마철용의 내공이 정순한 것은 자신이 준 영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걸화는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마철용에게 영단을 지어준 사실이 밝혀지면 이번에는 진짜 쫓겨날 것이다.

걸화는 당장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입을 꾹 다물고 연천의 전각에서 나왔다.

무력감과 죄책감과 마철용에게 미안한 마음이 걸화를 무겁게 눌렀다.

* * *

해가 완전히 져서 사방이 깜깜했다.

걸화는 쟁반을 받쳐 들고 보은장 구석에 작게 만들어놓은 옥으로 향했다.

시녀의 옷을 빌려 입고, 머리카락을 내려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옥 입구에는 두 명의 무인이 지키고 있었다.

“식사 가지고 왔습니다.”

걸화는 최대한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무인이 걸화를 쓱 쳐다보고, 문을 열어주었다.

뒤로 문이 닫히자, 걸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모르게 옥에 잠입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보은장에 많고 많은 시녀 중 한 명의 소행으로 알 것이다.

걸화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화를 옥으로 들여보낸 무인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의원님이 식사를 가지고 왔지?”

“가주님이나 신의님이 무슨 약재라도 같이 쓸려고 그런 거 아니야?”

“뭐… 의원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보은장 무인은 걸화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신의의 제자이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되어 보내준 것이지, 걸화의 생각처럼 보은장에 많고 많은 시녀 중 한 사람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진즉에 들킨 것을 모르는 걸화는 한쪽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쇠창살이 쳐진 두 개의 방 중 한 곳에서 마철용을 발견했다.

마철용은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대협!”

걸화가 목소리를 낮추어 마철용을 불렀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마철용과 눈을 마주쳤다.

“…….”

마철용이 놀란 얼굴로 걸화를 보았다.

그는 걸화가 자신을 혈영천마의 추종자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데, 옥까지 찾아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경계심 어린 눈으로 걸화를 노려보았다.

“대협… 죄송해요…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나는 대협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

마철용은 여전히 걸화를 수상쩍게 쳐다보았다.

“열쇠를 훔쳐 왔어요. 반 시진 후에 교대할 거래요.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그때 도망쳐요.”

걸화가 품에서 열쇠를 꺼내 마철용에게 내밀었다.

보은장의 옥에 사람이 갇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지만, 가끔은 발작을 일으키거나 전염병이 있는 이들을 잠시 격리하기도 했다.

그들을 치료하는 것은 신의의 몫이었기에, 이곳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걸화가 그것을 훔쳐낸 것이었다.

마철용이 놀란 눈으로 걸화를 쳐다보았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누구 때문에 잡혔는데, 이제 풀어준다고?’

뭔가 께름칙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나는 대협을 구해주러 왔는데…….”

걸화는 마철용에게 미안함과 그가 자신에게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에 섭섭함을 동시에 느꼈다.

“…….”

“미안해요…….”

걸화는 마철용에게 이는 섭섭함을 누르고 다시 사과했다.

그녀의 의도와 달랐건 어쨌건 마철용이 잡힌 건 자기 때문이었으니.

“뭐… 괜찮소.”

마철용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여전히 걸화를 신뢰하지 않았다.

“배 안 고파요? 밥 챙겨왔어요.”

“먹고 싶지 않소.”

“흐음…….”

그래, 지금 옥에 갇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판국에 밥이 넘어가겠는가.

“그럼 탈옥해서 먹어요. 반 시진 뒤에요.”

걸화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탈옥’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콱 박히면서 새삼 자신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마철용은 나쁜 사람이 아니고, 연천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었다.

거기다 자기 때문에 잡힌 것이었다.

혹시 옥에서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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