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거지 굴에 찾아가기는 걸 생각조차 못 하던 이들도, 점포에는 발을 들여서 정보를 사고 일을 부탁했다.
귀찮은 일 자질구레한 일을 돈을 받고 맡았다.
변화의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되돌아왔다.
돈이 들어왔다. 원래도 정보를 판매한 돈이 총타로 들어오기는 했으나, 그 규모가 전혀 달랐다.
넘쳐날 정도로 엄청난 금전이 쏟아졌기에 총타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더럽고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움막을 밀고 전각을 지었다.
소령산 아래의 넓은 총타의 터에 수없이 많은 전각을 지어댔다.
장로들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깨끗하고 번듯한 전각을 한 채씩을 배정받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나 상하고 버린 음식을 먹다 자신들을 먹이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은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주었다.
천상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분타로 거지들의 생활비를 보냈다.
그 뒤로는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거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린 거지들을 데려다 글과 무공을 가르치고 장부를 정리하는 법과 셈을 하는 법, 서역의 언어 등을 더 가르치기도 했다.
교육을 받은 거지들은 점포로 가기도 하고 총타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분타로 내려가기도 했다.
총타는 물론이고, 분타와 점포의 체계가 단단해졌다.
정보를 취급하는 곳은 개방뿐이 아니었다.
비천방, 천사단, 정운문… 그 외에도 여러 단체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곳은 하오문이었다.
하오문은 정보를 취급하기 위해 특화된 고수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첩보력이나 은잠술 위주로 실력을 쌓은 고수들은 알짜배기 정보를 캐왔다.
고급 정보들을 비싼 값에 거래하던 하오문이었다.
길바닥에서 구걸하며, 소식통 역할을 하던 개방을 발꿈치의 티끌만큼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 개방이 하오문의 장사에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개방은 하오문과 비교도 할 수 없게 큰 무리였다.
그런 곳에서 값비싼 고급정보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으니 하오문이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상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공이었다.
개방은 기본적으로 무인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개방은 개방도의 수에 비해 고수가 소수에 불과했다.
개방도 대부분의 무공 실력은 그다지 인정받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고수를 배출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천상이 워낙 신경을 쓰고 투자를 했기에 현재는 초고수는 아니라도 제법 많은 고수를 배출해 내고 있었다.
배불리 먹고 편히 쉴 수 있고, 무공 실력까지 겸비하게 된 개방 거지들은 천상을 찬양했다.
개방을 세운 개방지존 이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분의 딸이니 개망나니 짓을 해도 넘겨 봐주었다.
* * *
장자방은 몸과 마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걸화가 먼저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오셨습니까?”
걸화가 포권을 하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는 총타의 수련 방도들이 입는 무늬 없는 황토색의 무복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바짝 올려 뒤로 묶고 있었다.
아니, 씻었지.
어찌 생겼는지 알아볼 수도 없게 켜켜이 묵은 때를 씻어냈을 뿐인데 연지를 바른 것도, 분을 바른 것도 어떤 장식을 한 것도 아닌데…….
‘저 아이가 여인이었지, 그랬지……. 여인의 복색을 갖추면 대단히 미인이겠구먼.’
그래도 워낙 당한 것이 있어 그런지, 방주의 사위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걸화의 말에 장자방이 머리를 흔들었다.
“어… 걸화는 해야 할 게 많으니 우선 몸을 먼저 풀자, 가볍게 연무장 다섯 바퀴만 뛰고 시작하자.”
“네!”
걸화가 씩씩하게 대꾸하고 달렸다.
목검을 든 걸화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길게 내리그었다.
“하체에 힘을 더 실어! 검이 흔들리고 있잖아, 자! 내려치기 백번!!”
걸화는 목검을 위로 들어 내리그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걸화는 가르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아이였다.
피는 못 속인다고 타고난 무공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거기다 노력과 집념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동안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마음먹는 장자방이었다.
얼마 뒤, 장자방은 방주의 호출에 바짝 긴장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주변을 물린 천상과 장자방이 마주하였다.
방주와 무려 두 번째 독대에, 장자방은 긴장한 얼굴로 천상의 입만 쳐다보았다.
“요즘 걸화를 아주 자알 가르친다지?”
천상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흠.”
“…….”
“…걸화를 가르치지 말게.”
한참을 뜸을 들이던 천상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네?”
‘아… 이리 쫓겨나는가? 내가 잘한 게 없기는 하지……. 이리 좋은 기회를 내 발로 차버리다니… 이런 멍청한…….’
장자방은 속이 쓰렸다.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들었네, 기본 초식 정도 가르치면 되었지…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네.”
천상의 말에 장자방은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걸화의 연무장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관심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천상은 걸화에게 본격적으로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을 알았다.
장자방이 기척도 느끼지 못하는 누군가가 자신과 걸화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개방도에게 은잠술은 굉장히 중요했다.
이것 또한 천상이 방주가 되면서 세심하게 살피는 부분이었다.
지금 개방의 주된 수입원은 구걸이 아니었다.
그 말은 거지 모양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개방은 거지 몰골을 유지했다.
왜?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주변과 융화되기가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은잠술까지 가세하면 뻔히 옆에 거지가 있는데도 인지를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랬기에 개방은 은잠술을 중요시했고, 그만큼 뛰어난 자가 많았다.
오 결 제자나 되는 장자방이 개방의 은잠술을 모를 리 없건만, 총타에 있는 이들의 실력은 그 차원이 다른 모양이었다.
방주의 금지옥엽 고명딸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이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에 놀랄 따름이었다.
‘그럼 내가 걸화에게 그 치욕을 당한 것도 알고 있을 텐데….’
그랬다, 방주인 천상이 분타도 아니고 총타 내부의 일을 모를 리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일은 모른 척할 뿐이었다.
특히나 걸화의 일에 일일이 간섭을 했다가는 방주의 업무는 고사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을 터였으니.
장자방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일단 나가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아가씨의 능력이 아깝습니다, 무공에 대해 타고난 능력이 있습니다.”
“…걸화가 여식이라고 무공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네, 여아들도 무공을 배워 무림삼화니 잠룡오봉이니 하고 불리는 것을 보면 부럽다네. 걸화를 겪어보았지? 그 아이가 무공을 배우면 어찌할 것 같나?”
“…….”
장자방은 답하지 못했다.
“무공은 그 능력보다 그걸 다스릴 마음의 그릇이 준비되어야 하는 법이네, 그렇지 못하면 그 힘은 타인에게 해만 끼칠 뿐이야. 난 그 아이가 그런 힘을 기르길 바라지 않네.”
“…….”
“무공까지 익혀 개방도들을 괴롭힌다고 상상을 해보게나, 그 아이가 개방 내에만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어디 나가 다른 문파에 해를 끼치고 다니기라도 하면 내가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 아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어디서 까불어대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 살아갈 수도 없네.”
“…….”
장자방은 조목조목 일리 있는 말만 하는 방주에게 반박할 수가 없었다.
“걸화가 뭐라 하면 내 심부름이라 하고 분타에 갔다 와도 좋고 기루에서 좀 쉬어도 좋네, 편하게 생각하게.”
천상이 묵직한 전낭을 장자방 앞에 내어놓으며 말했다.
“…….”
걸화를 가르치라고 불렀지만,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다.
돈을 줄 테니 기루나 돌아다니면서 놀라는 얘기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난감한 장자방이었다.
“돈이 떨어지면 총관에게 말하게, 내어줄걸세. 난 자네가 내 말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네.”
“네… 방주님.”
장자방은 천상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 * *
몇 달 후.
“야! 배걸윤!”
이글거리는 모래 속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있던 걸윤의 손이 딱 멈추었다.
오늘도 걸윤의 탄탄한 근육에는 땀방울이 번들거렸다.
“하…….”
마지못해 몸을 들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걸화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너! 우리 스승님 봤지? 어쨌어?”
걸화가 앞도 뒤도 없이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댔다.
“네 스승님을 왜 나한테 찾아? 난 몰라.”
걸윤이 귀찮은 듯 귀를 후비적거렸다.
“거짓말하지 마! 틀림없이 이쪽에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확실하지 않은 말을 굉장히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느낌 같은 소리 하네, 그럼 내가 니 스승인가 보지!”
걸윤은 몹시 성가신 듯한 얼굴로 대꾸했다.
“너 거짓말이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 안 둔다!”
씩씩대며 협박을 해댈 뿐, 뻔히 걸윤 혼자 연무장에 있는 걸 보고는 어찌하겠는가.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든가 말든가.”
걸윤은 걸화가 없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권태로운 목소리로 중얼댔다.
“이씨!!”
걸화가 걸윤을 노려보았다.
“안 가?”
“…….”
걸화는 여전히 걸윤을 쏘아볼 뿐, 연무장 한가운데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장자방이 어디서 튀어나오기라도 할 듯이.
“아잇…….”
걸윤이 머리를 벅적거리며 벗어놓은 상의를 들고 연무장을 나섰다.
걸화와 같은 곳에 오래 있어보았자 좋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뒤통수에서 걸화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연무장을 나서는 걸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후… 귀신같이… 자방 형님 왔다 간 건 어찌 알았대?’
장자방은 걸화 덕분에 팔자에 없는 전국 유람 중이었다.
돈이 떨어져 총타에 들렸다가 걸윤에게 인사를 하고 간 것이다.
장자방이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걸화가 들이치는 통에 걸윤도 가슴이 뜨끔했다.
적당히 대꾸해주고 걸화를 피하는 걸윤이었다.