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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31화 (31/230)

31화

“려선아! 이것 좀 먹어봐라.”

윤거가 야들야들하게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려선에게 내밀었다.

“어… 고마워. 그런데 오기는 오는 거겠지?”

려선은 고기를 받아 다시 내려놓았다.

도저히 뭔가를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험상궂은 곽엄택을 대면할 생각에 무서워서 떨렸다.

이틀이 지나가니, 집에 혼자 계실 어머니가 걱정되고 오지 않는 곽엄택이 원망스러웠다.

하루빨리 곽엄택이 오기를 빌었다.

현상금 수배범을 이리 목 빼고 기다리게 될 줄이야…….

와도 무섭고, 안 와도 걱정이었다.

체한 것처럼 묵직하고 답답한 속에 도저히 뭐가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힘들면 돌아가도 돼, 내가 있으니깐 넌 가도 괜찮아.”

윤거가 제법 듬직하게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가지고 온 술병을 다 비우고, 고주망태로 술도가를 찾고도 남았을 것이다.

곽엄택을 잡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려선 앞이라 조심하는 윤거였다.

“아니야, 나도 기다릴 거야.”

려선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려선은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그러면서도 있는 힘을 쥐어짜며 버티고 있었다.

불안한 얼굴의 단각만 홀짝홀짝 잔을 비울 뿐,

윤거도 려선과 여월도 이틀 꼬박을 뭘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무릉도원이 시샘할 만큼 훌륭한 자연 속에서, 네 사람은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힘들면 오두막에서 좀 쉬어.”

윤거가 바위 뒤쪽 숲속을 가리켰다.

아무리 술에 곯아떨어져도, 숲이고 거기다 계곡 옆이었다.

새벽의 냉기와 이슬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단각과 윤거가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대충 만들어 놓은 토막집을 단각의 하인인 진성이 다시 만들어 준 작은 나무 오두막이었다.

단각과 윤거가 만든 것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작고 형편없는 움막 수준이었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려선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혼자 두고 온 어머니가 걱정되어 그런 것이다.

거기다 곽엄택과 마주할 일도 겁이 나겠지…….

“이 일만 끝나면 정말 다 괜찮을 거야.”

여월이 려선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하얗고 가는 려선의 손톱 끝이 붉게 변해 있었다.

불안한 려선이 물어뜯어서 피가 배어난 것이었다.

여월의 말에 위로가 되는지, 려선의 얼굴이 훨씬 편안해졌다.

윤거가 여월을 흘겨보았다.

‘아무튼… 도움이 안 되는 애야…….’

* * *

그들이 도석산에 도착하고 나흘째 되는 날 곽엄택이 나타났다.

한 손에 축 늘어진 토끼 한 마리를 들고서였다.

못 보던 려선과 여월을 본 곽엄택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대…대협 오셨소? 무관 친구들인데 같이 즐기고 있었소. 풍류를 아는 친구들이니 함께 어울리면 좋을 것이오.”

윤거가 멋쩍게 웃으며 곽엄택에게 말했다.

냉랭하게 날이 선 공기가 아주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여월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곽엄택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단각과 윤거의 무관 동기, 주여월이라고 합니다.”

“려선이라고 해요.”

여월을 따라 려선도 주뼛대며 인사했다.

처음보다 나아진 듯했지만 곽엄택은 긴장을 완전히 풀지 않고, 려선과 여월을 빤히 쳐다보다 바위 한편에 앉았다.

“오늘은 토끼를 가지고 오셨군요.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제가 아주 기가 막히게 구워드리겠습니다.”

윤거가 넉살 좋게 말을 붙이고는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바위 한가운데에 여러 번 불을 피워 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위에 나뭇가지를 올리고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마른 가지 타는 소리에 마음도 타들어 가는 것 같아, 려선은 불안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곽엄택이 그런 려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윤거가 단각의 어깨를 툭 치고는 눈짓을 했다.

“아휴… 대협! 한잔 받으시지요. 벌써 술이 되어서 정신이 없습니다.”

단각이 빈 잔을 곽엄택에게 내밀었다.

그는 려선에게서 눈을 떼고 단각의 술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모닥불에 비친 시뻘건 곽엄택의 얼굴은 섬뜩했다.

윤거는 빈 곽엄택의 잔에 부지런히 술을 따랐다.

“대협! 대협은 어찌 이리 사냥을 잘하시오? 기회가 되면 나도 좀 알려주시오! 나는 그저 차려주는 밥상만 받아먹으니, 이곳에서 술 먹다 고기가 떨어지면 내려가기도 귀찮고 말린 고기나 뜯자니 영 허전하고 그렇소.”

윤거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크하하하하, 그게 어디 말로 설명한다고 되나?”

제법 술이 들어간 곽엄택이 걸걸하게 웃었다.

“말로 설명해서 안 되면… 그건 어찌 배워야 하오?”

곽엄택과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던 윤거도 제법 취기가 오른 얼굴이었다.

“크… 무관을 다닌다더니 무공은 좀 하나?”

곽엄택이 잔을 비우고 물었다.

윤거가 잽싸게 잔을 채웠다.

“대협이 보기에 우리 무공이 어때 보이오?”

“형편없어 보이네, 크윽…….”

곽엄택이 잔을 비웠다.

“푸하하하하, 대협이 사냥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사람 보는 눈도 정확하시구만.”

곽엄택의 비위를 맞추며 익살맞은 표정을 짓는 윤거였다.

“크허허허허허허.”

윤거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곽엄택이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하하하하.”

윤거도 곽엄택을 따라 웃었다.

윤거와 곽엄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치를 보던 여월이 호리병 하나에 수면제를 슬그머니 탔다.

그리고 수면제를 탄 호리병을 려선에게 슬쩍 밀었다.

“대, 대협… 제 술도 한, 한 잔 받으시어요.”

려선이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곽엄택은 려선을 빤히 바라보며 잔을 내밀었다.

수면제를 탄 술을 따르는 려선의 손이 후들거려, 그녀가 잡은 술병과 곽엄택이 든 술잔이 부딪치며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술을 받아든 곽엄택은 려선을 향해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술병을 내려놓은 려선은 덜덜덜 떨리는 손을 맞잡아 옷 아래로 숨겼다.

려선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곽엄택이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단각과 윤거, 려선과 여월의 눈이 모두 곽엄택에게로 향했다.

요란한 물소리만 울릴 뿐,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바위 위는 고요했다.

윤거가 씹다만 고기를 꿀꺽 삼켰다.

술잔을 내린 곽엄택이 더욱 호방하게 웃었다.

“크허허허허허, 푸하하하하하하.”

여월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쥐망울 같은 녀석들이!!”

곽엄택이 들고 있던 잔을 윤거의 머리통을 향해 날렸다.

날아간 잔이 윤거의 이마 한가운데를 가격하고 산산조각이 나며, 이마 정중앙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

놀란 일행은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서,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윤거의 이마에서 흐른 피가 코와 턱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지만,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마불산도 모를 줄 알았냐? 이 쥐새끼들아!!”

벌떡 일어선 곽엄택이 움직인다 싶더니, 피 묻은 윤거의 얼굴이 한쪽으로 휙 돌면서 몸이 날아갔다.

려선이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곽엄택이 자신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복부에 불에 댄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짜르르하게 일더니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 굳어있던 여월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싸우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아악!”

곽엄택의 부지불식간의 공격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단각이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곽엄택이 호리병을 집어 도망가는 단각을 향해 집어 던졌다.

퍽―!

호리병이 단각의 뒤통수에 맞고 깨지며 술과 붉은 액체가 함께 흘렀다.

휘청이던 단각의 몸이 앞뒤로 흔들거리다,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곽엄택이 다시금 잔을 들어 단거의 등을 명중시켰다.

주춤거리던 단각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긴장된 얼굴의 여월이 곽엄택을 응시하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고 양손을 들었다.

격자로 만든 손 중 오른손을 조금 더 앞으로 내밀었다.

공격 자세였다.

“크허허허허허.”

곽엄택이 여월을 보고 정말 기분이 좋다는 듯 웃었다.

“여아가 기개는 좋군, 어찌 저런 것들이랑 어울려서… 쯧쯧….”

곽엄택이 혀를 끌끌 찼다.

여월은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크하하하하하.”

쥐꼬리만 한 내공으로 싸울 준비를 하는 여월을 보며 곽엄택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엄청 재미있는 것을 본다는 듯 박장대소를 했다.

무인이라면, 아무리 실력 차이가 있어도 지켜야 하는 예의라는 것이 있었다.

곽엄택은 그런 법도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자였다.

진지하게 임하는 상태를 조롱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여월이 오른발에 힘을 실어 오른손을 내밀려는 찰나, 곽엄택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곽엄택은 커다란 손을 가볍게 뻗었다.

이내 솥뚜껑만큼이나 크고 두툼한 손바닥이 여월의 왼쪽 귀와 뺨 전체를 감싸며 지독한 고통이 일었다.

여월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가며 몸이 휘청거렸다.

이어서 커다란 손이 여월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아악!!”

여월이 비명을 질렀다.

“부러트리지도 않았다.”

곽엄택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고, 여월의 정강이를 향해 발을 뻗었다.

“으아악!!”

여월이 다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쯧쯧… 아가야. 사람은 무릇 친구를 가려서 사귈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원망하지 말고 네 친구 보는 눈이 없음을 탓해라.”

곽엄택이 말을 하며 여월의 요대를 풀었다.

“으아아아아악!!”

여월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가렸다.

인상을 찌푸린, 곽엄택이 여월의 아혈을 점했다.

여월이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질러댔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은 몸부림에 불과했다.

곽엄택은 여월의 요대를 세로로 길게 찢어 술이 담긴 호리병의 목을 줄줄이 엮었다.

곽엄택을 잡기 위해 준비한 많은 양의 술은 여전히 꽤 남아 있었기에.

병을 엮고 남은 조각은 바닥으로 던졌다.

여월이 숨을 헐떡이며 찢고 남은 요대를 주워 옷을 여미었다.

“깨워!”

곽엄택이 짧게 말했다.

주춤거리던 여월이 려선의 상체를 일으켜 뺨을 톡톡톡 두드리며 깨웠다.

눈을 뜬 려선이 여월을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가 곧 곽엄택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여월은 속으로 온갖 욕을 해대며 단각과 윤거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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