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신의의 말에 걸화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껌껌한 움막 안이라 신의의 표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으나, 크게 동요하고 있지는 않았다.
교준도 구풍도 마찬가지였지만, 걸화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한단 말인가?
왜 신의라고 불리는데?
신과 같은 의술로 저승길에 들어선 자도 데리고 온다 하여 그리 불리지 않던가.
한데… 겨우 며칠을 넘기지 못하겠다는 말로 끝을 낸다는 말인가?
약을 쓰든 침을 쓰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내내 답답했던 속에서 뭔가가 울렁거렸다.
“하아…….”
구풍이 짧은 탄식음을 흘렸다.
“어찌… 방법이 없습니까?”
신의에게 질문하는 걸화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목이 멘 것 같기도 했다.
“명이 다하신 것을 어찌하겠나.”
신의가 간단하게 답했다.
그의 표정은 안타깝지만, 사내를 살리기 위해 뭔가를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 분명히 전해졌다.
걸화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속에서 뭔가가 터질 것 같았기에.
다리 아래 커다란 모닥불에 모닥불보다 더 큰 솥이 걸렸다.
신의가 가지고 온 곡식을 넉넉히 넣고, 어디서 구한 것인지 정체 모를 푸성귀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죽이 끓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서 끓어가는 죽을 보는 걸화는 계속 속이 답답했다.
죽이 완성되자, 구풍이 두런두런 모인 거지들에게 죽을 나누어주었다.
거지들은 각자 이 나간 쪽박, 때에 전 바가지, 금 간 사발 등을 내밀어 죽을 받아갔다.
구풍이 작은 바가지에 죽을 담아 걸화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걸화는 죽 담긴 바가지를 받아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괴괴한 빛의 죽을 내려다보는 속은 무언가가 콱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찼다.
멀거니 앉아있는 걸화의 주변으로, 커도 너무 큰 넝마를 걸친 작은 꼬마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흘금흘금 쳐다보았다.
걸화는 눈이 마주친 아이에게 작게 웃어주었다.
걸화의 미소에 마음이 놓였는지, 아이는 넝마를 질질 끌고 더 가까이 왔다.
때 국물이 흐르는 아이의 얼굴에 마른버짐이 허옇게 피어 있었다.
걸화는 답답한 마음을 숨기고, 아이를 향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쭈뼛쭈뼛 다가온 아이는 걸화의 손에 들린, 죽이 담긴 바가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걸화가 웃으며 바가지를 내밀자, 아이가 받아들고 크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쪼르르 달려 가버렸다.
답답한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숨을 내뱉어도 속이 갑갑했다.
구풍이 손님을 배려해서 내어준 작은 움막은 걸화 한 몸을 누이자 꽉 찼다.
때가 찌든 움막에서는 매스꺼운 비린내가 나고, 바람이 불 때마다 거적이 들썩이며 냉기가 훑고 지나갔다.
곳곳에 뚫린 구멍으로 회백색의 달빛이 내부를 비추었다.
걸화에게 거지의 삶은 생활이었다.
아비가 개방의 방주이고, 태어나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거지였으니 당연했다.
거지가 버글대는 개방,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이 거지의 삶인 줄 알았다.
진짜 거지가 어떤 건지도 모르고 바보같이…….
개방지존처럼 죽엽청과 오리고기를 먹어대며 무림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 거적을 입고 다니는 그것이 진짜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거적을 입고 씻지 않고 버티며, 진정한 거지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노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었다.
답답한 가슴 한편에서 무언가 올라와 걸화의 얼굴을 달구었다.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몰랐던 주제에 다 아는 것처럼 굴었던 스스로가 수치스럽고, 가슴 한편이 패이는 것처럼 아렸다.
그들은 진짜 거지의 삶을 알았겠지.
그들의 삶은…….
거적이 들썩이는 것처럼 걸화의 가슴이 시렸다.
아비 잘 만나 호의호식하며, 거지를 욕보인 자신이 부끄러웠다.
죽 한 그릇 겨우 먹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총타를 돌아다니는 개방도들에게 거지 같지도 않다 욕했었다.
그들 대부분은 개방에 입문하기 전, 오늘 걸화가 본 이들과 같은 진짜 거지였다.
진짜 거지는 씻지 않는 것이 아니고, 거적을 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리 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을 긁어모아 집을 짓고, 모자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기를 쓰고 노력해서 개방에 입문했을 것이다.
개방의 거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옥죄였다.
개방인들 어디 호락호락하겠는가?
발바닥이 부르트게 뛰어다니고, 추워도 더워도 길바닥에서 버텨내야 했다.
그리 긁어모은 정보를 팔고, 사람을 찾아주고 번 돈으로 걸화가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살았다.
그들 덕에 그리 살면서도 그들을 욕했다. 거지 같지도 않은 것들이라고.
그들을 함부로 대했다.
그들이 자신에게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으니깐.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이 그랬다.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아프게 눌러 내렸다.
당장 개방으로 달려가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사죄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리석었던 과거의 자신을 끌어다, 흠씬 패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그동안의 잘못 하나하나가 목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꽉 막힌 목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무겁게 얹힌 가슴이 터질 듯 답답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재가 걸화를 아프게 했다.
아파서 울고 싶었다.
울어도 바뀌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러고 싶었다.
걸화는 복잡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붙인 걸화는 어수선한 움직임에 잠이 깼다.
다급한 발소리, 여러 사람이 몰려서 움막 앞을 지나는 인기척, 목소리를 낮추어 웅성대는 소리.
거적 하나를 사이에 둔, 밖의 불안정한 기척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거지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신의가 작은 움막에서 나오고, 구풍과 두어 명의 거지가 거적에 둘둘 만 것을 들고 신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거지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걸화의 가슴에 커다란 무언가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속이 더 무거워졌다.
“…저것이 무엇이에요?”
짐작 가는 것이 있는 걸화가 신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전대 두수께서 돌아가셨다.”
신의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탄식이 걸화의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고요하고 묵직한 비감이 다리 밑을 감쌌다.
다음 날 아침.
거지들은 거적에 만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고, 향을 피웠다.
신의도 쓸쓸한 표정으로 향을 올렸다.
걸화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숙연한 분위기였지만 오열하거나 흐느끼는 이는 없었다.
그날 오후.
“제정신이에요?”
걸화가 신의에게 언성을 높였다.
“각자 그들만의 방식이 있는 게다,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야.”
신의의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걸화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숨 쉬던 사람이에요.”
걸화는 답답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분의 껍데기일 뿐이다.”
“신의라는 분이 어찌 그리 말해요? 고인을 보고 껍데기라니요?”
“이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네가 뭐라 할 수 없어.”
“묻어 줄 수도 있잖아요. 그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어디다 묻겠다는 것이냐? 이들에게 그럴 땅이 있다면 이리 살지 않을 것이다.”
“여기… 여기 움막 근처에라도 묻으면 되잖아요.”
“여름에 강물이 차면 이곳에 있는 움막도 모조리 떠내려간다. 시신이 파헤쳐져 강으로 흘러가는 꼴을 보아야겠느냐?”
신의의 말에 걸화는 입을 꽉 다물었다.
가진 거 하나 없는 이들에게는 작은 무덤조차 사치였다.
그렇다고 시신을 불에 태우다니… 말리고 싶었다.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설득하고 싶었지만, 걸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려온 그들의 풍습이었다.
산 사람을 위한 것도, 죽은 자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상황에 맞추어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선택한 방책이었다.
거지들은 익숙하게 장작을 모아놓고, 거적에 싸인 시신을 그 위에 올렸다.
작은 불씨는 마른 나뭇잎과 장작으로 빠르게 옮겨붙더니, 순식간에 크게 번져 시신을 싸고 있는 거적을 뒤덮었다.
나무 타는 향와 함께 역한 냄새가 풍겼다.
걸화는 높이 타오르는 불을 보며 속이 답답할 뿐이었다.
불은 밤늦게까지 오래도록 타올랐다.
다음날, 밤새도록 태우고 남은 재를 모조리 강물로 떠내려 보냈다.
걸화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신의는 가지고 온 약재로 약을 만들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금창약을 죽을 끓였던 커다란 솥에다 끓여댔다.
걸화는 금창약을 저었다.
뻑뻑하게 변할 때까지 팔이 빠지게 젓고 또 저었다.
땀이 흐르고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시큰거리고 손바닥이 벗겨졌다.
온몸이 부서질 듯 욱신거리는데, 며칠 동안 답답했던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제가 좀 하겠습니다.”
뚝딱거리며 움막을 보수하던 교준이 다가와서 말했다.
“됐어요, 이건 내 일이에요.”
걸화가 묵묵히 팔을 움직이며 답했다.
걸화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금창약을 젓는 것뿐이었다.
이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하고 싶었다.
교준은 옆에서 걸화를 지켜볼 뿐이었다.
며칠 후, 신의 일행은 다리 밑을 떠날 채비를 했다.
“매번 감사합니다.”
새로이 두수가 된 구풍이 신의에게 인사했다.
“부디 무탈하시게.”
신의가 담담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걸화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신의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길을 달렸다.
그 많던 짐이 빠져나간 큰 마차 안은 신의와 걸화 두 사람만 있기에 넓었다.
신의는 살랑살랑 부채질을 해대며 눈을 감고 있었다.
걸화가 속을 알 수 없는 영감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양으로 말이다.
걸화는 여전히 신의의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생각했던 신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신의면… 돈 많은 사람들한테 엄청난 금전을 받고 치료하는 줄 알았어요.”
걸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훗…….”
신의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