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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34화 (34/230)

34화

【그만! 그만 해요… 형님】

연천이 걸화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걸화가 개방을 생각하는 사이에 경화루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담장 너머로 사람의 감성을 혼미하게 만드는 붉은 빛이 흘렀다.

“이제 어쩌지요?”

걸화가 물었다.

경화루의 돌로 된 담장은 높고 견고했다.

단단하게 자리 잡은 돌담은 외부인을 쉬이 안으로 들이지 않을 듯 보였다.

“어쩌기는? 들어가서 찾아야지.”

연천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얼굴이었다.

“에에? 지키고 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문 앞에만 둘이지 무공을 익힌 이들이 우글거리는데요?”

걸화가 집중을 해서 기루 내부의 기척을 살피며 말했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 너무 많고, 그 중 실력이 있는 자들도 꽤 되었다.

연천이 어찌어찌 마평을 쓰러트리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천의 실력을 확신하지 못하는 걸화는 불안했다.

려선 소저를 구하기 위한 방법이 저 께름칙한 소굴로 들어가는 것 말고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머리를 굴려댔다.

“방법이 있느냐? 시간이 없다. 나는 들어가겠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연천이 담담하게 말했다.

걸화는 연천의 얼굴을 살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에 찬 얼굴이었다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연천의 얼굴은 특별한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덤덤했다.

“내가 여기서 기다릴까 봐요?”

말을 하는 걸화는 주변의 돌멩이를 주섬주섬 주머니에 담았다.

원래도 주머니에 짱돌을 가득 채우고 다니는 걸화였지만, 불안한 마음에 주머니가 터지도록 돌을 밀어 넣었다.

연천이 예상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들어가자.”

연천이 경화루의 입구를 향해 저벅저벅 걸었다.

걸화가 다급히 연천을 붙잡았다.

“형님! 형님!”

“왜?”

연천이 자신의 소맷부리를 잡는 걸화를 돌아보았다.

“저놈들한테 일일이 자기소개 안 할 거죠? 때리고 사과 안 할 거죠? 검 뽑아 들 거죠?”

걸화가 다시 생각해도 열이 받아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

“검을 뽑으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지 않느냐?”

걸화의 마음을 모르는 연천의 태평한 대꾸였다.

답답한 걸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님!! 저 안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극악무도한 것들이라구요. 굶어가는 이들한테 몇 푼 빌려주고 고리대로 사람을 괴롭히다 괴롭히다 결국 어린 딸들을 끌고 와서 짓밟는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이니 차라리 죽여요! 형님이 안 죽이면 또 어딘가에서 그 짓거리 하고 살 놈들이에요. 아님, 병신을 만들어버려요!”

걸화가 입에서 침을 튀기며 흥분해서 말했다.

“그래… 알았다.”

연천이 미적지근하게 답하고 기루의 입구로 향했다.

뿌연 등이 양쪽으로 달린 기루의 정문은 크고 화려한 색을 두르고 있었다.

문 앞에 선 사내 둘이 연천과 걸화를 막아섰다.

보통의 기루는 정문 앞에서 기녀들이 웃음과 교태를 흘리며 손님을 잡아끄는 것이 정상이었다.

기루로 끌어들인 사내 하나하나가 돈이었으니,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 관원, 장사치 할 것 없이 돈푼이나 있어 보인다 싶으면 기루로 홀려 들였다.

경화루는 그런 보통의 기루와는 달랐다.

술과 기녀의 기예보다는 주로 기녀를 매매하는 곳이었다.

고리업으로 돈을 못 갚는 여염집 여식을 데려다 기녀로 만드는 곳이기에 어린 동기가 많기로 유명했다.

동기가 된 여아의 아비나 오라비가 찾아와 횡포를 부리거나 손님으로 위장해 자식을 찾아가겠다 떼를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경화루는 단골손님이나 단골이 소개해준 이들만 받았다.

그리해도 매일 밤 전각이 모자랄 정도로 손님이 들어찼다.

“누구의 소개로 오셨습니까?”

입구에 선 사내가 불손하지도, 그렇다고 예를 다하지도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내를 돌아본 연천은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들어 손등으로 오른편에 있던 사내의 명치를 툭 하고 쳤다.

‘에이… 저렇게 살살 쳐서 되나! 좀 세게 팍팍 때려야지!!’

걸화가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사내가 흐르듯 무너졌다.

왼편에 서 있던 사내의 주먹이 연천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연천이 고개를 비틀어 피하고 주먹으로 사내의 이마를 가격했다.

그리고 경화루 내부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걸화는 뒤로 벌러덩 넘어가는 사내를 보면서 손에 든 짱돌에 힘을 주었다.

입구에서 안으로 제법 걸어 들어가자, 어지간한 장터만큼이나 널따란 마당 주위로 여러 개의 전각이 보였다.

뒤쪽으로 더 많은 전각이 있는 듯했다.

연천이 마당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딱 멈추었다.

뒤따르던 걸화도 걸음을 멈췄다.

“누, 누가 나타났어요?”

잔뜩 긴장한 걸화가 말을 더듬었다.

“그… 이제 어디로 가면 좋겠느냐?”

연천이 수많은 전각을 둘러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어휴…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당당하게 앞장서더라니…….”

걸화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워낙 조용히 입구를 통과했기에 그들을 그저 그런 손님으로 여기는지 하인이나 시녀, 기녀들은 연천과 걸화를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하며 바삐 지나갔다.

걸화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기녀의 앞을 막았다.

“뭐 좀 물어보겠소, 곽엄택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에?”

나이든 기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부분이 단골이라 드나드는 손님들은 거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손님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관리는 그의 직책을 불렀고, 무림인은 별호를 불렀다.

고관이나 돈 많은 집 도령은 아비의 이름을 붙여 아무개네 몇째 도령이라고 불렀다.

관리의 직책과 무림인의 별호, 잘 나가는 아비의 이름과 같은 것은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으니.

기녀들은 손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과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들을 콕콕 집어가며 그들을 특정했다.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여기 이렇게…….”

걸화가 손가락으로 얼굴을 그어 내리는 시늉을 했다.

“…아! 뉘시오?”

걸화가 말하는 곽엄택이 누구인지 알아챈 기녀가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기녀 또한 곽엄택에게 현상 수배가 내려진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같이 산에 있던 사람이오.”

걸화가 적당히, 기녀의 의심을 걷어줄 만한 답을 했다.

‘뭐… 곽엄택과 같이 산에 있지는 않았지만, 형님이 그자의 동료를 때려눕힐 때 옆에 있었으니 같이 산에 있던 거랑 거의 같지 뭐…….’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 오늘 데려온 동기의 머리를 올려준다고 하던데 안채에 있을 것입니다. 여봐라.”

기녀가 지나가던 하인 하나를 불렀다.

“이분들을 안채의 청홍각에 모셔다드려라.”

나이 든 기녀는 하인에게 지시하고는 연천과 걸화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바삐 사라졌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인이 앞장서서 걸었고 연천과 걸화는 하인을 따라갔다.

입구의 커다란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전각 구석으로 작은 길이 나 있었다.

작은 길을 한참을 걷자 길게 펼쳐진 마당을 둘러싸고 또다시 여러 채의 전각이 나왔다.

그 전각들의 옆길로 하인은 계속 걸었다.

거기서부터는 지나다니는 하인과 시녀의 수가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다.

하인은 한쪽으로 난 문으로 들어갔다.

뚝 떨어진 곳에 작은 전각이 있고, 전각 입구에 사내 두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하인은 연천과 걸화를 그 앞에 두고 꾸뻑 인사를 하곤 재게 걸어가 버렸다.

“어찌 오셨소?”

전각 입구를 지키고 섰던 자 중 하나가 물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사내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전각 안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쏟아졌다.

연천은 마음이 급했다.

걸화는 연천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내 둘이 그대로 서 있는데, 연천이 전각 안으로 들어갔고 쭈뼛대는 걸화의 앞에서 사내들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걸화는 서둘러 연천의 뒤를 따라 쫓아갔다.

“……!!”

걸화가 걸음을 멈추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가시가 온몸을 쿡쿡 쑤셔대는 것 같았다.

연천이 내뿜는 살기였다.

걸화의 눈에 전각의 방문을 연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연천이 눈에 들어왔다.

연천의 눈매는 다가가기 무섭도록 매섭게 변해 있었다.

걸화는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꼼짝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몸을 압박하는 살기였다.

걸화는 어릴 때부터 천상의 내공이 실린 질책을 코앞에서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걸화의 공격에 자기도 모르게 살기를 뿜는 거지들도 많았기에 살기를 받아내는 데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연천이 방 안으로 사라지자 걸화도 서둘렀다.

방 안에서는 곽엄택과 연천이 서로 노려보고 있었고, 얼굴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새겨진 려선이 발기발기 찢어진 옷을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려선을 본 걸화의 얼굴이 구겨지며 곧바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려선에게 덮어주었다.

곽엄택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하!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이것들 금방 처리하고 즐겁게 해주마.”

곽엄택의 목소리에 려선의 떨림이 심해졌다.

걸화가 려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독였다.

곽엄택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마주 선 연천도 검을 들었다. 검집 채.

걸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놈의 검 꼬라지는 언제 한번 구경하냐고!’

곽엄택의 검이 연천의 머리를 향해 찔러 들었다.

연천이 고개를 들어 피하는 듯싶더니, 그의 검이 보이지도 않게 빠른 속도로 곽엄택의 얼굴을 후려쳤다.

고개를 바로 한 곽엄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연천을 바라보았다.

연천은 연이어 곽엄택의 머리를 내리치고 옆구리를 후리고 배를 찌르며 쉬지 않고 곽엄택을 두들겨 댔다.

가죽으로 된 검집 채 두들겨 맞던 곽엄택이 공격을 포기하고 연천의 검을 막으려 했으나, 연천은 곽엄택의 검이 없는 것처럼 빈 곳을 향해 정확히 내리꽂았다.

곽엄택의 얼굴이 터지며 피가 흘렀다.

연이어 맞던 어깨와 옆구리의 살도 터져 핏물이 배어 나왔다.

연천은 쉬지 않고 곽엄택을 내리쳤다.

무공이고 검초고 할 것 없이, 몽둥이로 복날 개 패듯이 퍽퍽 소리가 나게 두들겨 댔다.

곽엄택은 바닥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연천의 공격을 받아냈다.

등의 살도 터져 피로 물들었다.

연천은 멈추지 않았다.

곽엄택의 온몸이 피떡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내리쳤다.

“형님! 형님! 그만! 그만 해요.”

보다 못한 걸화가 연천의 등을 끌어안고 뜯어말렸다.

연천이 천천히 검을 내렸다.

걸화의 손끝에 연천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느껴졌다.

숨이 찬 것이 아니라, 화가 가라앉지 않은 것이었다.

“형님! 이제 됐어요, 그만… 그만 참아요.”

연천의 호흡이 점차 진정되었다.

“으…으…으…….”

곽엄택이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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