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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70화 (70/230)

70화

【그놈과…】

걸윤이 다시 걸화의 앞을 막았다.

“야! 나도 끼워줘, 그거 일행 세 명까지 돼.”

“알아! 아는데 너는 안 끼워줘!”

걸화가 쏘듯이 내뱉고 연천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연천은 웅덩이에서 조용히 손을 씻고 있었다.

파월산 전체가 표독스러운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천의 뒤편, 우거진 숲에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는 무인들이 우글댔다.

여차하면 달려 나와 누구의 목숨을 노릴지도 몰랐다.

이 전쟁 통 같은 곳에서 연천은 초연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주위와 동떨어져 손을 씻는 모습은 고고한 한 마리 사슴 같았다.

묘하게 비현실적인 데가 있었다.

걸화가 연천 옆에 쭈그려 앉아, 손을 씻으며 말했다.

“형님, 괜찮아요? 우리 어서 내려갑시다. 오늘 같은 날은 오리고기에 죽엽청이지!”

걸화의 말에 연천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늘은 나도 술을 한잔하고 싶구나. 아침은 내려가서 먹자꾸나.”

연천이 손을 털며 일어섰다.

걸윤이 걸화와 연천 사이를 막았다.

“저 아이에게 들었소. 나도 끼워주시오, 부탁드리오.”

걸윤이 연천의 눈을 바로 보며 말했다.

걸화가 입술을 깨물며 걸윤을 노려보았다.

연천이 잠시 생각하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간단하게 대답하고 걸화에게 다가갔다.

걸화는 연천이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해 눈을 질끈 감았다.

“걸아야, 서둘러서 내려가자.”

그는 걸화를 데리고 산 입구로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숨어 있던 눈들이 그들을 보았다.

아침에 사람 죽은 것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세 사람을.

그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우연이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 사건이 세 사람을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게 했다.

수실을 찾는다고 혈안이 된 이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영친왕의 획책이었다.

그것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영친왕의 성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들.

영친왕의 검에 눈독 들이는 자들끼리 싸우고, 상처 내고 죽이는 것.

그것이 바로 영친왕이 바라는 바였다.

단순하고 눈에 보이는 하나 밖에 따라갈 줄 모르는 무림인들의 습성을 아주 잘 이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영친왕의 호위 무사가 되어 무인으로서의 명예와 부를 누리고 싶어서 시작했을 것이다.

성공하지 못해도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는 자리가 될 것이고, 또… 좋은 경험도 될 것이라 생각했겠지.

수실을 찾는 이들이 버글거리는 산속에 고립되었다.

시일은 단 열흘, 정해진 시간이 다가올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마음이 앞설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수실뿐.

애초의 목표나 목적을 잃어버리고 수실을 찾는 그것만이 이기는 길이고, 정의이고, 옳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수단과 방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종국에는 무엇 때문에 산속에 있는지도 잊은 채, 서로를 죽이고 상처를 내게 되는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히고 정신을 차린들… 이미 영친왕의 충실한 개의 역할을 한 후가 될 것이다.

영친왕의 눈엣가시들을 제법 제거했을 테니.

* * *

연천은 안심이 되지 않아 걸화 옆에 꼭 붙어서 걸었다.

지금도 곳곳에 숨은 눈들이 승냥이 떼처럼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제 잇속에 맞지 않는다 싶으니, 지켜만 보는 것들.

누군가를 지키는 호위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실을 얻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찬 아귀 떼로 전락해 버린 존재들이었다.

언제, 무슨 생각의 변화가 생겨 자신들에게 달려들지 몰랐다.

걸화도 옆에 있는 마당에, 수적으로도 열세했다.

저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조용히 이곳을 벗어나는 게 최선이었다.

걸윤은 쭈뼛대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걸화의 말대로 수실을 얻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걸윤의 목적은 처음부터 걸화를 지키는 것이었다.

걸화와 연천이 산을 내려가는데, 혼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찌하면 연천과 걸화 옆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영친왕의 호위 무사 따위는 관심 없었다.

산 입구에는 위적훈과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서 있었다.

위적훈은 산을 내려오는 세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죽어가는 사람을 볼 때처럼 감정이라곤 실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수실을 얻으셨소? 아니면 포기하는 것이오?”

의례적인 물음이었다.

연천이 위적훈에게 붉은 수실을 내놓았다.

그 수실을 보고 놀란 건 걸윤이었다.

걸화에게 말은 들었지만, 설마설마했었는데…….

‘정말 저 머저리들이 어디서 수실을 주웠구나. 대체 어디서? 저 수실 하나를 찾겠다고, 눈이 뒤집힌 자들 벅적대는 사이에서 어떻게?’

걸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위적훈은 수실을 한번 보고 연천을 쳐다보았다.

“보름 뒤 성으로 오시오. 이름이 무엇이오?”

“백연천입니다.”

“함께한 일행이 있소?”

일행이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 형식적으로 물었다.

“네, 배걸아와… 저기 저분이오.”

연천이 걸윤을 보고 말했다.

“저희는 가요!”

걸화가 걸윤을 흘겨보고, 연천의 옷깃을 끌었다.

상황이 뭣 같았다.

‘왜 하필 이곳에서 배걸윤 놈을 만나가지고… 에잇….’

걸윤이 걸화를 그리도 힘들게 찾아서 만난 것이지만, 걸화는 영친왕의 호위 무사 시험 때문에 걸윤을 우연히 만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연히든 아니든 저 오라비라는 놈이 자기 주변에 얼쩡대는 게 짜증나고 싫었다.

걸윤은 다급히 위적훈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연천과 걸화의 뒤를 따랐다.

무림인들의 행태를 본 연천의 얼굴은 씁쓸했다.

객잔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걸윤이 그들 뒤를 졸졸 따랐다.

걸화가 몸을 뒤로 획 돌려서 걸윤을 노려보았다.

“이름까지 올려줬으면 됐지 왜 자꾸 쫓아와요? 본인 갈 길 가요!”

“나는 쫓아가는 거 아니오. 내가 묵는 객잔으로 가는 것이오.”

걸윤이 능글맞게 답했다.

대놓고 핀잔을 주는데 치사해서라도 앞서가거나, 다른 길로 갈 법도 하건만, 걸윤은 연천과 걸화의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 걸었다.

“여기 오리고기랑 죽엽청주세요”

걸화가 객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문부터 했다.

연천이 피식 웃었다.

“왜 또 웃어요? 다 죽어가는 표정을 하고 있더니…….”

“여기서 절대 고기 안 먹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치… 오리고기는 괜찮아요.”

“…….”

연천은 걸화를 보고 웃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곧이어 점소이가 죽엽청이 담긴 호리병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내왔다.

“오리구이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 먼저 드시고 계십시오.”

점소이가 기분 좋게 말하고 사라졌다.

걸화가 불안한 얼굴로 연천에게 속삭였다.

“혹시 사람 잡으러 가는 거 아니겠죠?”

“허허허허…….”

연천의 입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래 오리구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이다.

살아있는 오리를 잡아서, 양념을 하고 속까지 익히려면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했다.

손님이 많은 가게에서는 식사 시간에 맞추어 미리 구이를 준비해 놓는다.

이 휑한 객잔에서는 지금부터 오리 잡으랴 양념하랴, 구워내랴 아마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심각한 얘기 하는데 왜 자꾸 웃어요!”

웃는 연천을 답답하게 쳐다보는 걸화의 얼굴은 진지했다.

“오리고기는 괜찮다더니.”

“생각해보니 안 괜찮은 것 같아요. 봐요, 봐요. 점소이도 주방장도 다 어딜 갔잖아요. 사람 잡으러 간 것 맞나봐, 난 사람고기 먹기 싫어요.”

말을 마친 걸화는 점소이가 내어온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훗…….”

연천은 사람고기 운운하며 육포를 씹어대는 걸화를 보고 또 웃었다.

어찌 저 아이와 있으면서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리도 하는 짓이 웃긴데…….

걸화는 자신을 보고 실실 웃는 연천이 익숙했다.

“우리 형님 오늘 기분도 안 좋은데 많이 드세요.”

걸화가 연천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더니, 단숨에 죽엽청을 들이켰다.

걸화가 내려놓은 호리병에 손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조용히 병을 끌고 갔다.

같은 탁자에 앉아있으면서,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걸윤이었다.

걸화와 연천은 마주 보고, 웃고 이야기하고 술을 마셨다.

같은 탁자 끄트머리에서 두 사람을 쳐다만 보고 있던 걸윤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들이켰다.

괜스레 외롭고 쓸쓸했다.

“형님, 무림은 그런 곳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걸화가 잔을 내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안다. 알고 있지만, 기분이 좋지 못한 건 어쩔 수가 없구나”

말을 하는 연천의 얼굴은 씁쓸했다.

“사람 죽은 것 오늘 처음 봤어요?”

걸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음… 스승님이 돌아가신 걸 보았어, 스승님은 연세가 많으셨고 병환이 오래되시어 돌아가셨지. 너는 많이 보았느냐?”

“난… 나도 나를 키워주신 분이 돌아가신 걸 딱 한 번 봤어요.”

“…….”

연천이 천천히 술을 넘겼다.

“나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걸화가 쓸쓸하게 말했다.

걸화의 말에, 혼자 술을 따라 마시던 걸윤이 고개를 들었다.

“소협 때문이 아니오. 돌아가신 분의 명이 다했을 뿐이지! 누구 때문이 아니오, 보지 않았소? 두 명 다 같은 살수가 같은 상처를 냈소. 파란 무복을 입은 이는 살지 않았소?”

걸윤의 말에 연천과 걸화는 잠시 잊고 있었던 걸윤을 한번 쓱 쳐다볼 뿐이었다.

걸화가 걸윤에게 눈으로 말했다.

입 닥치라고.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연천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걸윤이 연천에게 물었다.

“…….”

연천은 답 없이, 자신의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왜 날 일행으로 받아 준 것이오?”

걸윤이 진지하게 물었다.

연천이 처음으로 걸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대협을 일행으로 받아 준 적 없소.”

“카~아~”

걸화가 잔을 비웠다.

술이 시원한 것인지, 연천의 말이 통쾌한 것인지.

걸윤 때문에 답답하던 속에 뻥 뚫리는 뭔가가 지나간 것 같았다.

술맛이 왜 이리 고소한지…….

“음흠… 내 질문이 잘못되었구려, 왜 나를 영친왕의 호위 무사 시험에 통과할 수 있게 일행이라 말해준 것이오?”

걸윤은 객잔으로 오는 내내 이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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