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걸윤은 그놈, 백연천이 내민 생선을 쳐다보았다.
굵직한 생선은 연한 갈색빛을 띠며 번들번들 기름이 흘렀다.
꾸르르르―
걸윤은 정말로 배가 고팠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이후로 해가 저문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저 두 인간을 찾으러 다닌다고 숲 곳곳을 뒤졌다.
내공도 엄청나게 써댔다.
배고프고 힘들고 짜증까지 났다.
걸윤은 연천에게 받은 생선의 두툼한 살을 우악스럽게 뜯었다.
연천은 걸윤이 생선을 뜯는 모습이 걸아와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저리 음식을 먹는가? 걸아 말대로 내가 눈썰미가 없나?’
그럴 수도 있었다.
자신은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았고, 세상을 배워 가고 있는 중이었으니.
연천이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걸윤과 걸화의 외모를 뜯어보면, 꽤나 흡사했다.
아버지 천상을 닮은 걸부와 다르게 둘은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거기다 고집도 행동도 생각하는 것도 너무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얼굴만 마주하면 싸워댔다.
걸윤은 생선을 우물거리며 연천을 쳐다보았다.
꼴 보기 싫게 실실 웃는 놈이지만, 생선 굽는 재주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만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잘도 구웠다.
걸윤은 연천이 생선을 구워 내밀기가 바쁘게 호호 불어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생선에 붙은 검댕이 얼굴에 묻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커다란 불가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우스꽝스럽게 검댕을 바르고, 뜨끈하게 열 오른 얼굴로 생선을 뜯어댔다.
걸윤이 연천과 걸화를 향해 엄청나게 욕을 해댔지만, 몸은 뜨끈하고 배는 든든하고,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남들 눈에는 걸윤이나 연천이나 걸화나 다 똑같아 보였다.
시험을 치러 온 건지 나들이를 온 건지,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 못하는 머저리 같은 놈으로 말이다.
“끄어어억.”
길고 만족스러운 트림으로 걸윤이 식사의 마무리를 알렸다.
“에잇! 더럽게.”
걸화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걸아야.”
연천이 나지막하게 걸화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 말라는 말이다.
“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걸윤이 사과했다.
입으로는 그리 말하면서, 눈은 걸화를 보고 뱅글뱅글 웃었다.
‘와~ 저거! 저거!’
걸화는 주위를 얼쩡대는 걸윤에게 속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를 퍼붓고 싶은 것을, 연천 앞이라 참고 있으려니 울화가 터질 것 같았다.
걸윤은 배부르고, 따뜻하고… 성질이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걸화를 보고 있자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많이 시장하셨나 봅니다.”
연천이 걸윤에게 말했다.
“먹었으면 얼른 가보세요.”
걸화가 걸윤에게 빨리 꺼지라고 눈치를 줬다.
걸윤은 일어서지 않고 뭉그적대며 입을 열었다.
“그리도 많던 무인들이 이 넓은 산속 어디로 흩어졌는지 보이지도 않는군요. 홀로 밤을 지내기가 적적하고 겁이 나서 그런데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 아니 되겠습니까? 파월산 산짐승이 그리 사납다 하지 않습니까?”
여유가 생긴 걸윤이 점잔을 빼며 물었다.
걸화가 시뻘게진 얼굴로 걸윤을 노려보았다.
걸윤은 즐거웠다.
“그리하시지요. 불을 넓게 피워 자리도 넉넉합니다.”
연천이 편안하게 답했다.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가 자기 것도 아니고, 걸윤이 바로 옆에서 잔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자리가 좁은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인심을 못 쓸 것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걸윤이 냉큼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흥!!”
코 평수를 넓힌 걸화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연천이 남은 생선을 보는 사이 걸윤이 걸화에게 혀를 빼꼼히 내밀고는 불가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내 곤하여 먼저 좀 쉬겠소.”
파월산 생선의 뒷맛이 참으로 고소했다.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것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걸화가 엄청 욕을 해대고 있는 것을.
걸윤은 팔과 다리를 길게 쭉 늘여 기지개를 켰다.
진즉에 이럴 것을… 몰래 따라다닐 필요도 없고,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이리 가까이 붙어서 욕을 먹으니 참 좋구나.
해가 뜨기도 전, 연천은 같은 시각에 눈을 떴다.
크게 피워놓은 모닥불이 사위어 가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로 걸윤과 걸화가 잠들어 있었다.
하늘을 보고 누워 사지를 아무렇게나 뻗고 자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찍어낸 것처럼 같았다.
‘낯이 익은데… 걸아의 말대로 사람들은 다 이리 닮은 구석이 있나?’
혼자 생각하며, 어젯밤 주워 놓은 나뭇가지를 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사그라들던 불꽃이 다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푼 연천이 검을 들고 주위를 살폈다.
주위는 크게 뻥 뚫린 공터였다.
뒤쪽 풀숲 곳곳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그들 모두에게 보이지 않게 수련을 할 만한 장소는 없었다.
무엇보다 연천에게는 걸아가 있었다.
어디서 무엇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곳에 걸아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걸아가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언제나처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우측으로 이어서 좌측으로 검을 뻗었다.
검을 뽑은 연천에게 숨은 눈들이 예리하게 달라붙었다.
그것도 잠시, 시시한 검법을 휘두르는 연천에게 향했던 관심은 이내 흩어졌다.
연천의 기척에 잠이 깬 걸윤이 수련 중인 연천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다시 보아도 기가 막혔다.
검법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것을 연마 중이면서, 주제에 누구를 가르친다는 건지.
걸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 저놈에게 걸화를 맡길 수 없었다.
이제 방법은 딱 하나였다.
저들과 동행하는 수밖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들이라 몰래 따라다니다가는 어제처럼 놓치는 수가 있었다.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야겠어.’
걸화도 속으로야 난리를 치겠지만, 밖으로 드러내놓고 뭐라 하지는 못할 터였다.
연천은 기본 초식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연천의 검이 아주 미세하게 빛을 내었다.
걸윤이 보지 못했지만, 연천의 이 장 앞에 선 나무 이파리에 벌레가 먹은 것처럼 작은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 * *
“연천아!”
스승님의 따뜻한 목소리였다.
연천은 스승님이 저렇게 나지막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좋았다.
“네! 스승님.”
연천이 무릎을 꿇고, 그의 스승 앞에 단정하게 앉아있었다.
“네가 지금까지 배운 무공에 무엇이 있더냐?”
스승이 온화한 얼굴로 물었다.
늘그막에 얻은 어린 제자가 마음에 넘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청령검법, 포재도법, 조근건법, 본척검법, 수라검법…….”
연천이 스승에게 배운 검법을 하나씩 열거했다.
“되었다. 너의 기운이 정순하고 맑아 마공보다는 정파의 무공을 주로 가르쳤지만, 그것을 정파의 무공이니 사파의 무공이니 하여 어느 하나를 배척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스승님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네, 스승님!”
대답하는 연천이 빙그레 웃었다.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매일같이 반복하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매일 되새겨야 하는 말이라는 뜻도 되었다.
“네가 배운 무공들이 다 무엇이냐?”
“검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휘두르는 다른 방법일 뿐이 옵니다.”
연천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옳지, 그것이다. 검은 딱 두 가지다. 찌르고 베고. 도는 주로 베기 위해 만든 것이고, 창은 찌르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에 크게 다름이 없다. 거창한 이름의 검법은 찌르고 베는 모양의 차이일 뿐 근본은 다르지 않다.”
벌써 수천 번을 묻고 똑같이 대답한 것인데도 스승님은 늘 새롭다는 듯 물었고, 연천의 대답에 똑같이 대꾸했다.
“네.”
연천도 처음 듣는 말인 것처럼 다시 마음에 새겼다.
“누구는 유려하게 베고 찌르고 누구는 강하게, 또 누구는 화려하게 또는 광활하게 또는 세밀하게 찌르고 베는 것, 그것의 차이일 뿐이다. 절대 어느 하나에 치중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네.”
스승님이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연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유려하게, 때로는 광활하게 때로는 세밀하게 한 획, 한 획이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초식이니 검법이니 하는 것에 얽매여서는 절대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야.”
“네, 스승님.”
“네게 여러 검법과 도법을 가르쳐 준 것은 그 방법과 모양의 다양함을 알려주려는 것이지 그것을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님은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검법이나 도법을 가르쳐 줄 때마다 늘 반복 하던 이야기였다.
“근래 너의 검강이 많이 섬세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멀었다. 무엇이나 마찬가지다 강하기만 해서도 아니 되고 섬세하기만 하여서도 아니 된다. 때로는 태산을 부술 듯 강하게, 때로는 바늘귀를 꿸 만큼 섬세하게 네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네, 스승님”
“네 내공은 무서운 속도로 커가고 있다. 영단을 먹인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너의 과하게 정순한 내공은 다른 이들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지금의 너라면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해볼 만하겠구나.”
스승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자아냈다.
“네.”
연천은 자신의 무공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지 몰랐다.
비교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다.
스승님이 항상 만족했고 칭찬했지만, 자신을 아끼는 분이시니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검기와 검풍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검기와 검풍은 느낄 수 있고, 그 위력이 약하지. 그에 반해 검강은 강하나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그러면 어찌해야겠느냐?”
처음 하는 질문이었다.
“음… 검기와 검풍을 강하게 단련하거나, 검강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천이 고민하다 답을 했다.
“그렇지, 이전의 나는 검강을 눈에 보이지 않게 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초식과 내기를 변화시켰다. 그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었어.”
“…….”
연천은 대답 없이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검에도 집착하였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검이 아니면 나의 천마신공과 뇌전신공을 사용하지 못한다 생각하였다. 실제로 수많은 검이 내 손에서 폭발하고, 녹아 없어졌어. 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어찌 그렇습니까? 과하게 내공이 들어간 검기나 검강의 뿜어냄을 버티지 못하는 검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네 팔과 손은 어떠하냐? 그것이 너의 과한 내공과 검강을 어찌 버텨내느냐?”
“…….”
연천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검은 검이 아니다. 내 몸의 일부이니라, 내 팔이고 내 손이다. 그리 생각하면 검이 아닌 막대기인들 어떠하며 또 검이 없다 한들 어떻겠느냐, 그 어떤 형식에도 기물에도 연연하지 말거라.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모든 것의 이치이고 무공 또한 다르지 않다. 그 흐름에 나를 맡겨야 하느니라.”
“네, 스승님”
연천은 오늘 처음 들은 이야기도 마음에 새겼다.
아마도 스승님은 앞으로 저 이야기를 두고두고 반복해서 할 것이다.
그만큼 되새길 필요가 있는 것일 테니까.
“단순히 검강을 만들기 위해 초식이 필요하고 더 많은 내공을 써야 한다면 그 얼마나 효율적이지 못하느냐? 내 몸의 기를 모으고 응축시키되, 그 색과 모양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것을 내 마음처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