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연천이 처음 듣는 이름에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아… 그리 큰 점포의 주인장이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하오문? 그건 뭐냐?”
걸화는 뻥한 표정의 연천을 살폈다.
그의 분위기로 보건데, 하오문은 물론이고 개방도 모르는 게 확실했다.
‘와… 저 형님도 진짜 어지간하다. 중원에서 하오문이랑 개방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겠구만. 내가 그 힘든 걸 해냈네, 해냈어.’
걸화가 연천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형님은 멀쩡하게 생겨서 세상 아는 게 없어요? 하오문이야 돈 주고 정보를 사는 곳이지요. 그리고 ‘마제’라 불리는 것을 보면 마교의 상층부는 되겠구만, 그건 나도 알겠는데 어찌 그런 것도 몰라요?”
흥분한 걸화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그러냐? 내가 오랫동안 산속에서만 살아서… 세상 물정에 좀 어둡긴 하다.”
걸화의 핀잔에 뻘쭘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천은 연천대로 놀라는 중이었다.
‘세상에… 돈을 주고 정보를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니……. 그동안 그 푸대접을 받으며 장터 큰 점포를 돌아다녔는데 그게 다 헛수고였어…….’
씁쓸했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자신의 무지함을 탓해야지.
“어휴… 답답해. 뭐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으면 나한테라도 얘기해요. 그래야 같이 알아볼 것 아니에요, 혹시 내가 아는 게 있을 수도 있고.”
도저히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몰라도 수준이 있고, 답답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대체 저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산 거야? 내가 안 도와주면 평생 장터나 돌아다니면서 살겠구만, 아이구야…….’
걸화는 뒷덜미가 뻐근했다.
자신이 사고를 치면 아버지가 왜 뒷목을 잡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너무 답답한 일을 마주하니 목덜미가 찌뿌드드했다.
“그게… 스승님이 남긴 단서 같은 거라… 그저 몇 사람의 이름 정도이다. 음… 태청검하고 수일검, 금월대사… 뭐 이런 사람들…….”
연천이 생각나는 이름들을 나열했다.
“태청검? 태청검? 태청검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태청검… 태청…태청검존? 무당의 그 태청검존?”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걸화가 뭔가 떠올랐는지 호들갑을 떨었다.
“무… 무당? 글쎄……?”
연천이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당의 전대 장문인이잖아요, 마교의 혈영천마를 없앨 때 앞장섰던 그분을 몰라요?”
‘우와~ 세상에 무당을 모른다……. 하긴 개방도 모르는데 무당인들 알까? 대체 사람이 어떻게 살면 저럴 수 있는 거지?’
연천은 처음 들어본 이야기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금월대사와 수일검도 아느냐?”
“수일검? 그 유명한 수일검을 몰라요? 무림의 영웅이잖아요, 화산에 장로이고 금월대사는 소림의… 응? 그 세 분이 힘을 합쳐서 혈영천마를 없앴잖아요. 지나가는 무림의 강아지도 아는 걸 몰라요? 와~ 형님 진짜 심하다.”
걸화가 뜨악한 얼굴로 연천을 쳐다보았다.
“…혈영천마를 없앨 때? 혈영천마는 누구냐?”
질문을 하는 연천의 얼굴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미세하게 일렁거렸다.
“혈영천마도 몰라요? 전대 마교의 천마, 혈영천마요! 혈!영!천!마!”
답답함에 언성이 높아지는 걸화였다.
‘그래… 이제 놀랍지도 않다, 저렇게 아는 것 없이도 사는 데 문제가 없구나. 거기다 무림을 돌아다니기까지…. 생각보다 세상이 만만하구나, 만만해.’
“혈영천…마… 그분은 어떤 분이셨느냐?”
연천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느릿하게 물었다.
“그분이라뇨? 그놈은 무림 최대의 살인귀였어요. 구파일방의 무당과 소림, 화산이 손잡고 겨우 없앤 악인. 얼어 죽을 놈, 벼락 맞아 죽을 놈, 똥물에 튀겨…….”
침을 튀기며 혈영천마를 욕하던 걸화는 연천에 의해 말이 뚝 끊겼다.
“그만! 그만하거라, 사람은 다 제 사정이 있는 법이니.”
연천이 못마땅한 얼굴로 걸화의 말을 막았다.
“에엥? 형님! 사람을 그리 떼로 죽였는데 사정은 무슨 사정이요? 그 천벌 받아 죽을 놈은 결국 천벌을 받아서…….”
“그만하라지 않았느냐, 음… 그만하거라 좀 쉬고 싶구나.”
연천이 걸화의 말을 끊었다.
“알았어요, 쉬세요…….”
걸화가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섰다.
연천의 방에서 나와 옆의 자신의 방으로 가면서 구시렁거렸다.
‘똥물에 튀겨 죽일 놈한테 사정은 뭔 놈의 사정! 아잇…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데 쫓아다닌다고 무공이나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내 스승은 왜 하나같이 저런 건지……. 에잇… 쯧!’
연천을 알아갈수록 영 불안한 걸화였다.
그날 저녁.
“형님! 오늘 저녁은 오리고기에 죽엽청으로 먹읍시다, 에? 제가 사겠습니다. 형니임~”
객잔의 식당에 앉아 연천을 조르는 걸화였다.
“되었다, 여기 국수 주시오.”
연천은 걸화의 의견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점소이에게 국수를 주문했다.
“뭔 국수를 그리 좋아해요?”
걸화가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너는 뭔 오리고기와 죽엽청을 그리 좋아하는 게냐?”
걸화의 불룩한 얼굴을 보고 대꾸하는 연천이었다.
“무림에 나왔으면 오리고기와 죽엽청을 먹어야 진정한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죠, 형님은 뭘 몰라.”
걸화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했다.
연천이 피식 웃었다.
“칫! 그나저나 하오문은 언제가요?”
연천을 흘겨보던 걸화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하오문? 음… 오늘은 해가 저물었으니 내일 일찍 가보자꾸나.”
잠시 생각하던 연천이 대꾸했다.
“에엥? 형님! 하오문은 기루에요, 아침 일찍 누가 기루를 열어요?”
걸화가 연천을 핀잔했다.
“기루? 아까는 정보를 파는 곳이라고 하더니?”
연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에이… 기루가 그렇잖아요. 술 마시면서 중요한 이야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도 하고 거래도 하고, 그런 걸 모아서 정보를 만드는 게 하오문이에요. 그러니 기루죠, 아침에 누가 중요한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구… 아휴… 답답한 형님…….”
연천의 무지함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할 때마다 놀라운 걸화였다.
“음! 음… 그러냐? 그럼 주문한 국수는 먹고 가보자꾸나.”
연천은 연천대로 걸화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놀라웠다.
‘기루에서 돈을 받고 정보를 판다니…….’
“형님! 그 옷 말고 아까 산 비단옷 입으세요, 기루 입구에서 문전박대당하지 않으시려면…….”
걸화가 연천을 향해 새치름하게 눈을 흘겼다.
그는 비단옷을 벗어놓고 점소이에게 얻었던 낡은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정보만 사는 데 옷까지 신경을 써야 하느냐?”
연천은 비싼 비단 의복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아이참! 형님! 누가 기루에 가서 정보만 사요? 술도 마시고 요리도 시키고 기녀도 불러야지이!”
“정보 사러 가는데도 그래야 되는 거냐?”
연천이 께름칙한 얼굴로 물었다.
“네! 그래야 돼요!”
단호한 걸화였다.
“으…음…….”
연천은 비단옷에, 기루와 기녀, 술··· 암만 생각해도 거북했다.
집을 나오기 전, 걸화가 개방의 총타 밖으로 나간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유모가 살아 있을 때 거지들의 호위를 받아 잠깐씩 아랫마을에 내려가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걸화가 살았던 곳이 어디던가, 무려 개방 총타가 아닌가.
걸화는 개방 곳곳에 은잠술을 하고 숨어 있었다.
누구나 알아도 되는 얘기는 물론이고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귀에… 귓가로 흘린 걸화였다.
걸화가 들은 이야기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 정보가 어마어마했겠지만, 당시 걸화는 개방도들이 해대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눈앞의 거지를 언제, 어떻게 족칠지에 대한 생각뿐이었으니.
대신 그녀에게는 서책이 있었다. 책장이 닳을 때까지 읽은 수많은 무림에 대한 서적.
그것들을 통해 습득한 지식의 양은 어지간한 무림인은 찜 쪄 먹을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실속과 실전은 부족한 이론에 불과했지만.
하오문만 해도 그렇다. 하오문은 기루뿐 아니라 객잔, 도박장, 전장 등을 운영한다.
하오문이 운영하는 객잔에 가서 정보를 사도 되건만, 걸화가 본 서책 속 무림인들은 기루에서 기녀를 옆에 끼고 소흥주를 마셔가며 호기롭게 정보를 알아내는 족속들이었다.
걸화가 아는 무림은 서책 속에 있으니 기루로 갈 수밖에.
연천이나 되니 그 앞에서 무림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지, 어지간한 무림 초출이 보아도 걸화의 잘난 척하는 무림 정보는 속 빈 강정과 같은, 우습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무공에 무지한 걸화와 무림에 무지한 연천.
아주 절묘한 동행이었다.
잠시 후.
연천과 걸화는 비단옷을 걸치고 객잔을 나섰다.
큰돈을 들인 만큼 비싼 티가 팍팍 나는 옷을 입은 연천과 걸화에게서는 귀티가 줄줄 흘렀다.
“형님! 얼빵한 표정 짓고, 계속 고맙다 그러면 안 돼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가만히! 알았죠? 가만히!”
마음이 놓이질 않아 여러 번 당부하는 걸화였다.
“알았다, 너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다.”
“아휴… 아까 그 점포에서 한 것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거 같아서 그래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천마척결 사건에 대해서만 알아보면 되는 것이지요?”
걸화가 걸으면서 알아봐야 할 것을 확인했다.
“천마척결 사건?”
연천은 처음 듣는 말이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당과 소림, 화산이 힘을 합쳐 혈영천마를 없앤 그 일을 그리 불러요.”
걸화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을 묻는 연천에게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설명을 했다.
“그래… 그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구나…….”
허공을 향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걸화에게 말하는 듯, 아무도 없는 곳의 다른 누구에게 말하는 듯한 연천의 눈빛은 아련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묵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걸화는 세상 물정이라고는 모르면서 혈영천마를 그분이라고 칭하지 않나, 세상이 다 아는 천마척결에 대해서 새삼 진실을 알겠다는 연천이 탐탁지 않았다.
“진실은 개뿔… 그 똥물에 튀…….”
말을 하던 걸화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차고 날카로운 냉기가 몸을 쑤셔대는 것 같았다.
그저 사람 좋고 순하기만 한 연천의 눈매가 매섭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점소이에게 물어서 알아놓은 백화루로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