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의형제】
당상만이 의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맑고 팽팽했던 피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던 눈동자는 탁했고, 탄탄하고 꼿꼿하던 몸은 병약해 구부정했다.
“상만아!”
의형이 묵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네, 형님!”
당상만이 긴장했다.
의형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기에.
“이제… 이곳에 오지 말거라.”
나지막한 목소리는 당상만을 타이르고 있었다.
“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가주한테 당산에 오르지 말라고 하시다니요? 허허허….”
의형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지만, 당상만은 모른 척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여기는 당산이고 네가 당가주이니 이 산에 네가 오는 것에 대해 내가 어찌 말을 하겠느냐. 허나! 내가 있는 이곳에는 오지 말거라, 나는 당가주인 너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라는 말이다.”
벌써 당상만의 귀에 인이 박이도록 한 말이었다.
“형님… 어찌 또 그러십니까?”
올 때마다 같은 소리였다.
이번에는 어린아이를 주워 와서 기분이 좋기에 그냥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형은 오늘도 같은 말을 했다.
의형은 당상만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오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당상만은 삶을 포기하다시피 한 의형을 놓을 수 없었다.
당상만의 마음속 의형은 언제나 청명하게 웃었고, 약자의 편에 서서 힘든 사람을 돕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의 행동이 가문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지, 괜스레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아닌지, 혹여 자신의 행동에 앙심을 품을 자는 없는지, 그런 골치 아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할 뿐이었다.
건강이 좋지 못해서 예전의 맑은 미소와 꼿꼿한 자세와 깨끗한 눈동자와… 많은 것을 잃었지만, 당상만은 여전히 의형을 존경했고 우러러보고 있었다.
“너는 당가의 가주다. 혼자 몸이 아니야, 가문을 생각해서라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것을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나는 괜찮으니 찾아오지 말거라.”
“산 중턱부터 진법이 펼쳐져 있고 그 진법을 여는 방법은 저밖에 모릅니다. 아무도 올 수 없으니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당상만은 주름진 의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에 진법을 뚫으려는 자가 있었지?”
의형의 얼굴은 심각했다.
“어찌 아셨습니까?”
당상만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 몸이 이리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누가 감히 당산의 진법을 깨려 하겠느냐?”
진법을 깨려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아직…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당상만은 모른 척, 표면적인 질문에 답했다.
“그렇겠지. 진법을 깨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이 위험한 독산에 들어오려는 자가 누구겠느냐?”
의형이 다시 질문이 아닌 질문을 던졌다.
“…….”
당상만은 대답하지 못하고 의형의 눈길을 피했다.
의형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헤아리고도 남았지만, 그의 의중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래…,아마도 나를 찾는 것이겠지. 내가 당산으로 몸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자의 소행일 테니.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당가주인 너도 모르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홀로 이곳으로 몸을 피해 은신하는 것이야, 그러니 모른 척하고 살 거라.”
“형님도 참… 당가의 진법을 너무 무시하십니다. 진법에 대해 꽤나 지식이 있는 자이긴 했지만 결국 깨지 못했습니다. 그 일 후에 진법을 더 보강했으니 앞으로 진법을 뚫는 것은 더욱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허… 내 말 듣거라. 옷과 음식도 가지고 오지 말거라.”
의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형님…….”
당상만은 의형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끝내 답하지 않았다.
“상만아!”
“네, 형님.”
“혹여라도 내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때는 우리 연천이를 부탁하마, 내 염치없지만 부탁한다. 연천(緣天), 내가 지은 이름이야. 하늘이 준 인연이라는 뜻이다. 아이가 워낙 깨끗해서 성은 백(白)자를 붙였다. 백연천(白緣天).”
의형은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주지 않았다.
당상만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의형이 말하는 무슨 일은 아마도 그의 명이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당산으로 온 의형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아이 덕분에 의형의 눈빛이 달라졌다.
살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잘된 일이지만, 자신은 계속 밀어내니 속상했다.
“형님의 제자이면 제게는 조카입니다. 숙부가 조카를 돌보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상만이 시원스레 답했다.
어쩌면 아이를 핑계로 의형에게 더 자주 들를 수 있으리라.
“…….”
의형의 눈은 다시 아이에게로 향했다.
* * *
며칠 전.
당산에 들어온 후로 밖을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딱히 갈 곳이 있어서 나선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당산에서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죽은 듯 목숨만 연명하며 사느니 차라리 밖으로 나가 자신을 찾는 이들과 마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더 살아야 할 필요도 의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본 세상의 활기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기분이 꽤 괜찮아졌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보지 말 것을… 알았으면 보지 않았을까?
보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미 변해버린 현실을 바꿀 수 없었다.
저잣거리 면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움과 슬픔과 안도감이 뒤범벅되어 속이 울렁거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자신이 알던 얼굴보다 오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원래 거쳐야 할 세월의 흔적이니 당연하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생각과 달리, 밀려드는 비통함은 쉬이 해결되지 않았다.
단전이 상해, 내력을 이전의 십 분지 일도 담지 못했다.
손이… 발이… 몸이 빠르게 쇠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처럼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다.
스스로에게도 낯선 얼굴이었다.
자신을 찾는 자들은 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날카로운 무언가가 뱃속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외관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모습은 끔찍했다.
실낱같이 남아 있던 삶에 대한 미련조차 깔끔하게 걷혔다.
인적 없는 길목에 쓰러진 아이를 데려온 것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정말 그 아이를 구하고 싶어서? 아이의 내력이 특별해서?
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는지도.
그 아이가 삶을 붙잡을 이유가 되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만 보면 이리 웃음이 나오니…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자신을 구원하고 있었다.
* * *
당상만은 젊은 시절, 서안의 한 마을에서 의형을 처음 만났었다.
그 작은 마을에 볼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하루쯤 묵고 지나가려던 길이었다.
아직도 그는 그 마을에 들른 것이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다.
변두리 작은 마을, 현령의 곳간에는 곡식이 넘쳐났고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다.
배고픔에 눈이 뒤집힌 마을 주민 몇이 현령의 곳간을 털다 잡힌 모양이었다.
현령은 본보기를 보여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 자신의 물건에 손댄 자들을 응징하고자, 마을 중앙 공터에 곳간을 털다 잡힌 죄인들을 잡아다 놓고 매질을 해댔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사내들은 피를 흘리며 비명을 토해냈고, 그것을 지켜보는 처와 자식은 울부짖었다.
지나가던 당상만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은 관아의 일이고 이 마을의 일이었다.
아무리 불합리하다 생각되어도 지나가는 과객이 어찌할 수 없었다.
거기다 상대는 관리, 변두리라 하여도 그 뒷배를 무시할 수 없었다.
중앙의 관리와도 연이 닿아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면 그들은 황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황후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해야 맞으려나?
황궁의 모든 권력은 황후와 그녀의 친인척에게, 또 그들에게 돈을 댄 자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제대로 본보기를 보이려는 듯, 지독한 매질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견디지 못한 사내들은 하나둘 쓰러져나갔다.
줄초상이 난 마을은 울부짖음과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가면 그만인 마을이었지만, 당상만은 누가 몸을 묶어놓은 것처럼 그 마을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매질은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멈추었다.
그것은 한 사내에 의해서였다.
“이보시오! 아무리 남의 것을 탐한 자들이라고 하나, 국법에도 인정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오. 이제 그만 멈추어주시오. 혹여 재물에 손해가 있다면 내가 배상하겠소.”
악귀들이 들끓는 지옥처럼 짐승 같은 부르짖음이 사방으로 울리고,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가 역겹게 풍기는 광장이었다.
홀로 앞으로 나선 사내의 얼굴은 말갰다.
다른 세상에서 온 듯 현실과 이질적이었다.
현령이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곳은 죄인을 벌하는 곳이오! 보아하니 무인 같소만, 이것은 관의 일이오! 가던 길이나 마저 가시오!”
현령이 날카롭게 이야기했지만, 말을 아주 놓지는 않았다.
작은 마을이긴 하나 관에 소속된 현령과 포두, 포졸이 모두 나와 있는 자리였다.
그 한가운데로 나서서 저리 여유롭게 지껄이는 것을 보면 믿는 구석이 있다고 봐야 했다.
혹여, 대문파의 무인일지도 몰랐다.
사내가 씨익 웃었다.
어찌나 청량한 미소인지 지금 있는 자리가 어딘지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대의 성품이 이미 보이기에 나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소.”
사내가 미소 띤 낯으로 말했다.
“저…저런 미친놈이… 잡아라!!”
현령의 인내심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성질나면 잡아다 족치면 그만이었다.
혹여 일이 잘못되어도, 든든하게 만들어 놓은 인맥이 있었다.
돈이 들긴 하겠지만 그것은 또 마을 주민을 쥐어짜면 만들어지는 것이니, 화를 참을 필요는 없었다.
한때의 포졸들이 달려들자, 사내는 검을 뽑았다.
스릉―
청아한 소리와 함께 늘씬한 검신이 빠져나왔다.
창을 들이미는 포졸들을 향해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당상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의 검이 포졸들에게 닿기에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