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이보게 아우! 아버님께서 깨어나셨다네.”
당지상이 연천에게 말하고, 팽호연과 걸화를 보았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병환 중이시던 아버님께서 일어나셨다고 하여 뵙고 와야겠습니다. 천천히 식사하십시오.”
당지상이 침착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연천도 당지상을 따랐다.
걸화는 밖으로 나가는 연천과 눈앞의 음식을 번갈아 보았다.
연천 뒤로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볶은 고기를 담은 커다란 접시에 코를 박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뭐… 위험한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숙부를 보러 간다는데 꼭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음… 맛 좋다.’
입을 우물거리는 걸화의 표정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팽호연은 아무 걱정 없이 음식을 입속으로 쑤셔 넣는 걸화를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으흠…….”
당가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달려오던 때가 더 나았다.
당가에서 받은 해결책인 백연천이라는 존재가 커다란 돌덩이처럼 팽호연의 가슴을 꽉 틀어막아 버렸다.
“에휴…….”
속이 답답했다.
* * *
당상만은 자신의 침상에 앉아있었다.
“숙부님!”
연천이 침상에 앉아있는 당상만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아니? 연천아? 네가 어찌 여기 있는 게냐?”
“그리되었습니다.”
연천이 답을 얼버무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중원을 돌아다녀 보겠다더니?”
당상만은 자신과 연천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물었다.
“인근을 지나다 숙부님 생각이 나서 들렀습니다.”
연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달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당상만의 말에 연천도 당지상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 누가 누구의 얼굴이 상했다고 말을 한단 말인가?
당상만이야 말로 근 달포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겨우 생명만 연장해 놓았던 터라 얼굴이 말할 수 없이 상해 있었다.
뼈다귀에 가죽만 붙어있는 당상만이 죽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버지! 아우가 아버지를 해독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중독되시고 백부님께 연락하려 하였으나 방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지상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허어… 그랬겠구나…….”
당상만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지상이 그동안 잠 못 이루며 했던 마음고생과 당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허탈할 지경이었다.
* * *
연천은 스승과 단둘이 숲에서 살았다.
연천이 살았던 숲의 녹음은 유난히 억세고 지독했다.
께름칙한 흙빛을 지닌 식물을 베어내면,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뚝뚝 떨어지곤 했다.
극성스러운 벌레들은 크기가 유난히 크고 힘이 넘쳤고, 뱀과 같은 파충류와 전갈과 같은 갑각류의 생명체가 버글거렸다.
그 숲에는 스승님과 연천, 그리고 가끔 오는 숙부 당상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깊은 산이라고 해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약초꾼이나 사냥꾼이 밥벌이하러 다니기 마련이었지만, 연천은 단 한 번도 그 숲에서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스승님과 둘만 있었고, 가끔 숙부님이 들렸을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연천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랬기에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그 숲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연천이 살았던 산이 구악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구악산을 구악산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관에서야 그 명칭을 사용했지만, 중원인들은 그 산을 독산이나 당산이라고 불렀다.
독산(䄣山), 독이 있는 산이라는 단순한 의미였다.
독산은 당가 소유의 산으로 당가에서 사용하는 독의 재료를 배양하기 위한 산이었다.
산 지천에 독초와 독충 독뱀, 독과들이 널린 곳이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중원인들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괜스레 들어갔다, 독초나 독충에게 당해 죽기 십상이었다.
그리 죽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죽음에 불과했다.
그나마 당가 사람들도 산 초입까지 출입이 허용될 뿐이었다.
산 중턱부터는 커다란 진법이 둘러싸고 있어 당가주나, 당가주가 허락한 이들 외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은 독정 때문이었다.
독산 깊은 곳에 사는 생명체들은 그들의 독을 무럭무럭 키우며 자라났다.
먹이 싸움, 자리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하고 지독한 독을 지니고 있어야 했기에, 독산 내부의 독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고, 그 독기들의 정수가 모이고 응축되고 강해지며 생긴 덩어리가 독의 정수 독정이었다.
당가인들 조차 그 지독한 독기 때문에 꺼리는 독의 정화 그 자체였다.
그 독정이 존재하는 곳이 산 중턱에서 조금 더 올라간 유난히 어두운 골짜기였고, 연천이 자랐던 작은 초막은 그 산의 정상 부근에 있었다.
아무도 얼씬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십삼 년 전, 묵직한 보자기를 든 당상만의 걸음은 느릿했다.
의형은 당상만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 의형이 뭘 먹기나 하는지 몸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잠은 잘 자는지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걸음을 끊을 수가 없었다.
멀리 의형이 사는 작은 초막이 보였다.
당상만은 묵직한 얼굴을 짐짓 밝게 바꾸고 걸음을 서둘렀다.
“응……?”
당상만은 예상 밖의 상황에 의아했다.
의형이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독산으로 온 이후, 당상만이 본 의형은 항상 명상 중이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먹고 자고 싸는 일은 최소화하고 명상에만 빠져 있었다.
이전의 의형이었다면, 명상수련이 무공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라 기대했겠지만 지금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걱정스러웠다.
그런 분이 웬일로 부엌에?
당상만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진한 약재 향이 코를 찔렀다.
“형님! 무얼 하고 계십니까?”
당상만이 반가운 얼굴로 말하며 의형 옆으로 다가갔다.
의형은 탕약기를 놓고 약재를 달이고 있었다.
“왔느냐?”
대답하는 의형의 얼굴은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상만은 이 상황이 의문스러웠다.
산으로 들어온 후 의형의 표정이 저리 밝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거의 살기를 포기하고 깊게 명상만 하던 의형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도 그랬지만, 저리 웃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 만인지 가물가물했다.
“좋은 일이 있습니까?”
의형에게 물었지만, 당상만은 스스로에게 이미 답을 하고 있었다.
‘독산에 홀로 틀어 박혀있는 노인네에게 좋은 일이 뭐가 있다고…….’
“…….”
의형은 답 없이 미소만 지어 보였다.
눈가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형님 드실 것과 입을 것을 좀 챙겨왔습니다.”
당상만이 주섬주섬 보자기를 풀어, 먹을거리를 부엌 한편에 올려두었다.
의형은 당상만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탕약기에 부채질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옷가지는 방에 두겠습니다.”
의형은 대답이 없었다.
당상만은 답을 기다리지 않고 부엌을 나와 자그마한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을 본 당상만의 동작이 딱 멈추었다.
가지고 온 것을 방 안으로 대충 밀어 넣고, 휘적대며 의형이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의형은 끓인 탕약을 면포에 넣어 꼭 짜고 있었다.
한쪽 팔로도 요령껏 잘하고 있었지만, 당상만의 눈에는 그것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형님! 방에… 웬 아이입니까?”
의형이 어린아이를 이리 위험한 곳에 데려왔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어인 변덕인지 제자를 키워보고 싶더구나.”
의형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당상만은 그런 의형을 의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의형이 살고 있는 오두막을 조금만 벗어나면 독초가 천지로 자라나 있고, 독충이 쏘아대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두막 주변으로 진을 설치해 두긴 했지만, 아이가 언제까지고 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까딱하다가는 아이의 목숨을 잃기에 십상이었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어린아이에게 너무 위험합니다. 제가 다른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중원 하늘 아래 이곳만큼 안전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냐? 그리고 저 아이는 괜찮을 것이니 그냥 두어도 된다.”
의형의 말에도 당상만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상만은 약사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의형을 따라 들었다.
의형은 의식이 없는 아이의 입으로 약을 흘려 넣었다.
당상만은 염려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의형은 축 늘어진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대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
당상만은 정말 오랜만에 사람의 감정을 보이는 의형을 말릴 수가 없었다.
독산에 온 이후로 의형은 죽은 듯이 살았다.
눈을 감고 움직임이 없는 의형을 볼 때면 정말 죽은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 의형이 미소를 보이고 아이를 향해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저 아이가 잘못되면 의형이 또 어찌 될지 안 봐도 뻔했다.
아이를 살리려면 이곳은 위험했다.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의형 말대로 의형에게 이곳보다 안전한 곳은 없겠지만, 아이는 아니었다.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탕약을 다 먹인, 의형이 흐뭇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보인다는 말씀입니까?”
당상만은 의식 없이 누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저 지저분하고 삐쩍 마른 아이일 뿐이었다.
“아이의 기운을 느껴보겠느냐?”
의형의 말에 당상만은 마지못해 아이의 몸에 손을 대고 작게 기운을 넣었다.
당상만이 다급히 아이의 손을 놓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밀어 넣은 당상만의 기운을 쇠약한 아이 몸속의 투명한 기가 순식간에 덮쳐 버렸던 것이다.
“이리… 이것이… 어린아이에게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당상만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내력이 지나치게 깨끗하고 강렬했다.
인위적으로 벌모세수라는 것을 해서 내력을 청소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내력은 그런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티끌만큼의 먼지 한 점 없이 부시도록 맑았다.
자그마한 탁기도 순식간에 덮쳐 정화 시켜버렸다.
“나도 신기하였다. 이 아이라면 이곳에서 지내도 되지 않겠느냐?”
“그것은 그렇지만… 정말 이곳이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른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산이 좋다 하시면 산을 알아보겠습니다. 처음 이곳에 모셔온 것은 상황이 워낙 다급하여 그리한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 있어 불편하느냐?”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형님과 이제 제자까지 있는데 이런 곳에 모셔두어서요. 그날… 저를 만나러 오시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너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일이 달랐을 뿐이지 결과는 같았을 게야, 오히려 너를 만나러 간 덕분에 네가 내 목숨을 구하지 않았느냐?”
의형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잔잔한 미소가 눈가를 떠나지 않았다.
“흐음…….”
당상만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버짐 낀 꼬질꼬질한 아이는 얼마나 못 먹고, 길바닥을 구르며 살았는지 한눈에 보였다.
저 파리하게 말라붙은 아이가 살기를 포기한 의형을 이리 바꾸어 놓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