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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62화 (162/230)

162화

마철용은 세심하게 몸을 씻었다.

소강이 지시한 것이다.

조금의 불순함도 섞이지 않게, 오롯이 영단의 기운을 모두 다 흡수하기 위해서 말이다.

씻고 나온 마철용의 방에는,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소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강은 조용히 마철용의 머리를 빗기고, 새 옷을 입혀주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영단의 기운을 받아들일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먹는 거야? 마는 거야? 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걸화는 신경을 잔뜩 집중시켰다.

침상 밑에 숨어 있는 걸화에게는 두 사람의 발만 간간이 보이고, 부스럭거리는 작은 움직임만 있을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시간이 길어지자 걸화는 지겨웠다.

작게 하품을 했더니, 눈꼬리로 눈물이 찔끔 삐져나왔다.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얼굴을 바닥에 묻고 졸기 시작했다.

“으아악―”

높고 새된 소리가 크지 않은 방에 울려 퍼졌다.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뜬 걸화는 자신이 침상 밑에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잘 때마다 그렇게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는데, 숨어서 졸 때는 희한하게도 조용히 잤다.

“내공이 너무 깨끗해졌어!! 마기가 사라졌다고! 어떻게 해!!”

마철용이 절규하고 있었다.

“조용히 해! 누가 듣겠다.”

소강이 마철용에게 주의를 주었다.

“난 이제 끝났어…….”

마철용이 풀이 죽어서 말했다.

“내공이 깨끗해지고, 그 양도 확연히 늘었잖아. 그럼 됐어.”

소강이 목소리를 낮추어 마철용을 나무랐다.

소강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영단이 내공을 늘려주는 것과 동시에 정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마기나 불순한 기운이 정화될 정도의 영단이라면 꽤나 귀한 것일 터였다.

“난 마교도야. 이런 몸으로 그분을 무슨 낯으로 뵙겠어? 그분께서 마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런 나를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난 이제 어떻게 해…….”

과묵하기만 한, 마철용의 절규가 길어지고 있었다.

마교인들에게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마기가 있었다.

마교의 무공을 습득하면서 저절로 얻어지는, 특유의 불순하고 불쾌한 기운이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이것은 마교인이라는 그들만의 증표이기도 했다.

간혹 마철용처럼 영단을 섭취하거나, 잠입을 위해 마공을 버리고 정공을 익혀 마기를 없애는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철용은 자신이 마교도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였다.

혈영천마의 마교를 보존하고 번성시키는 것이 그의 꿈이었기에, 마기가 사라진 것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

마철용의 마음을 아는 소강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영단이 잘 흡수되었다고 생각했다.

마철용의 내력은 반 갑자 가까이 늘어났고, 불순한 마기가 사라진 내공은 깨끗해져 있었다.

오랜 시간 천천히 구축해 나가며 경지를 극복하는 정공과 달리, 짧은 시간에 급격하고 변칙적으로 이루는 마공은 부작용과 위험 요소가 많을 뿐 아니라 한계를 넘어서기가 어려웠다.

어떤 노력과 수련에도 무공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막다른 지점에 몰린 마인들은 끝내는 사악한 술법이나 역천의 술수에 손을 댔다.

그들 중 그 경지를 넘어선 이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은 주화입마에 빠져 죽어 나가거나 불구가 되었다. 광인이 되어 미쳐 돌아다니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공이 정순해진다면 앞으로 얼마나 크게 성장할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영단 덕분에 마철용은 마인으로서의 한계를 단숨에 극복하게 되었다.

한계점에 다다른 수많은 마인들이 이 소식을 알게 된다면, 저 영단을 구하고자 무슨 짓이든지 할 터였다.

“괜찮아, 혈영천마께서도 이해하실 거야.”

소강이 마철용을 달랬다.

“아니야, 이해 못 해. 이래서야 마교도가 아니게 되잖아.”

마철용이 곱게 빗은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정신 차려. 너 이곳에 뭐 하러 왔어? 너 영친왕의 성에는 뭐 하러 갔어? 우리는 혈영천마님을 위해 그분의 검을 되찾고, 그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 넌 영단 덕분에 더 강해졌어, 그거면 됐어.”

소강이 마철용을 나무랐다.

그들은 마교도이기 전에 무인이었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강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깟 마기쯤 버리고 30년은 수련해야 쌓을 내공을 단숨에 얻을 수 있다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정순하고 큰 내공을 선택해야 했다.

한데, 마철용은 저리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맞아… 혈영천마님을 위해 이곳에 온 거야. 그분을 위해서…….”

마철용이 우울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걸화가 만든 약을 통틀어 처음으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영단이었지만, 그 대상이 잘못되어 마철용은 괴로워했다.

걸화는 심각한 얼굴로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 *

걸화는 연천의 빈 전각을 확인하고, 의약당으로 돌아왔다.

연천은 여전히 보은장을 자주 비웠다.

그녀는 고민했다.

연천은 혈영천마의 제자이고, 마철용과 소강은 혈영천마를 추종하는 자들이었다.

연천과 그들이 만난다면 반가워하고 서로 의지도 될 거 같았다.

이제는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는 연천이지만, 그를 위해 마철용과 소강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마철용 일행이 어디론가 가버린 후라면 늦을 것이다.

그들이 무명촌에 있는 동안 보은장으로 데려오건 어쩌건 해서, 연천과 만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먼저 연천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연천이 보은장에 없으니, 다른 누군가에게 마철용 일행의 존재에 대해 의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걸윤을 떠올린 걸화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배걸윤은 꼭 필요할 때 없어… 쯧…….’

걸화는 이 사실을 의논할만한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믿을 만한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걸윤과 연천 다음으로 자신이 가장 믿고 중요한 일을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교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던 걸화는 의약당으로 들어오는 교준을 보고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교준의 몸은 걸화의 작은 웃음에 움찔거렸다.

수없이 많은 무기와 암기가 날아다니는 싸움터에서도 두려움이 없던 교준은, 걸화의 미소가 무서웠다.

주춤거리는 교준에게 걸화가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교준이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자연스럽게 피할만한 곳이 없었다.

교준은 다가오는 걸화를 똑바로 보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는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것도 먹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교준 대협! 제가 대협께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말을 꺼내는 걸화의 얼굴은 심각했다.

“…….”

교준은 목울대가 울렁거리게 침을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우기고 화를 내도 그 무엇도 먹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는 교준에게 걸화는 전혀 의외의 말을 꺼냈다.

“대협! 무명촌에 혈영천마의 추종자들이 있는 거 아십니까?”

혼자서 내내 고민했던 걸화는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네에? 네?”

교준이 화들짝 놀라 크게 소리를 쳤다.

걸화를 보는 교준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무명촌은 마을 전체가 혈영천마를 추종하는 자들이 만든 곳이었다.

무명촌과 연계된 보은상회도 그랬다.

그 사실은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혈영천마를 위한다는 것을 들킬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야 그분께 감사했지만 말이다.

연천이 마을로 들어온 후, 혈영천마의 억울함을 풀고자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것인가?’

교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안함으로 뒤덮였다.

이 사실을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걸화를 어찌 처리하려고 할까?

그녀의 말 한마디에 보은상회와 무명촌에 아주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걸화를 해칠지도 몰랐다.

자신이 믿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걸화를 해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교준의 전신으로 두려움이 엄습했다.

긴장감과 자신이 만들어낸 공포감에 심장이 크게 박동해 댔다.

교준이 걸화를 쳐다보았다.

‘저 입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

걸화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교준이 얼굴을 떠름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이야기를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교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소저… 혹시 그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하셨습니까?”

교준이 조용히 물었다.

“아니요. 대협께 처음 말하는 거예요.”

“그럼 절대! 절대! 아무에게도 하지 마세요.”

교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왜요?”

걸화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교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교준은 굳은 얼굴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닌데… 말해야 될 거 같은데…….”

마을에 혈영천마의 추종자가 나타났으니, 연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교준이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녀는 마교나 혈영천마에 대해 편견이 없었기에 쉽게 말을 꺼냈지만, 세상에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혈영천마와 마교를 무조건 혐오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흥! 교준 대협이 생각보다 소인배군!’

걸화는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교준을 한번 쓱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기는 했다.

정사마 나누어서 사파나 마교와 얽히기 싫어했다.

교준은 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걸화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교준에게 엄청나게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걸화가 대충 말하고 몸을 돌렸다.

교준이 급하게 걸화를 잡아 세웠다.

“아니! 알아서 한다니 뭘 어찌 알아서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을 입 밖에 내고 다니다가는 큰일 납니다.”

교준이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걸화가 새치름하게 교준을 쳐다보았다.

“가주님은 언제 오십니까? 가주님이 오시면 의논하겠습니다.”

“허걱…….”

교준은 연천이 가주가 되기 전, 걸화와 인연이 있는 것을 몰랐다.

가주와 의논을 하겠다니, 보은장과 무명촌 전체에 내가 너희의 정체를 알았다고 공표하는 셈이었다.

이건 완전 ‘나 죽여주세요.’라고 비는 꼴이었다.

걸화를 말려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교준은 답답했다.

“소저! 제발 약속해요. 절대로 그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기로.”

교준은 거의 사정을 하고 있었다.

“약속 못 해요.”

걸화는 고집스럽게 답하고, 불쾌한 얼굴로 교준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걸화는 교준이 정파니 사파니 나누고, 본 적도 없는 혈영천마를 남들의 말만 듣고 악인으로 치부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연천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알려야 했다.

연천이 없다고, 교준에게 먼저 의논한 것을 후회했다.

“후우…….”

교준은 숨을 고르고 놀란 감정을 가라앉히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면 어찌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걸화는 시큰둥한 얼굴로 교준을 쳐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교준을 뿌리치고 가고 싶은데, 손을 꽉 잡고 놔주질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교준은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저… 혈영천마를 추종한다는 그 사람이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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