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잡기는 개~뿔!】
“가자!”
곽엄택이 호리병 엮을 것을 허리에 두르며 말했다.
술 한 병은 손에 들고 입속으로 꼴꼴꼴 쏟아부었다.
“도망가도 돼, 내가 너희를 죽일 생각은 없었거든. 마침 노름 밑천이 부족한 참이었는데 돈이 제 발로 굴러들어왔으니 이게 얼마나 잘된 일이야. 대신 도망가다 잡히는 놈은 인육 시장에 내다 팔 거다. 흑촌이라고 들어봤냐? 거기는 사람고기도 파는 곳이야. 다른 사람들의 피와 살이 되고 싶은, 희생정신이 강한 녀석은 도망가도 좋아.”
그리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여월은 말을 할 수 없었고, 나머지도 소리 없이 곽엄택의 뒤를 따라 걸었다.
곽엄택은 깊고 산세가 험한 곳을 휘적휘적 잘도 걸었다.
간간이 멈춰 서서 호리병 채로 술을 들이켰다.
일을 많이 한 려선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수련한 여월은 그런대로 잘 따라갔지만, 허구한 날 술이나 퍼마시던 단각과 윤거는 헉헉거리며 겨우 쫓아왔다.
숨을 헐떡이던 단각이 점점 뒤처졌다.
호리병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들이킨 곽엄택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크큿, 한 놈은 벌써 도망갔냐? 잡히면 흑촌행이다.”
곽엄택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각이 당장 숨이 끊어질 듯 끄억끄억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물을 퍼부은 것처럼 땀을 흘리는 단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는 휘청대면서도 멈추지 않고 일행 뒤를 따라붙었다.
곽엄택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씨익 웃으며, 앞장서서 산을 탔다.
네 명은 손이나 발이 묶인 것도 아니었건만, 공포에 질려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곽엄택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걷던 곽엄택이 걸음을 멈추었다.
키 높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한 동굴은 몸을 숨기기에 적합해 보였다.
동굴 앞에 꽤나 널찍한 공간은 집의 앞마당처럼 탁 트여있었다.
동굴 앞의 그 공터에 곽엄택만큼이나 살벌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에 흉터는 없지만, 도끼처럼 찢어져 올라간 눈매에 몸집이 크고 우락부락했다.
험상궂은 인상은 딱 봐도 인생을 곱게 살지 않은 티가 풀풀 풍겼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 때문에 무서운 느낌을 주는 곽엄택의 얼굴은 차라리 고와 보였다.
“어딜 또 갔다 오셨수? 조심 좀 하라고 그리 일렀구만.”
사나운 얼굴을 한 자는 곽엄택의 수하 마평이었다.
그의 시선은 곽엄택 뒤를 따라오는 일행에게 향했다.
일행을 훑어보던 마평의 눈이 려선에게 꽂혔다.
“이건 뭐요?”
“노름 밑천.”
곽엄택이 기분 좋은 얼굴로 답했다.
“에에? 갖다 파실라구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조심해야지.”
“내가 갔다 오겠소.”
마평이 려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됐어, 됐어. 아직 나 반기는데 많아, 쟤는 경화루에 팔면 값 좀 받겠지?”
곽엄택이 려선에게 턱짓을 했다.
“허! 잘도 골라 왔수.”
마평의 시선이 려선의 몸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살갗이 오그라들며 소름이 돋아난 려선은 눈에 띄게 덜덜 떨었다.
“나도 웬 떡이냐 싶었다. 오늘은 이것 좀 처리하고 내일 갔다 오마, 내가 가서 머리도 올려주고 와야 하지 않겠냐?”
곽엄택이 허리에 맨 호리병을 톡톡 치면서 히죽거렸다.
“에이… 위험할 텐데 내가 다녀오겠소. 머리도 잘 올려주고 올 테니 염려 마시오.”
마평이 느물거렸다.
“크흐흐흐… 침 흘리지 마! 내 거야! 내가 경화루에 얌전히 모셔다 놓을 테니깐 나중에 가보든가.”
곽엄택이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마평이 능글맞게 따라 웃었다.
곽엄택과 마평이 호리병을 모조리 비우고 동굴 제일 안쪽, 짚을 깔아둔 곳에 널브러져서 코를 골아댔다.
곽엄택을 잡을 마음으로 준비한 술은 꽤 양이 많았다.
그 많은 것을 여월의 요대에 줄줄이 매어 와서 모두 다 마셨으니, 두 사람은 인사불성이 될 만도 했다.
려선과 여월, 단각과 윤거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곯아떨어진 두 사람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동굴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단각이 엉덩이를 밀어서 슬금슬금 동굴 밖으로 향하더니 가만히 일어났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밖으로 향했다.
려선과 여월, 윤거는 숨도 쉬지 않고 단각을 쳐다보았다.
“어이~ 나는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인육 시장에 네 머리가 걸려있는 게 보인다.”
곽엄택이 그 자리에 그 자세 그대로 드러누워서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소, 소피가 마, 마… 마려워서…….”
단각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을 더듬었다.
“소피 봐야지, 다녀와.”
곽엄택이 짧게 답했다.
꼿꼿하게 상체를 세웠던 윤거가 흐무러지듯 동굴 벽에 등을 기대었다.
잠시 후, 돌아온 단각은 동굴 바닥에 드러누웠다.
네 사람에게 잠시 비추었던 작은 빛이 제대로 발하여 보지도 못하고 사그라들고 있었다.
깜깜한 동굴 내부처럼 그들에게 어떤 희망도 없었다.
단각과 윤거는 그저 인육 시장에 팔려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고, 려선은 몸이 덜덜 떨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여월은 머저리 같은 단각과 윤거를 믿은 자신을 탓했다.
‘려선이 말을 꺼냈을 때 말릴걸…….’
가슴이 미어지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깊은 산 속의 밤은 바로 코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고 차가웠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산짐승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답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산을 울려댔다.
곽엄택과 마평이 지키지 않아도 산을 내려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동굴 벽에 몸을 붙인 네 사람은 시끄럽게 울어대는 짐승이 동굴로 오지 않기를 바랐고 곽엄택과 마평은 태평스럽게 잘도 잤다.
* * *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시커먼 동굴을 비추었다.
여월은 절망스러운 상황에 비친 눈부시게 환하고 청명한 해가 원망스러웠다.
곽엄택과 마평은 동굴이 울리도록 코를 골며 잠에 곯아떨어졌지만, 아무도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밤새 추위와 산짐승 소리에 시달린 몸은 자신들의 처지만큼이나 바닥으로 축 처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해진 태양은 동굴 깊숙이 밝혀주었다.
그 환하고 따뜻한 햇볕이 곽엄택과 마평의 잠을 깨웠다.
곽엄택은 누웠던 자리에 앉아 네 사람을 보며 목을 양쪽으로 꺾었다.
뿌드득뿌드득 소리가 동굴 내에 울렸다.
곧이어 마평도 일어났다.
곽엄택은 한쪽 구석에 떠 놓은 단지의 냉수를 퍼서 벌꺽벌꺽 들이켰다.
“끄으으억…….”
길게 트림을 하곤, 려선을 보며 씩 웃었다.
려선의 살갗이 도톨도톨 일어나며 진정되었던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곽엄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려선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엉덩이를 바닥에 댄 채 다리를 밀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볼기가 쓸린 자국이 남았다.
동굴의 벽에 등이 닿아도 멈추지 않고 발을 굴려 뒤로 물러나려고 애를 썼다.
“으으… 어… 어… 어… 어…….”
겁에 질린 려선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처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곽엄택이 느긋하게 려선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훈혈을 점하자, 려선은 잠들듯 기절했다.
쓰러진 려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곽엄택은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는 삿갓을 눌러쓰고 축 늘어진 려선을 어깨에 들쳐 메었다.
“너무 눈에 띄는 것 아니요? 내가 간다니깐, 머리도 올려주고.”
마평이 못내 아쉬워하며 말했다.
“내 거라고! 눈독 들이지 말라니깐! 쯧! 인가에 가서는 아픈 누이 모시듯 안고 갈 것이니 걱정 마라, 다녀오마.”
려선을 어깨에 멘 곽엄택이 성큼성큼 산 아래쪽으로 향하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월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단각과 윤거는 동굴 벽에 붙어서 곽엄택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마평은 곽엄택이 사라진 후, 다시 드러누워 잠을 잤다.
일어나서 부스럭대며 무언가를 꺼내 쩝쩝 씹어 먹고 우드득 소리를 내며 몸을 풀기도 했지만, 잡아 온 세 사람에게는 물 한 모금이나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동굴 한편의 돌덩이인 듯, 그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릿한 황금빛과 타오르는 주홍빛이 한데 얽힌 반구의 물체가 일렁거렸다.
낙조로 숲과 바위와 동굴, 단각과 윤거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사람의 애를 태우는 빛깔이었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여월의 붉게 변한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머릿속엔 곽엄택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려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영웅들의 서적을 읽어대며 무림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했었다.
스스로를 무림인이라 생각했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일을 서책 속 주인공처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랬는데… 려선을 기루에 팔겠다고 매고 가는 모습에, 무림인이고 뭐고 그저 아이처럼 울어댔다.
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인처럼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었을 것이다.
려선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저 짐승 같은 작자들이 자신도 곧 어디든 팔아버릴 것이다. 두려웠다.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단각과 윤거를 믿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허구한 날 술이나 퍼마시는 저런 것들을 따랐다니.
이 기회에 려선의 눈에 좀 들어 어찌해보려는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였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욕심에 눈이 멀었지, 고생하는 려선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착각에… 현상금 걸린 죄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눈을 가렸다.
단각은 모로 누워 있었다.
그게 편했다, 호리병에 맞은 뒤통수와 잔에 맞은 등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쩌나… 우리도 어디론가 팔려 가겠지. 기루에 팔려서 술이나 실컷 마시면 좋겠네, 아… 술… 술이 땡기는구나…….’
단각은 옆에서 계속 꼼지락대는 여월이 신경 쓰였다.
흘깃 쳐다보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여월은 우리 힘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마평의 눈치를 계속 살폈다.
한심하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생각이라도 예쁘던가.
려선의 친구가 아니었으면 같은 무관을 다닌다 해도 말조차 섞지 않았을 텐데….
려선을 데리고 가버리니 어두운 동굴이 더욱 우중충해졌다.
윤거는 동굴 벽에 몸을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잘될 수 있었는데… 려선이는 어찌하나……. 려선이는 고사하고 나는 어찌 되려나…….’
셋은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댔지만, 정작 몸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 * *
같은 시각, 연천이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걸화는 그런 연천의 뒤에 붙어서 쭈뼛쭈뼛 따랐다.
연천의 모습이 자신감 있어 보이지 않아 불안한 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