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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77화 (77/230)

77화

【성을 나가자!】

한참을 고민하던 연천은 스승님이 오래전에 해동에서 우연히 얻었다는 심법을 생각해냈다.

내기만을 이용하는 심법이 아닌, 내기와 외기를 함께 운용하는 것으로 스승님이 인정한 몇 되지 않는 심법 중 하나였다.

표지도 없었다던 그것은 안정적이고, 이후에 다른 심법을 받아들여도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해서 스승님이 조화신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물론 초기에는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상당히 느리지만, 매우 안정적이어서 행공을 해도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없었다.

걸아처럼 성질이 급하고 침착하지 못한 아이가 불안정한 곳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운공해도 문제가 없고, 나중에 다른 심법을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그만한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연천은 내공심법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부터 알려줄 것은 조화신공이라는 것이다.”

“……!”

걸윤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디 저잣거리에 굴러다니는 싸구려 내공심법을 가지고!!’

조화신공? 하!

하도 흔해 빠져서 똑같은 이름의 심법이 몇 가지나 되었지만, 그 많은 조화신공이라는 것들 모두 시시하고 별 볼 일 없었다.

“내가 조화신공의 구결을 알려줄 테니 외우거라.”

연천이 진지하게 말했다.

“네!!”

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천의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연천이 묵직한 목소리로 조화신공의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바람에 홀린… 구름을 쫓는 듯… 나를… 휘몰아치는 기운이 하늘 위로 뻗쳐… 봉황의 날갯짓을 따라… 내 마음이 가는 곳이 곧 길이니라…….”

‘저게 뭔 소리야? 저런 게 구결이야? 저걸 외워야 된다고?’

걸화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눈을 끔뻑이면서도, 연천의 말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꼴에 저것도 심법이라고 구결은 그럴듯하네…….’

걸윤이 연천을 흘겨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걸윤은 백연천같은 놈이 가르쳐 주는 심법 따위는 배워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저 두 사람의 어린애 장난 같은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연천은 몇 번이고 구결을 들려주었고, 걸화는 전에 없던 집중력을 발휘해서 구결을 외웠다.

“잘했다. 자 이제 구결을 다 외웠으면, 내공을 운공해보거라.”

연천은 제법 빠르게 구결을 익히는 걸화를 대견스럽게 보며 말했다.

“에?”

걸화는 황당한 얼굴로 연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공을 운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더니, 요상한 시조를 외우라고 하고는 혼자서 내공을 운공해 보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방금 외운 구결을 따라 내공을 운공하면 되는 것이다.”

연천은 침착하게 말했지만, 걸화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얼굴로 연천을 바라보았다.

걸윤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배걸화에게 저렇게 말을 한들 알 리가 있나? 저것은 갓난아이에게 검강을 쏘라는 꼴이지, 구결만 가르쳐 준다고 쟤가 그걸 알겠어? 저놈은 배걸화를 어떻게 보고! 와… 웃고 싶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

연천은 연천대로 의아한 얼굴로 걸화를 쳐다보았다.

자신은 스승님께 배운 그대로 가르쳐 주고 있는데…….

구결을 가르쳐 주면 구결을 따라 내공을 운공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왜 저런 얼굴로 사람을 쳐다보는 거지?

걸화와 연천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았고, 걸윤은 터질 듯 시뻘게진 얼굴로 웃음을 참았다.

“왜… 그러느냐?”

연천이 점점 불만스럽게 변해가는 걸화를 보며 물었다.

“아니이! 시조만 외우라고 해놓고는 그걸로 어떻게 내공을 운공해요?”

걸화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연천은 이제야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듯, 걸화에게 구결에 따른 혈자리에 대해서 설명했다.

걸화는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음…….”

잠시 생각하던 연천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나의 내공을 넣어 네 몸에 운공해 보겠다. 그 느낌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부터는 네가 해 보거라.”

“네!!”

걸화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을 운공할 때는 몸의 기운 하나하나를 느끼고 몸 곳곳으로 기를 보내야 하니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운공 중 집중이 깨어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내가 없을 때 혼자서는 하지 말거라.”

조화신공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안전했지만, 연천은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서 말했다.

“네!”

걸화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걸윤은 말하는 연천과 대답하는 걸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 가지고.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걸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천을 보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내가 이 자리에서 너를 아작을 내어주마.’

자기 기운을 걸화에게 넣어서 내공을 운공하고 단전을 만든다고?

저 정신 나간 놈이 하다 하다 별 헛소리를 다 지껄이는구나!

아무개가 고수 누구의 기운을 받아 공력이 높아졌다는 둥, 벌모세수를 했다는 둥 하는 이야기야 무림에 흔했다.

하지만, 실제로 생판 남에게 자기 기운으로 단전을 만들어 주는 무인은 찾기 힘들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감언이설로 걸화를 꾀어내고 있었다.

설사 타인의 내공을 운공해 줄 마음이 있다고 한들, 남의 내공을 운공해서 단전을 만드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고, 단전이 상할 수도 있었다.

삼재검법이나 휘두르는 애송이가 함부로 할 것이 못 된다.

걸윤은 지금이라도 말리고 싶었지만, 걸화가 성질을 내며 빡빡 우겨댈 게 뻔했다.

‘그냥 힘으로 걸화를 끌고 나갈까?’

그러면 저 두 사람에게 완전히 버림 받을 것이다.

그럼 걸화를 지키기가 더 힘들어진다.

불안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잘못되면… 저놈은 오늘이 제삿날이다.’

뭔 속임수를 쓰나 싶어, 연천을 보는 걸윤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연천이 걸화의 등 뒤에 앉았다.

걸윤이 연천을 흘겨보았다.

‘어디서 본건 있어 가지고…….’

손바닥을 걸화의 등에 대었다.

걸윤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초조했다.

‘혹여 잘못되면… 잘못되면… 저런 자가 잘할 리가 없을 텐데…….’

연천이 자신의 기운을 걸화에게 밀어 넣었다.

걸화가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안정을 찾았다.

깨끗하고 정순한 기운이 걸화의 몸속으로 들어가 걸화의 대맥을 따라 흘렀다.

걸화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걸화의 몸속을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걸화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걸윤이 걸화의 표정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 점의 더러움도 없는 연천의 맑고 투명한 내공이 걸화의 몸 구석구석으로 흘러 들어갔다.

깨끗한 연천의 내력에 걸화의 탁한 기운이 씻겨 나갔다.

대맥을 흐르던 기운은 좁고 가는 세맥으로 흘렀다.

몸 구석구석 빠짐없이 흐르며 걸화의 막힌 혈맥을 뚫고, 씻으며 내공을 돌렸다.

연천의 내공을 따라 대자연의 기운이 걸화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연천의 힘과 대자연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걸화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돌았다.

걸화의 얼굴이 밝게 피었다.

걸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걸화의 몸속을 빠짐없이 돌던 대자연의 기운이 걸화의 배꼽 아래에 자리 잡았다.

연천의 기운은 그에게로 돌아갔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 걸화가 눈을 떴다.

깨끗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걸화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무겁고 때가 낀 몸을 버리고 세상에 없을 깨끗한 기운을 담은 것이, 온몸이 가뿐하고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형님! 너무 좋아요. 우와! 몸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아요.”

“조화신공이라는 것은 여기 단전에 있는 나의 기운을 온몸으로 돌리면서 대자연의 기운을 함께 끌어들여 나의 기운을 조금씩 키우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양의 내공을 가지기는 힘드니 매일 꾸준히 운공을 해서 내공을 키워 나가야 한다.”

연천이 걸화를 보고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네!”

걸화가 낭창하게 대답했다.

잔뜩 긴장한 몸을 이완시킨 걸윤이 두 사람을 흘겨보았다.

어찌나 마음을 졸였는지 사지가 뻣뻣했다.

‘하! 날아가긴 어딜 날아가! 어휴… 뭘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저러니 저런 사기꾼 같은 녀석이 들러붙어 있는 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걸화의 맑아진 낯빛과 눈빛을 부인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걸화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연천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걸윤도 연천을 따라 일어났다.

둘은 동시에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어리둥절한 걸화가 둘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외쳤다.

“왜 뛰어?”

연천과 걸윤은 걸화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씨…….”

걸화도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들을 따라 부지런히 뛰었다.

세 사람은 큰 나무들이 우거진 정원을 지나 성의 외곽으로 향했다.

걸화는 곧 연천과 걸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천마검을 보관해 두는, 성의 후미진 전각 주위에 많은 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대부분이 연천 일행과 같이 영친왕의 호위 무사로 선발된 이들이었다.

그들의 숙소가 검이 있는 전각과 가까웠기에, 그곳에 일이 생긴 것을 빨리 알아차렸을 것이다.

셋은 사람들 틈에 서서, 구경꾼들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황량하도록 사람이 없던 전각 주위를 검은 무복을 입은 영친왕의 무사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누군가 전각으로 다가가 안을 향해 목을 빼고 들여다보았다.

“가까이 가지 마시오. 천마검 절도범이 체포되었소.”

검은 무복을 입은 무사가 전각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을 저지했다.

낮은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연천 일행을 포함한, 새로운 호위 무사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곱지 못했다.

잠시 뒤, 검은 무복의 무인 몇이 전각 밖으로 나왔다.

무인 중 한 사람의 손에 온몸이 푸릇푸릇한 사내의 목덜미가 잡혀 있었다.

사내의 얼굴과 팔, 다리 곳곳에 피가 흐르고 등과 어깨에 가시가 박혀있었다.

보아하니 독침인 듯싶었다.

통증이 심해서였는지, 침이 박힌 후 점혈을 당했는지 의식이 없는 사내를 검은 무복의 무인들이 질질 끌고 갔다.

가시 박힌 다리가 바닥에 끌리며 황토색 흙바닥에 붉은 핏자국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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