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혼자서 영친왕의 호위 무사가 되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당가에서 독이 뿌려질 것을 알면서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 다 무공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었군. 어리석게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어.’
연천은 지금껏 걸화의 말과 행동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왜 그래요!!”
결국, 걸화가 폭발했다.
“음… 내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줄만한 사람이 못되겠구나, 혹여… 네가 괜찮으면 내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어떻겠느냐?”
연천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뭐 잘못 먹었어요? 가르쳐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아침 일찍부터 깨워놓고 뭔 헛소리에요!! 아우우후!! 내 팔자에 무공은 뭔 무고오옹!!”
성질을 버럭 낸 걸화가 바닥을 부술 듯이 쾅쾅거리며 객잔으로 들어갔다.
걸화는 화가 났다.
스승이라 생각했던 작자들이 하나같이 저 모양인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다.
무공을 배우는 것이 자신에게만은 어찌 이리도 힘든 일인지, 지금까지 무공을 배워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것이 생각이 나며 억울하고 분하고 승질이 났다.
“걸…아야… 걸아야! 왜 화를 내느냐? 걸아야!”
연천이 엉거주춤 걸화를 쫓아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있는 대로 버럭버럭할 것 같아 방문을 여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걸화의 방문 앞에서 망설이던 연천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걸화는 벽에 머리를 대고 힘없이 앉아있었다.
잔뜩 쭈그리고, 맥없는 모양이 안쓰러웠다.
“왜 이러고 있는 게냐?”
연천이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연천을 흘깃 쳐다본 걸화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에휴…….”
그리곤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그래에…….”
연천이 걸화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 물었다.
“으흠… 형님… 나는 무공을 배우는 게 어찌 이리 힘들까요? 난 형님이 내게 무공을 가르쳐 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왜 안 가르쳐 주겠다는 거예요?”
걸화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솔직하게 물었다.
“그건… 네 무공의 경지가 나보다 높은데 내가 어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연천이 침착하게 말했다.
“내 무공이 뭐가 높아요? 대체 형님의 무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에요? 지난번엔 곽엄택보다도 세다고 그랬잖아요!”
말을 하다 보니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지는 걸화였다.
“그랬지, 나는 방금 너의 그… 십팔원석신공이라는 무공을 보지도 못했어. 그게 내가 너보다 한참 아래라는 뜻 아니겠느냐?”
연천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뭐요? 그걸 어떻게 못 봐요? 장님도 아니고!! 그냥 돌로 풍경을 맞춘 건데 왜 못 봐요?”
연천이 걸화를 달래기 위해 설명한 것에 걸화는 짜증이 났다.
변명을 해도 어찌 저리 엉성하게 하는 것인지.
되지도 않는 말을 하지 않는가?
봉사가 아닌 이상, 볼 수 있는 것을 못 봤다고 우기다니.
걸화가 삐딱하게 연천을 쳐다보았다.
“뭐? 돌로 풍경을 맞힌 그것? 그게 십팔원석신공이라고? 그게 다야? 돌을 던져서 맞힌 게 그게 다라고?”
연천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연천이 생각하는 무공과 차이가 있어도 너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뭐가 더 있겠어요? 돌을 박살을 내겠어요? 풍경에 구멍을 내겠어요?”
걸화가 입을 삐죽이며, 비꼬았다.
“그게 십팔원석신공이라고? 그게? 무공이라고?”
연천이 재차 물었다.
“…….”
걸화가 답 없이 입을 삐죽이며 연천을 흘겨보았다.
연천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무공도 걸아다웠다.
잠깐이지만 자신이 너무 깊고, 심각하게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십팔원석신공… 그래 그거, 그… 돌멩이로 풍경을 맞히는 그 무공. 그래, 그거… 그게 무공이구나….”
“치잇….”
걸화가 연천에게서 몸을 홱 돌려버렸다.
“…미안하다, 걸아야. 보았다, 보았어. 내 십팔원석신공을 보았다. 그래, 내가 무공을 가르쳐 주마. 내가 가르쳐 줄게, 아침마다 가르쳐 주마.”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된 연천이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며 걸화를 달랬다.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고 있던 걸화의 얼굴이 슬며시 풀렸다.
“그… 십팔원석신공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연천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추려 애쓰며 물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배우긴요? 나의 독문 무공이에요. 그 십팔원석신공의 창시자가 바로 나! 원석지존 배걸아라구요.”
걸화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가 만든 무공이라고?”
연천이 어벙한 얼굴로 물었다.
“네! 아무도 무공을 안 가르쳐 주니 어쩌겠어요! 내가 만들었죠. 히… 멋있죠?”
걸화가 치아를 다 드러내고 웃었다.
“그래… 그런데 그게 십팔원석신공이면 열여덟 개의 초식이 있다는 말 아니냐? 보통 무공 앞에 붙는 숫자는 초식의 수를 나타내는 것인데.”
영친왕의 호위 무사 선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연천은 단숨에 무공 실력을 늘릴만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걸화가 아는 무공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걸화의 유일한 무공이라는 십팔원석신공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그쵸? 형님도 아는구나, 다른 무공들 이름 앞에 숫자가 붙는 것이 많기에 나도 따라서 해봤어요. 십팔! 십팔! 딱 맘에 드는 숫자잖아요.”
걸화가 웃으며 말했다.
“초식이 열여덟 개라…….”
“뭐… 돌 하나 던지면 일 초식, 두 개 던지면 이 초식, 세 개면 삼 초식이겠죠? 그리고 네 개면….”
말을 하는 걸화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연천과 눈이 마주쳤다.
“칫! 됐어요, 돌멩이 던져서 맞히는데 초식이 뭐가 있겠어요? 그냥 잘 맞히면 되지.”
걸화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뭔가 돌이 잘 맞을 때마다 일 초식, 이 초식 혼자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실 정해진 초식이나 규칙 같은 것 없이 그저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 맞았다.
“음…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이제 어쩌지… 음…….”
연천이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돌로 목표물을 잘 맞히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걸화 말대로 사람이 죽고, 죽이는 것이 예사인 무림이었다.
호위 무사는 그 죽음의 일선에서 일을 해야 했다.
돌멩이 따위는 부족했다.
사람을 죽이지 못해도, 최소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걸화가 그녀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연천의 입을 바라보았다.
느릿한 연천을 기다리는데 조바심이 일었다.
연천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비도를 사용해 보는 건 어떻겠느냐?”
“좋아요! 난 뭐든지 좋아요!”
연천의 마음이 바뀔까 봐 날름 답했다.
입이 찢어질 듯 좋아하는 걸화를 보고 연천이 웃었다.
“그럼 아침을 먹고 장에 가보자꾸나, 네가 사용할만한 비도가 있는지 찾아보자.”
연천이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지금 걸화에게 아무리 좋고 그럴듯한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몸에 익히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은 걸화가 그나마 잘하는 것을 이용해서 적을 위협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더 나았다.
돌로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히는 걸화에게 비도술은 빠르게 배우기 쉬울 것이라 판단했다.
“야호!! 좋아요!!”
걸화가 제자리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 * *
연천과 걸화는 객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섰다.
“이렇게 먹다가 굶어 죽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 방금 먹었는데도 배고파.”
걸화가 배를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
“그렇게 먹고 굶어 죽으면 세상에 굶어 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연천이 어이가 없어 웃었다.
걸화는 아침으로 야채 국수 세 그릇과 채소볶음 한 접시를 혼자서 해치웠기에.
“고기를 못 먹으니깐, 기운이 없어요.”
걸화가 정말 힘이 없는 듯 말했다.
“그래, 점심은 장에 가서 고기를 먹자.”
연천이 말하며 장으로 앞장섰다.
예상은 했지만, 장터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바글거렸다.
걷지 않아도 인파에 밀려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다.
우글거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열기에 연천은 혼이 나갈 것 같았다.
대장간도, 식당도, 길바닥에도 어디를 가도 터져나갈 듯한 인파가 우글댔다.
연천은 자신이 어떻게 비도를 사고 점심을 먹고, 걸아를 챙겨서 객잔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조용한 객잔으로 돌아와 있으려니 정신이 멍했다.
늘 재잘대던 걸화는 비도에 정신이 팔려 말이 없었다.
제 얼굴도 닦지 않으면서 비도에 구멍이 나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닦고 또 닦고 만지고 또 닦았다.
객잔은 물론이고 두 사람이 있는 방은 여전히 지나치게 조용했다.
지독한 고요를 깬 것은 걸화였다.
꾸루르르르―
정확하게는 걸화의 배였다.
비도를 닦아대던 걸화가 고개를 들어 연천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계속 야채만 먹으니깐 자꾸 배가 고프네.”
연천이 웃었다.
“점심은 장터에서 고기만두를 먹지 않았느냐?”
“아휴… 사람이 너무 많고 정신이 없어서 만두가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분간도 안 되던데요?”
“내가 입으로 넘어가는 것을 잘 보았으니 걱정 말거라.”
“치잇!”
걸화가 쌜쭉이 눈을 흘겼다.
“조금 이르지만, 저녁을 먹고 오늘은 일찍 쉬자꾸나.”
연천이 일어서며 말했다.
“또 풀떼기만 먹을 생각을 하니, 밥 먹는 게 하나도 즐겁지가 않아요. 정말 이러다가 사람고기를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걸화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하곤, 앞장서서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도 두 사람의 모습은 똑같았다.
걸화는 비도를 닦았고, 연천은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밖은 금세 어두워지고, 밤벌레들이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연천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걸화가 쉬지도 않고 비도를 문지르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 좋으냐?”
“그럼요, 나한테 처음 생긴 무기인데 좋죠.”
걸화는 비도를 문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다음번에 더 좋은 것으로 사주마.”
걸화에게 맞는 것을 고른다고 고르긴 했지만, 워낙 정신이 없었다.
비도술을 좀 익히면, 새로운 것으로 사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이야~ 형님 최고! 난 형님이 너어무 좋아요. 헤헤헤… 이 비도도 좋지만… 형님이 또 사준다면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요. 히히, 잊어버리지 말고 담에 꼭 사줘야 해요.”
“녀석, 내가 좋은 게 아니라 내가 비도를 사주니 좋은 것이겠지.”
헤실헤실 웃는 걸화를 따라 연천도 미소 지었다.
“아하암…….”
새벽부터 일어나 피곤한 걸화가 길게 하품을 했다.
“내일부터 비도술을 배워보자, 아침에 일찍 깨울 테니 오늘은 일찍 자자꾸나. 오늘도 네가 내방에서 자거라.”
연천이 걸화에게 말했다.
“내가 왜 형님 방에서 자요?”
걸화의 별생각 없는 물음에 연천은 말문이 딱 막혔다.
어젯밤 방으로 불쑥 찾아온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걸화가 불안해할 것이 뻔했다.
걸화는 대답을 기다리며, 연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 네 방이 마음에 드는구나.”
연천다운 어리숙한 변명이었다.
걸화의 방이나 연천의 방이나 나란히 붙은 두 방은 크기나 모양, 기물의 구조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걸화가 황당한 얼굴로 연천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그럼… 푹 쉬거라.”
연천이 허둥대며 자신의 방을 나와, 옆에 붙은 걸화의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