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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55화 (155/230)

155화

연천은 마철용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곽림과 그의 호위를 해치우고 마차를 훔치면 간단할 것을 되지도 않게 상대를 설득하는 그 사내를 말이다.

무공은 잘 훈련되었을지 모르나, 아직 세상에 대한 훈련은 덜 된 듯싶었다.

싸움이 지루하게 길어지고 있었다.

우위에 있는 상대가 끝을 내지 않고, 이쪽은 끝을 맺을 실력이 부족했으니.

연천이 천천히 자신의 검을 끄집어냈다.

오랫동안 혼자 단련만 했지, 실전에서 검을 꺼내어 보는 것은 얼마 만인지 가물가물했다.

“비켜보아라.”

연천의 말에 그를 지키겠다고, 앞을 막고 있던 허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연천은 허성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앞뒤 할 것 없이 자신의 무인들과 복면인이 뒤섞여 얽혀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연천은 눈앞의 허공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격하게 도를 휘두르던 복면의 사내 하나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연천은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목표했던 사내의 앞과 옆으로 자신의 무인들이 몸을 움직여대고 있었음에도 정확하게 목표한 자에게만 뇌전을 맞추었다.

이제는 뇌전신공을 꽤 정교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연천은 이전에 비해 섬세해진 뇌전을 끌어올렸다.

연천이 검을 휘두르자, 복면을 한 또 한 사내가 뒤로 나자빠졌다.

곽림을 상대하던 마철용은, 쓰러지는 자신의 단원과 멀리서 미소를 흘리는 연천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연천이 휘두르는 검에 또 다른 단원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마철용은 자신이 곽림과 상대하고 있는 것도 잊고 연천을 뚫어버릴 듯 응시했다.

마철용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처음 한 번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밀어붙이는 눈앞의 사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두 번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마철용은 저 검법을 본 적이 있었다.

기운이 다른 것인지 쏘아지는 뇌전의 색은 달랐다.

이전에 본 것이 조금 더 묵직하고 어두운 붉은 기운이었다면, 보은상회 가주의 기운은 더 가볍고 밝고 옅었다.

하지만, 틀림없이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혈영천마와 함께 했던 그 며칠은, 그분이 자신을 마교로 데려가는 길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한 무리의 무인들이 그분을 위협했었다.

그때, 그분이 사용했던 무공이 저것이었다.

그것이 뇌전신공이고, 그분의 진신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지만.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아도 보은상회 가주가 사용하는 무공은 뇌전신공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베는 것 같지만 검 끝에서 자잘한 뇌전의 기운이 쏘아지고 있었다.

“정신 차려!!”

찢어지는 듯한 소강의 목소리가 마철용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강렬한 힘에 마철용의 몸이 휘청대며, 정신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마철용은 이 느낌이 낯설지 않았다.

온몸을 짜릿하게 덮쳐오는 이 감촉.

‘나… 뇌전신공에 당한 적이 있어…….’

저 멀리 기억의 한 부분을 헤집어대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곽림은 바닥에 쓰러진 여섯 명의 사내를 확인하고 연천에게 다가갔다.

“가주님 괜찮습니까?”

“괜찮다.”

연천은 곽림에게 가볍게 대꾸하고, 의식을 잃은 사내들을 흘깃 쳐다보았다.

검을 겨누면서, 공손하게 부탁하던 덩치 큰 사내도 바닥에 얼굴을 맞대고 쓰러져 있었다.

연천이 피식 웃었다.

오늘 처음 본 저 답답한 사내가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덩치 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저 사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저들이 필요하다는 마차를 내어주고 싶었다.

“날이 좋구나, 산보나 하자꾸나.”

연천이 뒷짐을 지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허성이 연천 뒤를 따랐다.

“이자들은 어찌할까요?”

곽림이 연천에게 다가와 물었다.

“음… 마차에 넣어두거라. 어디 한적한 곳에 마차를 세워두는 게 좋겠구나.”

가볍게 말을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연천은 멀지 않은 보은상회 사천분점을 향해 타박타박 걸었다.

산보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 * *

마철용은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몸을 뒤척였다.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가슴을 압박해 대는 통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커다란 바윗덩이가 몸을 눌러대는 것 같아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쥐어짜서 상체를 일으켰다.

자신의 몸을 눌러 내리던 무언가가 옆으로 치워지며,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휘청거렸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차 바닥에 마철용과 소강, 단원들의 몸이 뒤엉켜 시체처럼 차곡차곡 싸여있었다.

자신이 단원들을 밀치고 일어난 모양인지, 두 명의 단원이 마차 의자 밑에 처박혀 있었다.

사지가 저릿저릿한 것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영친왕의 무인들을 맞닥트린다면, 도망도 가지 못하고 잡혀갈 것이다.

“아우… 머리야…….”

소강이 머리를 문지르며, 부스스 일어나는 게 보였다.

“…괜찮아?”

마철용이 물었다.

“아니, 안 괜찮아. 죽을 거 같아.”

소강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마철용도 그랬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사지가 찌르르한 것이 몸에 힘이라고는 없이 불쾌했다.

“여기가 어디야? 마차 같은데… 설마? 잡혀서 끌려가는 거야?”

소강이 다급하게 일어나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인적 드문 곳에 세워진 마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차의 문이 잠긴 것도 아니었다.

소강은 푸른 깃발이 펄럭이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강을 따라 마차 밖으로 나온 마철용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네가 쓰러지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소강이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원하는 대로 마차를 얻었으면 됐지.”

단순한 마철용이 답했다.

“…….”

소강은 찝찝했다.

계략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무림이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덫을 쳐놓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까 그 사람이 보은상회 가주라고 했지?”

마철용이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응… 왜?”

소강은 여전히 개운치 않은 얼굴이었다.

“그자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어.”

마철용의 말에 소강이 의아한 눈빛을 쏘았다.

‘도망가기도 바쁜데 왜?’

소강은 결심을 굳히고 있는 마철용의 얼굴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커다란 마차는 험하고 좁은 산길을 달렸다.

보은상회의 마차라면 영친왕의 의심을 피해 포위를 뚫을 법했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았다.

소강은 최대한 인적 드문 곳을 통해, 사천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좁은 산길에 큰 마차가 꽉 들어찼지만, 튼튼한 바퀴는 울퉁불퉁한 길을 무리 없이 나아갔다.

이 산 하나만 넘으면 서안으로 갈 수 있었다. 사천만 지나면 영친왕의 군사들이 꽤나 줄어들 것이다.

“으흠…….”

한시름 놓은 소강은 마차에 몸을 기댔다.

혹시 영친왕의 무인과 마주친다 해도 표행 중인 보은상회 표사인 척할 생각이었다.

마철용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심각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화전민 마을이 보였다.

멀찍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에 마철용은 몸을 세우고 안력까지 돋우어 유심히 쳐다보다 소리쳤다.

“마차를 멈춰!!”

“뭐? 여기서? 갑자기 왜?”

긴장감을 풀고 마차 의자에 기대어 있던 소강이 놀라서 물었다.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었다.

“저기 화전민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나 봐. 산적인 것 같아.”

마철용의 다급한 말에 소강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소강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당연히 도와야지.”

마철용이 검을 집어 들고 당장 뛰어나갈 태세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남을 도울 처지야? 우리 코가 석 자야!! 여기서 영친왕에게 잡히면 어찌 될지도 모른다고!”

소강은 가끔씩 저리 상황 파악 못하는 마철용 때문에 짜증이 솟았다.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도와야지.”

“…….”

소강이 불쾌한 얼굴로 마철용을 쏘아보았다.

“교주님께서 살아계셨으면 반드시 도왔을 거야. 돕다가 영친왕에게 잡혀 죽는 한이 있어도.”

마철용이 말하는 교주는 마교에 있는 상관량이 아닌, 혈영천마였다.

그는 묵직하게 내뱉고 마차에서 내려 화전민 마을로 달렸다.

소강의 이마에 핏대가 불뚝 일어났다.

마철용은 혈영천마를 존경했고, 본인이 상상하는 그분의 모습으로 살고자 노력했다.

소강도 힘든 시절 혈영천마의 도움으로 지금에 이르렀기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쫓기고 있지 않은가.

당장 영친왕의 군사들이 떼로 나타나서 자신들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놓을 수도 있었다.

상황 판단 못 하고 고지식하지만 한 마철용 때문에 화가 났다.

소강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단원들에게 말했다.

“…그즈아(가자).”

소강은 마지못해 마철용이 달려간 곳으로 향했다.

그 뒤를 단원들이 따랐다.

잠시 뒤.

보은상회의 커다란 마차는 푸른 깃발을 휘날리며, 다시 산길을 나아갔다.

소강은 시뻘게진 얼굴로 들숨과 날숨을 크게 쉬며,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철용은 묵묵한 얼굴로 있는 것 같았지만, 슬금슬금 소강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화전민 마을을 공격한 산적들을 제압하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드는 산적과 대적하다 보니 얼굴과 몸에 그들의 피가 튀었다.

소강의 지시에 따라 핏자국을 씻고 화전민들에게 옷도 얻어서 갈아입지만, 화전민들의 옷은… 화전민의 옷이었다.

이 꼴로 보은상회 표사인 척 해봐야 먹힐 리가 없었다.

소강은 다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긴장감과 함께, 그들을 이렇게 만든 마철용에게 성질이 났다.

“후우… 쓰읍… 후우… 쓰읍…….”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사천을 벗어나, 옷을 구입해서 갈아입고 대열을 정비한 소강은 보은상회 가주를 쫓아가겠다는 마철용의 말에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단원들을 내보내고, 마차에는 마철용과 소강만 있었다.

마철용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보은상회 가주가 의심스럽다고 피력했다.

마철용의 말을 다 들은 소강은 낮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게 말이 돼?”

소강이 침착하게 대꾸하려고 애쓰며 물었다.

“나도 말이 안 되는 거 알아. 그래도 그게 사실인 걸 어떻게 해!”

마철용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소강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소강만은 알아챌 수 있었다.

“후우…….”

소강이 숨을 몰아쉬고 다시 물었다.

“그러니깐, 보은상회 가주가 전대 교주님의 진신무공인 뇌전신공은 사용하고, 네가 영친왕의 호위무사 시험에서 수실을 잃어버렸을 때, 당했던 것도 바로 그 뇌전신공이라고?”

소강은 똑같은 질문을 몇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나도 말이 안 되는 거 알아. 그래서 보은상회 가주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거야.”

마철용이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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