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야채 국수 주시오. 우리 형님과 나는 오랫동안 채식을 해서 고기를 먹으면 복통을 일으키니 고기는 일절 넣으면 아니 되오.”
걸화가 점소이에게 주문을 했다.
점소이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연천이 물었다.
“네가 어인 일이냐? 밥 먹을 때마다 고기를 입에 달고 살던 녀석이…….”
“형님…….”
걸화가 몸을 연천 쪽으로 쭉 당겼다.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연천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에는 손님을 잡아다가 사람 고기로 요리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가 여러모로 의심스러워요. 나는 사람고기는 먹기 싫어요.”
“설마 그런 곳이 진짜 있어?”
“형님은 무림을 몰라요. 사람 수천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이는 이들이 수두룩 빽빽한 곳이에요. 형님처럼 칼집 채 휘두르면서 인정을 봐주는 곳이 아니라고요.”
“알았다, 무림을 잘 아는 네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헤헤헤.”
연천의 칭찬에 입을 헤벌쭉하던 걸화가 말을 이었다.
“형님! 진짜 진짜 부탁이에요. 나 아침에 좀 깨워주면 안 돼요? 호위 무사 접수도 했는데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걸화는 결국, 영친왕의 호위 무사 시험에 참가하겠다고 접수했다.
연천은 말리지 못했다.
아니, 연천의 만류에도 꿋꿋이 접수를 해버렸다.
접수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니…….
“정말 시험을 치를 게냐?”
“당연하죠, 그러니 접수한 것 아닙니까?”
“겨우 보름이다, 무공을 배우기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하지 않느냐?”
“혹시, 혹시라도 내가 시험에 떨어지면 형님이 나 좀 데리고 가줘요.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권한으로 일행을 두 명까지 호위로 추천할 수 있다잖아요. 나 형님이랑 같이 영친왕의 성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랬다. 호위 무사 시험에 합격한 한 사람이 일행 두 명을 추천해서 함께 호위가 될 수 있는, 전에 본 적 없는 방식이 덧붙어 있었다.
“걸아야… 시험이 끝이 아니란다, 호위로 영친왕의 성에 들어간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위험도 생각해야지.”
연천이 침착한 목소리로 걸화를 타일렀다.
“그러니깐 지금부터 무공도 배우고 아침마다 수련도 하겠다니깐요.”
걸화는 그냥 우겼다.
보름 동안 무공을 배워 호위 무사가 되겠다고.
“으흠…….”
연천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를 호위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도망을 가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천마검을 지키는 호위 무사는 임시로 뽑는 것이었기에 기간이 길지 않았다.
연천이 호위 무사가 되면 걸아는 객잔에서 쉬면서 근처를 유람하기를 바랐지만, 순순히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스승님에 대한 단서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천마검 한번 보겠다고 걸아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혹여 일을 그르쳐 걸아가 잘못되면 연천은 그 죄책감을 지고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내 고민하던 것에 결단을 내렸다.
“으흠… 영친왕의 호위 무사가 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
“왜요?”
갑작스러운 연천의 말에 걸화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저… 그러는 것이 좋겠어, 다른 곳을 다녀보면 또 다른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잖느냐.”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지 못한 연천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요? 그럼 나 혼자 갈게요. 내가 영친왕의 호위 무사가 돼서 기회를 잘 엿보다가 검을 훔쳐다 줄게요. 형님은 어디 객잔에서 묵으면서 유람이라도 해요.”
걸화가 명랑하게 말했다.
“으흠…….”
연천의 깊고 긴 한숨 소리가 텅 빈 객잔에 울려 퍼졌다.
연천은 걸아의 고집과 집념을 알기에 무슨 일을 저지를까 하고 겁이 났다.
걸아를 두고 혼자서 호위 무사 시험을 치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저리도 가겠다고 뻗대니 말이다.
그래서 아예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까딱하다가는 걸아 혼자 영친왕의 성으로 들어갈 판이었다.
걸아의 성격으로 보건데, 호위 무사가 못되면 무슨 엉뚱한 수를 써서라도 영친왕의 성에 들어가려 할 것이다.
‘들어가서 천마검을 훔치려 하겠지…….’
연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는데도 무서웠다.
절대 걸아를 혼자 놔둬서는 안 되었다.
무슨 일을 벌일지 두려웠다.
“혀엉니이이이임… 제바알… 응? 응? 응? 뭔 짓을 해서 깨워도 괜찮아요. 나도 무고옹! 무공 배우고 싶어요오!”
걸화가 연천을 졸랐다.
“…그래, 이번 기회에 시작이라도 해보자. 내가 깨워보마.”
연천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야호! 헤헤! 약속했어요! 꼭 깨워야 돼요!”
걸화의 목소리가 텅 빈 식당을 넘어 이 층까지 크게 울렸다.
“그래, 약속하마.”
연천이 신나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걸화를 보며 답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 하나 사라졌을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내가 없어지면 주방부터 살펴봐요…….”
걸화가 찝찝한 표정으로 국수를 가지고 오는 점소이를 쳐다보았다.
둘은 국수와 채소 요리 몇 가지로 저녁을 해결했다.
걸화가 결단코 고기는 안 먹겠다고 우기는 통에, 연천은 오랜만에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객잔의 방으로 들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인 몸은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매일 수련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지만, 오랫동안 가져온 생활의 형태가 바뀌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연천에게 사람은, 특히 많은 수의 사람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방은 조용했다.
아니, 객잔 전체가 물속에 잠긴 듯 무거운 정적 속 깊숙이 박혀있었다.
아무도 없는 객잔이 편안해야 하건만,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 또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보통 객잔이나 여관은 방에 누워서도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발걸음 소리나 찻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나 짐을 옮기는 소리 등… 아무튼 사람이 존재하는 인기척이 들리기 마련이었다.
시끄러워야 정상인 곳의 지나친 고요가 신경 쓰였다.
지독한 적막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어 놓았다.
걸아를 데리고 영친왕의 호위 무사로 들어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영친왕의 호위 무사가 되어 천마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들 무엇하겠는가?
숙부님의 말씀대로 스승님의 과거나 천마검 같은 것은 모른 척하고, 걸아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걸아는 계속 호위 무사가 되겠다고 우겨댈 텐데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그 천마검이란 것, 혈영천마와 함께 사라졌다는 그것을 꼭 한번 보고 싶기는 했다.
걸화에 대한 걱정의 반대편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 천마검이라는 녀석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저 한 번이라도, 꼭 보고 싶었다.
더러러럭―
연천의 방문이 급하게 열리며, 걸화가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형님! 나 무서워요.”
“이 녀석아! 뭐가 무서워?”
연천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떠돌던 생각들이 밀려났다.
걸화의 허둥대는 모습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누가 자꾸 나를 훔쳐보는 것 같아요. 내가 맛있어 보이나?”
걸화가 자신의 팔뚝과 어깨를 주물럭대며 말했다.
이곳저곳 몸을 만져대던 걸화는 자신의 볼살을 쭉 잡아당기다, 아무것도 없는 방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잘 씻지 않아서 엄청 더러워요, 그리고 살도 별로 없어서 먹을 것도 없어요!!”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던 걸화가 허공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허허허허…….”
결국 연천은 웃음을 터트렸다.
스승님과 함께 사는 동안 편안하고 안락하고 고요했다. 연천은 그런 안정감이 좋았다.
하지만, 크게 웃거나 재미있었던 일은 거의 없었다.
걸아와 함께 하면서 그 엉뚱함과 특이함은 연천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스승님과 함께 살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오늘 밤도 편히 쉬기는 틀렸구나.’
걸화의 호들갑을 보며 생각하는 연천이었다.
수선을 떨어대던 걸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천의 침상에 머리를 대고 곯아떨어졌다.
연천은 침상 옆 바닥에 누웠지만, 피곤한 몸은 생각과 다르게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의 눈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걸화의 팔이 덜렁거렸다.
연천의 침상에 대자로 뻗은 채, 한쪽 팔을 밖에 내놓은 걸화는 요란하게 코를 골아댔다.
연천이 조심스레 걸화의 팔을 침상에 밀어 넣고 다시 누웠다.
딱딱한 바닥이 등에 배기고, 차가운 냉기가 올라왔다. 이쪽저쪽으로 몸을 뒤척였다.
걸화의 팔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바닥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불편했다.
“으음…….”
결국 연천은 바닥에서 일어났다.
깊이 잠이 든 걸화를 한번 보고, 코 고는 소리가 울리는 방을 나왔다.
작은 등불 하나 켜놓지 않은 객잔의 복도는 깜깜했다.
연천은 자신의 방 옆의, 걸화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침상에 누웠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스승님과 살 때도 초막집 바닥에서 잠을 잤고, 걸아를 만나기 전에는 숲속에서 야숙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언제부터 침상에서 생활했다고 몸이 이리 간사하게 구는 것인지…….
연천은 누워 가볍게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미어터져 나가는 곳을 비집고 돌아다니며 숙소를 구하느라 힘이 들었다.
어찌 얻은 방인데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했다.
피곤한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텅 비어 조용한 객잔에는 걸화의 코고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시끄러워서 괴롭다 여겼던, 그 일정한 음률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걸화가 코를 골아대는 규칙적인 음이 자장가인 듯, 그 소리에 맞춰 잠이 드는 연천이었다.
조용하고 깜깜한 객잔에는 걸화의 요란한 코골이 소리와 연천의 나지막한 숨소리만이 울렸다.
창문도 불빛도 없는, 깜깜한 객잔의 복도를 걷는 검은 그림자는 고요했다.
어두운 빛깔의 의복을 갖춰 입은 그림자의 주인은 깊은 암흑을 따라 움직였다.
소리 없는 발걸음과 최소한으로 줄인 동작은 어둠과 구분이 힘들었다.
검은 그림자의 움직임은 작고 느렸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움직여, 연천이 자고 있는 방문을 열었다.
스르르륵―
낡은 외관과 다르게 문은 부드럽게 밀렸다.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들어선 그림자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방 안은 복도와 다르게, 창을 통해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침상으로 사뿐히 걸어간 검은 인영은 희뿌연 달빛에 비친 연천을 내려다보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 순간, 연천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던 검을 들어, 방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향해 휘둘렀다.
검집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