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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33화 (33/230)

33화

동굴 안쪽에서 비스듬하게 누워 무료하게 말린 고기를 질겅질겅 씹고 있던 마평의 안색이 변했다.

무언가 재미난 것을 발견한 듯 유쾌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잡더니 기지개를 쭉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나게 몸을 풀고, 검을 챙겨서 동굴 밖으로 나갔다.

연천과 걸화의 인기척을 느낀 마평이 밖으로 나와 동굴 앞을 막고 선 것이다.

도끼처럼 위로 올라간 눈매는 매섭게 날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걸화와 연천을 바라보는 마평의 모습은 기세등등했다.

비리비리한 사내와 마르고 쬐끄만 아이가 뭘 하러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평의 입장에서는 같잖았다.

무료하던 차에 몸이라도 풀어볼까 싶었던 마평은 김이 팍 새는 것 같았다.

마평에게 다가간 연천과 걸화의 눈에 동굴 안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연천과 걸화를 보는 세 사람의 눈에는 작은 희망의 빛이 비치었다가 곧 사라졌다.

찾아온 이가 곽엄택의 패거리가 아닌 것은 다행이었지만, 자신들을 구해줄 만한 인사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좁은 동굴에 함께 팔려 갈 동지가 생기는구나 싶었다.

세 사람은 불편한 눈으로 연천과 걸화를 바라보았다.

동굴 속 세 사람과 마평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연천이 마평에게 다가가 정중히 포권을 했다.

“백연천이라고 하오, 주여월 소저 아버지의 부탁으로 소저를 찾고 있소. 뒤에 있는 이들을 데려가도록 해주면 고맙겠소.”

연천의 예의 바른말이 끝나자, 걸화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소리 나게 ‘탁’하고 쳤다.

그리고 그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지식하고 답답한 건 알았지만 정말 같이 다니기 부끄럽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해도 정도가 있고, 예의 차려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아이구… 창피해라…….’

“미친놈!”

마평이 짧게 내뱉었다.

얼굴을 가렸던 걸화가 손을 내려 마평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와~ 저놈 사람 볼 줄 아네, 나도 그리 생각했다.’

마평의 얼굴에는 연천을 향한 빈정거리는 조소가 걸렸다.

비웃음을 흘리던 마평이 망설임 없이 검을 쭉 뽑아, 그대로 연천에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

달려드는 마평을 보고 연천이 우물쭈물하며 막았다.

“죽어랏!!”

마평은 검을 들어 거침없이 연천의 가슴으로 찔러 들어왔다.

“……!”

연천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 피했다.

마평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검로를 비틀었다.

연천에게 한 발 더 다가가 상반신을 노리고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저, 저기.”

연천이 옆으로 걸음을 떼어 피했다.

뒤에서 보는 걸화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뭐해요! 형님도 빨리 검 꺼내서 싸워요!”

악을 쓰며 소리쳤다.

“아니, 어찌 사람에게 검을 들이대느냐…….”

연천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태평한 소리를 해댔다.

걸화는 애가 타고 속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저 사람은 형님을 죽일 듯이 달려드는데 그게 지금 할 소리예요? 칼 맞아 죽고 싶어요?”

걸화가 짜증에 차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는 중에도 마평은 쉬지 않고 살수만을 골라 공격했다.

연천은 그저 옆으로, 뒤로 몸을 움직여 피하기만 했다.

연이어 공격해 오는 마평의 검을 피하던 연천이 마지못해 검집 채 검을 들었다.

“내… 미안하오.”

그리고 마평에게 사과했다.

마평은 연천의 말을 무시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흠…….”

가볍게 숨을 내쉰 연천이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마평이 연천의 검을 의식하며 연천의 머리를 공격했다.

반보 뒤로 물러나서 공격을 피한 연천이 한보 다가가, 들어 올린 검으로 마평의 백회를 툭 하고 내리쳤다.

뒤에 선 걸화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 일격에 마평이 바닥으로 주저앉더니, 사지를 사방으로 쭉 뻗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 미안하오…….”

연천이 고꾸라진 마평에게 사과했다.

연천의 뒤에 있던 걸화가 쭈뼛쭈뼛 걸어와서 마평의 뒤통수를 발로 툭툭 찼다.

마평은 의식이 없었다.

마평을 내려다보던 걸화가 고개를 들어 연천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좀! 싸우는데 사과 좀 하지 말아요! 적한테 무슨 예의를 그렇게 차려요!! 예의 차리다 칼 맞아 죽어요오오!!”

“아휴… 알았다. 좀 살살 얘기해라, 귀청 나가겠다.”

걸화의 고함에 깜짝 놀란 연천이 귀를 문지르며 말했다.

동굴 안의 셋은 눈을 껌뻑이며 연천과 걸화를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마평과 비리비리한 사내의 검이 맞붙는 걸 보면서, 사내가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내의 인상은 너무도 유순했다.

그런 사내가 이기기를 바라는 게 당연했지만, 도무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바라면서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뻔히 보고 있었음에도 마평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쬐끄만 아이가 악을 써 대는데 주춤거리는 저 사내가 우락부락한 마평을 쓰러트렸다니…….

그저 얼빠진 얼굴로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천은 동굴로 들어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다친 곳은 없으시오? 혹시 이 중에 주여월 소저가 있소?”

연천의 말에 여월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연천과 걸화가 여월에게 다가갔다.

“소저가 주여월 소저가 맞소?”

걸화의 말에 여월이 다급하게 손짓을 해댔다.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다가, 다시 자신의 입과 목 뒤를 가리키는 여월의 손짓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걸화와 연천이었다.

“이 소저 말을 못 하나 봐요.”

걸화가 여월을 살피다 연천에게 말했다.

여월이 고개를 심하게 크게 끄덕였다.

윤거가 입을 열었다.

“원래 말을 했는데 어제 곽엄택에게 당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후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

연천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여월의 목 뒤를 꾹 눌렀다.

“어허! 어!! 어! 말! 말이 나온다, 나와. 우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월이 자신의 입과 목을 손으로 더듬으며 말을 뱉어냈다.

“아니요, 우리야…….”

입을 연 연천은 하려던 말의 서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여월이 재빠르게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곽엄택이 려선이를 데리고 갔어요. 경화루라는 기루에 판다고 오늘 아침에 데리고 나갔어요.”

“경화루? 경화루가 어딘지 아시오?”

연천이 여월에게 물었다.

“당연히 모르죠…….”

여월은 그걸 어찌 알겠냐는 얼굴이었다.

“아… 너는 아느냐?”

걸화에게도 물었다.

걸화가 대답 대신 연천에게 눈을 부라렸다.

거지한테 물어볼 걸 물어보라고.

연천이 걸화의 기세에 주춤거렸다.

“음… 경화루라… 어찌 찾는담…….”

연천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이곳에서 연천이 궁리를 한다고 해도 전혀 답이 나올 리 없었다.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니 생각이라도 해보는 수밖에.

“…….”

“…….”

여월과 걸화는 생각하는 연천을 쳐다보았다.

연천이 알 길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으로서 믿을 곳은 연천뿐이었다.

마평을 해치운 것처럼 기적 같은 일이 또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제가 압니다.”

연천과 걸화의 뒤쪽에 있던 단각이 불쑥 말했다.

연천과 걸화, 여월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단각을 쳐다보았다.

“음!”

단각은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목을 한번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경화루는 질이 좋지 않은 기루입니다. 술과 기녀의 가무보다는 기녀를 파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여아를요. 어린 동기가 많기로 유명하지요. 말이 좋아 동기이지 빚 때문에 끌려오거나 돈에 팔려온 어린아이들을 길들이는 곳입니다. 기녀로 춤과 노래나 몸가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니 얼마나 손속이 지독할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걸 어찌 그리 잘 아시오!”

걸화가 단각에게 톡 쏘아붙였다.

“서둘러야겠소, 위치를 알려주시오.”

단각의 말에 연천의 마음이 급했다.

단각이 연천에게 경화루의 위치를 알려주는 중에도 걸화는 단각을 대놓고 노려보았다.

여월도 앞섶을 단단히 여미며 단각을 짐승 보듯 보았다.

“음! 음…….”

단각은 자신에게 향하는 이들의 눈을 피했다.

“이자는 한동안 깨지 못할 것 같으니, 일단 포박해야겠소.”

연천이 마평을 살피며 말했다.

“저희가 할게요, 려선이를 찾아주세요.”

주여월이 연천에게 말했다.

“네, 저희가 포박해서 관아로 넘기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윤거가 말했다.

연천이 윤거를 돌아보았다.

“어서 려선이를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윤거가 연천에게 포권을 하며 정중히 말했다.

“그럼, 부탁하오”

연천은 마평을 내려놓으며 짧게 말했다.

그리고 동굴을 빠져나갔다.

걸화도 연천을 따라 뛰어나갔다.

연천은 다리에 내공을 실어 달렸다.

걸화도 있는 힘껏 달렸으나 내공을 실은 연천을 따라가지 못했다.

연천은 금세 걸화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형님!! 혀엉니임!!”

걸화의 고함을 듣고, 달려가던 연천이 급하게 되돌아왔다.

“걸화야, 일단 너는 여기 있거라. 내가 려선 소저를 데리고 오마.”

“싫어요, 나도 갈래요.”

“너와 같이 가면 늦어지지 않느냐.”

“나 버리고 가는 거 아니죠?”

걸화가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언제 버렸다고 거참… 그래. 가자, 가.”

연천이 걸화를 들어 어깨에 멨다.

“어?”

연천은 걸화를 메고 내공을 실어 힘껏 달렸다.

엉덩이와 다리를 연천의 앞쪽에 두고, 얼굴을 연천의 등 쪽으로 한 걸화는 개방 생각이 났다.

집을 나온 지 달포가 넘어가고 있었다.

‘거지들 괴롭히다 잡히면 이렇게 매달려서 갔는데…….’

지금쯤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지… 아버지가 생각났다.

‘형도 보고 싶고, 걸윤이도 조금 생각이 나기는 하네……. 나 숨으면 제일 잘 찾는 게 걸윤이었는데…….’

‘땡땡이 사부는 지금쯤은 돌아왔을라나? 대붕 아저씨는 이제 나 안 메고 다녀서 속 시원하겠다.’

남의 등 뒤에 매달리는 게 익숙한 걸화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들을 해댔다.

연천은 한쪽 어깨에 걸화를 메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다.

기운 없이 눈시울을 붉히던 려선의 어머니가 생각이 나, 더욱 힘을 실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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