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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37화 (137/230)

137화

그들 뒤로 각 문파의 제자들이 나타났다.

흐릿하게 감기던 눈을 부릅뜬 주진관이 눈앞에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상관량! 태청검! 금월대사! 수일검! …오너라.”

주진관이 천천히 몸에 있는 진원진기를 끌어올렸다.

그것으로 주진관의 명을 재촉하게 될 것이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눈앞의 놈들에게 맞서려 하고 있었다.

다 죽어가던 주진관이 벌떡 일어나 제일 앞에 있던 수일검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평소 주진관에 비하면 거북이가 기어가는 것만큼 느렸지만, 수일검에게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깜짝 놀란 수일검이 뒤로 물러나며, 옆에 있던 화산의 제자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주진관의 검이 화산 제자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날듯이 도약해, 수일검과 태청검, 금월대사 그리고 상관량을 향해 뛰었다.

“막아! 어서 막아! 저놈을 막으라고오!!”

수일검이 악을 써댔다.

세 문파의 제자들이 우르르 주진관에게 달려들었다.

주진관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을 베었다.

베고 찌르고, 베고 꿰어도 끝도 없이 달려들었다.

주진관은 쉼 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자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수일검은 단전 한가운데 비수가 꽂힌 채, 거침없는 몸놀림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베어나가는 주진관의 모습이 악귀 같다고 느꼈다.

여럿이 떼로 덤벼드는데도 주진관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준비된 것처럼 베고 찔렀다.

뜨끈한 피가 솟아올라, 주진관을 뒤덮었다.

“이익, 징글징글한 영감탱이!!”

상관량이 이를 갈며, 주진관을 노려보았다.

주진관은 직접적으로 상대를 베거나 사혈을 찌르는 검법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주로 검강이나 검기를 사용해 상대를 공격했다.

저리 하나하나 베고 찌르는 것은 산공분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데도 그는 자신에게 달려든 이들을 가볍게 베어내고 있었다.

“지독한 영감… 이것만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할 수 없지…….”

아무도 모르게 품속에서 진천뢰를 꺼내든 상관량은 정신없이 얽혀있는 혈영천마와 각파의 제자들 사이에 진천뢰를 굴려 넣었다.

“진천뢰라니!! 제자들이 있는데 무슨 짓이…….”

태청검의 목소리는 진천뢰가 터지는 폭발음에 묻혔다.

콰쾅!!

이내 한차례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고, 역한 연기와 돌멩이 같은 자잘한 파편이 수일검 일행에게로 튕겨져 날아갔다.

일행은 얼른 몸을 돌리고,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매캐한 연기와 먼지로 인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켁…케엑…크억…콜록콜록…….”

정신없이 눈물과 콧물, 기침을 쏟아내다 고개를 든 이들은 털끝이 쭈뼛해지도록 섬뜩함을 느꼈다.

검은 연기가 걷힌 곳에는, 시체들 사이에 파편이 여기저기 박힌 혈영천마가 서 있었다.

“으아아악!!”

진천뢰를 쓰고도 제자들의 시체만을 보게 된 태청검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혈영천마를 향해 뛰쳐나갔다.

남은 제자들도 태청검 뒤를 따라 달려들었다.

태청검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리쳤지만, 천마는 가볍게 칼등만으로 태청검의 칼날을 비껴 막아내었다.

크지 않은 움직임에 파편이 깊이 박힌 왼쪽 팔이 덜렁거렸다.

매끈한 몸놀림으로 태청검을 막아내던 주진관은 검을 들어 불안하게 붙어 있는 자신의 한쪽 팔을 마저 베어버렸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 둘을 한꺼번에 찔렀다가 검을 뽑아냈다.

그 사이, 뒤로 돌아가 있던 태청검이 주진관의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하하하하.”

수일검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잠시 뒤, 수일검이 주춤주춤 뒤로 걸음을 물렸다.

단전 한가운데 비도가 꿰어있고, 등에서 찔린 검날이 앞쪽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주진관의 눈빛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기가 넘쳐흘렀다.

그의 가슴 앞으로 나온 날카로운 은빛 검날은 햇빛과 핏물이 반사되어 더욱 섬뜩했다.

진천뢰의 시커먼 파편 조각도 곳곳에 박혀있었지만, 주진관은 쓰러지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수일검 일행과 상관량을 향해 다가왔다.

비틀거리며 걷던 주진관의 한쪽 무릎이 거칠게 바닥에 닿았다.

검에 몸을 지탱하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두 눈으로는 상관량을 뚫을 듯 노려보았다.

상관량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웃었다.

‘드디어, 저 영감이 쓰러지는구나…….’

상관량은 주진관의 몸이 바닥에 닿는 순간을 보기 위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주진관은 평생을 함께한 검에 의지해 지독하게 버티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뿌예졌다.

맑은 산 중턱에 새하얀 안개가 서서히 끼는가 싶더니, 뿌연 안개가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흡!”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중에, 누군가 놀라 입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독이다!”

“극독이야!”

금월대사가 빠르게 소림의 막원장을 펼쳤다.

상관량과 수일검 일행은 금월대사 옆에 서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안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독 안개였다.

극독을 품고 있어, 자칫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도 있었다.

상관량은 초조한 얼굴로 모든 것을 뒤덮고 있는 새하얀 안개를 쏘아보았다.

주위를 비산하던 진한 안개는 일각이 지나서야 서서히 가라앉았다.

안개가 옅어지며,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무성하던 풀숲과 키 높은 나무가 시커멓게 타들어 가 있었다.

금월대사는 하얀 안개가 가라앉고도, 일각을 더 기다려 막원장을 거두었다.

“쿨럭쿨럭…….”

매캐한 냄새에 일행이 기침을 해댔다.

바람에 안개는 사라졌지만, 그들 주위의 땅까지 독의 영향으로 버석거리며 자연이 탄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어야 할 혈영천마 주진관이 사라졌다.

진천뢰에 타버린 시신 위를 덮은, 새로운 시체들은 독에 타들어가 검푸른 빛을 띠었다.

그 한가운데 주진관의 한쪽 팔만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산공분의 영향으로 해독이 되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의 팔만 독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살아 있는 듯 생생한 팔을 내려다보는 일행은 께름칙했다.

“어디 간 거야? 독을 뿌리고 도망을 가? 이 영감이 독을 가지고 있었어? 어서 찾아!”

상관량이 악에 받쳐 외쳤다.

일행은 흩어져서 주진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소!!”

태청검의 목소리에 모두 그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한 사람의 발자국이기는 한데 급히 달려갔소. 그 몸으로 이리 뛰는 것이 가능하단 말이오? 발자국의 깊이가 깊고… 흘린 핏자국을 보아하니, 누가 구해주지 않으면 이거 곧 죽을 거 같은데?”

태청검이 발자국을 살피며 물었다.

“여기서 혈영천마를 구해줄 자가 누가 있단 말이오? 그는 탈마를 코앞에 두고 있는 고수요. 단전이 상했다고는 하나, 얼마 남지 않은 진기를 끌어 쓸 수도 있고… 틀림없이 단전 한가운데를 찔렀는데…….”

상관량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방심해서는 아니 되었는데…….’

“일단, 발자국을 쫓아봅시다.”

태청검이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급하게 도망을 친 주진관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행은 태청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대묘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호야령 앞에 선, 태청검과 일행이 걸음을 멈추었다.

대묘산에서 호야령으로 이어지는 산은 당가 소속의 독산이었다.

독정과 독충, 독풀과 독화, 독목 등 온갖 독의 정수들이 득실거렸다.

당가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게 산 전체에 진법을 걸어 놓은 이유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독이 득실득실한 산으로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아무래도 당산으로 도망친 듯싶소.”

태청검의 말에 모두 독산을 바라보았다.

“진법이 쳐져 있소. 그 영감이 진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는 하나, 당산의 진법 또한 무시할 수 없을 텐데 그 짧은 시간에 어찌 진법을 깨고 당산으로 들어갔단 말이오?”

상관량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 흔적은 거짓이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쳤을 수도 있소.”

언제 주웠는지, 주진관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 있는 수일검이 말했다.

피 흘리는 팔 덕분에 그의 앞섶은 붉은 액체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핏기도 가시지 않은 사람의 팔을 들고 있는 수일검의 모습은 괴기스러웠다.

“아무리 혈영천마라고 해도 단전을 찔렸소. 흔적을 만들고 지우고… 시간도 부족하고 그럴 기운도 없었을 것이오.”

금월대사가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혹여 살아나가서 자신들에게 복수한다면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상관량을 완전히 믿고 있었기에 이런 암습이 통했지, 혈영천마가 마음먹고 덤벼든다면 여기서 그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명줄이 아무리 질겨도 그 몸으로 오래 버티지는 못할 텐데…….”

상관량은 주진관이 제발 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당산으로 갔을까요?”

수일검이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지금은 죽지 않았지만, 곧 명이 다하지 않겠습니까? 여기는 당산입니다.”

태청검이 말했다.

“그 영감은 극마지경에서도 끝에 이르러 탈마를 바라보고 있소. 게다가 만독불침이오……. 에잇… 산공분의 효과를 기대해 볼 수밖에…….”

상관량이 걱정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 단전을 찔렀으니 내공을 쓰지는 못할 것이오. 아무리 혈영천마라고 해도…….”

불안한 그의 말끝이 흐렸다.

상관량 일행은 흩어져서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주진관을 찾지 못했다.

어디론가 꼭꼭 숨어 죽었든지, 당산으로 숨어들어 죽었든지 아무튼 살아있지는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시신을 찾지 못한 뒤끝이 찝찝했다.

* * *

“아! 그냥 그렇게 끝을 내고 헤어졌으면 되었을 텐데, 상관량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수일검의 천진한 얼굴 가운데 불편한 빛이 보였다.

“무, 무슨 소리를 했습니까?”

걸윤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얼떨떨했다.

“혈영천마가 혈교의 시회마라대법으로 악마를 키워 마을 만들고 있다더구만, 혈영만을 따르는 그것들을 없애지 않으면 우리가 위험하다고…….”

걸윤은 수일검의 어둡게 변하는 얼굴을 보고 약효가 다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제는 연천과 상관없이 자신이 그날의 일을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어찌하셨습니까?”

“어쩌기는 상관량 그놈이랑 나, 금월대사, 태청검이 모조리 그 마을로 갔지.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어. 달려들어서 그 악마 놈들을 없앴지.”

“…….”

걸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천마가 키웠다는 악마는 없애는 것이 맞았다. 그들이 혈영천마를 없앤 영웅삼존을 해하지 않더라도 그냥 두는 것은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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