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으하하하하하!”
걸화는 입을 한껏 벌리고 웃으면서 말을 달렸다.
입 안에 벌레가 들어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좀 쉬었다 가자!! 걸아야! 내 말 안 들리느냐? 앞에 보이는 식당에서 쉬었다 가자고!! 멈추라고! 쉬자고오!”
연천이 걸화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
걸화는 대답 없이 새치름하게 연천을 흘기더니, 식당 앞에 말을 세웠다.
이곳이 전장도 아니고 시각이 다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밥 먹자는 말 한번 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발견한 식당이었다.
이곳을 지나면 식당이 없을 듯싶었다.
연천 혼자라면 점심 한 끼 아니, 하루 끼니 정도는 가뿐히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걸화는 달랐다.
한 끼 건너뛰면, 연천을 잡아먹을 듯이 온갖 성질과 짜증을 부렸다.
연천은 아무것도 없는 숲길에서 배고픈 걸화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억지로 잡아 세운 것이었다.
귀찮아도 꼬박꼬박 끼니를 챙기고, 할 수 있으면 간식까지 입에 물려주는 것이 자신이 편한 길이라는 것을 연천은 이제 안다.
“에이… 싫은데 계속 말만 타고 싶은데…….”
걸화가 마지못해 말해서 내렸다.
“점심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연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걸화의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꾸르르르르르…….
연천은 언제나 신기했다.
밥때가 되면 어찌 알고 뱃속에서 저리 소리를 내어주는지.
“헤헤… 그럼 얼른 먹고 가요!”
걸화가 배를 문지르며 멋쩍게 웃었다.
“그래, 그러자.”
연천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선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연천이 그러거나 말거나 걸화는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연천과 걸화는 서둘러 말을 매어놓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급할 일이 하나도 없지만, 말 타는데 재미가 들린 걸화가 연천을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국수 두 그릇… 아니, 네 그릇요!”
걸화가 주문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걸화를 뒤따르던 연천이 웃었다.
“웬일로 고기가 아니고 국수를 시켰느냐?”
“국수가 빨리 먹기 좋잖아요.”
걸화가 흥얼거리듯 답했다.
“그래서 네 그릇이나 시켰느냐?”
연천은 늘 보면서도 걸화의 먹성이 신기했다.
쬐끄만한 몸뚱이에 어찌 그리도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지….
“고기도 아니고 국수는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단 말이에요, 세 그릇은 내 것이에요.”
걸화가 내 국수에 눈독 들이지 말라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걸화의 술 취한 모습을 보았기에, 술을 제외하고는 음식을 넉넉히 사주건만 걸화는 늘 식탐을 부렸다.
“대협!”
걸화와 투닥투닥하는 사이 누군가 연천을 향해 다가왔다.
어제저녁 객잔에서 보았던 팽호연이었다.
연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또 뵙는군요. 이곳을 지나는 길인가 봅니다.”
연천의 말에 팽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대협도 그런가 보오.”
“그렇습니다. 그럼 식사 잘하고 가십시오.”
“대협도 점심 잘 드시오.”
팽호연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 다른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가 탁자 위에 올려졌다.
걸화는 국수 세 그릇을 자기 앞으로 당겨 놓고는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수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아! 빨리 가요! 빨리이!”
국수 세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운 걸화는 또 연천을 재촉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체념한 연천은 걸화를 따라 서둘러 말에 올라탔다.
“이리얏!! 아하하하! 신난다~ 야호!”
걸화가 소리를 지르며 박차를 가해 달려나갔다.
연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화의 뒤를 따랐다.
걸화의 말이 날리는 흙먼지가 연천과 그의 말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연천은 익숙하게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 * *
“왜 밤에는 말 타면 안 돼요?”
주변이 어둑했다. 외딴곳에 자리 잡은 객잔 입구에는 뿌연 등불이 밝혀져 있었고 흐릿한 불빛에 비친 걸화는 말고삐를 꼭 쥐고 있었다.
“앞이 안 보이질 않느냐?”
연천은 말고삐를 내놓으라고 손짓했다.
“에이… 나는 잘 보이는데…….”
걸화가 또 우겨댔다.
“이 녀석아! 위험하다!”
“안 위험하게 잘 탈 수 있는데….”
걸화가 연천의 눈치를 보며 작게 말했다.
“…….”
연천은 대꾸하지 않고 묵직한 눈으로 걸화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먹고 또 가면 안 되죠?”
걸화가 샐샐 웃으며 물었다.
그 웃음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담겨있었다.
“안 돼!”
연천이 단호하게 답했다.
“치이… 그럼 내일 아침에 진짜 진짜 일찍 일어나서 가요. 난 하루 종일 말만 타고 싶어요.”
걸화는 말을 타는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말고삐를 점소이에게 넘겼다.
점소이가 말을 마굿간에 넣는 것을 물끄러미 보는 걸화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듬뿍 담겨있었다.
미련이 남아 입맛을 쩝쩝 다시던 걸화는 객잔으로 쏙 들어갔다.
“저 아이는 어찌… 쯧쯧…….”
연천이 혀를 끌끌 차며 걸화를 따라 들어갔다.
“아…….”
연천은 객잔 일 층에 앉아있는 팽호연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팽호연도 연천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정도로 만난 것을 보면 우리가 인연인가 봅니다.”
팽호연의 말에 연천도 수긍했다.
“아직 음식을 주문하기 전인데 함께 식사하시겠소?”
팽호연의 제안에 연천이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연천과 걸화, 팽호연과 그의 호위 이백은 같은 탁자에 앉아있었다.
쩝쩝 쩝쩝… 꾸울꺽… 짭짭짭…….
그들의 탁자에는 요란하게 음식 씹는 소리가 울렸다.
저녁도 먹지 않고 계속 말을 타고 가자고 우겨대던 걸화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적거리며 고기를 씹어대는 소리였다.
팽호연은 자신 앞의 음식을 뒤적일 뿐 영 먹지 못했고, 이백과 연천은 조용히 식사했다.
“대협, 어디로 가는 길이셨소?”
팽호연이 음식을 깨작이다 물었다.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한 사람이 자신이니 뭐라도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지만, 그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우리는 사천의 성도로 가는 길입니다.”
연천이 답했다.
“그렇구려, 우리도 사천에 가는 길이오. 어쩐지 계속 마주친다 했소. 사천에 도착할 때까지 자주 보겠구먼, 사천에는 무슨 일로 가시오?”
“저희는 그저 무림의 소문을 따라 떠돌고 있습니다. 영친왕 성에 귀한 검이 들어 왔다 하여 구경이나 할 수 있을까 하고 가는 길입니다. 대협께서는 사천에 무슨 일로 가십니까?”
“나는 당가에 부탁이 있어 가는 길이오.”
“아! 당가 말씀이십니까? 아… 사천당가가 사천에 있었죠?”
팽호연의 말에 연천은 숙부가 떠올랐다.
사천 근처를 지나가면 꼭 들르라고 했었다.
사천 인근을 지날 일이 없어도 시간 내서 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었다.
“…….”
팽호연은 연천의 멍청한 물음에 그저 연천을 쳐다볼 뿐이었다.
사천당가가 사천에 있냐고 묻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저 진지한 물음에 진지하게 답을 해줘야 하는지 마는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제 숙부 되시는 분이 사천당가에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소? 그럼 숙부께서 당가에 어르신들을 잘 아시겠소? 내가 당가에 부탁이 있는 참이라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네만….”
내내 묵직하던 팽호연의 얼굴이 펴지는 듯싶었다.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숙부님을 만나면 물어보지요. 괜찮으시다면 지나는 길이니 동행을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연천은 이번에 숙부를 찾아뵈어야겠다 싶었다.
일부러 찾아오라고까지 했는데, 사천으로 가면서 사천당가에 계시는 숙부를 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부탁할 참이었소.”
기운 없던 팽호연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북 팽가는 당가와 서로 적대시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왕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문의 이름이나 아는 정도, 딱 그만큼이었다.
부탁이 있어 가면서도 당가에서 거절할까 봐 내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당가와 인연이 있는 연천을 만난 것이다.
다행이다 싶으면서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더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일 함께 출발합시다.”
연천의 끄덕임에 팽호연의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연천의 얼굴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겠다는 것 같기도 했다.
팽호연이 그리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연천이 팽호연에게 호의적인 것은 확실했다.
“내일 일찍 가요! 일찍! 일찍! 일찍!!”
접시에 코를 박고 있던 걸화가 고개를 들고 촐랑대며 말했다.
입에서 씹다만 고기 조각이 탁자 위로 튀었다.
“걸아야! 음식이 튀지 않느냐? 예의를 지켜야지! 죄송합니다. 아우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걸화를 야단하던 연천이 팽호연과 이백에게 사과했다.
“아니오, 아니오. 괜찮소.”
씹던 고기가 튀건, 먹다 만 밥풀이 날라 오건 팽호연은 정말 괜찮았다.
오히려 아침 일찍 서두르자고 하는 걸화가 고마웠다.
연천의 말에 걸화가 입을 삐죽이다, 고기 한 덩어리를 입에 쑤셔 넣었다.
일행은 아침 일찍부터 말을 달렸다.
팽호연은 시일이 급한 듯했고, 연천과 걸화는… 걸화의 마음이 급했다. 그저 말을 타고 싶어서.
잠깐씩 휴식을 취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속력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촌각을 다툴 정도로 다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걸화라고 착각할 정도로 선두에서 질주했다.
연천 일행은 며칠을 말을 달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당가에 도착했다.
당가의 위사들은 해가 진 밤에 약속도 없이 찾아온 이들에게 이는 경계심을 감추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형편없는 몰골을 가진 이들이지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어떻게 오시었소?”
몰골과 상관없이 당가의 귀한 손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림에서는 외관과 그 사람의 실제가 다른 경우가 허다했으니.
“여기서 일하시는 분 중에 당상만이라는 분을 찾아왔소.”
앞으로 나선 연천이 예의 바르게 답했다.
“뭐… 뭐? 누구요?”
위사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