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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97화 (97/230)

97화

주진관이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리는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주진관이 둘 중 한 명인 상관량를 불렀다.

“영월단주는 가서 아까 그자들의 동태를 살펴보거라.”

“존명!”

상관량이 짧게 부복하고 사라졌다.

“충일아!”

주진관이 은근한 목소리로 남은 사내, 모충일을 불렀다.

“네!”

모충일이 부복하지 않고 주진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는 마교의 교주로서가 아니라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였다.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되었다.

“이 가족들을 그 마을에 데려다주거라.”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아우와 만나기로 한 시일이 다 되어서 이번에는 너 혼자 가야겠다.”

“혼자… 말씀입니까?”

모충일이 주진관이 걱정되어 되물었다.

“영월단주가 있질 않느냐?”

주진관은 영월단주 상관량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주진관의 말에 모충일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주진관의 무림행은 항상 모충일과 둘이서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상관량이 교주를 직접 모시겠다고 따라나선 것이다.

상관량은 교내 서열 9위로, 마교의 정보조직인 영월단의 단주로 있었다.

그의 아비가 부교주 상관단월이었다.

교주가 무림을 떠돌고 상관단월이 마교에서 교주의 역할을 한 것이 40년이 다 되어 갔다.

교주가 교내에 거의 머물러 있지 않아서, 원로원을 제하고 실질적인 업무는 부교주인 상관단월이 맡고 있었다.

상관단월, 그는 교내 최고의 권력자였다.

허나, 부교주 상관단월은 교주인 주진관이 하루빨리 차기 교주를 정해, 본인은 부교주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이 80을 바라보는 상관단월은 교의 일들이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힘에도 부쳐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상관단월이 힘이 들 만도 했다.

교주의 일을 맡았어도, 적당히 아랫사람들에게 넘기고 요령껏 해도 되건만 그 꼬장꼬장한 성격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니 본인이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붙은 상관단월의 별호가 무려, 흑결서생이었다.

자신도 그것을 알건만, 안 했으면 안 했지 대충과 설렁설렁이 안 되는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다.

어쩌겠는가? 생겨 먹은 것이 그런데.

교주가 교에 들어올 때마다 부교주 상관단월은 후계자를 정해달라고 닦달했고, 교주 주진관은 부교주의 잔소리에 몰래 도망가버리기 일쑤였다.

상관단월은 두고두고 후회했다.

40년 전 그 선택을 말이다.

주진관이 교주 자리에 앉은 지 딱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 10년도 말이 교주이지 힘든 일, 귀찮은 일, 신경 쓰이는 일은 다 여기저기 떠맡기고 마지못해 버틴 세월이었다.

느닷없이 상관단월에게 교주가 되라지 않는가?

당시 상관단월은 마교 서열 7위로 교주의 책사로 있었다.

당연히 고사했다.

상관단월은 자기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은 교주가 될 재목이 못 되었다.

성격이 꼼꼼하고 용의주도해서 일은 잘하지만, 어디까지나 책사로 보좌하는 일에 한해서였다.

강한 자가 우선인 마교에서 교주가 되기에 무공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자신은 사람들을 이끌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다.

그리도 하지 않겠다고 버티니, 부교주가 되라지 않는가?

부교주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받아들였는데, 그게 크나큰 실수였다.

이건 이름만 부교주이지 하는 일은 그냥 교주였다.

혈영천마 주진관이 교내에 붙어 있으면서 대충이나마 교주 노릇을 했던 10년 동안 한 일은 딱 한 가지였다.

마교를 믿고 맡길 사람을 찾는 것.

그 사람이 바로 상관단월이었다.

주진관은 상관단월이 부교주가 된 그 날부터, 모든 일을 그에게 미뤄두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밖으로 나돌았다.

그 덕분에 상관단월에게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혼자서 끊임없이 궁시렁대는 것이었다.

‘교내에 무림으로 보낼 자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그걸 왜 교주가 나간단 말인가! 그놈의 무림 정세를 살피러 돌아다닌 지가 벌써 40년이 되었다. 40년이!!’

무림의 정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주진관이 늘 상관단월에게 해대는 변명 중 하나였다.

“어휴우…….”

상관단월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생각할수록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교주는 또 어딜 나가서 교에는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나이에 뒤에서 교주 욕이나 해대는 늙은이가 되어야 하겠는가?’

그래도 욕이 나왔다.

‘이놈의 교주 영감탱이 이번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새로운 교주를 지명해주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 해줄 테다!!’

상관단월은 주진관을 욕해대며,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마교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금 최고라고 불리는 혈영천마 주진관의 무공과 정파 서생도 혀를 내두를 상관단월의 올곧음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런 면에서 주진관이 사람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관단월이 그리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주진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진관은 모든 일을 상관단월에게 맡겼다.

심지어 후계를 찾는 일조차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 도리니 사물의 원칙이니 이딴 것을 따져대는 상관단월은 결코 그것만은 교주가 직접 해야 한다고 우겨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후계자를 찾아내라고 미루고 있었다.

주진관이 점잖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미 내 후계자를 찾았다.”

그 말에 투덜대던 상관단월의 눈이 반짝였다.

기대에 찬 눈으로 주진관을 바라보았다.

“바로 자네 아닌가! 그러게 그냥 곱게 교주를 했으면 이런 일이 없는 건데….”

주진관은 끝까지 우겨서 상관단월을 교주 자리에 앉히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어휴우…….”

상관단월은 주진관이 날아가지 않을까 싶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얼굴을 팍 구기고서 말이다.

아무리 부교주라지만, 어찌 교주에게 저리 불손할 수 있단 말인가?

교주의 눈짓 한 번이면 당장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한데… 상관단월은 교주 주진관에게 아주 불손했다.

묵직하고 진중한 주진관도 상관단월에게만은 스스럼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그에게 교주는 자신이 아닌 상관단월이었으니.

상관단월은 주름진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주진관에게 소리치곤 했다.

“이번엔 못 갑니다! 아무 데도 못 가요! 차기 교주를 뽑아주시든지 교주 일을 하시든지! 절대 못 갑니다.”

그러면 주진관은 미안한 듯 실실 웃으며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지기 일쑤였다.

“정 그러면 자네 아들이라도 교주를 시킬까?”

“내가 그놈은 안 된다고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놈은 교를 말아먹을 놈이라고요!”

상관단월은 주진관의 모든 행동과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

주진관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상관단월은 멈추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그 능력도 없는 놈한테 자꾸 이것저것 맡기지 마시고, 서열도 올려주지 마시라고요! 그런다고 제가 좋아할 것 같습니까?”

“에이… 자식이 잘되는 일인데 어느 부모가 싫겠어… 진짜 싫어?”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교의 모든 것이 위태롭다고요!”

“겨우 자네 아들 하나인데 뭘 그걸로 위태롭기까지야…….”

“겨우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는 겁니다. 일에는 원칙이라는 게 있다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제 아들이건, 교주님 아들이건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알겠어, 알겠어. 거 있지도 않은 내 아들까지 만들지 말게. 하하하… 혹시 모르지 어디서 내 아들이 자라고 있을지도……. 내 아들이라도 찾아내서 교주를 시킬까?”

상관단월은 흥분해서 말하는데, 주진관은 듣는 둥 마는 둥 농담을 해댔다.

“심각한 이야기하는데 농담하시지 마시라고요!!”

“알았어, 알았어. 내 알겠어.”

주진관은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모충일과 몰래 교를 나가버렸다.

상관단월은 그날 하루 종일 교주 영감탱이를 욕하느라 궁시렁댔다.

한데… 상관단월의 아들인 상관량은 달랐다.

능력에 비해 야심이 컸다.

아비 덕분에 빠른 속도로 서열상승을 하면서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열망했다.

그런 상관량이 갑자기 주진관의 무림행에 따라나선 것이다.

주진관은 상관량이 함께 하든 아니든 크게 상관이 없어 보였지만, 모충일은 아니었다.

함께 여행을 나서는 상관량의 의도가 불순하게만 느껴졌다.

그저 교주에게 잘 보이려는 것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흔들었다.

“영월단주가 교를 너무 오래 비웠습니다. 영월단주는 교내로 보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충일이 상관량을 교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다. 아우를 만나는데 량이가 함께 있으면 불편할 테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모충일이었다.

이번에 교를 빠져나오다 주진관과 모충일은 상관단월에게 딱 들켜버렸다.

아주, 벼르고 나갈 수 있는 곳곳마다 지켜대는데 들키지 않고 빠져나올 도리가 없었다.

주진관은 제자를 구해오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나섰다.

상관량이 따라가겠다는 것을 상관단월이 막지 않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제자를 찾는지 지켜보라고.

교내에 그리 많은 인재가 있는데도 굳이 밖에서 제자를 찾겠다는 주진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제자를 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주진관의 마음이었으니.

하지만, 주진관은 제자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돌아다니고 싶어서 교내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을 뿐.

혹시라도 무림행 중에 그럴듯한 아이를 만난다면 다행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반로환동하여 외관은 겨우 20, 30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주진관의 실제 나이는 100에 가까웠다.

자신은 괜찮지만, 교에 들어갈 때마다 상관단월이 늙는 것을 느꼈다.

듬성듬성 생기던 하얀 머리카락은 이제는 검은 머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완전한 백발이 되어 있었고, 움직임도 둔해진 게 보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고함을 치는 것도 예전만 못했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한다.

교를 맡길만한 사람을 정해야 했다.

40년을 밖으로만 나돌다 보니, 교내에 믿을만한 인재가 있는지 어쩐 지도 잘 몰랐다.

그래도 더 미루기 힘들 것 같았다.

상관단월은 그 일만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한번 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이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이 일만은 자신의 몫이었다.

이것만 해결하고 정말 맘 편히 무림을 돌아다니자 싶었다.

이번에 아우를 만나면 의논을 해볼 심산이었다.

아우도 한 문파를 다스리고 있고, 무림 문파들의 정세는 자신보다 더 빤할 테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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