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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65화 (65/230)

65화

연천과 걸화는 조금 걷는가 싶더니 다시 되돌아와서 그들이 물고기를 잡았던 웅덩이 옆에 섰다.

“형님, 사람이 물속에서 열흘씩 살 수 있을까요?”

걸화가 맑은 웅덩이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그걸 어찌 사람이 할 수 있겠느냐?”

“이상하다…….”

걸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느껴지느냐?”

연천이 걸화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요….”

걸화가 웅덩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봐요… 내가 추적술은 무슨…….”

걸화가 실망이 역력한 목소리로 뒷말을 삼켰다.

“네가 느꼈으면 거기 있을 게다. 무슨 방법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게야. 정확히 어디냐?”

연천이 실망한 걸화를 달래며 물었다.

“정확히… 이 웅덩이 한가운데 아래요.”

걸화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넌 여기 있어라. 내가 가보마.”

연천이 옷을 벗으며 말했다.

“싫어요, 나도 같이 갈래요.”

걸화가 연천의 소매를 붙잡았다.

“입구에서 물고기나 잡는 것하고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너는 여기 있다가 내가 물에 빠지면 작대기라도 구해서 내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알았어요.”

걸화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자기만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연천의 말이 맞았다.

웅덩이가 깊었다.

연천이 빠지면 자신이 구해주어야 했다.

연천은 망설임 없이 웅덩이로 뛰어들었다.

걸윤은 그들에게서 제법 떨어진 굵은 나뭇가지에 드러누워 있었다.

‘얼빵이들이 가지가지 하는구나…….’

연천은 웅덩이 한가운데로 곧장 헤엄을 쳐서 아래로 내려갔다.

맑은 웅덩이이지만 한가운데는 꽤 깊이가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도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연천은 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동글동글한 돌들이 깔린 바닥 군데군데 큰 돌덩어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바닥과 큰 돌들을 두들겨 보아도 별다른 점은 찾지 못했다.

결국, 연천은 웅덩이를 빠져나왔다.

땅으로 올라와 하늘을 보고 반듯하게 누워,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었다.

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천을 보았다.

“형님… 우리 그냥 다른 곳을 찾아봐요.”

걸화는 괜한 자신의 말 때문에 연천이 고생하는 것이 미안했다.

“지금도 느껴지느냐?”

연천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음… 네…….”

걸화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그럼 그곳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을 게다.”

답을 한 연천이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그렇게 나를 믿으세요? 우리 아버지도 나를 안 믿었는데…….”

걸화는 연천의 마음이 고마웠다.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자신을 어찌 저리도 신뢰하는 것인지…….

“그냥… 믿는다.”

연천이 물기를 대충 털고 옷을 걸쳤다.

키만 삐쭉 크고 비리비리해 보였던 연천의 몸은 근육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근육이 유난스럽게 불거지지 않고 키가 많이 큰 편이었다.

키에 맞는 옷을 입고 있으니, 몸에는 헐렁헐렁해서 그저 호리호리하게만 보였던 것이었다.

연천은 작대기로 바닥을 두드렸다.

한 발짝 걸음을 옮기고 두들기고, 다시 옮겨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뭐 해요?”

걸화가 작대기를 들고 두들겨 대는 연천에게 물었다.

“네가 저 아래 있다고 했으니 저리로 가는 다른 길이 있을 게다. 그걸 찾으려고.”

“어… 맞아요. 바닥에도 공간이 있는 거 같고… 그리고… 폭포 뒤에도 비어 있는 거 같은데요?”

“폭포 뒤?”

“네…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일단 한번 가보자.”

연천과 걸화는 폭포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물살이 너무 강한데… 아니면 어떡해요?”

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면 돌아와서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

연천이 걸화에게 웃어 보였다.

걸화도 연천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있었던 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정리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리둥절한 걸화와 연천의 눈에는 영친왕의 호위 무사 시험에 참가한 무인들이 그저 한 떼의 버글거리는 인간 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예리한 무인들은 이미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모든 싸움에서 적을 먼저 아는 것이 싸움의 승기를 잡는 기본이었기에 무림을 좀 굴러봤거나, 싸움 좀 해봤다 싶은 무인들은 본능적으로 상대를 파악했다.

그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신경을 써야 할 자들과 무시해도 될 자들은 구분해야 했다.

호위 무사 시험에 통과할 만큼 출중한 자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자, 경험 삼아 참가한 자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어중이떠중이 등등… 나름의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능성 있는 자들 뒤에는 숨은 시선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차피 정해진 규칙은 없었다.

그저 수실을 가지고만 가면 되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들을 찾아 수실을 빼앗건, 수실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서 빼앗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영친왕의 무인들을 죽이지 말라고는 했지만, 다른 무인들은 죽이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살벌한 눈들이 서로를 향해 있었다.

다행히 연천과 걸화가 호위 무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의식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참가자였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생선을 구워 먹든, 물장구를 치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딱 한사람, 걸윤만 빼고.

연천과 걸화, 두 사람은 폭포를 향해 걸었다.

여전히 산보를 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걸음이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어도 폭포 주변은 서늘했다.

폭포 가까이에는 바위에 부딪힌 폭포수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켰다.

물보라는 뿌연 연기처럼 눈앞의 시야를 가렸다.

자잘한 물방울이 멀리까지 튀었고, 시끄러운 물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폭풍이 치는 것처럼 거친 물줄기와 바람이 뒤섞여 닿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강하게 두들겨댔다.

연천이 걸화의 손을 잡았다.

걸화도 연천의 손을 꼭 맞잡았다.

조심스럽게 폭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더 다가갔을 뿐인데, 두 사람은 이내 홀딱 젖었다.

귀가 아프도록 시끄러운 물소리 때문에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더 가까이 나아갔다.

파월산의 폭포는 넓기도 넓었지만, 그 높이 또한 상당했다.

하늘만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크고 빽빽한 바위를 향해 곧장 쏟아져 내렸다.

바위를 깨부술 듯 강하고 맹렬한 기세였다.

연천이 걸화를 바라보았다.

겨우 폭포 근처인데도 온몸이 홀딱 젖은 걸화를 향해 끊임없이 물줄기가 쏟아졌다.

걸화가 겨우 실눈을 뜨고 연천을 보았다.

연천이 눈으로 말했다.

계곡으로 더 들어갈 테니 조심하라고.

걸화는 연천이 정말 말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폭포에 가까이 갈수록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물줄기는 더욱 강력한 힘으로 아프게 내려치며, 다가오는 인간을 밀어냈다.

연천은 멈추지 않았다.

무섭게 때리는 시린 물줄기와 바람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느린 걸음으로 계속 나아갔다.

다리와 몸에 내공을 실어,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위로 올라갔다.

걸화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바위 위로 잡아당겼다.

아래로 내리꽂히는 물줄기를 그대로 맞은 걸화가 휘청거렸다.

연천은 내공을 온몸으로 보내 물의 거센 기운을 바로 맞지 않았지만, 걸화가 걱정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시간을 끌수록 걸화가 힘들었다.

연천은 계곡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다른 바위로 몸을 옮겨 걸화를 당겼다.

강한 폭포수의 힘에 걸화의 몸이 세게 흔들렸다.

연천은 걸화를 이끌며,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계곡 밖에서는 연천과 걸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굵고 거센 물줄기를 맞고 있는 걸화의 몸이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천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물살이 더욱 거칠고 사납게 두 사람을 두드려댔기에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걸화는 물줄기가 내리치는 대로 너풀거렸다.

연천은 걸화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다리에 실은 내공을 높여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순간 세상의 모든 감각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 버린 듯 무서운 고요가 찾아왔다.

연천과 걸화가 폭포 안의 커다란 공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주위 환경에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넓은 동공이 두 사람 앞에 펼쳐져 있었다.

등 뒤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내부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고요했다.

물기가 스민 바위벽에 새파란 이끼가 신선하게 자라나 있었고, 어둑한 동굴은 축축하고 서늘했다.

“괜찮으냐?”

연천이 한참 만에 정적을 깨고 물었다.

멍하게 서 있던 걸화는 반쯤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죽을 것 같아요. 아고고… 삭신이야. 여기서 수실 못 찾으면 이 고생시킨 나를 미워할 거예요. 아니, 아니 나를 믿는다고 한 형님을 미워할 거예요.”

“…….”

연천이 그런 걸화를 보고 웃었다.

“왜 웃어요? 만날 실없게 웃어, 아구… 머리 아파. 나 머리 깨지는 줄 알았어요. 물이 사람 머리에 구멍도 내나? 그 정도로 세게 치면, 머리가 깨지기도 할 것 같았어요. 아구구, 머리야. 아파…….”

걸화가 자신의 머리통을 문지르며 말했다.

“내가 너를 본 중에 지금이 가장 깨끗하구나.”

그렇게 말하고 또 웃었다.

“칫! 음… 음…….”

걸화는 그때까지 맞잡고 있던 연천의 손을 놓고 물줄기로 인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여몄다.

“불을 피울 테니 몸을 좀 말리자꾸나.”

연천이 주위를 살폈다.

심하게 커다란 바위 동굴에는 바위와 작고 맑은 웅덩이와 지천에 싱싱한 이끼가 자라나 있을 뿐 불을 지필 만한 나뭇가지도 낙엽도 없었다.

“그냥 대충 털고 가요.”

걸화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적당히 짜고, 소매와 바짓단의 물기를 툭툭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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