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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41화 (141/230)

141화

걸화는 의식 없이 몸을 축 늘어트린 걸윤에게 달려들었다.

“걸윤아! 배걸윤! 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걸화가 걸윤을 안고 오는 연천에게 물었다.

질문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잠시 놀라 기절한 것이니 괜찮다.”

연천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아니! 뭘 했는데 얘가 놀라서 기절까지 해요!!”

걸화가 허둥대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걸윤의 이런 모습은.

그렇게 수없이 시도했지만, 걸윤에게는 짱돌도, 작대기도 닿지 못했다.

꼿꼿하게 서서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보던 걸윤이 그렇게도 꼴 보기 싫었는데…….

저렇게 게거품을 물고 의식을 잃은 모습은… 낯설고 무서웠다.

저러다 영영 일어나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연천을 따라가, 휴신각에 걸윤을 눕히는 것을 도왔다.

걸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침상에 늘어졌다.

“걸윤아! 야! 배걸윤! 걸윤아!”

걸화가 걸윤의 뺨을 두드려댔다.

걸윤은 걸화가 두드리는 대로 몸을 휘청거렸다.

“야! 정신 차려!!”

걱정이 된 걸화의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그만! 그만해라! 깨면 뺨이 더 아프겠다.”

연천이 침착하게 말했다.

걸화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연천을 쏘아보았다.

그들을 따라온 신의는 언제나와 같이 느긋한 모습으로 걸윤의 맥을 짚었다.

“별일 아니니 걱정 말거라. 몸의 신경이 잠시 놀란 것이다. 곧 깨어날 것이야.”

걸윤의 팔을 내린 신의가 가볍게 말했다.

걸화는 걸윤이 저 모양으로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스승님도 연천도 미웠다.

“대체 뭘 했어요? 뭘 했는데 얘가 놀라서 기절까지 해요?”

걸화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연천을 보며 물었다.

“음… 뭐 그런 것이 있다.”

연천은 정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뇌전을 쏘아서 저리되었다고 말했다가는 걸화가 길길이 날뛸 것이 뻔했다.

“그런 것이 뭔데요?”

걸화가 곧 울음을 터트릴 듯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 것이 있대도…….”

연천은 이번에도 답을 얼버무렸다.

“…….”

결국, 걸화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걸윤이 저리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자신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스승님도 괜찮다고만 하고 연천도 태평하기만 했다.

“내가 이곳을 지킬 것이니, 너는 그만 들어가 보거라.”

연천이 걸화에게 말했다.

“싫어요! 내가 있을 거예요.”

“괜찮다. 대협이 깨면 내가 할 말도 있고 하니 들어가 보아라.”

“씨잉… 내 오라비예요. 내가 있는다구요!!”

걸화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녀의 입에서 무려 오라비라는 말까지 나왔다.

연천은 더 이상 걸화를 만류하지 않았다.

걸화는 고집스럽게 걸윤의 옆을 지켰다.

고요한 휴신각에는 걸화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울렸다.

연천은 걸윤을 휴신각에 데려다 놓고도 돌아가지 않았고, 신의는 연천이 휴신각에 있으니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걸화는 걸윤의 손을 잡고 훌쩍거렸다.

신의와 연천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해도, 의식 없는 걸윤의 모습에 자꾸 눈물이 나왔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걸윤이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

걸화가 달려들 듯이 걸윤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걸윤아!! 정신이 들어? 내가 누구야? 나 알아보겠어? 이거 몇 개야? 어디 아픈 데 없어? 대체 뭘 하다가 정신을 잃은 거야아!”

걸화가 눈을 뜬 걸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

걸윤은 답 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 앉았다.

“이잉…….”

걸화가 걸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꼴 보기 싫은 놈인데, 의식을 잃은 동안 그렇게 무섭고 불안할 수가 없었다.

깨어나서 인상 쓰는 모습에 말할 수 없이 안심이 되었다.

걸윤이 피식 웃으며 걸화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 죽이네 사네 하며 싸워대도, 한 배에서 나서 한솥밥을 먹고 산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보다.

걸윤의 가슴팍이 축축해지도록 눈물을 흘려대던, 걸화가 고개를 들어 벌게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씨… 나쁜 놈!!”

“아! 왜에―”

“씨이! 으이그! 으이그! 으이그으으으!!”

걸화가 주먹을 말아쥐고 걸윤의 팔뚝을 내리쳤다.

“야! 너는…….”

‘울다가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라는 걸윤의 말이 걸화의 외침에 막혔다.

“한 번만 더 쓰러지기만 해 봐라! 내가 가만 안 놔둔다!!”

걸화는 씩씩거리며, 그 말을 남기고 휴신각을 나가 버렸다.

“하여튼 재는… 아… 아파…….”

걸윤은 걸화가 내려친 팔뚝을 문지르며 엄살을 떨었다.

연천이 계속 옆을 지킨 신의를 휴신각 밖으로 내보냈다.

“괜찮으시오?”

아무도 없는 휴신각에 낮은 연천의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 생각하던 걸윤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아……!”

연천이 빙그레 웃었다.

“대체 그건 무슨 검법이요? 내 지금껏 그런 검법은 듣도 보도 못했소.”

천마신공은 유명했다. 마교 교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혈영천마 주진관의 진신무공이었던 뇌전신공까지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거기다 연천의 정순한 내공과 합쳐진 뇌전신공은 붉은빛의 벼락이 내리치는 주진관의 것과는 달리 옅고 밝은 빛을 띠었다.

“…….”

연천은 입술을 말아 올려 더욱 짙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으흠…….”

걸윤이 심각한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꼼짝없이 연천을 형님이라 부르게 생겼으니.

어우… 생각만 해도 싫었다.

“거… 가주!”

걸윤이 길게 고민하다 연천을 불렀다.

“말씀하시오.”

연천이 담담하게 답했다.

연천이 아는 배걸윤은 자신에게 순순히 형님이라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연천도 걸윤에게 형님 소리를 들을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진지하게 자신을 부르니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음! 걸화를 책임지시오!!”

걸윤이 뜬금없는 소리를 불쑥 내뱉었다.

“……?”

갑자기 이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쓰러질 때 머리를 다치기라도 한 건가?

“가주께서 우리 걸화랑 손도 잡고 껴안기까지 하지 않았소! 그러니 책임을 져야지요.”

걸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배걸아라는 사내아이를 돌보기는 했으나, 배걸화라는 여인과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소.”

연천은 갑작스러운 걸윤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침착하게 대꾸했다.

“에이… 배걸아나 배걸화나 같은 사람 아니요! 당연히 가주께서 책임을 져야지요.”

걸윤은 계속 같은 말을 해댔다.

“…허허…….”

연천은 갑자기 억지를 써대는 걸윤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 가주께서 우리 걸화와 인연을 맺으면… 거! 음! 내가 가주께 형님이 되는 것 아니겠소?”

걸윤은 민망 표정을 지으면서도 뻔뻔하게 이야기를 했다.

“…하……!”

연천은 그제야 걸윤이 왜 저리 우기는지 알 것 같았다.

“뭐… 가주께서 정…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내가 이번은 넘어가리다. 대신! 우리 형님 소리 들을 일을 한 번씩 양보합시다. 어떻소?”

걸윤 스스로도 무안한지 고개를 쳐들고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연천을 바로 보지 못했다.

“…….”

연천은 이상한 논리로 빡빡 우겨대는 걸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우리 나이도 같은데 그냥… 친우 합시다아!”

걸윤이 표정을 바꾸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참았던 연천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걸화는 의식을 잃었다가 깬 오라비가 걱정되어 그의 거처를 찾았다.

밥은 잘 먹는지… 어지럽지는 않은지, 또 의식을 잃을 것 같지는 않은지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몸은 괜찮냐?”

“어… 괜찮으니깐, 그만 가.”

걸윤이 만사 귀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자마자 뭘 가라 그래? 그러는 너는 왜 안 가고 보은장에 있는데?”

걱정에 겨운 걸화가 한다는 말이 저것이었다.

말처럼 자세도 삐딱했다.

“너 보려고 여기 더 있는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걸윤도 곱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 뭐 때문에 있는 건데?”

“뭐 이것저것 할 일도 있고… 알아볼 것도 있고…….”

걸윤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답을 얼버무렸다.

“솔직히 말해 봐! 솔직히 말하면 내가 용서해 줄 수도 있어.”

“뭘 말해!!”

“너 왜 안가고 백연천 주위에서 얼쩡거려?”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너는 가주께 백연천이 뭐냐?”

“와… 지가 언제부터 가주라고 불렀다고? 너, 백연천 때문에 있는 거 맞지?”

“…그렇지 백연천 때문에 있는 거지.”

잠시 망설이던 걸윤이 나지막이 답했다.

“야! 너 나한테 안 미안하냐?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걸화가 버럭 성질을 냈다.

‘아무리 백연천이 사내를 좋아한다고 해도, 배걸윤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너… 알고 있었냐?”

걸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형님 소리 하기 싫어서 걸화를 판 것이 들켰구나…….’

“그럼 모를 줄 알았냐?”

‘그렇게 대놓고 붙어 있었으면서!’

“…나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처음엔 그저 가주를 도우려고 그랬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리되었다. 오라비가 돼서 미안하다.”

걸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 줄은 아는구나!!”

“…미안하지… 내가 너한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본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외간 사내에게 다 큰 누이를 책임을 져라, 마라 했다.

그래도… 도저히 백연천에게 형님이라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허! 기가 막혀!”

백연천과의 사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하는데, 뭐라고 더 성질을 낼 말이 없었다.

그저 불쾌한 얼굴로 걸윤은 노려볼 뿐이었다.

“…….”

찔리는 게 있는 걸윤은 눈을 내리깔고, 누이의 기분 나쁜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사이, 수일검의 이야기는 중원 구석구석 널리 퍼졌다.

소문은 한 사람을 건너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서 더 커지고 더 잔인하게 변했다.

수일검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다.

마교와 손을 잡고 무고한 마을에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살인마이자, 무림의 사기꾼이었다.

워낙 큰 사건이라 가만히 있어도 소문이 천 리까지 가겠지만, 개방은 자신들의 정보망인 거지들을 이용하여 최대한 멀리, 자세한 이야기를 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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