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마교에 입교시켰을 때도 저항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분이 마교의 교주라면, 마교도가 되고 싶었다. 그분이 하는 일이 잘못될 리가 없었다. 그분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혈영천마는 떠도는 아이들을 구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인지, 마교 내에는 마철용과 같이 가족을 잃고 떠돌다 혈영천마께 구해진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강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구해 데려와 준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해졌다.
마철용은 마교의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따박따박 밥 챙겨주고, 무공도 가르쳐주고, 잠잘 곳도 있었다.
길거리를 헤매며 허구한 날 굶고, 한데서 자는 것보다 백번 나았다.
거기다, 그는 무공에도 꽤나 소질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자신을 마교까지 데려다준 그분은, 입교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계속 서열이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분을 다시 뵙는 날이 오면, 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분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더 열심히 수련했다.
그분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철용은 삶의 이유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분을 뵈어야 하는데… 그분이 없으니 서열이 높아진 들 무얼 하겠는가?
강해질 필요도, 수련할 의욕도 잃었다.
소강이 없었다면, 정말 다 포기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때, 소강이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분이 반평생을 마교의 교주로 있으면서 교를 어찌 키웠는지와 교내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분에게 구원되었는지, 그분이 바라는 삶의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분이 이룬 마교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설득했었다.
마철용은 그분의 마교를 지키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겠노라 마음먹고 다시 노력했다.
천마검이 중원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마철용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검을 찾아오겠다고 자원해, 영친왕의 성까지 잠입한 것이었다.
영친왕의 성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 천마검 절도 사건이 있었다.
몇몇의 머리가 성 밖에 효시 되고, 여러 명이 참수당했다.
한동안은 몸을 낮추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영친왕은 그 일이 있은 후, 천마검을 숨겨 버렸다.
마철용은 영친왕의 성에서 우직하게 천마검을 손에 쥘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 달 후, 영친왕의 성에서 다시 천마검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영친왕은 절도범을 잡아, 갈가리 찢어 죽였다.
그리고 몇 달 후, 천마검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영친왕은 절도범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몇 달 후, 천마검 절도 사건이 또 일어났다.
영친왕은 절도범 중 일부만 잡아 참수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도 천마검 절도 사건이 있었다.
영친왕은 학습이라고는 되지 않는, 검에 미친 무인들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마철용 일행은 천마검 절도에 실패해서 쫓기고 있었다.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아무도 잡히지 않고 모두가 성에서 빠져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영친왕의 무사들을 따돌렸다고 생각했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마철용 일행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그저 성에서 먼 곳으로 이동했다.
분노한 영친왕은 엄청난 병력을 풀어 그들을 찾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포위되었는지, 길 곳곳에 매복이 있는지 지금도 바로 뒤를 쫓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으나, 영친왕이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찾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마철용은 쫓기면서도 천마검을 가지고 오지 못해 우울했다.
꼭 찾아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었는데…….
그것은 그분의 것이고 마교의 것이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안전하게 도망을 친 후에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했다.
옆에 있는 소강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일행 모두가 무사히 영친왕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마교의 안가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영친왕의 엄청난 병력이 어디에 얼마만큼 배치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단은 사천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소강이 갑자기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일행은 급하게 걸음을 멈추었다.
소강은 눈앞에 보이는 마차를 가만히 응시했다.
마철용도 소강이 보는 것을 바라보았다.
푸른 깃발이 펄럭이는 커다란 마차. 돈 많기로 유명한 보은상회의 마차였다.
“저것을 타고 가자.”
소강이 마차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교를 나온 이후, 어느 순간부터 소강은 단원들이 있는 곳에서도 마철용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겉치레 같은 것 따위를 신경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보은상회? 괜찮을까?”
마철용이 조용히 물었다.
마철용도 그들을 따르는 네 명의 단원들도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영친왕의 눈을 피하기에 저만한 것도 없어.”
소강의 말에 마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빌려볼게.”
말을 마친 마철용이 망설임 없이 마차를 향해 뛰어나갔다.
소강은 불안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단원들도 보은상회 마차로 뛰어들었다.
* * *
연천은 커다란 마차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보은상회 가주, 백연천의 일상이 이런 것이었다.
크고 화려한 마차를 타고 다른 문파에 가서 듣기 좋은 소리나 해대고,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걸치고, 돈이나 뿌려대는 것.
허울만 좋았지, 숨 막히고 갑갑한 삶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허성은 조용히 연천의 눈치를 살폈다.
연천은 무거운 얼굴로 창밖의 지나가는 풍광에 집중했다.
푸른 잎사귀와 맑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답답한 연천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
편안하게 밖을 내다보던 연천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의자에 기댄 몸을 일으켜,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복면을 한 사내 몇이 마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마차가 거칠게 멈추었다.
곽림과 보은상회의 무사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마차 안에서도 들렸다.
“허!”
감히 보은상회의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이라니.
보은상회를 노리는 도적단은 몇 없었다. 그들도 통행료나 챙길 속셈이기에 저렇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이 보은상회 마차를 덮치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이상한 것은 지금 이 마차에는 표물이 없었다.
연천과 허성만이 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저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하던 연천이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주님!”
허성이 부랴부랴 연천을 따라 나와, 어디선가 몽둥이 하나를 주워 와서는 연천의 앞쪽에 엉거주춤하게 섰다.
무공은 할 줄 모르지만, 주인을 지키려 하는 마음이 기특해서 연천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복면을 한 사내들과 자신의 무인들이 난폭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여러 명이 한데 엉켜, 날 선 무기를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공기가 주변을 찔러댔다.
여기저기서 뿜어내는 적대감 가득한 기운과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주님! 들어가 계십시오!”
곽림이 덩치가 큰 사내를 상대하며 연천에게 외쳤다.
“되었다.”
연천이 작게 말했다.
그 소리에 허성은 몽둥이를 더욱 세게 다잡으며 앞을 주시했다.
“그만! 그만두시오! 우리는 싸울 마음이 없소! 그저 마차를 잠시 빌리고 싶은 것뿐이오!”
곽림을 상대하는 사내, 마철용이 외쳤다.
연천은 말을 하는 사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져 덩치가 좋았다.
복면 위로 보이는 눈빛은 날카로우면서도 강인했다.
훈련이 잘된 무인이었다.
곽림은 거칠게 상대에게 검을 휘두르는 데 반해, 마철용은 몸을 피하기만 하고 있었다.
“도적놈들이 감히 보은상회 마차를 훔치려 들다니!”
곽림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그 소리에 소강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가 마차를 빌리겠다는 말이 저것이었구나… 무공밖에 모르는 답답한 놈. 무기를 들고 복면을 하고선, 우르르 달려들어서 마차 좀 빌리겠다고 하면 상대가 잘도 빌려주겠다. 으이그…….’
그런 생각을 하며 보은상회의 무인에게 손톱을 한껏 세운 소강의 우수는 검게 변해 있었다.
좌수에는 언제 착용했는지 손등 위로 삐져나온 조갑의 날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소강은 뾰족한 칼날로 검을 든 상대의 손을 할퀴었다.
완벽한 중단 자세를 잡고 있는 상대가 검을 옆으로 틀어 소강을 막았다.
짧은 순간, 반대 손을 상대의 얼굴을 향해 내질렀다.
상대가 검을 세워 베어냈다.
소강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자, 검이 허공을 베고 다시 기본자세로 돌아갔다.
자세를 낮추고 한 손은 얼굴 옆에, 다른 손은 가슴 옆에 위치한 소강이 잔뜩 집중해서 상대의 빈틈을 찾았다.
두 손으로 검을 잡아 몸의 한 가운데로 내민 자세는 흐트러짐도, 틈도 없이 완벽했다.
뒷짐을 진 연천은 복면인과 자신의 무인들이 싸우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연천의 무인들은 마교에서 나온 살수대와 그들이 키운 무사들이었다.
결코 만만한 실력이 아니었음에도, 복면인들과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뜨이는 이는 곽림을 상대하는 덩치 좋은 사내였다.
곽림은 그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아 모충일이 추천한 자였다.
연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곽림의 움직임은 가볍고 빨랐다.
흐르듯이 휘어지는 손끝을 따라 검날이 부드럽게 허공을 갈랐다.
마철용은 큰 덩치가 무색하게 유연하게 움직였다.
정지된 듯 멈추었다가, 미끄럽게 자세를 바꾸어 곽림의 공격을 피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움직였다.
곽림의 공격은 완벽에 가깝게 예리하고 매끄러웠지만, 마철용에 비하면 불필요한 움직임이 섞여 있었다.
마철용이 작정하고 적극적인 공격을 해댄다면… 연천은 마철용 쪽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시 보아도 그가 곽림보다 최소 한 수 이상 위였다.
“정말 마차만 빌리면 되오! 필요하면 비용도 지불하겠소!”
마철용은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대는 곽림을 설득하고 있었다.
연천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빈 마차였다.
“상황이 다급하여 그러하오. 부탁 좀 드리겠소.”
곽림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만, 마철용은 포기하지 않고 사정했다.
“훗…….”
연천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언젠가 곽엄택과 싸우며, 일일이 사과하고 자기소개를 했다고 걸화에게 욕을 먹었던 일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