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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50화 (50/230)

50화

연천이 집중력을 높여 가느다란 세맥으로 기운을 밀어 보냈다.

차고 맑은 기운이 세맥을 넓히며 어두운 것들을 깨끗이 씻어 내렸다.

미세하게 이어가던 당상만의 숨소리가 편안하게 변해갔다.

연천은 당상만의 몸을 꼼꼼히 살폈다.

작은 기운 하나하나를 재확인하며 깨끗한 기운을 돌렸다.

불편하게 굳어있던 당상만의 몸이 서서히 풀렸다.

연천은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당상만은 규칙적으로 숨을 쉬었고, 얼굴빛도 제 색깔로 돌아와 있었다.

연천이 당상만을 침상에 편히 눕혔다.

연천 앞에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당지상이 서 있었다.

“아우… 이게 어떻게…….”

당지상은 말을 잊지 못했다.

당가 가주인 당지상의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독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눈앞의 상황이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

연천은 작게 미소만 띠었다.

“고맙네, 아우. 고마워… 정말 고맙네…….”

정신을 차린 당지상이 연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제게는 숙부님이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연천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고맙네… 고마워…….”

당지상은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 말씀은 그만하십시오.”

당지상의 계속된 감사의 말에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래… 내 그만함세, 한데 아우! 대체 어찌한 겐가? 독에 대해서 당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당가의 가주일세, 내 어지간한 독과 해독 방법은 다 아네만 아우가 해독한 방법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러네.”

“그것이… 저도 잘 모릅니다.”

연천이 민망한 낯으로 말했다.

“몰라? 모르는 사람이 독정을 해독을 해?”

독에 대해 날고 긴다는 이들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한순간에 해독하고도 그 방법을 모른다?

연천의 표정으로 보건데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싶었다.

‘정말 모르고 해독을 했다는 말인가? 거 참…….’

“그저 제 기운이 독을 정화한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천을 살피는 당지상이었다.

* * *

팽호연과 걸화는 눈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을 보고도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음식에 독을 타는 일이야말로 흔하다 못해 발에 차이는 사건이었다.

사정을 해도 쫓아낼 때는 언제고, 다시 불러다 이리 융숭한 대접을 하는 건 뭔지…….

당가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이 불편한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팽호연은 당가에 부탁이 있고, 걸화는 연천이 당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꾸르르르르―

걸화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배를 쓱쓱 문지르던 걸화가 상위에 차려진 음식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잇! 몰라요, 난 그냥 먹을래요. 안 먹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요. 굶어 죽으나 독살되어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거 못 먹으면 내가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아요.”

걸화가 젓가락을 들고 눈앞의 두툼한 고기를 우악스럽게 입으로 쑤셔 넣었다

고기를 우물거리던 걸화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동작을 멈추었다.

“헉!!”

“왜, 왜 그러는가? 괜찮은가?”

일행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가 떠올랐다.

중.독.

콧구멍을 넓힌 걸화가 크게 외쳤다.

“음… 음… 오헛! 맛있어!! 너어무! 맛있어!”

“…….”

팽호연과 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크억… 컥…….”

걸화가 씹다만 고기를 튀기며 기침을 해댔다.

“…….”

팽호연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이건 중독이 맞다.

걸화가 급하게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우… 사레들려 죽을 뻔했네.”

그리고 다시 젓가락을 들어 고기 몇 점을 입에 쑤셔 넣었다.

팽호연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갈 것 같았다.

‘사람을 놀라게 해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지….’

걸화는 그러거나 말거나 고기만을 골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쫄쫄 굶다 배가 채워지니 기분이 좋은지, 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 우물거리면서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걸화를 보는 팽호연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리 불안한 상황에서 저리도 속 편하게 음식이 들어가는지 원.

걸화를 쳐다보며 신경질적으로 호흡을 하던 팽호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며칠을 내리 말을 달려온 몸은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당가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불려오면서 자라난 의심과 불안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는 훨씬 더했다.

먹고 몸도 정신도 회복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래, 어찌 보면 저 아이가 현명한 게야.’

걸화를 빤히 쳐다보던 팽호연도 슬그머니 젓가락을 들었다.

그를 따라 그의 호위 이백도 조심스레 먹기 시작했다.

음식은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맛 좋은 음식에 천천히 긴장이 풀렸다.

스르륵―

식사를 하던 방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일행은 다시금 신경을 곤두세우며 문으로 시선을 보냈다.

열린 문으로 연천과 당지상이 들어왔다.

“형님!!”

걸화가 벌떡 일어나 거칠게 연천에게 다가갔다.

연천의 몸이 휘청댔다.

“난 형님이 죽은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만날 나 버리고 혼자만 가고….”

걸화가 연천에게 붙어서 칭얼거렸다.

연천이 걸화를 보고 씩 웃었다.

“걱정한 것 치고는 잘 먹고 있었구나.”

손을 들어 걸화의 입가에 묻은 고기 기름을 닦아주며 말했다.

“히…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잖아요.”

걸화가 기름이 번들번들한 입으로 웃었다.

연천이 미소 걸린 얼굴로 걸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가의 가주 당지상이라고 합니다. 저희 총관이 손님들께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당지상이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하북 팽가의 팽호연입니다. 이리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당가 가주님께 급하게 부탁드릴 일이 있어 가문을 대신해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마음 급한 팽호연이 이때다 싶었는지 서둘러 본론을 이야기했다.

“말씀하십시오.”

당지상이 팽호연을 보고 말했다.

“제 누이가 중독되어 있습니다. 의원들도 중독되었다 할 뿐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예를 다해 말하는 팽호연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절실함이 배어났다.

그 마음은 당지상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중독되어 달포 가까이 의식이 없었으니 말이다.

“해독할 수 있는 자를 옆에 두고 먼 길을 돌아오셨구려, 아우가 당가의 누구보다 해독에 능하니 아우에게 부탁해 보시구려.”

당지상의 말에 팽호연이 연천을 쳐다보았다.

팽호연에게 먼저 입을 연 것은 연천이었다.

“…그런 일이 있으셨습니까? 저는 그저 당가에 부탁이 있다고 하여 동행을 하였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팽가로 출발을 하도록 합시다.”

“고맙소, 그대가 의원이었소?”

팽호연이 한층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연천이 의원이라면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키 크고 호리호리한 연천에게는 내력이나 공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공이 전무해 보이는 자가 당가의 총관에게 맞섰다?

가문이 빵빵하건, 가까운 지인이 유명하건, 다른 대단한 실력을 갖추었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꽤나 실력이 있는 의원이라면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의원은… 아닙니다.”

연천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팽호연의 물음은 물음이라기보다 확신에 찬 확인이었다.

그것에 반하는 답을 하려니 괜스레 미안해지는 연천이었다.

“에?”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고 하니, 꽤나 당황한 팽호연이었다.

“그, 그럼? 어찌 해독을……?”

팽호연이 더듬더듬 물었다.

“어쩌다 보니…….”

연천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뒷말을 흐렸다.

“…….”

팽호연은 더 이상 뭐라 묻지 못했다.

연천의 대답은 조금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팽호연은 당가 가주 당지상을 쳐다보았다.

그는 연천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연천 말고 다른 당가 사람과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그 말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보아하니 연천 덕분에 일이 잘 풀려 가주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듯싶었다.

여기서 연천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가는 당가 가주와도 연천과도 척을 질 수가 있었다.

팽호연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그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으니… 믿음이 조금도 안 가는 연천을 데리고 팽가로 돌아갈 수밖에.

‘차라리 의원이라고 했더라면 마음이 이렇게 심란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팽호연은 아무런 표정도 없는 연천을 쳐다보며 속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일행의 식사는 당지상과 연천이 합류하여 계속되었다.

팽호연의 입에는 훌륭한 음식이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끌하고 불편했다.

그것을 내색하지 못했기에 겉으로 보기에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편안했다.

그래, 이런 분위기에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이지, 암.

“그런데 왜 저희 형님을 아우라고 칭하십니까?”

걸화가 우물거리며 입 안을 가득 채운 음식을 삼키고 물었다.

“아우의 스승님과 전대 가주이신 저의 아버님께서는 의형제지간이셨습니다. 제가 아우의 스승님을 백부라 불렀으니 아우에게는 아우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지요.”

당지상의 말에 팽호연의 눈이 커졌다.

“그럼 대협이 말하는 당가에서 일한다던 숙부가 전대 가주님이 맞군요.”

팽호연의 말에 당지상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아우가 아버님을 당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했습니까? 하하하하, 참으로 아우답구먼.”

연천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숙부님께서 본인은 당가를 위해 일한다고 하시어서 저는 그저 그런 줄로만 알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팽호연은 없던 신뢰마저 씨가 마르도록 사라져 버렸다.

연천을 데리고 팽가로 가느니,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킥킥… 우리 형님이 저리 멀쩡해 보여도 세상 물정에 한참이나 어둡습니다. 그럼 우리 형님께 형님이면 제게도 형님 아닙니까? 저도 가주님을 형님이라 불러도 됩니까?”

걸화의 말에 당지상이 웃었다.

“그리되는구나, 그럼 어디 불러보아라.”

“형님!”

걸화가 넉살 좋게 당지상을 불렀다.

속 편한 세 사람을 보는 팽호연의 속만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리며 무사 하나가 가벼운 걸음으로 들어와 당지상의 귀에 뭐라고 말을 전했고 이어서 당지상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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