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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매혼:바람에_홀린…-21화 (21/230)

21화

【약조를 지키는 거야!】

검법에 대단한 조예를 가져, 규지검인이라 불리는 스승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는 내려치기가 전부였다.

겨우 그것을 가르쳐주고 몇 달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혼자 배운 대로 연습했지만, 스승도 없이 언제까지 그것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승의 전각도 비어있었다.

방주인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밖에.

아버지는 스승이 급한 임무가 있어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말뿐이었다.

이놈 저놈 잡아서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해도 거지들은 걸화를 피하기만 했다.

이건 뭐…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는데 딱 잡아서 뭐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그저 속에 천불이 나서 만만한 거지만 더 괴롭힐 뿐.

그럴수록 거지들은 걸화를 피했다.

“이씨! 아이 짜증 나! 이놈의 스승님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잡히기만 해봐라! 아아아~ 나도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오!!”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걸화였다.

씩씩대는 걸화의 눈에 걸윤이 두드려대던 황동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쨍쨍한 햇살을 받아 따끈따끈한 황동 덩어리 앞으로 다가갔다.

황동 덩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걸윤이 하던 대로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손바닥을 쫙 폈다.

손바닥을 엉덩이에서부터 크게 원을 그리며 앞의 황동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으악!! 아야야야… 아파… 으흐흐…으…크… 아야…….”

걸화가 황동을 내리친 손바닥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배결윤! 이 변태 같은 놈!! 이씨! 아파 죽겠네! 씨이!”

손바닥에 심장이 붙은 것처럼 두근거리더니, 점점 부어올랐다.

“이잉… 나도 무공 배우고 싶은데… 잉….”

아버지도 오라비들도, 주변에 있는 모든 개방도들이 다 무공을 배우는데… 왜 그것이 걸화에게만은 이리도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손도 아프고 맘도 쓰리고… 속상했다.

부은 손을 잡고 한참을 주억거리던 걸화의 눈에 커다란 솥에 지글지글 달구어진 모래가 눈에 들어왔다.

모래는 딱딱하지 않으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홧홧거리는 손을 내리고 반대 손을 들었다.

이번에도 걸윤이 하던 것처럼 손가락에 힘을 주고 모래에 찔러 박았다.

“앗! 뜨거! 뜨거 뜨거 뜨거……! 아아아아……! 아야… 아파… 으흐흐흐… 이잉…….”

벌겋게 변한 손에 금세 뿌연 물집이 부풀어 올랐다.

팔딱팔딱 뛰던 걸화는 벌겋게 대인 손과 팅팅 불은 손을 강시처럼 앞으로 내밀고 의약당으로 향했다.

그 후로 한동안은 돌팔매질을 당하는 거지도, 똥물을 뒤집어쓰는 거지도 없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개방이었다.

* * *

오 년 후.

“아! 진짜! 아버지이이이이~”

걸화가 징징거렸다.

“방주님이라니깐.”

천상이 편안함을 가장해 걸화의 말을 정정했다.

“아! 방주~니이이임~”

“그래, 걸화야.”

천상이 의뭉스럽게 답했다.

“나도! 나도오오오!”

“안 된다.”

개방의 방주 배천상은 딸 걸화에게 침착하게 대답했다.

“왜! 나는 왜 안 되는데! 걸윤이는 갔잖아요!”

걸화의 짜증이 섞인 언성이 높아졌다.

“걸윤이 아니고, 오라버니.”

천상은 여전히 낮고 편안하게 대꾸했다.

“씨잉! 암튼 걔는 갔잖아! 나도오오오!!”

천상에게 칭얼거렸다.

“안 된다.”

“약속했잖아요! 오 년 뒤에 보내주기로!! 뭐라고 하던지 난 갈 거야아.”

꼬질꼬질한 걸화가 바닥에 철퍼덕하고 주저앉아서는 더 강하게 떼를 써댔다.

걸부가 돌아오고 십구 세가 된 걸윤이 달포 전 무림행을 떠났다.

그러니 걸화가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마침 아비가 약속한 오 년이 지나기도 했으니, 자신도 무림으로 나가겠다고 말하는 건 당연했다.

처음부터 이리 떼를 쓰지는 않았다.

그저 약조대로 하겠다고 순순히 말을 했지.

그런데 개방의 방주씩이나 되는 아버지가 이제 와서 딴말을 하며 무림행을 반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걸화로서는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일이었다.

구파일방의 방주가 돼서 어찌나 당당하게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지…….

약조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건데 그것이 왜 이렇게 치사스럽고, 아니꼬운 일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확! 와… 진짜… 아오!!’

천상 또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좋은 밥 먹고 좋은 옷 입고, 편히 살길을 두고 왜 저리도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길로 가려는지 자신의 여식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편하게 좋은 곳으로 시집가는 것 대신에 왜 무림에 나가겠다고 하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네가 그런 몰골로 다니는 것도 이해가 안 돼, 도대체 너 왜 그러는 게냐?”

천상은 딸의 속이 정말 궁금했다.

“아버지! 아버지도 개방지존이라는 서책을 읽어봤지요?”

걸화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개방의 초대 방주님의 전기를 담은 책이 아니더냐?”

“응……. 나는 그분처럼 살고 싶어, 진정한 거지로. 그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협의를 행하고 기연을 얻어 힘을 키우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것이 내 꿈이에요.”

새까만 얼굴에 두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래서 그리 씻지 않고 상거지 꼴로 다니는 게야?”

“응.”

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분은 결국 개방을 세우고 방주가 되셨다.”

“나도 방주가 되고 싶지만, 그것만은 큰형한테 양보할 계획이에요.”

“뭐… 뭐? 양보? 하! 걸화야, 어느 위인에 대한 이야기이건 좀 미화되거나 각색된 부분이 있단다. 그리고, 서책은 좀… 과장 되게 쓰기도 한단다. 그러니 네가 읽은 그 내용이 전부 다 사실인 것은 아닐 게야.”

천상이 성질에 맞지 않게 딸아이를 타일렀다.

“지금 초대 개방주의 이야기를 담은 서책이 거짓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잖느냐? 진짜 현실보다 더 좋게 쓴 부분이 있다는 게지.”

“몰라!! 아버지가 얘기해보라고 해서 한 거고 나는 오 년 전에 아버지와 약조한 대로 무림행을 갈 거야, 아버지가 보내준다고 약조했잖아요!!”

침착하게 말을 하던 걸화가 결국 소리를 질렀다.

“그… 그거야… 그때는 네가 다 죽게 생겼으니 내가 너를 살려보겠다고 그런 게지.”

천상이 살짝 당황하였다.

“이제 와서 치사하게 이럴 거예요? 난 약조를 지킬 거야, 나도 무림에 가서 강해질 거라고요!”

걸화가 벌떡 일어서서 밖을 향해 휙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기만 해봐라!! 거지란 거지는 다 불러 모아서 찾아올 테다! 네가 개방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한 시진도 안 돼서 찾을 게다.”

천상이 방을 나서는 걸화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 질렀다.

그래, 천상의 성질에 오래도 참았다.

쿵쾅거리며 나가던 걸화가 획하고 뒤를 돌아 씩씩거리며 천상을 쳐다보았다.

천상이 걸화의 시선을 피했다.

명분은 걸화에게 있었다.

무림행을 보내어주겠다고 약조를 하고, 그 약조를 문서로 써 준 건 바로 천상이었으니.

“씨이!”

걸화가 더욱 크게 발소리를 내며 천상의 방을 나갔다.

쿵! 쿵! 쿵! 쿵!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어찌나 세게 굴리는지 바닥이 꺼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쾅!!

아무것도 없는 허연 벽이 흔들렸다.

걸화가 있는 힘껏 문을 닫는 소리였다.

“저… 저… 저… 저건 대체 누구를 닮아서 성질이 저 모양이야!! 어이구! 내 속이 터져, 속이 터져어!! 유모가 그렇게 일찍 가지만 않았어도! 아이구우~!! 유모오!!”

천상이 주먹으로 가슴을 쳐댔다.

옆에서 천상과 걸화를 지켜보던 이들은 ‘성격은 방주님을 빼다 박았구만요’라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었다.

천상과 걸화는 벌써 달포 가까이 실랑이 중이었다.

보는 이들이 진력이 다 하건만, 두 사람은 누구 하나 지치지도 않고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입씨름을 해댔다.

* * *

걸화는 이른 새벽부터 하루종일 숲길을 저벅저벅 걸었다.

등에는 작은 바랑까지 매고 있었다.

“내가 틀림없이 간다고 얘기했어, 내가 오 년 전부터 이야기를 했으니 아버지도 알아들었을 거야. 거기다 서찰까지 써 놨으니 됐지! 나도 무림으로 나갈 거야, 무림에 나가서 강해질 거라고… 세상을 돌아다닐 거야.”

걸화는 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정문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걸화의 방에서 개방 밖으로 나가는 비상통로가 있기는 했다.

바로 외길에서 멀지 않은 관도로 이어지는데, 그 앞도 거지들이 지키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개방을 벗어나는 길은 이 숲뿐이었다.

“진짜 거지들 다 풀어서 잡으러 오는 거 아니야? 그럼 진짜 금방 잡힐 텐데…….”

걸화가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고민했다.

“아니야! 개방을 빠져나가서도 계속 숲길로만 다니는 거야. 숲엔 거지가 없잖아, 그럼 날 무슨 수로 찾겠어?”

걸화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산길이 아닌 풀숲으로 걸음을 옮기며 구시렁댔다.

“아잇!! 잡히면 진짜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가둬놓을 텐데… 아… 그냥 돌아갈까?”

다시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구시렁거렸다.

“아니지! 아니지! 자고로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잘라야지! 암! 잡힐 때 잡히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가고 봐야지.”

걸화는 진한 초록의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 깊숙이 들어갔다.

“벌써 쫓아오고 그런 건 아니겠지?”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으악!!”

걱정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걸화가 발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발 뒤쪽에서부터 아릿한 고통이 찌르르 올라왔다.

“아…….”

주저앉은 그녀 옆으로 뱀 한 마리가 유유히 풀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으아악…! 아악…! 배, 뱀… 뱀이야……. 뱀… 뱀… 어쩌지? 도, 독… 독! 독이 퍼지면 안 돼!! 묶어! 다리를 묶어야 해!”

바랑을 묶었던 끈을 풀기 시작했다.

“씨! 이거 왜 이렇게 안 풀려…….”

오랫동안 풀린 적 없는 끈은 단단하게 죄어져 잘 풀리지 않았다.

때 낀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더니 이내 구정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짠물이 들어가 따가운 눈을 끔뻑거렸다.

한참 만에 끈을 풀어낸 걸화는 서둘러 발목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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