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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39화 (39/230)

39화

【하~ 이런 효녀를 봤나……】

걸화와 연천은 백화루의 정문을 나서지 못했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백화루 밖이건만,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대협! 소녀는 대협께 더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간밤에는 대협께서 오랫동안 상처받은 소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지요. 소녀는 죽을 때까지 대협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은월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간밤에 뭘 했기에? 뭘 했기에 은혜를 입고, 뭘 어루만져 줘? 이씨! 저 변태 같은!’

걸화가 더 할 수 없이 찢어진 눈으로 연천을 흘겨보았다.

“내 한 것도 없는데 그리 생각하여 주어 고맙소.”

연천이 사람을 편하게 하는 미소로 말했다.

“대협! 이것은 소녀가 수를 놓은 것입니다. 마다하지 마시고 받아주셔요.”

은월이 고운 원앙 두 마리가 수 놓인 전낭을 내밀었다.

전낭이 제법 묵직했다.

평소가 걸화라면 웬 떡이냐 싶어 달려들어 받았겠지만, 지금은 그 돈을 받지 말았으면 싶었다.

그 돈을 받았다가는 아예 백화루에 발목이 묶일 것 같아서.

“소저… 내 여비는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소저의 마음은 고맙소.”

연천이 미소를 담아 말했다.

“소녀의 마음입니다. 이것마저 거절하시면 대협께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는 소녀의 마음은 애달프기 그지없습니다.”

은월이 절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 받겠다잖아, 왜 돈을 못 줘서 안달이야? 살다 살다 돈 달라는 기녀는 들어봤어도 돈 준다는 기녀는 첨 보네.’

걸화가 뚱한 얼굴로 은월을 쳐다보았다.

은월이 연천의 손을 잡아끌어 그의 손바닥 위에 전낭을 올리고 그대로 연천의 손을 꼭 잡았다.

‘전낭을 줬으면 손을 놔! 놓으라고! 저… 저… 웃기는 기녀일세, 그만 손을 놓으라고!’

은월은 잡은 연천의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근처에 오시면 백화루에 꼭 들려주시어요. 소녀를 잊지 마시고 꼭 오시어요.”

은월이 꼭 오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하며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연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연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건강하시오.”

연천이 작별의 인사를 했다.

“잘 쉬었다 가요.”

걸화도 냉큼 인사했다.

‘이제 그만 손을 놓으라고! 우리 갈 거라고!’

걸화의 마음과 다르게 은월은 나머지 손으로 연천의 다른 손도 잡았다.

‘아이… 진짜… 고만 좀 하자아!’

걸화가 도끼눈을 뜨고 맞잡은 손을 째려보았다.

“대협, 건강하시어요. 소녀는 매일 대협께서 무탈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소.”

“빨리 가요, 늦겠어요”

보다 못한 걸화가 재촉했다.

급하게 갈 곳도 없고 늦을 곳은 더더욱 없건만.

“가야겠소, 잘 쉬었다 가오.”

연천의 말에 은월이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연천에게 절을 했다.

연천이 은월의 양쪽 어깨를 잡고 일으켜,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맙소.”

연천이 은월의 어깨를 놓고 돌아섰다.

은월이 연천의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연천과 걸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후에도 은월은 오랫동안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 * *

“잠깐만 들렀다가 가요오.”

걸화가 몸을 흔들며 칭얼댔다.

“…….”

연천은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걸었다.

“며칠이 걸릴 텐데 계속 걸어갈 거예요? 어차피 어디서든 묵어야 하는데 동정호 근처에서 묵으면 되잖아요!”

걸화는 나름대로 아주 논리적으로 말을 했단 생각에 뿌듯했다.

“동정호와 성도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연천이 간단하게 반박했다.

“형님은 뭐 하러 무림을 나왔어요?”

걸화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거야… 궁금한 것도 있고 혼자 있기에는 적적하기도 하고.”

연천은 무림행을 떠나기를 결심했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형님이 잘 모르나 본데 눈에 보이는 딱 한길로 간다고 해서 형님이 알려고 하는 걸 알 수가 없다구요. 이왕 무림을 나왔으니 돌아볼 수 있는 곳은 다 돌아봐야죠. 그러다 보면 형님이 알고자 하는 것들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니깐요, 그리고…….”

걸화가 팔을 흔들어가며 열변을 토했다.

굵은 침방울이 튀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가자. 가!”

결국 연천이 항복했다.

연천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걸화는 연천이 승낙할 때까지 이 짓 저 짓을 해대며 귀찮게 굴 것이다.

연천이 본 걸화는 그랬다.

포기라는 것과는 거리가 무진장 먼 아이였다.

“진짜죠? 동정호 가는 거예요!”

걸화가 팔딱팔딱 뛰며 좋아했다.

“그래.”

연천이 답했다.

“우와!! 나도 드디어 동정호에 가는구나!”

무림 서적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곳!

무림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무림인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른다는 그곳!

그곳, 동정호에 간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입이 자꾸 옆으로 벌어졌다.

“왜 그리 동정호를 가려고 하는 거냐?”

하루 종일을 졸라대는 이유가 궁금했다.

“형님! 무릇 무림인이 되었으면 동정호로 가야죠. 강서의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객잔에서 동정호의 대물 잉어찜과 강서에서 나는 복분자로 만든 홍주를 마셔야 하는 법!”

걸화를 말없이 쳐다보던 연천은 몸을 뒤로 돌렸다.

“…아니다, 가지 말자.”

“벌써 가겠다고 했어요.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 퉤퉤퉤!”

걸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촐랑대며 앞장섰다.

걸화와 함께 하는 연천의 무림행은 완전히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해야만 하는 이 굴곡진 무림행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걸화의 뒤통수를 보고 슬쩍 미소를 띠는 연천이었다.

* * *

걸화의 눈꺼풀이 만근 같은 무게로 바닥을 향해 가라앉았다.

있는 힘껏 눈꺼풀을 치켜떴다.

눈 위에 겹겹이 주름이 잡혔다.

풀린 눈동자 위로 눈꺼풀이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쓰흡….”

그새 졸았는지 입가로 침이 흘렀다.

걸화가 연천과 같이 무림행을 하기로 한 것은 연천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걸화의 지독한 아침잠 때문에 무공을 배우는 것은 고사하고 연천이 수련 중일 때 깨어본 적도 없었다.

결국, 걸화는 일찍 일어나서 연천의 수련에 합류하는 걸 포기했다.

아무리 해도 자신은 새벽 일찍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예 안 자기로 마음을 먹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에 함께 수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스스로의 계획에 아주 만족하면서 실행에 옮기는 중이었다.

쪼그리고 앉았다가는 바닥에 드러누워 자게 될 것 같아 연천의 방문 앞에 서서 밤을 새우기로 한 것이다.

입가로 침이 자꾸 흘렀다.

자신의 눈꺼풀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지 전에는 몰랐다.

적과 싸우는 것보다 잠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든 걸화였다.

쿵―

연천의 방문에 머리를 박았다.

침이 흐르고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쿵―

머리가 방문에 부딪혔다.

쿵―

“…….”

“쓰흡…….”

침이 흘렀다.

쿵―

“쓰으흡…….”

“…….”

쿵―

연천이 방문을 열었다.

철푸덕―

걸화가 연천의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걸아야! 무슨 일이냐?”

놀란 연천이 쓰러진 걸화를 살폈다.

“냠… 쩝…….”

걸화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잠이 들어있었다.

“허!”

걸화의 엉뚱한 행동에 적응이 될 법도 하건만, 늘 새롭고 놀라웠다.

연천은 걸화를 안아 올려 자신의 침상에 눕혔다.

연천의 침상에 누운 걸화는 이내 코를 골아대기 시작했다.

목을 벅벅 긁어대며, 코를 고는 걸화를 보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무슨 짓을 할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아이였다.

결국, 이날 연천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수련을 하러 나갔다.

* * *

호수의 투명한 물결이 바람에 출렁거렸다.

동정호의 수분을 머금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걸화의 말대로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객잔에서 먹는 대물잉어찜과 홍주는 훌륭했다.

두 사람은 어젯밤 늦게 동정호에 도착해서 하루를 객잔에서 묵었다.

걸화는 이미 시각이 늦었으니 새벽까지 겨우 몇 시진만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해서 결정한 바를 실행에 옮겼다.

바로 연천의 방문 앞에서 밤을 새우는 것 말이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연천의 침상에서 늦게까지 푹 잤지만, 늦은 아침은 걸화가 그토록 바라던 동정호 앞에서 먹게 된 것이었다.

“내 말이 맞죠?”

걸화가 대물 잉어찜과 홍주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연천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나도 무공을 가르쳐 주면 안 돼요?”

걸화가 연천과 함께 하는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했다.

“그래, 새벽에 일어나 보아라. 같이 해보자꾸나.”

걸화의 걱정과 다르게 연천은 쉽게 답했다.

“그게 안 된다니깐요, 형님이 나를 좀 깨워줘요.”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자가 어찌 무공을 배우려 하느냐?”

“치이… 진짜 내가 새벽에 일어나기만 하면 무공을 가르쳐줄 거죠?”

“그래, 일어나기나 하여라.”

“칫! 아무래도 내가 못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내가… 그건 진짜 못하겠는데… 와… 내가 나지만 왜 그게 안 될까요?”

“…….”

연천이 실소를 흘렸다.

걸화가 코 평수를 넓혀 콧김을 흥하고 내쉬었다.

이게 연천에게 떼를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일어나기만 하면 무공도 가르쳐 주겠다고 하는데 왜! 그걸 못하는 건지…….

으이그… 이럴 때는 자신이 미웠다.

“왕성에 가서는 어쩔 셈이에요? 무작정 간다고 영친왕인가 하는 사람이 검을 보여주지도 않을 텐데.”

걸화가 슬그머니 지금 여행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문제를 꺼냈다.

“모르겠다. 그곳에 단서가 있다고 해서 가는 것이지만, 나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연천도 그 생각을 하니 속이 답답했다.

“이럴 땐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거라구요. 여기 끝내주죠? 여기서 남쪽으로 쪼끔만 가면 복건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무림인이라면 그곳은 꼭 가봐야 해요. 그곳의 백주 맛을 한번 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죽기 전에 한 번 더 찾을 수밖에 없대요…. 거기다가…….”

“되었다.”

연천이 흥분해서 설명하는 걸화의 말을 똑 잘랐다.

“피이… 그래서 결국 성도로 가서 대책도 없이 영친왕 주변을 얼쩡거리겠다구요?”

“그래야지…….”

“무슨 일인지 말 안 해줄 거예요?”

걸화도 대충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연천의 스승이 천마척결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정도?

“언젠간 말할 날이 오겠지…….”

연천이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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