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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26화 (126/230)

126화

“그것이야… 무력단주께서 아이들을 너무 오냐오냐하며 좋게만 보시니 그런 게지요.”

교준은 살수 중에서도 그 실력이 뛰어났기에, 그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 무력단의 실력은 그저 그랬다.

그는 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살수대를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자신을 가르친 무력단주를 욕보이고 있지 않은가?

“어허!! 어찌 그리 말을 함부로 하는 게냐. 암살단을 훈련하시는 분이다.”

“알고 있습니다.”

“교준이 네 이 녀석!! 어찌 이리 방자하게 말을 하는 게냐?”

“어찌 말하기는요? 물어보니 답을 하는 것이지요.”

답을 하면서 교준이 헤실헤실 웃었다.

“아니! 이놈이… 뭐가 좋다고 그리 웃는 게야?”

신의가 예의 없이 대꾸하는 교준을 꾸짖었다.

“히히히… 저는… 걸화 소저가 좋습니다.”

“뭐, 뭐… 뭐?”

신의가 교준을 가만히 살폈다.

살수 출신인 교준은 표정이 거의 없었다.

지금 교준은 끊임없이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너… 너… 뭘 잘 못 먹은 게냐? 대체 왜 이러는 게야?”

“잘못 먹은 것이요? 아침으로 나온 생선은 잘 튀겨져서 먹을 만했지만 야채 볶음은 덜 익어서 맛이 별로 좋지 못하였습니다. 매일 먹는 만두는 질리기는 했지만, 그저 그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 좀 전에 걸화 소저가 준 영단을 먹었습니다.”

교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침부터 먹은 것을 하나씩 나열했다.

“무어?”

신의의 눈썹이 올라갔다.

“걸아는 지금 어디 있는 게냐?”

“신의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 담 옆의 덤불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교준이 곧이곧대로 신의에게 말했다.

“걸아! 이리 나오거라!”

신의가 노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 후, 덤불이 부스럭거리더니, 걸화가 구석에서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교준이에게 무얼 먹인 게야?”

신의가 호통을 쳤다.

“영단을…….”

걸화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단? 영단은 어디서 난 것이냐?”

걸화를 보는 신의의 눈매가 매서웠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걸화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걸화에게 향했던, 무서운 시선을 거두어들인 신의가 낮게 숨을 몰아쉬고 교준의 맥을 짚었다.

선천지기가 맑아도 너무 맑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의 것처럼 맑고 여려 함부로 건드리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교준아!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신의가 아기 달래듯이 조심스레 물었다.

“신의님 아니십니까?”

교준은 여전히 방긋거렸다.

“그래, 내가 신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보거라.”

“음…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는 분이지요.”

“그래? 내가 너에게 그런 존재이더냐?”

신의가 아이에게 이야기하듯이, 그의 대답을 확인했다.

“그렇지요.”

“그래, 나는 네게 그리 좋은 사람이구나.”

신의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좋겠습니까? 사람은 모름지기 남의 목숨보다 자기 목숨이 소중한 법입니다. 그것을 거스르는 것인데 좋을 리야 없지요.”

교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으흠…….”

신의가 침음을 흘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걸화가 땅속으로 파고들 듯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신의의 이마에 핏대가 섰으나,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보았겠지, 너를 타이르고 기회를 주었다.”

“…….”

걸화는 당장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의원이 가장 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야! 한데 너는 검증되지 않은 약으로 그들을 위험에 빠트렸다. 의원으로서 기본이 되지 않은 것이야! 지금부터 너는 내 제자가 아니니, 당장 이곳에서 나가거라!!”

신의가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스승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걸화가 무릎을 꿇었다.

“…….”

신의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 이상 걸화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시였다.

“스승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은 걸화가 양손을 싹싹 비비며 말했다.

“교준아! 무엇 하느냐? 당장 저 아이를 끌어내라!”

신의가 습관적으로 교준에게 명했다.

신의의 엄한 목소리에 교준이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저는 소저를 끌어내고 싶지 않은데요.”

“끄응…….”

신의는 의약당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가 보은장의 호위들을 데리고 왔다.

“스승님! 스승님!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제발 내치지만 마십시오. 스승님! 잘못했습니다.”

걸화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호위들을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교준이는 나를 따르거라!!”

신의는 걸화의 말을 못 들은 척, 교준을 데리고 휴신각으로 향했다.

“스승님!! 스승님! 이거 놓으셔요! 스승니―임―”

걸화가 보은장 밖으로 끌려가면서 발버둥을 쳤다.

우르르 달려온 호위들은 걸화를 보은장 밖으로 내치고, 크고 묵직한 문을 닫아버렸다.

“스승님! 스승니임…….”

걸화가 문을 흔들고, 두드려대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스승니임… 으으으응…….”

걸화는 보은장 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신의를 불렀다.

“으아아아앙… 아앙… 흑흑…흑…으응…….”

결국, 흙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어대도, 그 누구도 걸화를 달래어주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눈물을 흘려대던, 걸화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개방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걸화는 늘 잘못하고, 또 잘못했다.

그래도 잘못을 빌면, 언제나 용서가 되었다.

개방에서는 그랬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못했다고 빌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용서해 줄 것이라고.

아버지에게 혼이 나서, 울고 있으면 걸부 형이 와서 달래주었다.

때로는 속상한 걸화에게 걸윤이 다가와서 성질을 벅벅 긁어대다… 싸웠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혼난 것을 잊어버렸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걸화를 위로해주지도, 성질을 긁지도 않았다.

그리고, 잘못을 빌어도 용서해주지 않았다.

신의는 아버지가 아니었고, 보은장은 개방이 아니었다.

걸화는 결국 쫓겨나 버렸다.

밤이 찾아와도 걸화는 보은장을 떠나지 못했다.

보은장의 정문 옆 담에 기대어 몸을 움츠렸다.

이대로 쫓겨날 수는 없었다.

손바닥이 닳을 때까지 빌고, 스승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서라도 이곳에 남고 싶었다.

* * *

다음날.

아침의 밝은 햇살이 보은장 담벼락을 비추었다.

걸화는 담에 붙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걸화가 벌떡 일어났다.

단단하게 잠겼던 보은장의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기대 어린 눈으로 열린 문만 바라보았다.

혹시, 혹시… 스승님의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내친 것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숨도 멈추고 바라본, 문 안에서 나온 사람은 연천이었다.

맑고 깨끗한 얼굴로, 구김 하나 없는 비단옷을 걸치고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걸화는 눈물과 먼지가 범벅이 된 얼굴로 연천을 쳐다보았다.

연천과 걸화의 시선이 부딪치며, 걸화의 마음속에 한 줄기 기대의 빛이 어리었다.

연천이 따뜻한 말로 자신을 위로해줄지도 모른다고, 다 괜찮다고 얘기해 줄지고 모른다고.

하지만, 표정 없는 연천은 걸화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차에 올라탔다.

연천이 탄 마차는 걸화를 향해, 흙먼지를 풍기며 달려나갔다.

뒤이어 마차 옆으로 말을 탄 호위가 따랐다.

그리고, 보은장의 문은 다시 닫혔다.

걸화의 가슴 속에 휑하니 바람이 불었다.

걸화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보은장 앞을 떠나지 않았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입술은 바짝 말라 버석거렸고, 먹지 못해서 기운이 없었다.

씻지 않은 얼굴은 더러웠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몸은 지저분했다.

그리고,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것 같았다.

걸화는 과거의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기나 하고, 남들을 힘들게만 하는…….

없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인간이라고.

신의를 따라다니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신의처럼 다리 밑의 거지들을 돕고 싶었다.

자신도 신의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데 모든 것이 다 틀어져 버렸다.

개방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신의의 제자로 보은장 앞에서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걸화는 지독하게 보은장 앞에서 버텼다.

앉아있을 기운이 없어서, 흙바닥에 드러누워서 버텼다.

걸화가 쫓겨난 지 나흘째 되는 날,

까무룩 잠든 걸화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걸화가 힘겹게 눈을 치켜떴다.

눈앞에서 걸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교준이었다.

“교준 대협!”

반가운 걸화의 얼굴과 다르게,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작고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

교준이 안타까운 얼굴로 걸화를 보았다.

“미안해요……. 몸은 괜찮아요?”

걸화의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네……. 그만 일어나세요.”

“스승님이 들어오래요?”

걸화가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교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걸화의 눈에 교준이 들고 있는 바랑이 보였다.

걸화의 짐이 담긴 것이었다.

신의는 다시 한번 교준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끝이라고.

버석하게 말라버린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걸화의 마음속에 작게 남았던 희망이 산산이 부수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아무런 가망도 없었다.

“일어나세요.”

교준은 힘없는 걸화를 일으켜, 마을의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걸화는 물을 마시고, 교준이 주문한 멀건 죽을 내려다보았다.

“후우우…….”

눈앞에 죽이 날아갈 듯 한숨을 내쉰 걸화가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죽엽청 주시오!”

“소저 술 드시려고요? 며칠을 굶었는데 몸 상합니다.”

교준이 심란한 얼굴로 걸화를 보았다.

“…….”

걸화는 대꾸도 하지 않고 죽엽청을 들이켰다.

먹지도 못하고 몸이 약해진 걸화는 술 몇 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교준은 식당 이층의 객잔으로 걸화를 이끌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는 쓸모가 없어요. 나는…….”

걸화가 중얼거렸다.

교준은 걸화를 객잔에 눕혀놓고, 보은장으로 돌아갔다.

계속 걸화 옆에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신의가 절대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을 알기에, 교준의 마음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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