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고생해서 찾은 누이가 무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기함할 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옆에 붙어 있는 놈은 쥐똥만큼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키만 삐죽이 커서는 무인이라고 쳐주기에는 느껴지는 내공도 기운도 형편없었다.
무림에는 저런 작자들이 수두룩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대는 것들.
영친왕의 호위 무사 자리가 어떤 곳인 줄 알고 무공도 없는 걸화와 저 애송이가 나선단 말인가.
이건 호위 무사가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쟁쟁한 무인들 사이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어도 누구 탓도 할 수 없었다.
걸윤이 생각하는 동안에도 바위 위에 선 자는 계속 말을 했다.
“호위대장 위적훈이라고 합니다. 영친왕의 호위 무사를 선발하는 곳에 지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어서 포권지례를 하며 말했다.
“시험은 금일부터입니다. 시험 방법은 간단합니다.”
위적훈의 말에 그의 옆에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이 섰다.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의 검집에 있는 이 붉은 수실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면 됩니다. 접수할 때 이미 고지했듯이 하나의 수실을 가진 자는 동료로 두 명의 무사를 추천하여 함께 호위 무사가 될 수 있습니다.”
위적훈이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의 검집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붉은 수실을 풀어 앞으로 보이며 말했다.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은 앞으로 와서 보고 가셔도 좋습니다. 수실을 가진 집행 무사는 서른 명, 모두 이 산에 있고 기한은 열흘입니다. 열흘 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실을 가지고 오면 되지만 집행 무사를 죽이지는 마십시오.”
“…….”
버글거리는 많은 수의 무인들이 바위 위에 선 위적훈에게 귀 기울여 집중하고 있었다.
위적훈은 무인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혹여 위험에 처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 있는 조명탄을 가지고 위치를 알려주면 우리가 돕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영친왕의 호위 무사 선발을 위한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위적훈의 말이 끝나자 몇 명이 빛과 같은 속도로 숲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이 시작 신호인 듯 앞과 옆의 사람을 밀치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연천이 걸화를 꽉 잡았다.
여기서 걸화를 놓치면, 걸화는 혼자서 호위 무사 시험을 보려 할 것이다.
눈에 뵈는 것 없는 무인들 틈에 걸화 혼자 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걸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연천과 걸화는 인파에 밀려 휘청대며, 앞으로 나아갔다.
몸에 내공을 실어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걸윤은 그런 연천이 마음에 안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심하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 * *
좁은 산 입구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수실을 보여주며 조명탄을 내밀었다.
연천은 한 사람에게 두 개씩 주어지는 조명탄을 받아들었다.
걸윤은 내미는 조명탄을 거절하고 연천을 노려보았다.
조명탄을 받아들었다는 것 자체가 무공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어찌 같이 다녀도 저런 모자란 자와…….’
걸윤이 혼자 침음을 흘렸다.
어찌하면 저 머저리와 걸화를 떼어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걸화의 성격을 알기에, 억지로 떼어내기 어렵다는 것 또한 알았다.
걸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두 사람 주위를 배회하며 큰일이 생기지 않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자신이라도 나서야지 어쩌겠는가?
자신의 누이였고, 그 누이가 함께하는 동행인 것을….
“에효…….”
파월산의 입구는 좁았으나 험준한 산은 높고 광막하게 넓었다.
입구를 통과한 자들은 뿔뿔이 어디론가 흩어졌다.
“괜찮으냐?”
한적한 곳에서 걸화의 팔을 놓은 연천이 물었다.
“네. 어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줄 몰랐어요.”
걸화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도 그렇다.”
“형님, 나 배고프고 목말라요. 사람 많은데 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그런가 봐요.”
연천이 피식 웃었다.
“너는 사람 없는데 있어도 항상 배고파했다.”
“치이…….”
“일단 물을 찾아보자꾸나. 열흘이나 있을 곳이니 물이 있는 곳을 알아놓아야지.”
연천이 앞장서서 걸었다.
“같이 가요.”
“어서 오거라.”
“쯧쯧…….”
걸윤이 혀를 차며 멀찍이서 그들 뒤를 따랐다.
걸윤은 맥이 탁 풀렸다.
두 머저리를 계속 쫓아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파월산의 폭포수는 유난히 폭이 넓고, 물줄기는 거칠고 세찼다.
거센 물줄기 아래의 커다란 웅덩이는 깊지만 맑았다.
굵직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돌아다녔다.
연천과 걸화는 다리와 팔을 대충 둥둥 걷어붙이고, 웅덩이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는다고 철벙거렸다.
걸화가 저쪽 끝에서 물고기를 몰아오면, 연천이 자신의 웃옷을 펼치고 있다가 옷을 걷어 올렸다.
열에 한두 번꼴로 물고기가 잡히기는 했다.
한참을 철버덩거리며 설쳐대더니 곧, 불을 붙이고 생선을 구웠다.
걸윤은 짜증이 치밀었다.
저럴 것이면 근처에 널린 아무 산에나 가서 하면 될 것을 왜 이 위험한 곳까지 와서 희희낙락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흐음…….”
긴 침음을 흘렸다.
그냥 걸화의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서 개방 총타에 가두어 둘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짜증이 나고 답답했다.
걸화는 기름이 줄줄 흐르는 물고기를 게걸스럽게 뜯어댔다.
구운 생선 껍질에 묻은 검댕이 얼굴에 옮겨 묻었다.
연천은 그런 걸화를 보며 웃었다.
잘 익은 물고기가 꽂힌 꼬챙이를 들어 걸화에게 내밀고, 자신도 하나를 들어 생선 살을 뜯었다.
멀리서 그들을 보는 걸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지켜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당장 달려가서 두 사람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산을 내려가고 싶었다.
걸윤이 그러거나 말거나 걸화와 연천은 신나게 배를 채웠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검댕 묻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고, 뭔 이야기를 계속해댔다.
걸윤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생각 없는 두 머저리 때문에 위험한 이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꽤 많았던 물고기는 금방 동이 났다.
걸화가 부른 배를 쓱쓱 문질렀다.
“원래 호위 무사 시험을 이렇게 봐요? 그렇게나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데요? 꼭 우리끼리 꽃놀이 온 것 같아요.”
걸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걸화의 말대로 산 아래에 우글대던 무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기척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파월산의 넓은 폭포수, 긴 절벽 위에 빽빽하게 선 고목들의 풍광은 장관이었다.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낮의 햇살에 반짝거렸다.
폭포수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수면을 두들겨대는 소리만이 그들 주위를 감쌌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걸화의 말대로 꽃놀이를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글쎄다, 나도 이런 시험을 치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구나.”
연천이 반짝거리는 물살 위로 퐁퐁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걸화가 코 평수를 넓혀 숨을 내쉬며 혼자 생각했다.
‘하긴…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
연천은 말없이 깨끗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숲이 품어내는 향과 따뜻하게 반짝이는 햇살, 일정하게 떨어지는 물소리… 평화로웠다.
“형님! 이제 어쩌지요?
걸화가 멍하게 앉아있는 연천에게 물었다.
연천이 잠에서 깬 듯 눈을 껌뻑이며 걸화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음…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은 움직이는 것 보다 숨어 있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열흘 동안이나 숨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으니… 차라리 우리에겐 잘되었다.”
“뭐가 잘돼요?”
걸화는 연천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산에 올라와서 생선을 잡아 구워 먹은 게 그들이 한 일의 전부였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아무런 계획도 실마리도 없는데 잘 되었다니.
“네가 있으니깐.”
연천이 편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요? 내가 왜요?”
걸화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껌뻑거렸다.
“넌 추적술이 뛰어나니 잘 된 것이지.”
“전부터 자꾸 그러네, 내가 무슨 추적술이 뛰어나요? 내가 배운 무공이라고는 형님한테 배운 비도술이 고작인데…….”
걸화가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아! 내려치기도 있었지…….’
그 생각이 떠오르는 걸화는 입맛이 씁쓸했다.
연천이 걸화를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좋다, 그럼 너의 추적술을 사용한다기보다 추적술을 연습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해 보자꾸나.”
“그러다 호위 무사가 못되면 어찌해요.”
걸화는 연천의 여유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이리 많은 무인이 도전하는데 못될 수도 있지. 못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면 되니 부담가지지 말고 너의 추적술과 비도술을 연습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하자꾸나, 어떠냐?”
연천이 침착하게 걸화를 설득했다.
“히히, 좋아요.”
걸화가 만족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그럼 가까운 곳에서부터 추적해보아라. 움직이지 않고, 최대한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있는 자를 찾아보아라.”
“네!”
걸화가 크게 답했다.
“숲에도 몇 사람이 있기는 하다만 이렇게 기척이 느껴지는 자들은 아니야, 네가 느끼는 것 중에 가장 자신을 숨기고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숨은 사람을 찾는 거다.
연천이 조용히 말했다.
“…….”
걸화가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허!”
걸윤은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제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혼란스러웠다.
걸화와 그 옆에 있는 머저리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대체 여긴 뭐하러 왔냐고 묻고 싶었다.
연천과 걸화는 부른 배를 두드리면 천천히 걸었다.
밝은 햇살에 비친 숲의 모든 것이 환하게 반짝였고, 바람은 따뜻했다.
배부르게 먹고 살랑살랑 걷는 것은 딱 산보 나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웅덩이와 웅덩이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주위를 사부작거리며 걸었다.
“에효…….”
걸윤은 혼자서 하도 짜증을 냈더니, 기운이 쪽 빠져서 그만,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맑은 햇살이 쏟아졌다.
나뭇잎이든 하늘이든 어디라도 좋았다.
두 인간이 안 보이는 곳을 바라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