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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49화 (49/230)

49화

【숙부를 만나다 (上)】

걸화와 팽호연 일행은 당가로 들어서면서 불안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들을 안내하는 이의 표정으로 봐서, 적대적인 감정은 아닌 듯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당가는 독을 다스리고 사용하는 가문이었고, 독은 일반적인 무공과는 달랐다.

상대의 눈을 속이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당가는 정파임에도 사악하다 비겁하다는 인상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독은 위협과 훈계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개는 사망이 그 끝이었다.

곱게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에 당해 피부가 푸르뎅뎅하게 변한 채, 검은 피를 토하며 발악하는 사람을 보면 그게 악인이건 아니건 인상이 찌푸려졌다.

상대편이 되면 골치 아픈 문파이고 실제로 정파이기에 정파로 인정하는 척할 뿐인지, 정파 사이에서도 당가는 사파 못지않게 간사하고 악독하다 여겨지고 있었다.

걸화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것들이 우리 형님을 어찌하기만 했어 봐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복수는 한다.’

짱돌 하나를 꽉 그러쥐며 다짐하는 걸화였다.

팽호연은 시종이 안내한 전각에 앉아있으면서도 좌불안석이었다.

당가에서 마음이 변해 팽가를 도와주기로 정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인 일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도움은 고사하고, 처참한 꼴로 죽어 나갈 수도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독에 당한 시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팽호연은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비참한 몰골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팽호연 일행과 걸화가 있는 방으로 당가의 시녀가 들어왔다.

“목욕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곤하실 텐데 우선 씻으시지요. 씻고 나오시면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시녀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시녀의 예의 바른 태도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곳은 당가였다.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 형님은 어디 있소?”

걸화가 시녀에게 물으면서 한 손에 쥐고 있는 짱돌에 힘을 주었다.

여차하면 시녀의 머리통을 깨고 달려나가 연천을 찾을 심산이었다.

“대협께서는 가주님과 말씀 나누시는 중입니다. 일이 끝나는 대로 이리로 모시겠습니다. 그동안 여장을 풀고 계십시오.”

시녀가 깍듯하게 말했다.

걸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시녀를 훑어보았다.

어디서 본 것을 흉내 내어보았자, 시녀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걸화와 팽호연 일행은 쭈뼛거리며 시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연천은 깨끗이 씻고 당가에서 내어준 옷을 입고 있었다.

당가에서 준비해 준 고급 의복은 연천에게 썩 어울렸다.

연천과 당가의 가주 당지상이 마주 앉았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한 아우에게 이런 꼴을 보여 미안하네.”

당지상이 말했다.

구 년 전, 당지상은 연천을 아우라 불렀었다.

“아닙니다, 숙부님이 걱정되었다고는 하나 저도 무례했습니다.”

“이해해주니 고맙네, 백부님이 돌아가시고 아우는 어찌 지내고 있는가?”

“무림을 돌아보고 싶어, 여행 중입니다.”

“그리하였나? 자네 나이에는 그것 또한 큰 경험이 될 게야, 그… 내가…….”

당지상이 말끝을 흐렸다.

“…….”

연천은 조용히 당지상이 다음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내가 아우에게 의논하고 싶은 것은… 아버님이 독정을 연구하다 중독되시었네, 혈도를 막아 독이 퍼지지 못하게 하긴 하였으나 그리 오래 버티시지는 못할 걸세. 아버님의 해독을 부탁하고자 백부님께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나?”

당지상이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연천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가? 자네가 백부님께 해독하는 방법을 배웠나?”

당지상의 눈이 빛났다.

“아닙니다.”

연천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당지상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럼 어찌하겠다는 겐가?”

“구 년 전, 가주님을 해독한 것은 저였습니다. 당시 스승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만 해독은 제가 하였습니다.”

연천은 구 년 전, 그날을 기억한다.

다급한 숙부의 얼굴, 그때 말을 처음 탔었다.

서둘러 도착한 당가.

뻣뻣하게 굳은 당지상의 온몸은 검붉은 색이었다.

“도깨비…….”

당지상을 본 어린 연천의 첫마디였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도깨비 같았다.

무서워서 스승님의 등 뒤로 숨었었다.

스승님이 팔을 들어 토닥여주었다.

그 따뜻함, 편안함.

스승님은 몸을 낮추어 연천과 눈을 맞추었다.

“연천아! 이분은 숙부의 아들이다. 독 때문에 몸이 저리되었단다. 해독을 해야 해.”

어린 연천은 스승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헌데 해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단다.”

스승님의 말에 겁이 났다.

해독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깨비 옆에 가기도 싫었다.

스승님이 잔잔하게 웃으며 연천을 도닥였다.

“치료하면 괜찮아질 것이란다. 계속 저리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 가엾지 않느냐?”

“…….”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는 건 어떻겠느냐? 내가 바로 옆에 있으니 무서워할 것 없다.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해보겠느냐?”

스승님의 깊은 눈동자가 연천의 맑은 눈은 앞에 있었다.

연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옆에 계시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깨비도 아닌데 저런 모습으로 지내야 하는 게 가엾기도 했다.

스승님이 주름 잡힌 잔잔한 미소를 보냈다.

연천도 눈을 반달로 접어서 환하게 웃었다.

“무어? 자네가?”

당지상이 화들짝 놀랬다.

해독은 용독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독의 정수라 불리는 당가에서 평생 독을 연구한 이들에게도 해독은 쉽지 않았다.

각각의 독마다 사용하는 재료가 달랐고, 재료의 배합률이 달랐고 제조 방법이 달랐다.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해도 해독제를 제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자신이 만들어낸 독에 대해서도 해독약을 함께 만드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니 해독제 없는 독 수천, 수만이 세상에 널려있었다.

그런데 난생처음 본 독을 어린아이가 해독했다?

독에 대해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의미였다.

참고 들어주기도 고약한 허풍이었다.

백부의 제자가 아니라면 욕 한 바가지를 끌어 부어주고, 내쫓아버릴 사기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당지상은 작게 비치던 한 줄기 빛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저는 본디 내공과 기운이 지나치게 맑다고 합니다. 저도 어찌하여 그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승님이 저를 주울 때부터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을 타지 않고 해독도 가능합니다.”

당지상의 불안한 얼굴을 보고 연천 나름대로 해독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당지상의 표정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당지상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버지 당상만의 혈도를 막아놓은 지 달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독이 퍼지기 전에 혈도를 막은 자리에 피가 돌지 않아 몸이 썩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는 연천의 낯은 교만함도, 불손함도 섞여 있지 않았다.

“흐음…….”

당지상이 침음을 흘렸다.

연천에게 맡겨 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우… 그럼 부탁함세.”

당지상이 묵직한 얼굴로 말했다.

“네, 가주님.”

“가주님이라니? 형님이라고 부르게.”

당지상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 형님…….”

연천은 당지상을 따라 당가의 깊고 은밀한 지하 굴로 향했다.

지하 굴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았다.

공기의 흐름조차 멈춘 굴은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했다.

혈도를 막아도 최대한 몸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한 당가만의 방법이었다.

넓은 침상에 검붉은 색이 된 당상만이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아있었다.

“숙부님!”

연천은 당상만을 향해 다가갔지만, 주먹을 쥐고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혹여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 건드렸다가 막아놓은 혈도가 열리거나, 다른 혈이 막히게 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었다.

“저리 계신지 달포가 다 되어가네, 해독하지 않으면 얼마 더 견디지 못하실 걸세.”

말을 하는 당지상의 가슴은 답답했다.

아버지가 저리되고 달포 동안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당가에서도 해독에 능하다는 이들은 다 불러 모으고, 당가 서고를 모조리 헤집어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길어야 사나흘이면 혈도를 막아놓은 곳이 썩기 시작할 것이다.

당지상은 이미 아버지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연천은 딱 봐도 독에 대해 무지했다.

해독에 성공할 가능성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어찌 되었든 아버지를 숙부라고 칭하는 아이이니 그도 마지막 인사를 할 권리는 있었다.

그리고 정말 작은 가능성이지만, 백부가 해독하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고 배웠을 수도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리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었다.

연천이 천천히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상만의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 전체에 맑은 기운을 돌렸다.

조심스럽게 당상만의 등에 손을 올려 자신의 기운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연천의 깨끗한 기운을 피해 어두운 것들이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연천은 기운을 더 밀어 넣었다.

시리도록 깨끗하고, 투명하게 맑은 기운이 당상만의 굵은 맥을 타고 돌았다.

천천히 돌던 기운이 힘을 내어 강하게 당상만의 탁기를 덮쳤다.

버둥대던 검은 기운이 연천의 기에 의해 정화되기 시작했다.

시커먼 독이 부시게 깨끗한 기운에 동화되어 갔다.

당상만의 피부에 검붉은 색이 서서히 걷혀갔다.

불안한 얼굴로 당상만과 연천을 바라보던 당지상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독에 능한 자들 수십이 머리를 맞대어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가의 서고를 다 뒤집어도… 아! 설마?

에이… 그것은 신의가 평생에 한 번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시술을 받은 자만이 가능한 것이라 했다.

백부께 해독하는 방법을 배운 게지 그런 게지.

그렇다 해도 처음 본 독을 해독하는 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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