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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115화 (115/230)

115화

신의는 서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걸화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좀 이른듯하지만 걸화를 제자로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신의였다.

갑자기 의약당 밖이 소란스러웠다.

“신의님! 신의님! 큰일입니다. 사람 좀 살려주세요.”

시끄러운 소리에, 신의의 머릿속을 채웠던 생각들이 빠르게 걷혔다.

신의가 방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의약당 마당에 시종 하나가 몸이 축 늘어진 시녀를 업고 있었다.

양옆에서 시종 둘이 흘러내리는 시녀의 몸을 붙잡아 주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시녀 둘이 그들 뒤에 서 있었다.

“어서! 환자를 안에 눕히거라.”

신의가 휴신각으로 앞장서며 말했다.

걸화도 서책을 내려놓고 신의와 환자들을 따라나섰다.

휴신각으로 들어온 시종이 업고 있던 시녀를 침상에 눕혔다.

같이 온 시녀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이냐?”

신의가 침상에 누운 환자에게 물었다.

“그것이…….”

환자가 시원스레 말하지 못하고 신의의 눈치를 보았다.

신의가 지금껏 보아 온 환자의 수를 어찌 다 손으로 꼽아 셀 수 있겠는가?

그중 자기 증상은 시원하게 말 못 하는 환자도 수없이 많았다.

신의를 사내라고 생각해 자신의 환부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여인도 있었고, 무턱대고 몸에 좋은 것이라고 집어먹은 산 약초가 뭔지 몰라 말 못 하는 사내도 있었다.

뭔 남부끄러운 짓을 하다 다쳤는지 입을 꾹 다물고 열지 않는 자도 있었다.

하나, 의원에게 발병하게 된 원인과 증상, 환부… 암튼 아픈 것과 관련해서 숨겨서는 안 되었다.

그게 치료를 더디게 만드는 일이었으니.

신의가 얼굴을 무섭게 바꾸었다.

“어허! 나는 의원이야, 의원에게는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아야 하네. 조금의 거짓도 섞여서는 안 돼. 그 작은 거짓이 환자의 목숨과 연관이 될 수도 있음이야!”

신의가 망설이는 환자에게 호통을 쳤다.

“그것이 소녀가… 요사이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붉은 반점이 나는 것이 속이 상해 있던 차에 걸아 의원께서 피부에 좋은 탕약이라 주는 것을 마셨습니다.”

은의가 걸화를 흘깃거리며 말을 이었다.

“한 시진이 지나니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맑아지고 반점도 사라져 좋다 하였는데… 그때부터 목 아래로 힘이 들어가지 않더니 이리되었습니다.”

은의가 민망한 얼굴로 말을 마쳤다.

“뭐… 뭐라?”

신의가 걸화를 쳐다보았다.

“아니… 저는 소저를 돕고 싶어서…….”

걸화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흐음…….”

신의가 깊은숨을 내뱉고 침상에 누워있는 은의를 살폈다.

반점은커녕 작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맑은 피부는 삶아 놓은 계란 흰자위 마냥, 뽀얗고 고왔다.

양귀비도 그녀의 얼굴을 보면 울고 갈 정도로 순백했다.

신의가 은의의 팔을 들었다, 놓았다.

은의의 팔이 침상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신의가 은의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감각이 있느냐?”

“누르시는 느낌은 있습니다.”

신의가 은의의 맥을 짚었다.

손가락 끝에 집중하던 신의가 은의의 팔을 침상에 내려놓았다.

“2, 3일 푹 쉬면 나을 것이니 염려할 것 없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신의가 걸화에게 말하고 휴신각 밖으로 나갔다.

걸화가 고개를 푹 숙이고 신의를 따랐다.

방으로 들어온 신의의 얼굴은 근엄했고, 목소리 또한 엄중했다.

“낯빛은 몸의 정기를 대변해 주는 곳이다. 몸에 건강한 기운이 차고 그것이 정돈되어 있으면, 피부의 부스럼은 자연스레 치유되고 낯빛이 밝아지는 것이다. 천천히 몸에 좋은 기운을 쌓아 피부를 낫게 해야지, 온몸의 정기를 얼굴로 끌어올려 낯빛만 밝히면 그것을 어디에 쓴단 말이더냐?”

“저는… 얼굴에 난 것을 치유해야겠기에…….”

걸화가 쪼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몸의 한곳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 곳을 상하게 하면 그것은 치료가 아니다.”

“네…….”

걸화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사람의 몸을 치유하는 것은 그리 짧은 시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야. 천천히 오래도록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급하게 문제가 있는 곳만 낫게 하려 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네…….”

“너는 아직 의원이 아니다!! 함부로 환자를 치료해서는 안 된다. 이번은 처음이라 넘어가지만, 한 번만 더 같은 일이 일어나면 내 경을 칠 줄 알아라!!”

신의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네…….”

걸화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걸화에게는 엄하게 타일렀지만, 신의는 어쩐 일인지 그녀를 크게 야단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번 일은 걸화가 잘못한 것이 맞았다.

아직 의술을 배우고 있는 자가 함부로 탕약을 조제해서 환자의 몸을 상하게 만들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환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과 의술에 대한 그 열정만은 칭찬할만했기에 이번 한 번만 넘어가기로 했다.

“신의님!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신의님……!”

밖에서 앓는 소리와 함께 신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도 모르게 걸화를 먼저 쳐다보았다.

걸화는 얼른 신의의 눈을 피했다.

신의는 불안한 마음으로 방 밖으로 나섰다.

걸화가 어기적대는 걸음으로 신의를 따랐다.

밖에서 신의를 부르는 이의 얼굴을 본 걸화가 고개를 숙였다.

옹충이 몸에 맞지도 않는 긴 장포를 걸치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안으로 들게.”

신의가 긴말하지 않고 휴신각으로 몸을 돌렸다.

휴신각에 도착한 옹충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신의가 침상을 가리키는데도 눕지 않았다.

“뭐 하는 겐가? 어서 침상에 눕지 않고!”

신의가 옹충을 재촉했다.

옹충의 시선이 은의와 은의 주변의 시녀들에게 향했다가 다시 신의에게로 돌아왔다.

“저, 저는… 눕지 못합니다. 신의님! 저는 못 하겠습니다.”

옹충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침상에 눕지 않고 버텼다.

“어허! 어찌 환자가 의원에게 이리 고집을 부리는 게야!”

신의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

옹충이 뭐라고 말할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입 밖으로 말을 뱉지는 않았다.

답답한 신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온 환자들은 왜 하나같이 이러는 겐지…….’

“거기 무엇 하는 게냐? 이 자를 어서 침상에 눕혀라.”

신의가 은의를 데리고 왔던 시종들에게 묵직한 목소리로 명했다.

그의 말에 세 명의 시종이 옹충에게 달려들었다.

옹충은 피할 곳을 찾아 몸을 두리번거렸지만, 도망가지는 못했다.

계속 식은땀을 흘렸고, 몸은 불안하게 움직이며 안절부절 가만히 있질 못했다.

“하지 말어……!”

옹충이 침상에 눕혀지며, 저항하긴 했지만 세 명의 사내의 힘에 당하지는 못했다.

결국, 세 명의 시종에게 잡힌 옹충은 억지로 침상에 눕게 되었다.

옹충이 대충 껴입은 장포의 자락이 침상 옆으로 흘렀다.

바지 속에 옹충의 남성이 크게 부풀어 곧 바지를 뚫고 나올 것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에그머니…….”

실랑이하는 옹충을 보고 있던 시녀들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야…….”

옹충을 눕힌 시종들이 옹충의 얼굴과 아랫도리를 번갈아 보았다.

옹충은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 무슨…….”

신의가 당황한 얼굴로 옹충의 아랫도리를 쳐다보았다.

“자네들은 저 시녀를 옆방으로 옮기게”

신의의 말에 시종들이 은의를 등에 업고 방을 나섰다.

옹충의 옆을 지나던 시종과 시녀들이 신기한 광경을 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옹충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시녀와 시종이 은의를 데리고 방을 나가자 신의가 물었다.

옹충이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허리가 아파… 걸아 의원이 주는 허리를 치료하는 약을 먹었습니다. 허리는 신기하게 낫기는 하였는데 이것이…….”

“허!!”

하도 어이가 없어, 신의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신의가 옹충의 맥을 짚고, 약상자에서 작은 환단을 하나 꺼내 주었다.

“급히 채워진 원기를 하체로만 몰리도록 하여 그리되었네, 이 약을 먹으면 좀 나을 걸세. 2, 3일 쉬면 괜찮을 것이니 걱정 마시게.”

신의가 방을 나서며 걸화에게 따라오라 눈짓했다.

걸화는 땅으로 기어들어 갈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신의를 따랐다.

“허리가 아프다고는 하나, 급하게 하체에만 원기를 채워 넣으니 저리되는 게 아니냐!! 사람의 몸은 부작용이 생기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해진 정도가 있는 것이야. 그 정도를 넘어서 원기를 채우니 주변이 저리 탈이 나는 게야!!”

신의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네…….”

걸화는 바닥으로 고꾸라질 듯 고개를 숙였다.

“교준아!! 밖에 교준이 있느냐!”

신의가 밖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

교준이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내 허락 없이 환자에게 함부로 처방했다가는 쫓겨날 줄 알거라!”

신의가 걸화에게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교준이 너는 내가 없을 때, 걸아가 다른 이에게 처방을 하거나 치료를 하는지 지켜보아라!!”

“네, 신의님”

* * *

보은장은 보은상회의 가주가 머무는 곳이나, 상회의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회 일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연천이 조용히 쉬는 곳이었다.

그 평온한 곳에, 요사이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시녀와 시종들이 걸화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그리고, 옹충에게 관심을 가지는 여인들이 생겼다는… 아주 사소한 변화가 말이다.

그것을 제외하고, 보은장은 여느 때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해가 겨우 떠오르고 있는 새벽이었다.

걸화가 마구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묶지도 않고 뛰었다.

쿵 쿵 쿵 쿵 쿵―

벌컥―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신의의 방문을 급하게 열어젖혔다.

신의가 깜짝 놀라 걸화를 쳐다보았다.

봉두난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삐져나온 얼굴에는 마른침 자국도 남아있었다.

신의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걸화가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찌 안 깨웠어요? 너무 늦었잖아요. 얼른 가요, 얼른!”

걸화가 신의를 재촉했다.

“어딜 가?”

신의의 물음에 걸화의 표정이 뜨악하게 변했다.

매일 해 뜨기 전에 연천의 약 달일 물을 뜨러 갔으면서 새삼 물어보는 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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