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당시월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연천을 쳐다보았다.
조만간 사지에 힘이 풀려, 바닥과 조우하게 될 애송이를.
“…….”
연천은 당시월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숙부가 잘 계시는지 한 번 보려 했다가 뒤죽박죽된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당시월이 자신을 쫓아내려고 할수록 숙부가 걱정되고, 그분이 안녕하신지 확인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강하게 일었다.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뭔가… 수상해.’
“…….”
여유 있던 당시월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온몸에 힘이 빠져서 제대로 서 있는 것은 고사하고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에 너부러져야 마땅한데, 저놈은 어찌 된 것인지 여전히 꼿꼿이 서서 자신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독은 제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당시월의 의중을 눈치챈, 연천이 침착하게 설명을 했다.
당시월은 연천의 그 반듯한 말이 불쾌하게만 들렸다.
‘독이 영향을 주지 못한다니!!’
그 말이 자신을 아니, 독에 대한 자신의 실력과 독의 정수인 당가를 무시하는 것 같아 몹시 언짢았다.
“자신만만하군, 더 이상 장난은 그만두지. 당가의 독 맛을 제대로 보여주마, 덤벼라.”
당시월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숙부님이 몸담고 있는 곳입니다. 조카 된 자가 어찌 이곳에서 행패를 부릴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예의 바르고 담담한 목소리에 당시월이 얼굴을 확 구겼다.
‘하! 제깟 놈이 봐주기라도 한다는 게야?’
당시월은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리 사리 분별을 못 해서야, 그 철없음이 너의 명을 재촉하고 있건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입을 나불거리다니!”
그는 자신이 당가의 자손인 것이 만족스러웠다.
독을 다루는 것이 적성에 맞기도 했지만, 독에 당해 괴로워하며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이 살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당가인으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자, 즐거움이었다.
그자의 생명은 해독제를 가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니.
자신에게 저항하는 자의 생명줄을 쥐고,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시월이 가장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꼭 신이 된 것만 같았기에…….
헌데 어린 애송이 놈이 그런 독이 뭐가 어쩌고 어째?
당가의 독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
연천의 얼굴도 불편하게 굳어갔다.
그저 숙부의 얼굴을 한번 보고 가려고 했다.
숙부님이 잘 계신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지, 당가 총관의 신경을 거스르려는 마음은 없었다.
연천의 의도와 다르게, 안 좋은 방향으로 일이 커지고 있었다.
당시월에게 예의 바르게 사실을 말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의 얼굴을 보건데 일이 수습될 것 같지가 않았다.
숙부에 대한 걱정이 짙어져만 갔다.
당시월은 소매에 손을 넣어 작은 녹색 호리병을 꺼냈다.
당시월의 뒤에 도열해 있던 무인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시월이 호리병의 마개를 열어 익숙하게 가루를 흩뿌렸다.
무인들이 피독주를 입에 물고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당가 사람들은 독을 자주 접하고 많은 해독제를 복용하면서 자라므로 일반인보다 중독이 어렵다.
그런 당가의 무인들도 조심하는 독인 만큼 효과가 확실한 것이었다.
연천의 주위로 아릿한 노란 가루가 흩날렸다.
황색의 고운 입자가 날리며 봄날 만개한 꽃향기가 기분 좋게 풍겼다.
점차 향이 진해지더니, 이윽고 숨이 막히도록 지독하게 강한 냄새가 퍼졌다.
당시월이 꺼낸 호리병에 든 것은 당가의 산에서 재배되는 독초인 청사두초를 변형시킨 것이었다.
무성생식이 가능한 식물의 포자는, 코와 입으로 유입되어 몸속 수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착상해서 뿌리를 내리고 서서히 발아했다.
독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처음에는 코와 목이 간지럽고 불편해서, 잔기침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려대며 토할 듯한 기침을 쏟아낸다.
시간이 더 흐르면 몸 곳곳에 자리 잡은 청사두초의 포자가 크기를 키워가면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꺽꺽 소리를 내며 겨우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결국, 산소가 통하지 않는 몸은 푸르게 변해 질식해 죽고 만다.
청사두초는 몸에서 자라 피독자의 숨을 완전히 끊어놓는 데 시간이 필요한 독이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의 몸이 서서히 잠식되어 가며, 죽음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두려움을 충분히 선사하는 독이기도 했다.
해독제를 가지고 사람의 감정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당시월을 아주 흡족하게 만들었다.
해독제의 사용이 늦어지면 평생 힘겹게 숨을 쉬며 살아가겠지만, 당가 총관의 성질을 건드리고 그 정도로 끝내는 것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월의 표정이 느긋해지고, 행동이 여유로워졌다.
이 독에 당해 괴로워하지 않는 이는 평생 동안 보지 못했으니.
시간이 지나도 연천은 황색의 고운 바람 속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잔기침을 내뱉지도, 꺽꺽거리며 힘겹게 호흡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월의 미간이 구겨졌다.
화가 난 당시월의 손가락질에 무사들이 연천을 향해 비도를 날렸다.
연천은 황색의 가루 속에서 춤을 추듯 가볍게, 날아오는 비도를 피했다.
연천이 피한 비도들이 반대편 벽에 퍽퍽 소리를 내며 박혔다.
당시월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당시월에게 연천은 더 이상 당가 총관의 명을 어긴 무례한 손님이 아니었다.
자신과 당가를 무시한 찢어 죽일 놈이었다.
끄드득―
분노에 찬 당시월의 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덜컹―
당시월과 무사들의 뒤편에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었던 인영이 뒤로 물러나며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어릴 때부터 독을 주무르며 자란 당가의 무인들도 꺼리는 가루 때문이었다.
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고운 입자들이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손님을 맞는 응접실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오!”
문 앞에 선 이가 당시월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현 당가의 가주 당지상이었다.
당시월이 당지상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이 자가 태상가주님을 찾으며, 자신이 그분의 조카라고 합니다. 보아하니 태상가주님이 몸이 불편한 것을 알고 찾아온 무뢰배가 틀림없습니다. 살려서 보내서는 안 됩니다.”
당지상은 당시월에게 대꾸하지 않고, 연천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색 가루 속에 흐릿한 인영만 보일 뿐이었다.
넓게 퍼진 가루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연천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대가 아버님을 찾는다고? 나는 우리 아버지의 조카를 모두 알고 있소. 그중 그대 같은 사람은 없소!”
당지상의 단호한 말투에 당시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연천이 천천히 당지상에게 다가갔다.
무사들은 당장이라도 연천을 향해 출수할 자세를 취했다.
연천이 당지상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포권지례를 하고는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지상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를 아시오?”
“네, 십 년 전쯤 전에 사부님과 함께 이곳에 와서 뵈었습니다.”
“나를?”
“네!”
“미안하네만 나는 자네를 본 기억이 없네.”
당지상의 말에 당시월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제가 사부님과 함께 찾아뵈었을 때 중독이 되어있었습니다. 해독한 후 저를 보셨을 텐데… 기억이 없습니까?”
연천의 말에 당지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
당지상이 연천의 얼굴을 뚫어버릴 듯 쳐다보았다.
정확히 구 년 전 당지상은 중독이 되었다.
당가에서 독을 연구하다 중독되는 일은 흔했고, 그러다 죽는 일도 잦았다.
다행히 당지상은 해독이 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버지는 자신을 살렸다는 노인을 소개했다.
외팔에 머리가 하얗고 얼굴 전체가 굵은 주름으로 뒤덮인 노인이었다.
노인이 아버지의 의형이라 은인을 백부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백부 옆에 어린 소년이 있었다.
양 볼에 설탕을 잔뜩 묻히고, 입 안 가득 당과를 넣고 웃던 소년.
순한 눈매가 웃을 때 반달을 그려내, 갓난아기 같은 미소가 귀여운 소년이었다.
“자… 자네가 그럼 그때의 그… 어린 소년?”
당지상은 당황함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제 나이가… 열 살이었나? 어린 소년이었군요.”
연천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당지상은 그때와 같이 반달이 된 눈으로 웃는, 연천의 순한 얼굴을 보고 탄식을 흘렸다.
“이 사람! 맞구먼.”
당지상이 반갑게 말을 이었다.
“내 그렇지 않아도 백부님께 연통할 방법을 모색 중이었네, 백부님은 어디 계신가?”
“스승님은… 몇 달 전… 영면에 드셨습니다.”
연천이 무거운 얼굴로 답했다.
“하… 그리되었나…….”
당지상이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 오늘 일은 사과함세, 자네와 급히 의논할 일이 있네. 내 방으로 가세나.”
“음… 제 일행이 쫓겨났습니다. 아직 당가 근처에 있을 것인데 저를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가? 알겠네, 내 그들을 객방으로 모시겠네. 자네는 먼저 좀 씻는 것이 좋겠어.”
당지상이 연천의 머리와 어깨에 소복이 쌓인 노란 가루를 보며 말했다.
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지상은 자리를 뜨기 전, 당시월을 쏘아보았다.
“총관은 어찌 당가를 찾은 손님께 이런 무례를 범하는가? 아우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할 뻔했나!!”
“…….”
당상만의 질책에 당시월이 고개를 숙였다.
태상가주께서 위독한 때에 찾아와서 그를 숙부라고 하는 사기꾼놈을 응징하는 것은 당가 총관으로서 합당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놈이 자신과 당가의 독을 모욕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시월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노란 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연천의 신이 눈에 들어왔다.
세게 쥔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지만, 당시월은 묵묵히 노랗게 변해버린 신만 노려보았다.
당시월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네, 내가 오해했네.”
고저 없는 느릿한 말투는 텅 빈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숙부님이 걱정된다고는 하나 저 또한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반듯하게 사과하는, 연천을 바라보는 당시월의 눈동자는 서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