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하오문으로 가야지요!】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한 연천이 점포로 다가갔다.
“주인장.”
조심스럽게 주인을 불렀다.
“네! 어서옵쇼!”
비단천을 정리하던 주인이 습관적으로 반갑게 인사하며,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주인은 자신을 부른 연천과 걸화의 행색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굳었다.
낡고 낡은 점소이의 옷을 입은 연천과 장에서 산 싸구려 의복을 입은 걸화였다.
척 봐도 값비싼 비단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이들이 포목점에서 뭘 사겠는가?
표정을 바꾼 주인은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부름에 대해 대꾸도 하지 않고, 턱을 까딱이며 눈으로 말했다.
‘뭐?’라고
“주인장 미안하오만 내 뭐 하나만 여쭈어보겠소, 혹시 상관량이라는 사람을 아시오?”
연천은 주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그렇지…….’
주인장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내가 그런 이를 어찌 알겠소?”
톡 쏘아붙인 주인은 파리라도 내쫓듯이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인상을 썼다.
“장사하는 곳에 와서 이런 걸 물어서 미안하오만 내가 급해서 그러오, 부탁 좀 하겠소. 백귀마제 상관량이오, 잘 좀 생각해 보시오.”
연천은 주인장의 불쾌한 태도에 미안한 얼굴을 했지만, 다부진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모른다니깐 그러네, 이 사람이… 에잇! 장사도 안 되는데…….”
얼굴을 구긴 주인장은 당장 구정물이라도 퍼부을 기세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걸화가 연천 앞으로 불쑥 나섰다.
그러고는 은자 다섯 냥을 쑥 내밀었다.
“우리 입을 비단옷 두 벌만 주시오.”
재빠르게 두 사람과 은자를 번갈아 보던 주인장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비굴한 웃음을 띠며 굽실거렸다.
“아휴… 헤헤헤헤, 내가 이런 귀한 분들을 못 알아보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어서!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차 한잔 드시겠습니까? 헤헤헤.”
“걸아야! 너!”
연천은 주인장의 반응보다 거지 아이인 걸아가 그리 큰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연천이 굳은 얼굴로 걸화를 내려다보았다.
“형님! 어서 들어갑시다, 그 상관 뭐? 그 사람도 물어보고.”
걸화가 점포 앞에 서 있는 연천의 등을 떠밀었다.
연천은 입을 뻐끔거리다 걸화에게 떠밀려 점포 안으로 들어섰다.
점포 안은 기분 좋은 차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사방에는 종류와 색이 다양한 의복과 비단천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어찌나 화려하고 다채로운지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주인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신 웃음을 자아내며 두 사람을 위한 옷을 골랐다.
“여기 대협께서는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하시니 이런 옷을 입으면 풍채가 있어 보여 잘 어울릴 겁니다.”
주인장이 백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장식된 심의와 장포를 겹쳐 보이며 연천에게 말했다.
“좋소, 그건 형님하고 나도 하나 보여주시오.”
걸화가 연천의 옷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소협은 피부색이 유난히 뽀얗고 고우니 밝은색이 많이 섞인 옥색이 어울릴 듯합니다.”
주인장이 옥색에 화려한 무늬가 놓인 의복을 들어 걸화 앞에 대보며 말했다.
“그 두 벌로 하겠소.”
걸화가 적당히 옷을 선택했다.
“아! 하! 좋은 선택이십니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 않습니까? 두 도련님의 인물이 훤해지실 겁니다. 안쪽으로 가서 옷을 아예 갈아입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주인장이 손을 모으고 두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다.
“좋소, 그리고 아까 우리 형님께서 물었던 그 자는 정말 모르시오?”
걸화가 매서운 눈으로 주인을 보며 물었다.
“그… 그… 아까 그분의 성함이……?”
주인장이 허둥거렸다.
“상관량…이오, 백귀마제 상!관!량!”
연천이 또박또박 이름을 다시 말했다.
“음… 그 이름은 잘 모릅니다만, 마제라고 하는 걸로 봐서 마교 쪽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주인장이 말끝을 흐렸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주인장!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오, 정말로 고맙소!”
연천은 고작 주인장의 그 몇 마디에 포권을 하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형님! 형님!! 안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으시지요. 어서요!”
걸화가 연천을 말리기 위해, 옷을 연천의 품에 안겨 등을 떠밀었다.
연천은 옷을 끌어안은 채,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연천이 들어간 곳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사방에 다른 색 천으로 둘러쳐진 작은 방이었다.
연천은 점소이의 옷을 벗고 걸화가 떠안긴 옷으로 갈아입었다.
걸화도 새로 구입한 비단옷으로 환복했다.
옷이 날개가 맞았다.
연천과 걸화는 곱게 자란 부잣집 도령 같은 모습으로 점포를 나섰다.
그들의 뒤에서 점포 주인이 잔망스럽게 웃으며 굽실거렸다.
두 사람은 장터를 통해 객잔으로 걸었다.
해가 저물어가는데도 장마당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리고, 구석구석에 거지들이 깔려있었다.
워낙 많은 거지들이 있었음에도, 은잠술이 뛰어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덩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러웠다.
걸화나 되니 그들을 파악하는 것이지 일반인들은 아니, 제법 무공을 익힌 이들도 인식을 못 하고 지나칠 만큼 천연덕스러웠다.
걸화는 눈치껏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걸었다.
한참을 걷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걸음을 멈춘 걸화가 연천을 돌아보며 버럭 말을 내뱉었다.
“형님! 하시는 개인적인 일이 그런 거예요?”
걸화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걸화를 바라보는 연천의 눈빛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일단 객잔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연천이 앞장서서 객잔을 향해 걷자, 걸화도 입을 삐죽대면서 그를 따랐다.
객잔, 자신의 방에 도착한 연천은 문을 닫고, 잠시 생각하다 걸화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큰돈은 어디서 난 게냐?”
연천이 엄중한 얼굴로 물었다.
“내 돈이에요……. 아버지한테 받은 돈이에요, 훔친 것도 아니고 나쁜 돈 아니에요.”
걸화가 쭈뼛거리면서도 자신이 할 말을 했다.
“넌 거지였다.”
연천이 딱 잘라서 말했다.
그 말 한마디로 연천이 왜 이리도 심각한 얼굴을 하는지 설명이 됐다.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로, 넝마 조각을 걸치고 다니던 거지가 갖고 있던 큰돈이었으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아버지도 거지예요, 거지이지만 돈은 많이 버셨어요.”
작은 목소리지만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개방주 천상은 거지이고 돈을 잘 벌었으니.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
연천이 굳을 얼굴을 풀지 않고 물었다.
“몰라요.”
걸화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걸화는 연천에게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싫었고 지금 개방 총타에 있는지, 분타로 갔는지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 있는지 모른다는 뜻에서 뭉뚱그려서 한 말이지만 연천은 다르게 생각했다.
‘건전하지 못하게 돈을 번 아이의 아비가, 아이에게 돈만 주고 어디론가 도망을 간 것이군…….’
혼자서 주억거리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론을 내는 연천이었다.
틀리긴 했지만, 걸화의 상황과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 결론은 제법 합당한 것이었다.
“정말이에요, 아버지가 준 것 맞아요. 제 말 좀 믿어주세요.”
걸화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천이 걸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눈 속에서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듯이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걸화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그것을 견뎌야만 연천이 자신을 믿어주고 내치지 않을 것 같아 눈을 부릅뜨고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마침내 연천이 입을 떼었다.
“흠… 그래, 알았다. 네 말을 믿으마.”
“…고, 고마워요.”
연천이 순순히 자신을 믿어준다는데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난생처음인 것 같았다.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고 혼을 내지도 않고, 그저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람은.
걸화는 늘 골칫덩이에 말썽쟁이, 문제아였다.
낳아준 아버지도 키워준 유모도, 핏줄인 오라비도 순순히 걸화를 믿어주지 않았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았는데, 본지 겨우 며칠 된 사람이 자신을 믿는다니.
“걸아야…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같이 다니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게 될 거란다.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해질 필요도 있지만, 서로를 믿어주어야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너를 믿기로 했다.”
연천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
걸화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천을 올려다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를 동행으로 받아주고, 거기다 나를 믿는다니.’
알 수 없는 감정이 걸화의 마음속 밑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괜스레 뱃속이 근질거렸다.
“…….”
연천이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함께 하기로 한 일행이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믿어주고, 미소 띤 얼굴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아름답고 따뜻한 분위기.
그 훈훈한 분위기를 확 깨고 걸화가 냅다 말을 꺼냈다.
“형님이야말로 그게 뭐예요? 뭘 알아보려면 개바앙…이 아니고 하오문에 가서 정보를 사면되지, 그걸 아무 점포나 가서 물어본다고 누가 대답을 해준답니까? 무림인도 아니고 점포나 하는 사람들이 무림 일을 어찌 알겠어요!”
걸화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개방이 아닌 하오문을 언급한 양심이 쿡쿡 찔려왔지만 속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하오문도 실력이 괜찮아, 그럼 그럼. 걔들도 괜찮아……. 어설프게 개방에 갔다가 잡혀가면 끝장이야. 형님 미안해요, 내가 최선을 다해서 형님이 알려고 하는 걸 알아낼게요.’
지금의 하오문은 주로 객잔이나 기루, 노름판을 운영하면서 정보 파는 일을 부수로 했다.
천상이 방주가 되기 전에는 고급 정보를 주로 취급하며 정보 장사로 꽤나 수입을 올리던 단체였다.
천상이 방주가 된 이후 하오문은 한결같았지만, 개방 거지들의 실력이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발전했다.
개방의 정보원 숫자는 이전부터 어마어마했으니 슬슬 개방에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에서는 정보의 정확도나 신속도 그리고 정보의 질인 중요도, 거기다 엄청난 방도의 수로 인해 확인에 재확인을 거치면서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는 개방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