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수실을 찾자!】
연천이 걸화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좀 쉬었다 가지 않아도 되겠느냐?”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고 있지만, 몸을 두들겨 대는 물줄기의 힘은 굉장했다.
몸이 상당해 고될 것이다.
“에이, 괜찮아요. 괜찮아. 날 뭘로 보고, 이 정도로는 끄떡없어요. 얼른 수실을 찾아요.”
걸화가 밝게 말하며 연천을 안심시켰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내공심법을 집중해서 배워보자.”
연천은 진심으로 걸화에게 내공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히히히… 좋아요!!”
걸화가 신이 나서 웃었다.
그리고 사람의 기척을 찾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연천이 걸화 옆에 바짝 붙었다.
맑은 하늘 아래, 새파란 풀이 곱게 자란 들판을 걷는 걸윤은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디로 사라졌냐고!! 굼벵이 같은 두 머저리가 대체 어디로!!”
물가에서 철벙대며 한 마리 한 마리 물고기를 잡아 세월아 네월아 구워 먹고 낭창낭창 걸어 다니다가, 다시 물가로 가서 헤엄을 치기에 또 물고기나 잡나보다 하고 긴장을 풀었다.
정말 솔직하게는 꼴 보기 싫어서 안 봤다.
하지만, 잠시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 연천과 걸화가 사라졌다.
화를 내어도 들어줄 사람도 없고, 소용도 없었지만 정말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었다.
“내 이것들! 잡히기만 해봐라! 그냥 머리를 빡빡 깎여서 끌고 가버릴 거야아!!”
걸윤은 걱정과 짜증이 똘똘 뭉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죄 없는 허공을 향해 내질러댔다.
“릴거야아아아!!”
허공을 향해 외친 소리는 반대편 골짜기에 부딪혀 산울림으로 되돌아왔다.
“으아아아악!!”
화가 난 걸윤은 그냥 악을 써댔다.
이 되지도 않는 짓거리를 하는 두 머저리와 그들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향해 터질 듯 답답한 울분을 터트렸다.
“아아악! 악! 악!!”
자연은 착실하게도 걸윤의 소리를 온 산에 퍼트렸다.
호위 무사 시험에 참가한 자들은 산을 울리는 웬 미친놈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이 시험이 만만치 않음을 다시 확인했다.
저놈처럼 발악해대는 일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다짐하면서,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연천과 걸화가 서 있는 큰 동공은 양쪽으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다.
걸화는 신중하게 생각하다 오른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천은 말없이 걸화를 따라 걸었다.
걸화가 선택한 쪽의 동굴은 오른편으로 크게 휘어져 있었다.
폭포수를 뚫고 비취던 햇살조차 받지 못하자, 순식간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걸화가 연천의 팔을 잡았다.
스릉―
잘 벼린 검이 가볍게 움직이는 소리가 고요한 동굴에 퍼졌다.
연천이 검을 쑥 뽑은 것이었다.
“……?”
걸화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천이 야명주와 같이 은은하게 빛을 내는 검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걸화가 그리도 보고 싶어 했던 검집 밖으로 나온 연천의 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그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이게… 형님 검이에요?”
검이 들리지 않은 연천의 팔을 꼭 잡고 있던 걸화가 물었다.
연천이 말없이 씩 웃었다.
“형님이 싸울 때 왜 그 검을 못 뽑았는지 알겠네요. 이렇게 생긴 검은 어디서 났어요?”
걸화는 연천만큼이나 특이한 검이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스승님이 주셨다.”
연천이 짧게 말했다.
연천이 검에 내공을 넣어 뇌전을 뿜어낸 것이었지만, 걸화는 원래 검에 빛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싸울 때 적합하지 못한 것 같았다.
걸화는 자신의 비도를 구입했던 대장간을 떠올렸다.
그곳에 가면 쓸 만한 검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검은 가격이 얼마나 하려나? 너무 비싸면 곤란한데….’
연천에게 멀쩡한(?) 검 한 자루를 사주고 싶은 마음에 고민하는 걸화였다.
“어서 가자.”
연천의 말에 걸화가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천과 걸화는 검이 뿜어내는 빛에 의지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작은 빛에 놀라 제자리에서 허둥댔다.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가 수십 개나 붙은 벌레가 춤추듯 바닥을 기어 다니고, 끈적한 액체에 싸인 가늘고 긴 유충이 꿈틀댔다.
축축한 벽, 거미줄에 붙어 있던 눈먼 거미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박쥐들이 머리 위에서 위협적으로 날갯짓을 해댔고, 더듬이를 세운 작은 곤충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근질거렸다.
메뚜기떼 개미 떼가 지나다니는 길에서도 잘만 자던 걸화였지만, 생소하게 생긴 것들이 우글대는데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물방울이 똑! 하고 걸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걸화가 화들짝 놀라, 연천에게 달라붙었다.
동굴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좁은 외길에 연천이 앞장서고 걸화가 뒤를 따랐다.
축축하고 표면이 거친 동굴 벽이 팔에 스쳤다.
이끼가 잔뜩 자라, 물기 머금은 폭신한 벽면이 닿을 때면 찝찝했다.
앞서 걷던 연천이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 걷던 걸화도 연천을 따라 멈췄다.
“왜 멈췄어요?”
걸화의 물음에 연천이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걸화는 연천의 검이 비추는 곳을 쳐다보았다.
연천의 한발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시커먼 어둠이었다.
뚝 끊긴 길 아래의 칠흑 같은 암흑 속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걸화와 연천은 땅이 푹 꺼진 새까만 그곳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나아가거나 돌아가거나.
걸화는 그 어떤 선택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가면 되겠느냐?”
연천이 바로 앞의 텅 빈 공간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음… 아래쪽이에요. 저쪽 아래요.”
잠시 생각하던 걸화는 뒤를 돌아, 왔던 길을 가리켰다.
“아래로 가는 길은 이곳뿐이니 내려가 보자.”
연천이 새까만 어둠뿐인 곳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헉… 어떻게 가요?”
걸화가 몸을 움츠렸다.
갈 방법도 없지만, 방법이 있다고 해도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 암흑 속에 괴물이 있을지 한 무더기의 벌레가 욱시글거릴지, 부글거리는 용암이 있을지 끝도 없는 어둠만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기에 가야 했지만, 알 수 없기에 무서웠다.
“천천히 가봐야지, 너는…….”
연천이 겁에 질린 걸화에게 하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여기 있으라고 말하기만 해봐요!!”
걸화가 연천에게 신경질을 냈다.
무서워서 내려가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자신을 두고 가려는 연천에게 짜증이 났다.
짜증이 두려움을 조금 밀어내 주었다.
내려가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두려웠지만, 연천 없이 혼자 이곳에 있는 것은 더 무서웠다.
“가자!”
연천이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뭘 어떻게 가요?”
지금 이게 ‘가자’라는 말 한마디로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길도 없는데 어찌 저리 편하게 말하는 것인지.
“나를 꽉 잡아라, 뛰어내리마.”
연천은 여전히 쉽게 설명했다.
“미, 미쳤어요?”
걸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연천이 걸화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숙여 걸화와 눈높이를 같게 했다.
그리고 걸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연천의 얼굴은 편안했고, 눈은 여전히 따뜻했다.
불안함도 흔들림도 없었다.
걸화는 연천이 저렇게 자신을 바라보면 저항할 힘을 잃었다.
아는 것도 없고, 대책도 없고, 눈치도 별로 없는 저 사람에게 믿음이 생겼다.
“…알았어요.”
그렇다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믿는 것하고 두려운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였다.
“두 손을 사용해야 할듯하니 검은 검집에 넣을 것이다. 어두울 것이야. 무서우면 눈을 감고 있어도 된다.”
연천이 따뜻한 목소리로 걸화에게 말했다.
“형님… 밑을 봐요.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아요.”
걸화의 말에, 연천이 피식 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웃어? 웃겨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난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걸화의 눈은 정말 그렁그렁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다시는 세상 빛을 못 볼 것 같아서.
그렇게도 지긋지긋했던 개방이 그립기까지 했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던데. 설마…….
무서웠다, 이건 연천을 믿고 안 믿고 와 상관없는 사람의 본능이었다.
“…….”
연천이 조용히 걸화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흐음…….”
깊고 긴 숨을 내쉬었다.
걸화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가 보자.”
걸화에게 미소를 보여준 연천이 검을 검집에 넣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그 자체였다.
걸화가 얼른 연천을 잡고서 그의 등에 매달렸다.
양팔로 연천의 목을 감고 두 다리로 연천의 허리를 꼭 감았다.
연천은 눈과 양쪽 팔, 다리에 내공을 실었다.
짧게 훌쩍 뛰어내려 튀어나온 바위를 잡고 매달렸다.
두리번거리다 아래의 다른 바위를 향해 뛰어내렸다.
쉬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제법 긴 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연천이 평평한 바닥에 발을 내디뎠다.
걸화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꼭 잡고 있던 팔과 다리를 풀었다.
“형님은 어찌 그리 눈앞이 보이는 것처럼 잘 뛰어내려요? 재밌어서 또 해보고 싶…….”
걸화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연천이 걸화를 거칠게 떠밀었기 때문이었다.
걸화는 연천에게 밀려 바닥으로 넘어졌다.
걸화가 놀라 연천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쪽을 보았지만, 그저 암흑뿐이었다.
무서웠다.
코앞에 자신을 잡아먹는 짐승이 있다 해도, 피를 뚝뚝 흘리는 귀신이 있다 해도 알지 못할 테니깐…….
괜스레 온몸이 근질거렸다.
벌레들이 우글대는 것 같았다.
한 사람만 믿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밀어내 버렸다.
걸화는 연천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헉…….”
뭐가 있을지도 모를 이 깜깜한 곳에서 굶어 죽든, 무서워서 미쳐버리든 아무튼 비참한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왜?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거지들을 향해 짱돌을 날리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내가… 잘못했어요…….’
아버지가 그리 혼을 내고, 유모가 타일러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청 잘못한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용서를 받으면 나갈 길이 열리지 않을까?
똥통에 빠트린 거지들에게도 작대기로 뒤통수를 깬 거지들에게도, 짱돌로 상처를 낸 거지들에게도 다 미안했다.
미안해서인지 무서워서인지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