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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72화 (72/230)

72화

마철용이 큰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대주님! 많이 늦으셨습니다. 아니, 얼굴이 왜 그렇습니까?”

부대주 소강이 약속한 시간보다, 늦은 대주에게 한 소리 하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음, 내 얼굴이 왜?”

마철용이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거… 코가 깨졌나 봅니다. 그 코피 자국… 이마는 안 아픕니까? 아이구… 심하게 멍들었네…….”

소강이 조심스럽게 마철용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멍 자국 위에 자잘하게 붙어있던 흙가루가 날렸다.

“멍?”

마철용이 자신의 이마를 눌렀다.

“아야…….”

“거, 코밑에 코피 흘린 자국 좀 닦으십시오.”

소강이 수건을 꺼내 마철용의 코밑을 문질렀다.

붉은 피딱지가 묻어 나왔다.

“허어…….”

마철용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뭔가 강력한 기운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까지 기억이 났다.

쓰러져도 하필 앞으로 자빠져서 코와 이마가 깨진 모양이었다.

소강이 옆에 서 있는 혈풍대원들에게 눈짓을 했다.

네 사람은 작게 고개를 숙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혈풍 대원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소강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강이 마철용에게 편하게 물었다.

“…….”

마철용은 소강의 반말이 익숙한지, 그것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주 마철용과 부대주 소강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마교에서 자랐다.

처음부터 무공에 재능을 보이던 마철용이 혈풍대의 대주가 된 후, 소강을 부대주로 임명한 것이었다.

“…….”

소강이 마철용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 전면이 어딘가에 부딪힌 상처가 역력했다.

마철용은 마교 서열 오십 위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그의 얼굴을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중원에서도 몇 명 없었다.

소강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불안하게 일렁거렸다.

“수실을… 잃어버렸어…….”

덩치 큰 마철용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디다 흘린 거야? 그러니깐 내가 검에 달지 말고 품에 잘 넣으라고 했지!”

소강이 마철용을 다그쳤다.

소강이 혈풍대의 부대주이고 탁월한 지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교 서열 오십 위 내에 드는 마철용에 비하면 무공과 서열은 한참 아래였다.

한데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헷갈리게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야. 흘린 거 아니고 누가 나 기절시키고 가지고 갔어.”

마철용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대체 누가? 너를 쓰러트릴 사람이 중원에 몇이나 된다고?”

소강이 제일 우려했던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나도 몰라…….”

무거운 마철용의 목소리가 흐렸다.

마철용은 대원들 앞에서는 바위보다 더 단단한 사내였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대원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믿음직스럽고 든든했다.

그런 마철용이 소강 앞에서는 자신 없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이고 있었다.

“그걸 왜 몰라! 순순히 내어주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 검을 겨뤘으면 최소한 어느 문파 사람인지는 알겠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소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걸 모르겠어… 무슨 무공인지 모르겠어, 아니 뭔 무공도 아니야. 그냥… 막고 피하고… 별거 없었는데… 어느 순간 뭔가 찌르르한 기운이 가슴에 꽂히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어.”

“아이… 정말…….”

소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성의 호위 무사를 뽑는 자리였다.

얼마나 대단한 자들까지 모인 것인지…….

마철용을 쓰러트릴 정도의 실력자가 성의 호위가 되겠다고 이곳에 왔을 리 없었다.

분명, 천마검을 노리는 것일 게다.

마철용은 호위 무사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파월산으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수실 두 개를 구하는 것까지 좋았다.

소강도 수실을 두 개까지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마철용 덕분에 함께 왔던 혈풍대 모두가 영친왕의 성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시험이 시작되고 반 식경도 안 되어 수실을 찾았다고 내려가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행동 같았다.

천마검을 훔치려면, 눈에 뜨이지 않게 적당히 숨죽이고 있다 기회를 엿보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이틀 후에 내려가자고 얘기를 끝내고, 수실 하나는 마철용이 하나는 소강이 들고 흩어졌다.

이틀 후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마철용이 나타난 것은 정오가 한참 지나서였다.

이제야 나타나서 수실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 아닌가.

불안함과 걱정의 감정이 일렁대며 소강을 휘감았다.

마철용보다 실력이 대단한 자가 천마검을 노린다면, 검을 회수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시 구하긴 힘들겠지?”

생각에 잠긴 소강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철용에게 묻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생각 속에서 혼자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무인들이 없을 때 제일 먼저 올라왔기에 수실 두 개를 얻을 수 있었다.

검은 무복의 무인들은 찾기도 쉬웠고, 수실도 순순히 내놓았다.

이미 수실은 검은 무복 무인들의 손을 떠났다.

이젠 참가자들끼리 수실을 뺏고 뺏기는 중이었다.

수실을 가진 자를 찾는다면 어찌해 볼 수도 있겠으나, 누가 수실을 가졌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혹여 알아낸다고 해도 뺏기지 않으려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뺏는 것 자체가 눈에 띄는 일이었다.

자신들이 마교에서 왔다는 것과 천마검을 회수하려는 것은 최대한 숨겨야 했다.

다시 수실을 찾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가서 얼굴부터 닦아”

생각하던 소강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 * *

연천과 걸화, 걸윤의 일과는 거의 비슷했다.

연천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수련했고, 자신의 수련이 끝나면 걸화를 깨워 함께 비도술을 연습했다.

걸윤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때론 한숨을 내쉬고 때론 혀를 찼다.

그렇게 시간은 금방 흘러, 마침내 영친왕의 성으로 가야 하는 날 아침이었다.

떠날 채비를 마친 연천과 걸화는 식당에 앉아, 언제나처럼 아침으로 국수 네 그릇을 주문했다.

걸윤이 슬그머니 두 사람이 앉은 탁자 한 편에 끼여 자신이 먹을 국수를 주문했다.

연천도 걸화도 탁자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 보듯, 한번 흘깃 보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며칠 만에 본 낯익은 얼굴에게, 안부 인사는 고사하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걸윤은 잠시, 사악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저주를 건 것은 아닌지, 자신의 은신술의 경지가 너무 높아져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점소이가 자신 앞에 국수를 턱하고 내려놓는 것을 보고는, 두 사람이 자신을 철저하게 무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을 물어보고 술도 따라 주길래 일행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이해했더니, 연천과 걸화는 아직도 걸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누이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이, 이들 사이에서 버텨야 했다.

걸윤은 국수 세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다 놓고 입에 쑤셔 넣는 걸화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놈은 왜 걸화랑 동행을 하는 것일까?’ 하고.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놈이고, 동행이 필요하다 해도 걸화랑 삼 일만 지내보면 학을 떼고 도망갈 터인데… 대체 왜?

갑자기 백연천이라는 사내가 의문스러웠다.

걸화가 개방 방주의 여식인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걸화가 여인인 것을 알고 흑심을 품었나? 에이…….

그렇게 접근해놓고 함께 호위 무사가 된다고?

이것도 저것도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암만 생각해도 멍청하고 모자란 놈이 자기만큼이나 덜떨어진 걸화에게 뭔가 땡기는 게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뭐… 걸윤의 표현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의 생각이 맞긴 했다.

연천은 작고 지저분한 거지아이 배걸아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동질감을 느꼈으니.

식사를 마친 연천이 걸화를 보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가지 않아도 된다만… 그러지는 않겠지?”

“역시 형님은 나를 잘 알아.”

걸화가 헤헤거리며 답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음… 최대한 나한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라, 그곳에서는 우리 마음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연천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에이, 걱정은……. 나한테 이 아이들이 있잖아요.”

걸화가 비도를 내어 보이며 웃었다.

“허!”

둘이 하는 모습이 하도 같잖아, 걸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 생겨서 연천에게 붙어 있으면 자기가 뭘 해줄 수 있으며, 고작 며칠 동안 집어던지는 연습이나 한 비도를 가지고 뭐가 저리 당당한지.

덜떨어진 애랑 덜떨어진 애의 자연스러운 대화에 뒷골이 뻣뻣해지는 걸윤이었다.

연천과 걸화는 말을 멈추고 잠시 걸윤을 쳐다봤지만, 이내 둘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 네가 비도를 던져 잘 맞추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너의 몸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걸 잊지 말거라.”

연천이 따뜻하게 말했다.

‘아이고, 아부지…….’

걸윤은 멀리 개방 총타에 있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저 세상 물정 모르는 두 사람이 자신을 개무시하고 있지만, 절대 그 둘에게서 떨어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걸윤이었다.

“네!”

걸화가 들떠서 높은 목소리로 답했다.

“가자.”

연천이 앞장섰다.

걸화가 연천 옆에서 촐랑대며 걸었다.

“나도 갑니다.”

걸윤이 앞서가는 연천과 걸화의 뒤통수에 대고 혼자 말하며 그들을 따랐다.

* * *

“또, 또 그 얼빠진 표정!”

걸화가 연천에게 쏘아붙이자 연천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잠시 그렇게 있더니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열고 물었다.

“저기 저것이 정녕 다 금이란 말이냐?”

연천이 영친왕 궁내의, 금으로 바른 내벽을 보고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영친왕의 성은 금을 가져다 퍼부었다 할 정도로 눈 돌리는 곳곳이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내벽과 문, 창문틀과 천장 할 것 없이 화려한 빛깔이 번쩍거렸다.

연천은 고개가 꺾이는 줄도 모르고 금 바탕에 황금용이 양각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또!”

연천이 움찔했다.

“으흠….”

걸윤이 침음을 흘리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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