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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60화 (60/230)

60화

【준비】

검은 옷의 침입자가 우수를 들어 연천의 검을 좌측으로 흘렸다.

그리고 급히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연천이 방을 나가려는 침입자를 막아섰다.

‘뭘 하려고 모두 잠든 밤에 몰래 들어온 것일까? 걸화의 말대로 인육을 만들려고 한 것인가?’

그건 아닌 듯싶었다.

인육을 만들려면 사람의 신체에 해를 가해야 했고, 검이든 도든 하다못해 식칼이라도 들고 있어야 했는데 그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이었다.

게다가 적극적인 공격을 피하며 밖으로 도망치려고만 했다.

아무리 봐도 위해를 가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럼, 대체 왜 한밤중에 남의 방에 들어온 것일까?’

연천은 짧게 검을 휘둘러 침입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문 반대 방향으로 몰아붙였다.

연천의 검을 슬쩍슬쩍 피하며 뒤로 물러나던 침입자의 등이 출입문 반대편 벽에 닿았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침입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희뿌연 달빛이 침입자의 등 뒤로 비췄다.

복면조차 하지 않은 침입자는 연천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였다.

연천이 검을 들어 침입자의 가슴께에 들이댔다.

뽑지 않은 검이지만 여차하면 공격을 할 수 있는 자세였다.

벽에 등을 댄 침입자의 흐릿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 방에는 무엇 때문에 들었소?”

연천이 담담하게 물었다.

“방을 잘못 들었소.”

능청스러운 대답이었다.

이 고요한 객잔에 객이라고는 걸화와 연천이 고작이었다.

방을 잘못 들었다면, 자신을 빼고는 걸화 뿐이었다.

그새 다른 객인이라도 들었다는 말인가?

누구의 방을 찾는 것이 건, 깜깜한 밤에 기척 없이 든 것은 뭔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야심한 밤이오, 그게 핑계가 된다고 생각하시오?”

연천이 뻔뻔한 침입자에게 말했다.

“사실이오.”

침입자가 태연하게 답했다.

연천은 뭐라고 더 묻지 않았다.

이름이 뭔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대체 어느 방으로 가려다 잘못 들었는지 물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묻는다 해도 순순히 말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검은 옷을 입은 침입자는 적극적으로 뭘 할 생각도 없이, 연천을 뻔히 쳐다보았다.

연천은 이자를 어찌해야 하나 하고 고민에 빠졌다.

위협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지만, 늦은 밤 몰래 방에 들어온 자였으니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연천이 잠깐 생각하는 사이, 우수로 연천의 검을 쳐내며 몸을 비틀어 연천의 사정권을 빠져나간 침입자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 옆의 창으로 몸을 날렸다.

연천이 서둘러 창밖을 내다보았다.

일 층으로 사뿐히 내려선, 검은 그림자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 * *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연천은 언제나처럼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가볍게 몸을 풀고, 검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아련한 얼굴로 검집을 쓰다듬다,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시리도록 맑은 빛을 뿜어내는 연천의 검은 차갑고 서늘한 예리함과 따뜻한 밝음이 묘하게 공존했다.

연천이 천천히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우측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가볍게 검의 움직임을 바꾸었다.

이제 막 초식을 배운 것처럼 간단하고 단순한 동작들의 연속이었다.

연천은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관찰력이 심하게 뛰어나거나 과도하게 예리한 사람이라면 연천의 검 빛깔이 처음보다 아주 조금 밝아졌다는 것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보통은 코앞에서 공격해대도 알아채기 힘든 미미한 변화였다.

그것은 연천의 검 전체가 자잘한 뇌전으로 감싸인 것이으로, 먼지 알갱이만큼 작은 뇌전 하나하나가 수없이 모여 미세하게 빛을 뿜어냈다.

연천은 자신의 검에 뇌전이 모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같은 초식을 반복할 뿐이었다.

한참 후, 연천은 편안한 표정으로 검을 갈무리했다.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천천히 객잔으로 올라가 걸화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열었다.

걸화는 팔과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상체의 절반은 침상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자는 걸화를 볼 때마다 연천은 언제나 같은 마음이었다.

‘불편하다, 저리 불편한 자세로 어찌 자는지······.’

연천은 걸화를 가뿐히 안아 올려, 객잔의 뒷마당으로 가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걸화는 흙바닥에 누워서도 깨지 않고 잘도 잤다.

연천이 차가운 우물물 한 바가지를 퍼 와서 걸화의 얼굴에 홱 끼얹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걸화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업…업… 푸푸푸…푸…….”

걸화가 얼굴을 구기며 눈앞의 연천 노려보았다.

“어떤 방법으로든 깨워만 달라고 하였다.”

연천이 편안한 낯으로 말했다.

“아! 맞다, 무공…….”

걸화가 머리카락을 벅벅 긁더니 길게 하품을 했다.

“하아아아암…….”

“…….”

연천은 걸화가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가르쳐 주세요! 무공!”

걸화가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말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은지 씨익 웃었다.

무공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기에.

“아…….”

연천이 고장 난 목각 인형처럼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는 멍청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눈만 끔뻑였다.

“어디 아파요? 그게 주화입마에요? 어쩌지? 나는 그런 것 못 푸는데… 의원? 의원을 불러야 하나?”

걸화가 허둥댔다.

“어… 그건 아니고… 무공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연천이 생각하느라 느릿하게 물었다.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수련을 하기는 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공에 무지한 걸화에게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형님이 가르쳐줘야 하는 건데!”

“그렇지. 내가 가르쳐 주는 거지……. 그러니깐 뭘 어찌 가르쳐 줘야 하나… 음…….”

연천이 걸화에게 말하는 듯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

“아하…….”

걸화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답답한 양반한테 무공을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내 스승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인지… 이번엔 뭐라도 좀 배울 수 있을는지…….’

걸화의 머릿속에 그녀의 첫 스승인 장자방의 얼굴과 그가 가르쳐 준 유일한 검법인 내려치기가 떠올랐다.

답답했다, 초조하게 조바심이 일었지만 꾹 참았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쥐어짤 수 있는 모든 인내심을 끌어내, 연천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게 벌어진 콧구멍으로 숨을 훅훅 내쉬었다.

연천은 걸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턱을 문지르며 혼자 생각에 잠겨있었다.

입을 꾹 다문 걸화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려댔다.

개방의 누군가가 봤다면, 그 모습이 걸화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난 천상의 모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둑하던 사위는 이미 해가 떠서 훤하게 밝았다.

연천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혹시 할 줄 아는 무공이 있느냐?”

무언가를 가르쳐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게 있냐고 물었다.

“있어요! 십팔원석신공요!”

내내 답답했던 걸화는 다시 기대를 품고 큰 소리로 말했다.

십팔원석신공을 말하는 걸화의 얼굴은 당당했다.

“십… 십팔원석신공?”

“네! 그게 내 주요 무공이에요.”

걸화가 입을 쫙 벌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 무공도 있구나. 역시… 중원이라는 곳은 넓은 곳이야… 십팔원석신공이라…….”

연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억거렸다.

스승님은 젊은 시절, 전 중원에 안 다녀 본 곳이 없다고 했었다.

중원 곳곳을 돌며 새로운 무공을 보고 배우는 것이 낙이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숲속의 기나긴 밤, 스승님은 본인의 무림행과 그때 경험한 무공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다.

그것이 연천에게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었고, 자장가이자 재미난 이야기였다.

그랬기에 그는 산속에 틀어박혀 살았어도 무공에 대한 것만큼은 중원 끝 촌마을 것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모든 무공을 몸으로 익힌 것은 아니었다.

무공이라는 것이 함께 익힐 수 없는 것들도 있고, 그 모든 것을 다 잡다하게 배운다고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

한데, 스승님이 듣고 본 무공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 십팔원석신공이라는 것은 없었다.

연천이 걸화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무공에 중원에 대한 경외심이 일며, 새로운 무공을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설레기까지 했다.

“그게 어떤 무공이냐?”

질문하는 연천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차 있었다.

“훗! 보여줄게요.”

걸화가 바닥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오른쪽 어깨를 크게 휘두르며 돌을 날렸다.

날아간 돌은 객잔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두드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찌애앵― 째쟁― 쟁―

풍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댔다.

걸화가 우쭐한 표정으로 연천을 쳐다보았다.

“…….”

연천은 말없이 기다렸다.

걸화가 새로운 무공을 보여주기를.

“…….”

걸화는 기다렸다.

연천이 자신의 십팔원석신공에 대해 뭔가 대단한 평가를 해주기를.

“…….”

연천은 걸화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기다렸다.

“…….”

걸화는 진지한 연천의 표정을 삐딱하게 쳐다보며 기다렸다.

“…….”

기다렸다.

“아! 진짜! 무공을 봤으며 뭐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줘!”

결국, 참지 못한 걸화가 짜증을 냈다.

“버… 벌써?”

연천의 눈동자가 떨렸다.

연천은 걸화의 무공을 보지 못했다.

무림에 대해 스승님께 들은 바가 많기도 했고 각오도 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내가 보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검강이나 검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인가? 그래, 걸아의 은둔술과 추적술의 경지를 보면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어. 지금껏 무공을 모른다고 하더니… 걸아가 말로만 듣던 숨은 고수였던가?’

연천이 흔들리는 눈으로 걸화를 쳐다보았다.

걸화는 처음 보는 연천의 표정에 뜨악했다.

자신을 보는 연천의 얼굴은 두려운 듯도 했고, 신기한 듯도 했다.

“왜, 왜… 저래……?”

중얼거리는 걸화의 얼굴에는 답답함과 짜증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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