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사람이 가진 기술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기행을 하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 소저가 그래 보여도 엄청난 의원이라고 하잖아.”
마철용이 언젠가 들은 말을 꺼내며, 이 기가 막힌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긴 그 소저가 곧 신의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주정뱅이가? 하아… 이제 어쩌지…….”
소강은 마교도이지만, 걸화가 신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중원의 앞날이 걱정되어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보은상회 가주고, 거기 기거하는 의원이고 뭐가 상식적인 게 없었다.
뭔가 이상한 곳으로 슬금슬금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직접 부딪혀보자. 그냥… 마차를 돌려주는 거야.”
마철용이 씩씩하게 답했다.
“우리가 복면 쓴 괴한이라는 것을 인정하자고?”
소강이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그럼… 안 되나?”
마철용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안 되지!! 차라리 그 소저에게 의원인 것을 안다고 말하자. 그럼 뭐라도 좀 더 꺼내놓겠지.”
소강이 결심한 듯 말했다.
마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밀어붙여야 했다.
* * *
그들이 처음 만난 객잔에서 찻잔을 앞에 두고, 걸화와 소강, 마철용이 마주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얼굴은 서로 다른 이유로 비장했다.
걸화는 오늘 결판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무공을 익혔냐는 그 별것도 아닌 질문에도 얼버무리는 저 두 사람은 암만 봐도 영단의 부작용이 생겨도 신의에게 이를 것 같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
검을 차고 있으니, 일단 무공을 익히긴 했을 것이다.
그 실력이 대단하지 못해서 약효가 미미해도 어쩔 수 없었다.
걸화는 품에 넣어온 영단을 먹일 방법을 생각하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신의님의 제자분이라면서요?”
소강이 직접적으로 말을 꺼냈다.
“허걱… 어찌 아셨어요?”
‘아… 저걸 들키면 안 되는데…….’
걸화가 불안한 얼굴로 소강을 쳐다보았다.
“그리 약재를 잘 쓰시는 의원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소강이 걸화를 칭찬하며 웃었다.
“그, 그래요? 그런 소문이 났어요?”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아닌가? 오히려 잘 된 건가?’
“그럼 신의께서 보은장에 계신가 봅니다? 보은장에 누가 아프기라도 합니까? 뭐… 가주라든가……?”
소강이 은근슬쩍 걸화를 떠보고 있었다.
“뭐… 이래저래 할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걸화가 또 답을 회피했다.
“으흠…….”
소강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걸화에게 접근해서 보은장에 대해 뭘 알아낸 게 쥐뿔도 없었다.
그저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걸화는 걸화대로 소강과 마철용을 번갈아 보며 결심을 다졌다.
뒤탈 없어 보이는, 이 외지인들에게 영단을 시험해보기로 말이다.
신의의 제자인 것을 들키기는 했지만, 이만한 조건을 가진 이들도 없었다.
“대협들! 대협들과 제가 만난 지도 꽤 되었지요?”
술에 취해서 만난 지는 몇 달이 되기는 했지만, 맨정신으로 만난 것은 겨우 네댓 번이었다.
그래도 친한 척을 해야 했다.
“그럼요. 소저가 여기 이 객잔에 묵을 때는 거의 매일 대화를 했습니다.”
소강이 웃으며 말했다.
그랬다.
거의 매일 그들에게 다가와,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에요.’라고 속삭였다.
“저는 대협들과 친해져서 참 좋았고… 또 대협들을 돕고 싶습니다.”
걸화가 비장한 표정을 풀려고 애쓰며 말했다.
“…….”
소강이 미소를 띤 채, 걸화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나 쳐다보고 있었다.
“제게 아주 귀한 영단이 생겼지 뭡니까? 제가 친분이 있는 무인들에게는 이미 영단을 나누어 드렸지요.”
걸화가 교준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구한 영단은 특히나 귀한 것인데… 대협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걸화가 품에서 진한 푸른빛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
소강은 앞에 놓인 푸른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중원 최고의 의술을 가졌다는 신의의 제자가 선물하는 영단이었다.
그 제자는 또 어떠한가? 기행을 일삼는 데다 그렇게나 약 조제를 잘한다고 보증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기연이 있거나 아주 훌륭한 인맥이 있으면 모를까, 귀한 영단은 아무리 값을 많이 쳐준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다.
푸른 보자기에 가져다 대는 소강의 손이 떨렸다.
“이, 이렇게 귀한 걸 저희에게 주셔도 괜찮으십니까?”
소강은 푸른 보자기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이렇게나 자신들을 생각하는 줄도 모르고, 보은상회 가주에 대해서 알아낼 궁리만 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럼요. 대협들이 제게 소중한 분들이니 드리는 것입니다. 한데, 꼭 한 가지를 약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걸화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강도 상체를 걸화 쪽으로 내밀었다.
걸화와 소강, 마철용 세 사람은 탁자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제가 영단을 드렸다는 사실을 저의 스승님이신 신의님은 모르셨으면 합니다.”
걸화가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아― 그렇지요. 이 귀한 것을 신의의 허락 없이 아무에게나 준 것을 알면 싫어하실 수도 있지요.”
소강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렇죠… 제게는 소중한 분들이지만, 스승님은 또 다르니까…….”
걸화가 소강의 말에 수긍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잘 알겠습니다. 저희가 그 약조는 꼭 지키겠습니다.”
소강이 철석같이 약속했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 했다.
‘절대 저 소저가 곤란할 만한 일을 하면 안 되지. 암…….’
“그럼 어서 드셔보세요.”
걸화가 한껏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이리 귀한 것을 어찌 함부로 막 먹겠습니까? 저희가 목욕재계하고 제대로 복용하겠습니다.”
소강이 푸른 보자기에 싸인 것을 조심히 들며 말했다.
“네, 그래야죠… 그렇죠… 목욕…….”
‘뭘 또 목욕까지 한다고… 참.’
걸화가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미소를 지었다.
소강도 웃었다.
마철용이 딴에는 따라 웃으려 어색하게 입술을 벌렸다.
* * *
걸화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진짜 갈려고?”
“응.”
걸윤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걸화를 찾아온 것이다.
사실 걸윤이 보은장에 눌러있을 이유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연천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또 그의 일을 돕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언젠가는 보은장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걸화는 섭섭했다.
걸윤이 보은장에 없다는 생각만 해도 큰 기둥 하나가 뽑혀 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좀 더 있지…….”
걸화가 말끝을 흐렸다.
“방주님이 들어오래. 너무 오래 있긴 했지.”
“으응…….”
걸화가 울먹거렸다.
“섭섭하냐? 나 없으면 속 시원하지…….”
걸윤이 걸화를 토닥이며 말했다.
“훌쩍… 당연하지. 속 시원해… 훌쩍…….”
걸화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금방 또 올 거야, 그간 있었던 일만 보고하고 올게.”
걸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어?”
걸화가 걸윤에게서 확 떨어지며,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걸윤을 노려보았다.
“왜?”
걸윤이 갑자기 자신을 사납게 쳐다보는 누이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그럼 금방 갔다가 다시 온다고 해야지! 왜 아주 가는 척을 해?”
걸화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언제 아주 가는 척했냐? 방주님이 불러서 개방으로 간댔지!”
“그게 그거지! 그럼 갔다고 온다고 말을 했어야지!!”
“지금 하잖아!”
“씨이…….”
걸화가 소매로 눈물을 거칠게 닦아대며 걸윤을 쏘아보았다.
“신의님 말씀 잘 듣고 사고 치지 말고 있어. 금방 올게.”
“오지 마!! 오지 마! 다시는 오지 마!!”
민망한 걸화가 소리쳤다.
걸윤이 씨익 웃고는 보은장을 떠났다.
* * *
오랜만에 개방으로 돌아온 걸윤을 천상과 걸부가 맞이했다.
“걸화는 잘 있더냐?”
천상이 물었다.
그리고 생각난 듯이 뒷말을 붙였다.
“아, 너도 그간 잘 지냈느냐? 보은상회가 편한가 보다. 신수가 훤해졌구나.”
천상이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방주님 말씀이 맞다. 얼굴이 좋구나.”
걸부의 말에 걸윤이 씨익 웃었다.
걸윤은 천상과 걸부에게 지금까지 보은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미 거지들을 통해 보은장의 사정을 보고하고 있었지만, 워낙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기에 전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신의도 그쪽 사람이었단 말이냐…….”
천상이 놀라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 혈영천마의 팔을 보고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하였습니다. 혈영천마가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하더군요. 마교의 수장이었지만, 악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걸윤은 그날 신의의 모습이 떠올라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개방에서도 천마척결과 관련된 일을 샅샅이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어찌 그리도 큰 거짓을 꾸며 중원 모두를 속이고 살았는지. 참으로 대단들 하더구나…….”
천상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변했다.
* * *
걸화는 숨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영단 같은 거 그냥 앞에서 곱게 먹으면 될 것을, 뭔 목욕을 해대고 어쩌고 한다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원…….
걸화는 영단의 효과가 어떤지 확인해야 했다.
이번 영단은 진짜 제대로 만들었다고 자부했기에 그 효과가 더욱 궁금했다.
소강과 마철용은 탁자에 푸른 보자기에 싸인 것을 두고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네가 먹어야지.”
소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처음 영단을 받을 때부터 당연히 마철용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넌?”
마철용이 소강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영단은 무공이 출중한 사람이 먹을수록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법이야. 전대 교주님께서 사라진 후, 그분의 마교를 지켜야 한다고 너에게 말했지만 난 그럴만한 재목이 못 돼.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러니 영단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더 강해져.”
소강이 덤덤하게 말했다.
좋은 영단을 섭취하면 내공이 증가하고 기의 흐름과 수발이 더욱 원활해진다.
그것은 흡수하는 사람의 기운과 이미 가진 내공, 무공 실력에 따라 상승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소강은 마철용이라면 영단의 기운을 최대한 받아들여 더 크고 강한 무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은 그런 마철용을 따를 것이다.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음… 고마워…….”
마철용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