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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6화 (26/230)

26화

해가 지고 까만 어둠이 세상을 감싸 안을 시각이었다.

커다랗고 둥근 달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지만, 한걸음 간격으로 걸려있는 붉은 등불 덕분에 이곳만은 은은한 달빛이 범접하지 못했다.

온통 붉은빛에 사로잡힌 공간은 사람의 신경을 묘하게 들뜨게 했다.

커다란 백화루의 정문을 지나면서부터 연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인위적으로 밝혀놓은 아릿한 불빛과 코끝을 간질이는 연인들의 분내, 화려한 의복 밖으로 드러난 기생들의 뽀얀 살결, 무언가를 굽고 지지는 기름 냄새.

한데 뭉쳐져 의미를 알 수 없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활기.

태어나서 처음 본 풍경과 향취, 소음이 어우러진 활력에 얼떨떨했다.

걸화가 연천의 어깨를 툭 쳤다.

“입 좀 다물어요!”

그들을 안내하는 시녀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연천을 향해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연천은 대꾸하지 않고 슬그머니 입을 오므렸다.

잠시 후, 안내된 자리에 앉은 연천은 두툼하고 푹신한 비단 방석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옆에 착 달라붙어서 술을 따르고 안주를 먹여주는 기녀 때문에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맞은편에 자리 잡은 걸화는 음식과 술을 시켜놓고 기녀들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대고 있었다.

딱 철없고 돈 많은 집 망나니 같은 꼴이었다.

남들이 어찌 보건, 걸화는 서책 속의 영웅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대협! 무엇이 불편하시어요?”

옆에 앉은 기녀가 연천에게 물었다.

말을 거는 여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연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굴러다녔다.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기녀에게 향했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연천은 요청해놓은 하오문도가 언제 오나 싶어 하얀 창호지가 발린 문만 바라보았다.

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지나가는지, 기루에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연천이었다.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뜻이지만…….

다행히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문이 열리며 지금까지 함께 있던 어떤 기녀보다 화려한 차림을 한 여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서자 연천과 걸화의 옆에 있던 기녀들이 우아한 동작으로 일어나서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문이 가볍게 닫히고 그녀가 한 마리 나비처럼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절을 했다.

연천은 그녀를 따라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걸화에게서 살기와 비슷한, 눈으로 사람을 패버릴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개 숙이기만 해봐요!! 확 그냥!’

절을 하는 여인은 속이 비치는 샛노란 색 비단 장포를 입고 있었다.

요대를 유난히 높이 묶어 가슴이 강조되었고, 굴곡진 가슴 아래 잘록한 허리와 육감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얇은 옷감 덕에 옷을 입었지만, 나신을 보고 있는 것처럼 우아한 체형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연천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그녀가 앉아 있는 방석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소녀, 황련이라 하옵니다. 소녀를 찾으셨다구요?”

황련이 살짝 내린 얼굴에 눈을 위로 올려 뜨며 물었다.

말간 눈동자 위에 내려앉은 새까만 속눈썹이 우아한 자태로 하늘을 향했다.

“여기가 하오문이 운영하는 기루 맞는가? 물어볼 게 있어 왔소이다.”

걸화가 자신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

서책 속의 개방지존이 그랬기에 걸화는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반면, 웃음이 피식하고 새어 나오며 긴장이 풀리는 연천이었다.

저것을 어찌 가르쳐야 되나 생각하던 연천은 일단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하오문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걸화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

“…….”

황련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걸치고 걸화를 바라보았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천마척결 사건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구하고 싶네.”

쬐끄만 걸화가 영감 같은 말투로 말했다.

황련이 예쁘게 웃자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났다.

“음… 마침 저희가 그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가격이 꽤 됩니다.”

“얼마나 되는가?”

걸화의 진지한 어투는 우스꽝스러웠다.

“은자 백 냥입니다.”

황련이 미소를 지우고 말했다.

“은자 백 냥이라… 그만한 돈은 없는데… 돈을 벌 수 있는 정보도 같이 주시게나.”

황련이 은자 백 냥이라는 큰돈을 불렀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말하는 걸화였다.

서책 속, 무림의 영웅들은 무공뿐만이 아니라 적절한 소식과 정보도 중요했다.

거지인 개방지존이 무슨 돈이 있어 값비싼 정보를 샀겠는가?

다 이렇게 일을 해주고 얻는 것이었으니, 정보의 값이 비싼 것은 당황할 일이 못 되었다.

그만한 일을 하면 그만인 것을.

“호호호호… 하오문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 오셨군요.”

황련이 소리 내어 웃었다.

연천은 걸화와 황련의 이야기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럼, 사람을 하나 찾아주시지요. 사라진 여식을 찾아서 데려만 오면 되는데 하시겠습니까?”

웃음을 거둔 황련이 물었다.

“집 나간 딸 찾는 것은 내 전문이네.”

걸화가 피식 웃었다.

“백화루에서 남쪽으로 한 시진 정도 가시면 도선상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집 여식입니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진지한 얼굴로 설명하는 황련이었다.

“알겠네, 내일 아침에 간다고 전해 주시게.”

걸화가 은자 다섯 냥을 탁자에 올려놓고 일어났다.

연천도 얼떨떨한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기루의 기녀들은 곱게 허리를 접어 인사할 뿐이었다.

연천만 얼빠진 표정으로 걸화 뒤를 따랐다.

* * *

객잔으로 돌아와서도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연천이 물었다.

“정보 값이 백 냥이라면… 우리가 소저 하나 찾아주는데 은자 백 냥이나 쳐준단 말이냐?”

“에이, 그것도 자기들이 돈을 반이나 떼먹을걸요.”

“반? 그럼 백 냥이 아니고 우리에게 오십 냥을 주는 게야?”

“아니죠, 이백 냥 받아서 백 냥 떼어먹고 우리한테 백 냥 준다는 거잖아요. 그것도 돈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백 냥치 정보를 주겠다는 거잖아요. 칼만 안 들었지 강도야, 강도. 정보 파는 게 이게 돈이 되는 거구만… 울 아버지 똑똑하네….”

걸화가 마지막 말은 흐렸다.

“하오문이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연천은 엄청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말했다.

“걔들이 그 정도예요, 일을 잘못해요. 개방 같았으면 벌써… 음… 음… 아마 뭣 모르는 상회 주인에게 자신들이 찾아주겠다고 꼬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개방에 가지 하오문… 암튼… 음…….”

“개방? 그것은 무엇이냐?”

“있어요, 거지들. 쉬고 내일 일찍 도선상회로 가시죠. 나 피곤해요, 형님 쉬세요.”

걸화는 서둘러서 연천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쳐댔다.

“이놈의 주둥이! 이놈의 주둥이! 자꾸 개방! 개방!… 으이그…….”

* * *

하오문의 하북 당주 은월은 기녀들에게 어제저녁 손님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었다.

모름지기 모든 장사는 귀하고 값진 것을 믿을 수 있는 이에게 판매하는 것이, 가장 돈이 되고 안전하고 정확했다.

그것은 정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하오문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손님을 가려가며 알짜배기 손님들 위주로 받았지만, 지금 하오문의 처지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천상이 방주가 되면서 정보 장사를 드러내어 놓고 하는 개방 때문이었다.

개방에서는 알짜배기, 잔챙이 가리지 않고 정보의 가격에 차별을 두어 팔았으니 말이다.

별 볼 일 없는 정보나 캔다고 하오문에서 찬밥 취급받던 자들은 개방의 점포로 발걸음을 옮겨버렸다.

개방에서는 손님 대접받으며 제 돈 내고 필요한 정보를 살 수 있으니 하오문에서는 파리나 날릴 수밖에.

하오문도 잔챙이 손님까지 살뜰하게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주가 모든 손님을 일일이 대면할 수 없으니, 하오문 소속 기녀들을 키워 그녀들에게 싸구려 손님을 맡기고 당주는 귀하고 비싼 정보를 취급하는 손님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었다.

은월은 눈을 가볍게 감고 섬섬옥수에 유려한 턱을 괴고 조용히 기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천진현의 현감 부인께 현감과 바람난 과부의 정보를 오십 냥에 팔았습니다.”

연한 하늘색의 비단옷을 입은 기녀가 다소곳이 앉아 은월에게 말했다.

은월은 눈을 감은 채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알겠으니 다음 차례로 넘어가라는 의미였다.

“닷새 전 박양주가의 막내아들이 술을 마시고 누군가에게 돈과 입고 있던 옷가지까지 몽땅 털린 일이 있었습니다.”

풀빛 옷을 입은 기녀의 말에 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월의 반응을 본 풀빛 옷의 기녀는 말을 이었다.

“박양주가의 가주께서 직접 오시어 범인을 찾아달라고 하셨기에 은자 팔십 냥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개방에도 같은 일을 맡긴 듯하였습니다.”

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황련이 입을 열었다.

“천마척결 사건과 관련된 것을 알고 싶다 하여 은자 백 냥을 불렀습니다.”

황련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속눈썹이 풍성한 은월의 눈이 천천히 올라갔다.

나른하게 풀어진 몸과 다르게 눈썹 아래 안광이 빛났다.

은월이 황련을 쳐다보며 물었다.

“천마척결? 우리에게 그런 정보가 있어?”

“영친왕의 검에 대한 정보가 있지 않습니까?”

황련은 다소곳한 자세였으나, 은월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것은 중원을 지나가던 개도 아는 정보인데?”

은월이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들은 모릅니다, 무릇 정보란 것은 어떤 이에게는 철전 한 푼 값어치도 안 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은자 백 냥의 가치가 되기도 하는 법이지요. 그자들에게 그 정보는 은자 백 냥의 값어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황련의 자신에 찬 목소리였다.

“호호호호.”

은월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황련의 말이 맞았다.

정보 장사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었다.

정해진 값이 없는 정보는 똑같은 것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을 매겨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황련은 뛰어났다.

즉, 얼치기를 잘 골라내어 옴팡 바가지 씌우는 능력이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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