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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48화 (148/230)

148화

보은상회는 중원 명문가들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와 가까웠고, 그들을 연결하고 중재하고 있었다.

어느 가문보다 중원에서의 입지가 굳건했다.

재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보은상회 가주의 나이가 여식인 소천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몇 가지 미흡한 부분이 있으나, 남궁현섭의 마음속에 보은상회 가주 백연천은 사윗감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상대는 당연히 승낙할 것이리라 생각하고 있는 남궁현섭은 오늘 마음속 몇몇 사위 후보들을 유심히 관찰할 생각이었다.

“남궁소천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남궁소천이 예쁘게 인사하며, 연천과 걸윤을 자리로 안내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연천에게 인사하고 연천을 안내한 것이지만, 옆에 있는 걸윤도 인사를 받고 자리에 따라가긴 했으니, 뭐…….

시녀들이 두 사람의 앞에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내어와, 탁자를 채우고 사라졌다.

연천은 음식을 먹는 걸윤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사람 자꾸 쳐다보지 말고.”

걸윤이 연천에게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 음식을 왜 그렇게 먹어? 난 네가 그렇게 깨작거리면서 먹는 건 처음 본다.”

연천은 요사이 허구한 날 붙어 다니는 친우를 재밌다는 얼굴로 보았다.

“이런 데서 평소 먹던 것처럼 먹으면 거지 같다는 소리 들어. 여기서 적당히 먹고 보은장 가서 많이 먹으면 돼.”

걸윤은 보은장을 아주 제집처럼 말하고 있었다.

연천이 피식 웃었다.

“네가 그런 말에도 신경 쓰냐?”

자신은 거지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새삼스럽게 저러나 싶었다.

“진짜 거지인 거하고, 거지 같다는 소리 듣는 거하고는 기분이 달라.”

“…그래.”

연천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 거지 같은 것과 진짜 거지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실소를 흘렸다.

“주목해 주십시오.”

누군가의 목소리에 시끌시끌하던 연회장이 일순 차분해졌다.

자리에 앉아있던 남궁현섭이 잔을 들고 일어났다.

“노부의 생일잔치에 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연천은 남궁현섭을 향해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는 걸윤이 우스웠다.

의자에 앉건, 바닥에 앉건 느른하게 허물어져 있는 모습이 익숙했기에.

남궁현섭의 인사말이 끝나고 몇몇 가문의 대표가 그의 생신 축하 인사를 해댔다.

걸윤은 축하 말이 끝나기를 끝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술을 넘겼다.

“왜? 사람을 자꾸 그렇게 쳐다봐? 나 말고 예쁜 소저들 찾아보라니깐.”

걸윤이 삐딱하게 말했다.

“웃겨서, 그리 예의 차리는 네 모습이.”

연천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모임이 편한 적이 없었다.

버글대는 사람들의 열기에 숨 쉬는 것도 불편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생각하며 긴장하던 연천은 오늘 처음으로 그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칫! 언제는 예의를 지키라고 해놓고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마셔 봐, 이 술 진짜 끝내준다. 이거 뭘로 만들었나? 갈 때 몇 병 얻어 가면 거지 같다고 하려나?”

걸윤은 말을 하며 연천의 잔을 채워주었다.

연천은 잔을 들어 술을 넘겼다.

걸윤의 말대로 적당히 알싸하면서 달달한 술이 목구멍을 기분 좋게 간질이며 타고 내려갔다.

“음… 좋네…….”

“그치? 야! 너 조만간 남궁세가에서 혼담 들어오겠더라. 진짜 저 소저 별로야? 진지하게 생각해봐. 인생 뭐 있냐? 그냥 좋은 가문에 장가가서 보은상회 가주로 눌러살아…….”

걸윤은 마교 천마 같은 것 될 생각 하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혼담은 무슨…….”

연천은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친우를 쳐다보았다.

“와… 넌 정말… 여전히 눈치가 없구나. 너를 보는 남궁세가 가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데? 못 봤냐?”

걸윤은 개방도였다.

무림의 정세와 정보가 죽치고 앉아 있다고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닌 척 숨기고 감추려 하는, 진실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필요했다.

빠릿빠릿하게 남의 속내를 읽어내고, 그것들을 합치고 합쳐 쓸 만한 정보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랬기에 타인의 태도와 상황으로 미루어, 남을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다.

한마디로 눈치가 무진장 빨랐다.

“…….”

연천은 술을 홀짝이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늘어놓는 친우의 말을 웃어넘겼다.

탁자마다 돌아다니던 남궁소천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말을 건네고 시녀에게 지시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느새 남궁소천이 연천과 걸윤에게 다가왔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소천이 반듯하게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특히 이 술은 맛이 훌륭하군요.”

걸윤이 점잔을 빼며 말했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그 술은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것이지요. 여기 술을 더 내어오너라.”

소천이 걸윤에게 답하고, 시녀에게 지시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과음을 할까 걱정이 되는군요.”

걸윤이 넉살 좋게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좀 그리하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소천이 예쁘게 웃으며 무릎을 굽혀 인사하고, 다른 탁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소천이 걸윤와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내가 소천에게 다가왔다.

연회에 온 대부분이 좋은 옷을 한껏 차려입었지만, 유난히 장신구를 많이 하고 화려한 복색을 한 사내가 남궁소천의 손목을 잡았다.

“지금 일하는 중이지 않습니까? 놓으십시오.”

소천이 사내의 얼굴을 흘겨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아까부터 얘기 좀 하자고 그랬잖아.”

사내가 소천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것 놓아요!”

소천이 사내의 손에서 자신의 손목을 빼내려 하며 말했다.

“얘기 좀 하자고.”

사내는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오라버니… 이거… 아야…….”

사내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힘을 주어 당기던, 소천은 갑자기 풀려난 손목을 다른 손으로 문질렀다.

사내가 잡았던 손목에 빨간 손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손을 잡고 있는 걸윤을 보았다.

“거 놓으라잖소.”

걸윤이 씨익 웃었다.

걸윤에게 손목이 잡힌 사내가 걸윤을 노려보았다.

“넌 뭐야!”

사내가 언성을 높여 말했다.

걸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인원이 있는, 커다란 연회장은 시끌시끌했다.

한 잔씩 걸치고 이야기를 해대는 통에 이곳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지만, 조금만 더 소란을 피우면 이목이 집중될 것 같았다.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남의 잔치에서 소란을 피워서야 되겠소?”

걸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놔! 내가 왜 너 따위랑 나가!”

걸윤의 말에도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걸윤이 웃으며, 사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둘은 다정한 친우처럼… 비틀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나가지 않으려는 사내와 끌고 나가려는 걸윤의 완력 싸움에서 사내가 밀리는 것이었다.

소천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다 둘의 뒤를 따랐다.

사내의 한 발짝 뒤에서 그를 지키듯 서 있던, 다른 사내가 그들을 뒤따라 나가려고 하자 연천이 앞을 가로막았다.

사내의 표정 없는 얼굴이 굳었다.

연천은 여전히 사내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그 앞을 막고 있었다.

“난 그의 호위로 온 사람이오. 내 일을 방해하지 마시오.”

사내가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호위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호위면 호위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시오.”

연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호위가 아니오!”

사내가 불쾌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방금 호위라 하지 않았소?”

연천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으흠… 종리석이라 하오! 방금 나간 이는 내 사촌 종리우요. 우리는 함께 남궁세가에 초대받아 온 것이니 더 이상 내게 무례를 범하지 마시오.”

사내가 딱딱하게 말했다.

종리세가는 비록 오대세가에 들지는 못했지만, 중원 명문 가문 중 하나였다.

가문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종리세가의 사람이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의미가 컸다.

“보은상회의 백연천이오. 나는 그대에게 무례를 범한 바가 없소만.”

종리석이 종리세가라는 이름을 들이댔음에도, 연천은 동요하지 않고 편안하게 말했다.

“이리 내 앞을 막고 있지 않소?”

종리석이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것은 내 친우와 그대의 사촌 간의 일이요. 사촌의 호위를 하러 온 그대가 나설 일이 아니오.”

“나는 내 사촌이 걱정되어 나가보아야겠으니 비키시오!”

“어린아이도 아니고 걱정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오? 이 남궁세가에서 그대 사촌에게 해를 가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오? 아니면 개방 방주의 차남인 내 친우나, 따라 나간 남궁 소저가 위해라도 가할까 걱정된다는 말이오?”

“그대 친우라는 사람과 내 사촌이 좋지 않은 감정으로 나갔소! 보지 않았소?”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오. 종리세가도 개방도 정도를 아는 곳이니, 그 법도에 따라 해결하겠지요. 설마 그대가 따라 나가서 그것을 방해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아니!!”

얼굴이 벌게진 종리석은 할 말이 없었다.

연천과 종리석이 서서 언성을 높이고 있자, 사람들의 이목이 조금씩 집중되었다.

이것이 연천과 걸윤의 차이였다.

걸윤은 길게 말하지 않고 빨리 종리우를 데리고 나가는 통에 사람들이 길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걸윤에 비해 이런 방면에 요령이 부족한 연천은 종리석과 계속된 말씨름 중이었고, 하나둘 시선이 집중되면서 주위가 점차 조용해지고 이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연천과 종리석에게 눈과 귀를 열고 있었다.

연천은 얼굴이 굳어진 종리석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혹여 둘이서 주먹다짐이라도 하면 어찌하겠소?”

종리석이 대들 듯 말했다.

“무인들의 주먹다짐이라… 그런 것을 비무라고 부르지요.”

연천이 편안하게 답했다.

“남의 잔치에서 비무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싶소!”

종리석이 딱딱한 얼굴로 대꾸했다.

“잔칫상을 엎는 것도 아니고 연회장 밖에서 비무를 하는 것이 무슨 문제겠소? 무인들이야 마음에 맞는 상대가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고 잔치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소!”

연천이 종리석에 말에 대꾸했다.

“하!”

종리석이 연천을 뚫을 듯 노려보았다.

“…….”

연천은 표정 없이 종리석의 시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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