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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53화 (153/230)

153화

【보은상회 가주가 수상해】

개방의 배걸윤.

소천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종리우에게 주먹을 꽂아대던 그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어찌 이곳으로 들어오려 하셨습니까?”

소천이 어이가 없어 물었다.

“정문까지 가기 귀찮아서…….”

걸윤의 뒤통수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민망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크으흡… 흐음…….”

소천은 튀어나오는 웃음을 꾹 눌렀다.

“…….”

“으음… 손을 이리 줘 보세요.”

소천은 걸윤의 양손을 맞잡고 그를 힘껏 잡아당겼다.

“아, 아…! 아야… 아야야야…….”

걸윤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앓는 소리만 내었다.

“어휴…….”

“그… 소저. 꼼짝도 하지 않는데 당기지 말고 밀어보는 것은 어떻겠소?”

걸윤의 말에 소천은 걸윤의 백회에 두 손을 올리고 그의 머리통을 밖으로 밀었다.

걸윤도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밀었다.

아주 조금 밖으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힘이 부족한지 걸윤의 몸은 여전히 보은장 담벼락에 끼어있었다.

그래도 잡아당길 때보다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으흠… 제가 밖으로 나가서 잡아당길게요.”

“그래 주면 감사하겠소… 허허허…….”

걸윤은 여전히 엎드린 채, 민망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소천이 정문을 열고 나가자, 보은장 문 양옆에 위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잠시만 밖에 다녀오겠으니 문을 닫지 말아 주세요.”

소천의 말에 위사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다는 의미였다.

소천은 밖으로 나가 담을 따라 걸었다.

보은장 담 옆을 한참 걸은 후에야, 후미진 담벼락 아래에 사람의 다리가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다.

소천은 걸윤에게 다가갔다.

“크윽…읍…….”

양손으로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고 웃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웃으면 안 되는데, 참아야 하는데…….

어금니를 앙다물어도, 앞니로 입술을 꽉 깨물어도 입 밖으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으읍…크읍…큽…크…으…흑…흐…하하하…아…하하하하!”

소천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외벽 바깥으로 하체만 삐죽 튀어나와서 뒤척여 대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양쪽 눈꼬리로 눈물이 찔끔찔끔 삐져나왔다.

“크으…흑…으…하하하하…아하하하!”

소천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하하하하!”

하도 웃었더니, 양 볼이 얼얼하고 배가 땡겼다.

그래도, 웃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거… 소저! 그만 웃고 좀 도와주시오…….”

벽 반대편에서 불편한 걸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하…읍…흐…죄, 죄송… 으하하하…큽… 죄송해요.… 아하하하!”

소천의 사과는 그녀의 웃음 속에 묻혔다.

“으흠…….”

걸윤은 힘을 빼고 소천의 웃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걸윤이 소천을 어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천은 이리 크고 경망스럽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반듯하게 틀어 짜인 모습을 고수하는 사람이었다.

한데, 지금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 중요시 생각하는 교양이며 품위, 기품 따위는 내팽개치고 그저 웃어 재꼈다.

한참을 울리던 소천의 웃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허어…허어… 으흐흐흐… 헤…허어…….”

소천은 웃는 게 이렇게 많은 체력을 소모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바탕 무공 수련을 한 것처럼 개운하면서 기운이 빠졌다.

“다 웃었소?”

소천의 웃음이 멈추기를 기다리던 걸윤의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크읍…….”

배가 아파서 더 이상 웃기 힘든 지경인데도, 걸윤의 몰골을 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튀어나왔다.

“…….”

“음… 음…….”

소천은 목을 가다듬고,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두드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걸윤의 양발을 잡고 힘을 주어 당겼다.

내공까지 끌어다가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아야야야…….”

걸윤의 배와 등, 팔뚝이 작은 구멍에 쓸리며 보은장 안에 있던 상체가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걸윤의 머리까지 나오자, 소천은 잡고 있던 다리를 놓았다.

바닥으로 질질 끌려 나온 걸윤은 지쳤는지 흙바닥에 엎드려, 안도의 숨을 내뱉을 뿐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잠시 후, 일어나서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턴 걸윤이 소천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소저! 정말 감사하오. 소저가 아니었으면 언제까지 저리 있어야 했을지 모르겠구려. 감사하오.”

“별말씀을요.”

소천은 원래의 그녀로 돌아와, 만들어낸 듯 반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이만 들어갑시다.”

걸윤이 앞장서서 보은장의 정문으로 향했다.

위사는 소천의 부탁대로 문을 잠그지 않고 있었다.

걸윤을 알아본 위사가 그에게 목 인사를 했다.

걸윤도 같이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고, 소천이 그 뒤를 따랐다.

보은장 안까지 걸어 들어간 걸윤이 소천을 돌아보았다.

“소저!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걸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자신의 전각을 향해 가버렸다.

소천은 걸윤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걸윤 덕에 신나게 웃어 재낀 그녀는 흥미로운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섭섭했다.

‘나 기억 못 하나…?’

뭔가 아쉬운 마음으로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왔다.

한바탕 소동 덕분에 어수선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노곤하니 쉬고 싶었다.

그날 밤. 소천은 보은장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깊은 단잠에 빠졌다.

다음날, 연천의 전각을 찾은 소천은 그가 부재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이건 뭐 과부도 아니고, 아니 과부보다 더 못한 것 같았다.

최소한 과부는 한때 좋았던 추억이라도 있지… 소천은 추억도, 앞날에 대한 기약도 없었다.

어쩌다 이리된 것인지……. 우울했다.

그날 밤.

소천은 환하게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풋…….”

어젯밤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뭔가 생각이 난 듯, 방으로 들어가 곱게 화장을 하고 자신이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후원으로 나와 천천히 걸었다.

품위와 기품을 갖춘 걸음으로 같은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걷고 또 걸었다.

거의 반 시진을 서성이던 소천은 어젯밤 걸윤이 끼어 있던 개구멍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빤히 들여다보았다.

개구멍은 언제 수리했는지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큼의 크기로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그 앞은 덩굴로 잘 가려놓은 것이 보였다.

“에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소천은, 기품과 품위 따위는 내팽개친 걸음으로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갔다.

소천은 그날 이후 며칠을 더 후원으로 밤마실을 나갔다.

그저 혼자 걷다 한숨 쉬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 * *

마교의 혈풍단 단주 청마 마철용과 부단주 흑수 소강, 그리고 함께 온 네 명의 단원은 보은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보은상회 가주가 기거하는 곳이라고?”

마철용이 단원 한 명에게 묵직하게 물었다.

“네!!”

“너희는 객잔으로 가 있거라. 여긴 나와 부단주만 있으면 된다.”

마철용의 말에 네 사람은 작게 고개를 숙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냥 평범한 장원 같은데…….”

소강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마철용과 소강은 어릴 때부터 마교에서 친우처럼, 형제처럼 같이 자랐다.

부단주 소강은 단원들 앞에서는 마철용에게 존대하며 깍듯이 단주 대접을 했지만, 둘만 있으면 서로 편하게 대했다.

아니, 교를 나와서는 단원이 있을 때도 말을 낮추는 경우가 많아지긴 했다.

단원이 있을 때 말을 높이고, 없을 때 편하게 하는 것도 상황이 좋을 때 이야기였다.

교를 나와서 겪은 빡빡한 상황은 반말, 존댓말을 가릴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마철용은 보은장 정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으흠…….”

소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에 있어서 마철용은 소강과 비교도 되지 않게 뛰어나긴 했다.

하지만, 지략과 계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소강이 훨씬 더 비상했다.

마철용도 그것을 알기에 소강의 의견을 존중했고, 대부분의 일을 계획하는 것은 소강의 몫이었다.

소강이 생각할 때, 지금은 보은상회의 가주 따위를 쫓을 때가 아니었다.

전에 없이 마철용이 고집을 부리는 통에, 그가 원하는 대로 보은상회 가주를 훔쳐보고 있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을 쫓는 자들과 마주하게 될까 불안했다.

“…….”

소강은 말 없는 마철용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의 얼굴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소강만은 알 수 있었다.

마철용 일행이 보은상회 가주의 행적을 쫓게 된 것은 3개월 전부터였다.

* * *

2년 전.

마철용과 소강 그리고 네 명의 흑풍단 단원은 영친왕의 성에 호위무사로 잠입을 했다.

중원, 영친왕의 성에 천마검이 나타났는데 마교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반드시 되찾아 와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천마검은 마교의 것이었다.

마철용은 이 일에 자원해서, 소강과 몇 명의 단원을 데리고 영친왕의 성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천마검을 눈앞에서 목도한 마철용의 감격에 겨운 얼굴은, 오랫동안 그를 보아온 소강조차도 생소한 모습이었다.

묵직한 얼굴이 당장 눈물을 쏟을 듯, 감상에 젖어 있었다.

누구를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를 구원해 준 그 ‘아저씨’를 그리는 것이겠지.

마철용과 소강이 친해진 계기가 바로 그 ‘아저씨’였다.

부모 잃고 길을 떠도는 아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못 먹어서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얼어 죽고… 어린 생명들은 쉽게 죽어 나갔고 그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마철용을 구해준 그 아저씨가 그렇게 다정한 손길로 이가 버글거리고 때가 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면, 그리 오랫동안 그를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그렇게 애처로운 진심이 보이지 않았다면, 마철용의 인생은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마철용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으라면, 그분과 함께한 그 며칠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관심과 따뜻한 보살핌, 배려와 미소… 마철용은 처음 느껴본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고 그분을 따랐지만, 조금의 불안함도 걱정도 없었다. 마음속에 한 번도 담아 본 적 없던 따뜻한 무언가가 채워졌다.

그분이 마교의 혈영천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놀라기는 했었다.

마교의 천마라면 악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분처럼 따뜻하고 맑은 사람이 마교의 천마라니…….

하지만, 그분을 따르기로 한 마음은 여전히 확고했다.

마교의 천마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그를 믿고 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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